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같은 하나님의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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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결같은 하나님의 은혜
제목: 한결같은 하나님의 은혜
본문: 창세기 24장 58-67절
본문: 창세기 24장 58-67절
찬송: 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찬송: 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씀의 문을 열며
말씀의 문을 열며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현대인들의 마음속에는 한탕주의의 유혹이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고단한 일상과 사방이 막힌 것 같은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로또 당첨과 같은 단 한 번의 거대한 대박을 꿈꿉니다. 단숨에 모든 고통이 사라지고 인생이 화려하게 반전되기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세상의 가치관은 우리들의 신앙생활 안에도 은밀하게 침투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교회의 문을 들락거리면서도, 우리는 하나님이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내 삶의 상황을 단숨에 역전시켜 주시기만을 독촉하곤 합니다. 번개처럼 내리치는 기적, 눈에 보이는 화려한 기도의 응답만이 하나님의 살아계신 증거라고 오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창세기 24:58-67 의 말씀은 전혀 다른 차원의 축복을 우리에게 소개해 줍니다. 창세기 24장 전체를 살펴보면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도, 하늘에서 불이 내리는 화려한 이적도 없습니다. 그저 한 가문의 며느리를 구하기 위해 길을 떠났던 늙은 종의 발걸음과 우물가에서 나그네에게 물을 대접하는 한 처녀의 친절, 그리고 해가 저물어갈 때 들녘을 거닐며 기도하는 한 청년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기록되어 있을 뿐입니다.
성경은 이토록 소소하고 평범함 일상의 씨줄과 날줄을 통해 잔잔하게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위대한 두 가지 성품을 선포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한결같고 변함없는 사랑 헤세드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와 맺으신 언약을 끝까지 지키시는 하나님의 진실하심인 에메트입니다.
오늘 나눌 말씀을 통해, 세상이 말하는 요란한 대박이 아니라 우리 삶의 자리에 잔잔하게 스며드는 진짜 하나님의 복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믿음의 비결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내면의 조급함과 탐욕의 거울
우리 내면의 조급함과 탐욕의 거울
하나님의 한결같은 은혜를 누리지 못하게 가록막는 우리 안의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조급함입니다. 믿음의 조상이라 불렀던 아브라함조자도 이 조급함의 시험대 위에서 넘어졌던 적이 있습니다.하나님께서 분명 그의 몸을 통해 약속의 후사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지만, 세월이 흘러도 응답이 없자 아브라함은 내면의 인간적인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지 못하고 인간의 인위적인 도모와 기획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인간적인 계산법을 따라 사라의 몸종이었던 하갈을 취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처음에는 아들을 얻었기 때문에 인생의 반전을 이루었다고 생각한 아브라함에게는 큰 웃음이 있었을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 조급함의 대가는 너무나 뼈아팠습니다. 그 사건 이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86세부터 99세가 될 때까지, 무려 13년 동안 침묵으로 일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7장 에서 고백했던 것처럼, 내 안에 원하는 선은 행하지 못하고 도리어 원치 않는 악을 행하며 내 힘으로 인생을 꾸려나가려 할 때,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은 영적인 메마름과 하나님의 깊은 침묵뿐입니다.
이러한 내면의 조급함과 불신이 영적으로 고이고 썩어서 외적으로 드러나는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창세기 24장에 등장하는 리브가의 오빠 라반입니다. 창세기 24장 30절 을 보면, 라반은 아브라함의 종을 환대하는데 그 환대의 시점이 매우 묘합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 가져온 황금 코걸이와 팔찌를 눈으로 보았을 때 비로소 움직였습니다. 라반의 이 모습은 눈앞에 확실한 물질적인 증거와 어떤 무엇이 떨어져야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복을 이야기하는 탐욕스러운 영성입니다.
이는 세상 가치관에 함몰되어 하나님을 내 욕망의 수단으로 삼었던 가인의 길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 역시 당장 눈앞에 라반처럼 확실한 금팔찌가 보여야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고 확신하는 영적 유아기 상태에 멀물러 있지는 않은 정직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 삶을 단숨에 반전시키지 않으신가?
왜 하나님은 우리 삶을 단숨에 반전시키지 않으신가?
그렇다면 왜 은혜와 진실의 하나님은 우리 삶에 우리가 원하는 로또 같은 대역전극을 단숨에 허락하지 않으시는 것일까요? 왜 때로는 아브라함의 13년처럼 긴 기다림을 통과하게 하시고, 우리의 간절한 독촉 앞에서도 일상의 잔잔함 속에 우리를 머물게 하시는 것인지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란 너무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냥 단번에 기적을 행하시면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믿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깊고 정교한 사랑의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어떤 한 환자가 있었습니다. 이 환자는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병원을 찾았습니다. 환자의 목적은 자기의 아픈 몸을 치료하기 위해서 병원에 왔고 의사를 만났습니다. 참 고맙게도 이 환자를 치료해준 의사는 최고의 실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 환자를 손쉽게 치료해주었습니다. 병이 나은 환자는 더는 병원에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즉시 퇴원을 해서 바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병원과 의사에 대한 고마움을 가지질지 모르겠지만, 병원에 더 있을 이유도 의사를 만날 이유도 없습니다. 나중에 생활하다가 혹시 다시 아프면 병원을 찾을 것이고, 건강해지면 또다시 미련없이 병원 문을 나설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가 교회에 발을 들이고 기도하기만 하면 복을 단번에 쏟아부어 주시고 모든 문제를 즉시 해결해 주신다면, 우리는 형통을 얻는 순간 하나님을 바로 떠나게 될 것입니다. 복을 받은 그 순간에는 양심에 작은 찔림이라도 있어서 말씀대로 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과 깊은 영적 교제는 끝내 맺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나중에 내 마음대로 살다가 돈이 떨어지고, 인생이 어렵게 되었을 때, 그때 다시 하나님을 찾고 교회에 나오면 복을 그대로 다시 채워주신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고, 이 같은 사실을 우리의 이기적인 본성이 계산하고 악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17:9 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할 때만 찾고 문제가 해결되면 언제든 떠나버리는 기회주의적인 종교인이 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번개 같은 이적을 단숨에 행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복이라는 결과물만 챙겨서 하나님을 떠나버리는 기회주의적인 신앙을 깨트리시기 위함입니다. 도리어 평범한 일상의 자리에 우리를 묶어두심으로, 축복보다 더 귀한 축복의 근원이신 하나님 자신과 깨어지지 않는 신실한 언약 관계를 맺으시려는 하나님의 정교한 사랑의 배려임을 믿고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멍에를 메고 일상에서 누리는 진짜 형통
주님의 멍에를 메고 일상에서 누리는 진짜 형통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참된 안식과 복의 모습은 과연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마태복음 11장 28절 이하에서 우리를 초정하시며, 인생의 무거운 짐을 마술처럼 공중으로 증발시켜 주시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주님은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 11:29)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멍에는 소들의 어깨에 올려서 쟁기를 끌게 만드는 농기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 농사를 지을 때 멍에는 소 한 마리만 짊어 지는 것이 아니라 두 마리가 한 쌍이 되어 함께 멍에를 메고 밭을 갈았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주시는 참된 복과 안식은 우리 삶의 조건이 한순간에 바뀌는 대박이 아니라, 내 삶의 무거운 짐을 주님 곁에서 주님과 함께 메고 매일의 일상을 한 걸음씩 보폭을 맞추어 걸어가는 신실한 동행 그 자체입니다. 주님과 함께 보폭을 맞추어 걸을 때, 비로소 우리의 고단한 일상은 하나님의 신비로 가득 찬 축복의 현장으로 변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리브가와 이삭이 바로 하나님의 한결같은 보폭에 자신들의 걸음을 맞추었던 이들이었습니다. 리브가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이삭과 하나님의 약속을 향해 보이지 않는 미래 속에서도 믿음으로 즉각 “가겠나이다”(창 24:58 )라고 결단하며 순종의 보폭을 떼었습니다. 이삭 역시 인생의 화려한 무대를 좇아 방황하지 않고, 해가 저물어가는 평범한 들녘에 나가 묵묵히 여호와 하나님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일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해줍니다.
그래서 성경은 숱한 난관과 가뭄과 아픔을 겪었던 아브라함의 전 생애를 가리켜,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창 24:1b)라고 정의합니다. 아브라함의 삶을 가리켜서 말하는 ‘범사’는 히브리어로 ‘바콜’입니다. 바콜, 범사의 복은 어쩌다 한 번 일어난 특별한 기적이 아니라, 장막에서 살며 제단을 쌓고 살아갔던 그의 평범한 삶의 모든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의 헤세드와 에메트가 함께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로또와 같은 한 번의 반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진실하심을 믿으며 매일 그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체가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가장 위대하고 완벽한 형통의 축복인 것입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일상의 헤세드와 에메트를 바라보며
말씀의 문을 닫으며: 일상의 헤세드와 에메트를 바라보며
신앙생활은 어쩌다 한 번 일어나는 인생 역전의 대박을 기다리는 요행이 아닙니다. 매일 아침 우리 삶의 지평 위에 소리 없이 내리시는 하나님의 신실한 은혜와 축복을 발견하는 거룩한 과정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버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곁에서 떠나게 만드시는 비인격적인 분이 아닙니다. 매일 우리의 손을 잡고 잔잔한 은혜와 신실하심으로 내 평생의 일상을 함께 걷기를 원하시는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내 뜻대로 인생이 당장 뒤바뀌지 않는다고 조급해하며 스스로 아브라함처럼 하갈을 취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라반처럼 눈앞의 화려한 황금 코걸이와 팔찌가 보여야만 비로소 주님을 찬양하는 조건적인 영성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매일 아침 우리에게 신선한 호흡을 주시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주시고, 눈물 흘리며 땀 흘릴 수 있는 소중한 일터를 주시는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헤세드)과 진실하심(에메트)을 믿음의 눈을 들어 바라보며 사십시다. 그 신실하신 주님과 매일 인생의 멍에를 함께 메고 묵묵히 걸어감으로써, 하나님이 예비하신 참된 안식과 범사의 복을 날마다 풍성하게 누리는 복된 우리 중앙교회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