베드로전서 1장 1-2절(택하심을 받은 나그네)

베드로전서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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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베드로전후서를 읽고, 설교 준비를 위해 묵상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오늘날 우리가 세상 속에서 겪는 교회와 성도들의 문제의 본질적이고, 고질적인 부분을 서신에서 파헤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사회적 신뢰도가 바닥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한국 교회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들이 기윤실이나 목회데이터연구소의 자료에도 수록이 되어 있고, 여러 기사로도 보도 되었습니다. 
목회자 및 교인들의 윤리적, 도덕적 물의와 타락의 문제들, 영적 성장 보다는 외형적 성장에 치중 하면서 교회가 기업화 되고, 사람을 돈으로 보며 교회를 운영해 나갑니다. 
세상이 바라는 교회의 모습은 결국 언행일치의 삶 입니다. 
고차원적인 신학적 교리가 아니라, 세상 사람들도 지키는 최소한의 상식과 도덕을 교회도 지켜 달라는 것입니다. 
또한 과거 한국교회가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을 돌보고, 사회 발전에 기여했던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건전한 비판을 무조건 영적 공격이나, 핍박으로 생각하지 말고, 잘못을 인정하고, 세상과 상식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소통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요구들로 인해 교회가 지켜야 할 진리가 흐려지고 무너져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교회는 세상 속에 있으나,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공동체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와 모두에게 심각한 질문 두 가지를 던지면서 베드로서신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1. 교회가 세상과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현세적이고, 세속적이며, 길과 방법을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2. 예수 믿고 복 받아서 이 땅에서 무엇이 되었는가? 
이 두 질문은 오늘날 한국교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베드로가 편지를 보냈던 초대교회 역시 같은 고민과 갈등 속에 있었습니다. 
이 서신이 기록된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절에서 베드로는 이 서신을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 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 합니다. 
이 지역은 로마와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소아시아 변두리 지방이었고, 오늘날의 터키 변두리 지역 입니다. 
하지만 로마 정부의 영향력 아래 헬라화가 아주 잘 진행된 지역이기도 합니다. 
특히 아시아 에는 계시록에 언급된 일곱 교회들이 있었고, 인구도 많았으며, 세속 문화가 아주 화려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성도는 그런 곳에서 세상의 방식과 가치관을 쫓으며, 로마의 신들을 섬기면서 타락한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과 서로 부딪히며 살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갈등에 직면한 교회와 교인들을 향하여 베드로는 이 서신을 써서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1절에서 베드로가 이 서신을 써서 보내는 교회를 어떻게 부르는지에 주목해야 합니다. 
본문 1절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흩어진 나그네
교회를 무엇이라고 부르고 있습니까? 
흩어진 나그네 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왜 교회를 향하여 나그네 라고 부르고 있습니까?
첫째, 교회는 본질적으로 이 세상에 영원히 뿌리 내릴 수 없는 여행중인 순례자 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과 완전 다른 존재이고, 다른 소속이며, 전혀 다른 목적을 향해, 다른 길을 가는 자들입니다. 
교회는 세상에 머무를 수가 없으며, 머무르고자 하는 두 마음을 품어서도 안됩니다. 
교회가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결단하지 못하고 양다리를 걸치게 된다면, 
이 세상에서 영원히 머무를 것 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세상에 취해 살아가는 것을 최고의 복으로 삼게 될 것입니다. 
둘째, 세상이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세상 눈에 교회는 흩어진 나그네 처럼 힘 없고, 배경도 없는 무가치한 존재 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소외 당하고, 핍박을 받고, 손가락질 당합니다. 
그렇다고, 교회가 이것을 회피하기 위해 세상에 정착하고, 세상과 똑같아 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세상과 부딪혀 낙심한 성도들에게,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 이라고 합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오신 길이지만 
또한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원문에 맞춰서 번역을 하면 
1절을 단순히 흩어진 나그네라고 하지 않습니다. 
2절에서 번역된 택하심이 원문에서는 1절의 나그네 라는 단어 앞에 붙어 있습니다. 
원문에 맞춰서 번역한 1절은 각 지역에 흩어진 택하심을 받는 나그네 … 입니다. 
너희가 이 세상에서는 흩어진 나그네 이지만, 하나님이 바라보는 교회와 성도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는 나그네 이다. 라고 합니다. 
2절 입니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세상 눈에는 떠돌이 나그네 같지만, 하나님 눈에는 가장 존귀하게 선택받은 나그네인 교회를 어떻게 세워가십니까?
첫째, 교회는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지어 졌습니다. 
교회는 사람의 계획에 따라 만들어진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원하신 뜻에 따라 계획 되고 디자인 된 곳 입니다. 
우리도 우연히 태어나 우연히 믿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미리 아심과 계획하심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 놀라운 계획 속에 있는 우리가, 눈 앞의 세속적 가치관을 따라 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그렇다면 성부 하나님의 미리 아심에 따라 세워진 교회가 어떻게 이 세상에서 교회다운 교회가 될 수 있습니까?
두번째, 성령 하나님이 교회를 거룩하게 하십니다. 
설교의 서론에서 세상이 교회에 요구하는 것들에 대하여 말씀 드렸습니다. 
세상이 요구하는 상식과 도덕을 행한다고 해서 교회가 거룩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실 때, 비로소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언행일치의 삶이 열매 맺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고린도전서 말씀으로 주일 오전에 담임목사님께서 거룩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절 입니다. 
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고린도 교회에 수 많은 죄의 문제가 있었음에도, 바울은 그들을 ‘성도,,거룩한 무리’ 라고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완벽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교회와 성도를 거룩한 하나님의 소유로 확정 하셨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 성령의 역사를 힘입어 병이 낫고 방언을 해도, 죄에서 돌이키는 참된 회개와 거룩한 삶으로의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성령의 온전한 역사도, 원하시는 방향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교회가, 성도가 거룩하여지도록 회개와 삶의 변화를 말씀하십니다.
진리에 다른 것이 섞이면, 변질되고 타락하듯이 
교회는 세상과 섞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세상과 분리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허무함에 굴복하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백성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계획과 그 계획을 실행하시는 성령 하나님 앞에 온전한 순종으로 거룩을 증명하는 곳 입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셋째, 거룩의 궁극적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에 이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결국 거룩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순종을 피 뿌림 이라는 독특한 표현으로 사용합니다. 
그 이유는 구약의 출애굽 사건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을 준비하며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름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바로의 손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렇게 애굽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은 백성들을 시내산으로 인도하시고 거기서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그 곳에서 백성들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라고 결단할 때
모세가 짐승의 피를 받아 백성들에게 뿌렸습니다. 
출애굽기 24장 8절 입니다. 
8.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이것은 우리는 이제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언약 백성입니다 라는 엄숙한 선언 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받았다는 것은, 이제 우리가 예수님이 걸어가신 순종의 길, 십자가의 길을 똑같이 걸어가기로 계약된 백성 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으로 택한 나그네의 삶은 
이 땅의 모든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완전하신 뜻이며, 성령의 역사하심의 목적이며, 그리스도의 명확한 복음이며, 교회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따라 가야만 하는 유일한 순례의 길 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과 피뿌림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 분의 순종과 구속의 은혜를 마음껏 누리기도 하지만, 
그 분의 순종과 고난에 참여하는 것 또한 필연이며 필수 입니다. 
그 길 이외에 다른 길은 없음을 알고, 
세상에 눈을 돌리거나, 세상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서는 안됩니다. 
세상의 거대한 방식에 위축되고, 그들의 손가락질과 핍박 가운데 베드로는 교회를 향하여 
이 문제와 세상의 도전을 인간의 노력으로 극복하지 않고
교회를 선택하시고, 세우시는 삼위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와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고, 그 길을 만드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다시 기억하라 고 권면합니다. 
세상에서는 소외 당하는 나그네인 교회와 성도의 진짜 정체성은 
삼위 일체 하나님의 주권적 구원 사역과 예수의 피 뿌림으로 완성된 영광스러운 언약 백성임을 잊지 않고, 
우리의 영원하면서도, 유일한 동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힘 입어 살아가는 참 교회, 참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 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본문의 수신자들은 로마 제국이라는 타락한 바벨론적 가치관 속에서 시민권 없는 외국인으로 분류되어 세상에서 각종 박해와 불이익을 당하며 살았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가 믿는 복음이 진짜 능력이 있는가? 왜 그리스도를 믿는 것 때문에 세상에서 비참하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영적 낙심과 소외감에 직면하였습니다. 
이는 오늘날 거대한 세상의 파도 앞에서 압도 당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그 곳을 따라가고자 고민하는 위축되고 무기력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베드로는 이런 저와 여러분들을 향하여 다시 질문 합니다. 
1. 삼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가, 여전히 고난받는 것은 주저하며 이 땅에서 넓고 편한 세상의 길만 기웃거리고 있지 않습니까?
2. 예수를 믿고 복을 받았지만, 이 땅에서 성공한 정착민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십자가의 흔적을 몸에 새긴 거룩한 나그네로 살아가시겠습니까? 
베드로는 그리스도 때문에, 믿음 때문에 고난 받는 교회를 향하여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 지어다 라고 담대히 축복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자들만 누릴 수 있는 하늘의 축복이며 영광 입니다. 
이제 우리는 세상이 주는 달콤한 복에 취해 안주하려는 두 마음을 끊어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받은 언약 백성 답게,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발걸음으로 옮기는 택함받는 나그네가 되어야 합니다. 
다양한 고난 속에서도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하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 답게 신실하게 택함받은 
거룩한 나그네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사상교회와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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