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하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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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복음의 능력 시리즈 설교의 마지막 주를 맞이했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복음이 우리를 구원하는 능력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먼저 복음은 우리를 사망의 저주로부터 구원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사망, 죽음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복음은 죄와 수치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였습니다. 우리에게 더 이상 정죄함이 없습니다. 수치스러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복음은 절망과 두려움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였습니다. 두려운 감정은 있으나, 두려움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복음은 관계를 회복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죄로 인하여 무너진 관계를 복음은 회복시킵니다.
복음은 사명자로 살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세상 속에서 구별된 하나님의 자녀로 살며,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게합니다.
복음은 고난을 이기게 합니다. 고난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언제나 다가오는 고난 속에서 우리는 용기를 잃지 않고 고난을 통과하고 결국 승리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정도만 보아도 우리는 복음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선물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복음은 거저 주신 은혜입니다.
6주간 복음의 능력을 설교했는데, 그 능력이 얼마나 대단하고 훌륭한가에 대해서 생각했는데, 오늘에 이르러서 우리가 또 다시 “근데 복음이 뭐야?”라고 질문을 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시리즈 설교 마지막 날이니, 복음을 다시 정의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시리즈 설교 마지막 날이니, 복음을 다시 정의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과 하시고 있는 일, 하실 일을 우리에게 선포한 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만유의 주인입니다.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므로, 만물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의 다스림 아래에서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2.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의 주인됨에 도전하였습니다.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고자 했습니다. 이거은 주인에 대한 반역이고, 성경은 그것을 죄라고 말합니다.
반역한 죄인들은 심판과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 그들은 구원을 얻을만한 자격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어찌 하나님의 심판을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무효화 시킬 수 있다는 말입니까?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의 공의를 충족시킬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죄와 사망의 저주 아래에 있을 수 밖에 없고 벗어날 수 없는 우리들을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그것은 온전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그 분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충족시키셨습니다.
누구든지 그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을 자신의 죄로 인하여 행하신 일이라고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로 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더 이상 우리를 정죄하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있던 사망과 저주를 거두어 가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에서 우리가 행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이 행하여 주신 사랑의 행위들에 대해서 감사함으로 받았을 뿐입니다.
이 복음을 믿음으로 받지 아니하면, 그들에게는 구원의 소망이 없습니다. 그들은 이미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요한복음 3:18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그 하나님이 하신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신분이 변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의 죄가 얼마나 크고 얼마나 깊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모두 용서받았습니다.
이사야 1:18 “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더 이상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다고 내가 아직 부족하다고 죄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들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하여 의인으로 보입니다.
로마서 3:24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어떤 제물도 어떤 다른 댓가도 지불할 필요가 없습니다.
히브리서 4:16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는 자유롭고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목사를 만나기를 꺼려하시는 분들이 있으십니다. 주일 성수를 잘 못한다고, 말씀을 잘 듣지 못한다고, 뭔가 목사에게 미안하다고 목사를 만나기를 꺼려하시기도 합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목사에게는 그러셔도 됩니다. 목사가 여러분들께 뭐 얼마나 도움이 되겠습니까? 목사 없어도 잘 살 수 있으시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다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다른 대안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도움이십니다. 여러분의 반석이십니다. 그분께 나아가도 되고 안그래도 되고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한다면, 영원한 문제가 남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거리낌을 가지고 쭈뼛쭈뼛 나아가시겠습니까? 그것은 자기의 행위로 하나님의 마음을 달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기 중심적 신앙생활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를 무효화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만으로 때에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사탄이 여러분들 마음에 자꾸 “너 같이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는 것은 염치 없는 일이지 않냐? 신앙 생활을 개떡같이 하면서 도움이 필요할 때만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냐?”라고 참소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담대히 대항해야 합니다. 나는 내 공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간다.
나의 죄가 얼마나 크든지 내가 나의 행위로 볼 때에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와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온 인류가 예수를 귀하게 여기는 것만큼이나 우리는 귀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예수님의 형제 자매가 되었습니다.
바로 이 정체성에 여러분들의 뿌리를 내리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어떤 것도 하나님을 넘어뜨리고 무너뜨릴 수 없듯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도 세상의 어떤 것도 우리를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우리의 위대한 가치에 흠집을 낼 수 없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우리를 우리의 외모나 능력이나 소유와 같은 것으로 평가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선포합시다. “예수 안에서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예수 안에서 나는 천하보다 귀하다.”
예수 안에 있기 전에 우리는 먼지와 같은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도 알지 못하는 영원의 시간 속에 잠시 반짝했다가 소멸되는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예수 안에서 모든 세상보다, 온 우주보다 소중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예수의 보혈로 우리를 사신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귀중한 존재로 대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 분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를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집중하시기 시작하십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과 수치, 두려움과 미움 다툼 시기 우리 모두에게 합당하지 않은 것들을 하나님이 이기시게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예수를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백성들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이미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는 과거에 우리를 사로잡았던 죄와 수치와 거짓과 미움과 다툼을 씻어내는 과정을 걸어갑니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미워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고귀한 우리들에게 합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복음을 받아 들인다면, 이제는 더러운 모든 것들을 혐오할 수밖에 없습니다.
몸을 깨끗이 씼었는데, 오물이 다시 몸에 묻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것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이 씻겼는데, 오물이 우리 몸에 다시 묻는 것을 어찌 미워하고 싫어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거룩하고 귀중한 존재인 우리들은 이제 그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가장 귀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룩하고 귀중한 존재인 우리들은 이제 그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가장 귀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이 말씀으로 설교를 마치려고 합니다. 하나님과 더욱 화목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화목케 하라는 직분을 주셨으니, 화목케 하는 자가 되십시오. 그것이 복음에 합당한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은 우리를 새롭게 합니다.
복음은 우리의 신분을 새롭게 합니다.
복음은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복음은 우리의 관계를 새롭게 합니다.
복음은 우리의 사명을 새롭게 합니다.
복음은 고난을 바라보는 눈도 새롭게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예전의 방식으로 살 수 없습니다.
예전처럼 나의 상처만 붙들고 살 수 없습니다.
예전처럼 미움과 판단과 거리낌 속에 머물 수 없습니다.
예전처럼 하나님 앞에서 쭈뼛거리며 물러서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더욱 화목하십시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이제 화목하게 하는 사람으로 사십시오.
나와 마음이 맞는 사람하고만 화목하는 것은 복음의 능력이 아닐 수 있습니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 가까이하기 어려웠던 사람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 것, 그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화목케 하는 삶을 살기 위하여 우리는 복음의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먼저 복음은 우리를 사망의 저주로부터 구원하였습니다.
복음은 죄와 수치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였습니다.
복음은 절망과 두려움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였습니다.
복음은 관계를 회복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은 사명자로 살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은 고난을 이기게 합니다.
이런 복음을 믿음으로 받고, 복음의 능력으로 날마다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