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떡
거리전도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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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 도입 (장면)
편의점 계산대 앞입니다. 삼각김밥 하나, 커피 한 잔, 초콜릿 하나를 봉지에 담습니다. 계산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이상하게 마음 한켠이 허전합니다. 조금 전 점심도 먹었고, 손에는 먹을 것이 들려 있는데 말입니다. 배는 부른데, 왜 이렇게 허전할까요.
## 2P — 세상 속 문제
우리는 아마 역사상 가장 배부른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냉장고는 가득 차 있고, 손 안의 화면에는 세상 모든 것이 들어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채우면 채울수록 마음은 더 자주 허기집니다. 새 물건을 사면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그 좋은 기분이 며칠이나 가던가요. 사흘이면 시들해지고, 우리는 또 다음 것을 찾아 나섭니다. 심리학은 이것을 '쾌락의 쳇바퀴'라고 부릅니다 — 아무리 채워 넣어도 이내 제자리로 돌아오는 굴레입니다. 우리나라는 명품을 세계에서 손꼽히게 많이 사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정도는 오히려 해마다 내려가고 있습니다. 손에 쥔 것은 늘어나는데, 마음은 도리어 야위어 갑니다. 밤늦게까지 화면을 넘기다 잠이 들고, 아침이면 또 허전합니다. 우리는 냉장고는 채웠는데, 정작 함께 밥 먹을 식탁은 비어 가는 시대를 삽니다. 이제 열 집 가운데 서너 집은 혼자 사는 집입니다. 여기 서 계신 누구도, 이 허기 앞에서 예외가 아닙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이런 질문 하나가 올라옵니다 — 도대체 무엇이, 이 허기를 영원히 채울 수 있을까요.
## 1P — 성경 속 문제
꼭 이천 년 전에도, 똑같은 허기 한복판에 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신 바로 다음 날이었습니다. 배불리 먹은 무리가 호수를 건너 예수님을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찾아와서 한 말이 뜻밖입니다. "우리가 보고 믿을 만한 무슨 표적을 보여 주시겠습니까? 우리 조상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어제 배불리 먹고도, 오늘 또 더 큰 것을 요구합니다. 사실 예수님은 이미 그들의 속을 아셨습니다. 그들이 찾아온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고 하셨지요. 그들은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시는 떡을 원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옛날 광야에서 하늘로부터 내려오던 만나를 떠올렸습니다. 그러나 기억해 보십시오. 그 만나를 날마다 먹던 광야 세대도, 결국 다시 주렸고, 늙었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떡은 그들의 배를 채웠지만, 그들의 깊은 곳까지는 채우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참 떡을 이야기하시는데도, 무리는 여전히 손에 쥘 떡만 생각합니다.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얼핏 좋은 기도 같지만, 여전히 엉뚱한 것을 달라고 조르는 목소리입니다. 더 큰 표적, 더 많은 떡을 구하면 채워질 줄 알았지만, 그들이 정말 목말라하던 것은 바로 눈앞에 서 계신 그분이었습니다. 배는 부지런히 채우면서도, 정작 채워야 할 것은 놓치고 마는 것 — 이것이 그들의 문제였고, 오늘 우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 3P — 성경 속 은혜 (주제문 구현)
그런데 바로 그 엉뚱한 갈망 한복판에서,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참 떡으로 오셔서, 그분께 오는 자의 영혼을 영원히 채우십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여기 놓치기 쉬운 한 가지가 있습니다. 모세가 준 만나는 이미 오래전에 끝난 옛일입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주시는 참 떡은, 지금도 주고 계신 것입니다. 광야의 만나는 하나의 그림자였습니다. 그 그림자가 가리키던 실체가 이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그리고 마침내, 무리가 그토록 "이 떡을 달라" 조르던 그 떡이 무엇인지를,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가리켜 밝히십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들으셨습니까. 그 떡은 하나의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한 분이셨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찾던 것은 무엇을 더 갖는 일이 아니라, 사실은 한 분을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께 '오는 것'과 그분을 '믿는 것'은 같은 말입니다. 대단한 자격을 갖추고 오라 하지 않으십니다. 그저 오는 것, 그것이 믿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분께 오는 자의 영혼을, 그분이 친히 채우십니다 — 잠깐이 아니라, 영원히.
## 4P — 세상 속 은혜 (본문의 마무리로)
이 말씀은 이천 년 전 갈릴리 호숫가에만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이 거리에도 그대로 서 있습니다. 그때 무리 앞에서 "나는 생명의 떡이니" 하신 그 예수님이, 지금 이 자리, 당신 앞에도 서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 하늘로 올라간 것이 아닙니다. 하늘의 떡이 이 낮은 땅으로, 허기진 당신을 찾아 먼저 내려오셨습니다. 저 무리가 밤새 호수를 저어 그분을 찾아왔지만, 사실은 그분이 먼저 그들을 찾아와 계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떡이 "세상에 생명을 주는" 떡이라 하셨습니다. 세상에, 입니다. 자격 갖춘 특별한 사람들만의 떡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세상'이라는 그 한 마디 안에, 오늘 이 거리를 지나는 당신이 이미 들어 있습니다. 혹시'나 같은 사람에게까지야' 싶으십니까. 바로 그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이 떡이 내려온 것입니다. 그분은 대단한 자격도, 지난 이력도 묻지 않으십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마음을 그분께 돌이켜 나아오는 것 — 그것이 곧 믿는 것입니다. 빈손이면 됩니다. 두 손을 내미는 것 말고는, 다른 준비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떡에는, 세상의 어떤 떡에도 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한 번 받으면, 다시 사러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채워도 사흘이면 다시 비던 그 쳇바퀴 위를 우리는 평생 달렸지만, 이 떡을 받은 사람은 거기서 비로소 내려옵니다. 이 떡을 주시는 분이, 그 지친 마음을 붙드시기 때문입니다. 오래전 한 사람은 오랜 방황 끝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리 마음은 주 안에서 쉬기까지 쉼이 없습니다." 늘 허기져 두리번거리던 그 마음을, 그분이 마침내 한 자리에 앉히시고 쉬게 하십니다.
〔**개인 예화 슬롯** — 설교자 본인이 실제로 겪은 "배불러도 허전하던 자리에서 그리스도로 채워진" 한 장면을 짧게(15~30초) 나눠 주십시오. 자신을 높이지 않는 톤으로, 누구나 겪을 법한 결의 이야기로. (날조 금지 — 반드시 실제 경험으로 교체. 생략 시 이 자리에 한 호흡 침묵을 둔다.)〕
## 결론 (본문의 마지막 말 · 이미지·주제문 결합)
그렇게 오는 사람에게 그분이 무어라 하셨습니까. 오늘 이 본문의 마지막 말이, 곧 그 대답입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들으셨습니까. '한동안'이 아니라 '결코'입니다. '이번만'이 아니라 '영원히'입니다. 만나는 하루면 다시 주렸지만, 이 떡은 다시 주리게 하지 않습니다. 배는 부른데 마음이 허전하던 그 오랜 물음이, 바로 여기서 끝납니다. 채워도 사흘이면 새어 나가던 그 허기를, 하늘에서 내려오신 생명의 떡이 영원히 채우십니다.
그러니 오늘, 세상의 떡을 하나 더 얹으려 하기 전에, 당신을 찾아 여기까지 내려오신 그 참 떡께로 오십시오. 그분이 지금 당신을 향해 이렇게 약속하고 계십니다 —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하리라.
*(닫는 찬송)* 새찬송가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