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바라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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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성령 충만한 사람은 고난 속에서도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주제: 성령 충만한 사람은 고난 속에서도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명제: 성령 충만한 사람은 사람들의 거절과 고난 속에서도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닮아가며, 흩어진 자리에서도 복음의 씨앗으로 살아갑니다.
명제: 성령 충만한 사람은 사람들의 거절과 고난 속에서도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닮아가며, 흩어진 자리에서도 복음의 씨앗으로 살아갑니다.
사도신경
사도신경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본문
본문
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인사
인사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주님 다시 오십니다. 아멘!
서론
서론
여러분, 좋은 뜻으로 말했는데 상대방이 오히려 화를 낸 적 있나요?
친구를 위해 이야기했는데
“네가 뭔데?”라는 말을 들은 적 있나요?
단톡방에서 누군가를 놀리는 상황에,
같이 웃지 않으면 나만 분위기를 깨는 사람이 될 것 같았던 적도 있을 겁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 살고 싶지만,
친구들이 “너 왜 갑자기 착한 척해?” 말할까 봐 걱정될 때도 있을 겁니다.
믿음의 길은 언제나 박수받는 길은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할 때 사람들이 인정해 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오해받고, 거절당하고, 불편한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스데반도 그랬습니다.
스데반은 잘못을 저질러서 미움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미움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스데반의 말을 듣고 화를 냈습니다.
이를 갈 정도로 분노했습니다.
그런데 스데반은 사람들의 분노를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스데반은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도 한 가지 질문을 붙잡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사람들의 반응만 바라보고 있나? 아니면 힘든 순간에도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나요?
1. 말씀 앞에서 우리의 반응이 드러납니다
1. 말씀 앞에서 우리의 반응이 드러납니다
54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오늘 본문은 스데반의 긴 설교가 끝난 다음 장면입니다.
스데반은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부터 시작해서
요셉, 모세, 다윗과 솔로몬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그들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스데반은 좋은 이야기만 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계속 거절했던 사실도 말했습니다.
그리고 신약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까지 배반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스데반의 질문은 이것이 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습니까?”
더 나아가,
“여러분은 그 말씀에 순종하고 있습니까?”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마음에 찔렸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마음에 찔림은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사람들의 반응과 다릅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도 마음에 찔렸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제자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그들은 말씀을 듣고 자기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말씀의 찔림이 회개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사람들은 달랐습니다.
그들도 말씀에 찔렸지만,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를 갈며 화를 냈습니다.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사람의 반응은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봅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말씀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저를 바꾸어 주세요.”
하지만 어떤 사람은 마음을 닫습니다.
“왜 나한테 그런 말을 하지?”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는 문제없어.”
“저 사람이 나를 공격하는 거야.”
여러분도 이런 적 있지 않나요?
부모님이 맞는 말을 하셨는데 괜히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선생님이 내 잘못을 정확하게 지적했는데,
인정하기 싫어서 변명부터 할 때가 있습니다.
설교를 듣다가 내 이야기처럼 느껴지면
“회개해야겠다”라고 생각하기보다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전도사님이 나 들으라고 저 말씀을 하시는 건가?”
그런데 여러분, 말씀이 우리 마음을 찌른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미워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치유하신다는 뜻입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을 듣고, 그 다음 반응입니다.
말씀에 찔렸을 때 회개할 것인가?
아니면 화를 낼 것인가?
하나님 앞에서 나를 돌아볼 것인가?
아니면 내 자존심만 지킬 것인가?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습니까?
말씀이 불편하게 들릴 때, 그 불편함을 화로 바꾸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나를 돌아보는 은혜의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사람들은 말씀에 찔려 분노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순간 스데반은 전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스데반을 노려보았습니다.
하지만 스데반은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2. 성령 충만한 사람은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2. 성령 충만한 사람은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55절과 56절을 새번역으로 읽겠습니다.
“그런데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쳐다보니, 하나님의 영광이 보이고, 예수께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였다. 그래서 그는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하나님의 오른쪽에 인자가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스데반은 지금 안전한 상황이 아니죠?
사람들은 그를 향해 이를 갈고 있습니다.
분노로 가득 차 있는 군중 속에 스데반이 서있습니다.
조금 후면 그에게 달려들어 돌로 칠 것입니다.
그런데 스데반은 사람들의 분노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고,
하나님 오른편에 서 계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성령 충만한 사람의 시선입니다.
성령 충만은 세상의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이 힘들지 않은 척’하는 것도 아닙니다.
돌이 날아오는데 아프지 않은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도 아닙니다.
성령 충만은 고난의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힘입니다.
우리도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의식합니다.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만 정직하게 살면 손해 보는 것 아닌가?”
“친구들 앞에서 식사 기도하면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교회 다닌다고 말하면 놀림받지 않을까?”
“친구들이 다 같이 뒷담화하고 있는데, 나만 조용히 있으면 분위기 깨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우리는 하나님보다 사람들의 표정을 먼저 볼 때가 많습니다.
친구들의 반응을 보고,
단톡방 분위기를 살피고,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를 계속 걱정합니다.
하지만 스데반은 사람들의 얼굴보다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스데반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쟤가 뭘 안다고 저런 말을 해?”
“네가 감히 우리를 판단해?”
“저 사람의 말은 더 들으면 안 돼.”
하지만 예수님은 스데반을 알고 계셨습니다.
스데반이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스데반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스데반을 정죄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스데반을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스데반의 고난을 보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스데반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땅에서는 스데반이 버림받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하늘에서는 예수님께서 그를 맞이하고 계셨습니다.
이번 주에도 제가 중고등부 단톡방에 말씀 이벤트를 올렸죠?
선생님들은 반응해 주셨는데 친구들은 조용했습니다.
저도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들이 많이 바쁜가?”
“성경책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간식을 배달해 준다는 것이 오히려 부담스러운가?”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이벤트는 계속할 거에요.
우리 중고등부가 말씀과 조금 더 가까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여러분과 더 자주 만나고 교제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여러 방법을 계속 시도할 거에요.
하나님일을 할 때,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이 당장 좋은 반응을 보이느냐가 아닙니다.
사람들의 반응만 바라보면 쉽게 실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지 바라보면 다시 시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최종 목적은 스데반과 같은 방식으로 순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데반도 순교하기 위해 설교한 것이 아니죠.
그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고,
그 결과 고난을 겪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일부러 찾아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스데반은 사람들의 반응보다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성령 충만은 문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보다 크신 예수님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힘들 때 무엇을 먼저 바라보는지 점검해 보기 바랍니다.
친구들의 평가인가요?
사람들의 반응인가요?
아니면 나를 알고 계시고,
나를 바라보고 계시는 예수님인가요?
3.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3.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57절부터 사람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았습니다.
그리고 한꺼번에 스데반에게 달려들었습니다.
그를 성 밖으로 끌어냈고, 돌로 치기 시작했습니다.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정확히 드러낸 말씀을 참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귀를 막았습니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전한 스데반을 죽이기 위해 달려듭니다.
돌에 맞아 죽어 가면서 스데반은 두 가지 기도를 드립니다.
59절과 60절입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기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드린 기도와 닮았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그리고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스데반은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의 기도를 따라 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본 사람은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스데반이 원래 의지가 강해서 이런 기도를 드린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스데반을 충만하게 하셨서,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단순하게 이렇게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너희를 괴롭힌 사람을 무조건 용서해.”
용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죠.
상처받지 않았다고 자신을 속이는 것도 아닙니다.
상대방의 잘못을 괜찮다고 인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용서는 내가 그 사람을 직접 심판하고 복수하겠다는 마음을 내려놓고,
그 사람과 그 상처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떠올리기만 하면 화가 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를 무시한 친구가 있을 수 있죠.
단톡방에서 나를 놀린 친구들이 있을 수 있어요.
내 말을 이상하게 바꾸어서 다른 친구들에게 전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요.
나를 외롭게 만든 사람이나,
가정과 공동체 안에서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을 생각하면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기도보다 저주가 먼저 나오려고 할 수도 있어요.
당장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죠.
그럴 때 억지로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미움과 분노가 우리 마음을 완전히 지배하지 않도록
예수님께 맡기는 기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예수님, 제 마음을 주님께 맡깁니다.”
“제가 받은 상처를 주님께서 알고 계심을 믿습니다.”
“제가 미움에 사로잡히지 않게 해 주세요.”
스데반은 자기 영혼을 예수님께 맡깁니다.
그리고 자기를 죽이는 사람들의 죄도 예수님께 맡겨드립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우리 중고등부도 상처를 억지로 덮는 공동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대신 그 상처와 분노를 예수님께 맡기고,
조금씩 예수님의 마음을 배워가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스데반의 죽음만 보면 결과가 너무 허무하게 보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이 죽었고,
교회는 박해받고,
성도들은 흩어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스데반의 죽음과 교회의 흩어짐까지도
복음의 길로 사용하셨습니다.
4. 하나님은 흩어짐도 복음의 길로 사용하십니다
4. 하나님은 흩어짐도 복음의 길로 사용하십니다
사도행전 8장 1절입니다.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스데반은 죽었습니다.
그리고 사울은 스데반이 죽는 것을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사울은 예수님을 만나 회심하는 바울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바울은 교회를 박해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이 죽은 뒤 예루살렘 교회에는 큰 박해가 일어났습니다.
성도들은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으로 흩어졌습니다.
겉으로 보면 교회가 실패한 것처럼 보입니다.
성령 충만한 지도자는 죽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전체의 흐름으로 보면
이 사건은 복음이 더 멀리 퍼져 나가는 시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그리고 사도행전 8장 1절에서 그 말씀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교회가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성도들만 흩어진 것이 아닙니다.
복음도 함께 흩어졌습니다.
씨앗을 땅에 묻으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땅속에 들어간 씨앗을 바라보면 죽은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정말 여기서 싹이 날까?”
“이 씨앗이 살아 있기는 한 걸까?”
하지만 씨앗을 심은 곳에 물을 주고,
햇빛과 바람이 지나가면 어느 순간 싹이 올라옵니다.
스데반의 죽음은 끝처럼 보였습니다.
교회의 흩어짐도 실패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고난과 흩어짐을
복음의 씨앗이 심기는 길로 사용하십니다.
우리 삶에도 실패처럼 느껴지는 일이 찾아옵니다.
친했던 친구와 멀어지거나,
원하지 않았던 학교나 반에 배정될 수 있습니다.
익숙했던 관계와 환경이 바뀔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불편한 상황이 찾아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나님이 나를 잊으신 것은 아닐까?”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자리에서도 일하십니다.
내가 원하지 않았던 반에서 새로운 친구에게 예수님을 보여주게 하실 수도 있고,
친한 친구와 떨어진 자리에서 외로운 친구를 만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불편한 관계를 통해, 나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이끄실 수도 있습니다.
결론
결론
우리는 모든 고난의 이유를 당장 다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고난과 흩어짐을 헛되게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흩어짐을 끝으로 두지 않고, 복음의 시작으로 바꾸십니다.
우리 중고등부가 각자의 자리와 관계 속에서
복음의 씨앗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에게 말씀 통해 알려주시고 인도하실 때, 회개하는 마음 주시옵소서.
말씀의 순종하여 말씀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지혜와 용기를 주시옵소서.
사람들 시선과 세상의 평가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먼저 바라보고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헌금기도
헌금기도
결단찬양
결단찬양
주기도문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