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1: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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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오늘 본문은 영적으로 타락한 이스라엘 모습에 대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심판하실 것인지에 대해서 다루고 있음.
이사야 선지자는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불의하고 영적으로 타락한 모습이
멸망의 심판을 받아야 함이 마땅할 정도로, 그 죄악이 매우 심각한 상태에 있음을 고발.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 24절에서 자신의 원수들에게 보복할 것이라고 말씀하심.
그런데 그 원수는 앗수르와 같이 다른 이방 나라가 아닌, 바로 하나님을 등지고 타락해 버린 자신의 백성들을 가리킴.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은 정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절망적이고 두려울 수밖에 없을 것.
그러나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어떤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자신의 원수된 이스라엘 민족에게 보복하시는 심판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파괴와 멸절이 아님.
분명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심판하시겠다고 하셨지만, 그 심판은 ‘정결케 함을 통한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
궁극적으로는 이 심판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구속함을 받아,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설 수 있도록 함에 목적이 있음.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날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신앙적 교훈에는 무엇이 있는지.
먼저, 21절부터 보면 이사야는 한때,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충만했던 예루살렘이 창기로 전락했다고 고발.
창기로 되었다는 표현은, 단순히 도덕적 타락 측면에서 간음이나 성적 문란함만을 의미하지 않음.
이는 영적인 간음 또는 문란함을 의미하며, 언약 관계 안에서 남편 되신 하나님을 거부하고.
여러 이방의 우상들을 몸과 마음을 팔아가면서까지 섬기는 이스라엘 민족의 배교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
더 나아가 22절에서는 그러한 이스라엘 민족의 영적 타락의 참상을 더 직관적으로 보여주고자 은과 포도주의 비유를 듦.
은은 제련과 단련을 통해 불순물이 없을 때, 순수한 은이라는 측면에서 가장 가치있게 여겨짐.
구약에서 포도주는 곡식, 기름과 함께 하나님께서 언약 백성에게 베푸시는 ‘가장 대표적인 축복과 풍요의 상징’
이러한 포도주도 최고의 맛과 풍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물이 섞인다면 불가능할 것.
이러한 맥락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은과 포도주로 비유했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을 고귀한 가치를 지닌 존재로 부르셨다는 것을 의미함.
그러나 그러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속적인 탐욕과 우상 숭배의 불순물로 가득차,
원래 그들이 지니고 있던 언약 백성으로서의 신앙적 순수함과 순결을 완전히 상실함을 고발하고자 이 비유를 듦.
그리고 이러한 우상숭배로 인한 영적 타락은, 결국 자연스레 사회적 불의로 나타나게 됨을 23절에서 밝히고 있음.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와 고관들은 자신의 탐욕을 채우려다 보니 그 권력을 남용하고, 사회적 약자들을 외면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을 도구로 삼고 짓밟는 것을 서슴지 않는 이기적인 폭력의 모습.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자들에게도 나타남.
원래 하나님 없이 죄가 죄인지도 모른채, 어떤 소망도 없이 절망가운데 살아가던 자들을,
예수님 안에서 가장 존귀한 자로 부르심을 받아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하신 언약 백성.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구원의 은혜를 깨닫게 되었을 때,
그 무엇도 주님과 바꾸지 않겠다는 첫사랑의 순전함과 뜨거움이 있었으며,
그 안에는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살아 숨쉬는 존재였음.
그러나 세상 속에서 살아가다보니, 이스라엘 민족처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의 여러 세속적인 가치관과 타협하며 살아가다보니, 그리스도인이라는 고귀한 신분의 정체성은 결국 얼룩져 구별됨은 사라지게 된 것은 물론,
탐심이라는 우상을 섬기며 살아가다보니,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어 이웃을 향한 사랑과 공의와 정의가 무너짐.
이러한 모습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입술로 고백하면서도 나의 삶의 모습이 아닌지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음.
다음으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이스라엘 민족의 영적으로 타락하고 배도한 모습을 방관하지 않으심.
왜냐하면,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의 정체성에 걸맞게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실현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과 영광을 마땅히 드러내어야 하는 사명과 대표성을 가진 자들이었으나
오히려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자신들의 삶을 통해 모욕하고 훼손하고 있기 때문.
이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기쁘신 것이 아니며, 또한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라고 24절에서 밝히고 계심.
그렇기에 방관하지 않으시고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인데,
그 심판은 오직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라는 호칭에 맞게,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공의에 의한 것임을 선포하심.
그런데 그 심판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어떠한 보복성에 의한 파멸과 파괴로 가는 것이 아님.
25절에 나와 있듯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보복은 정결케 함을 통한 회복임을 알 수 있음.
마치 뜨거운 용광로의 불과 잿물을 사용하여 찌꺼기를 제거하고 순수한 금속만을 남기듯이,
그 과정은 평안하지 않고 고난이고 환난인 것처럼 보이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이를 통하여
세상의 우상들과 세속적인 가치관으로 얼룩져 있던 존재들을 정결케 하심.
그래서 결국 26절에 나와 있듯이, 다시 의의 성읍, 신실한 고읍이라 불렸던,
찬란하고 영광스러우던 때로 회복시키신다고 말씀하심.
이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은 다시 하나님의 온전한 통치 안에서 공의와 정의가 회복하게 됨.
이런 맥락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에도 때때로 이해되지 않는 여러 고난과 환란이 주어질 때가 있음.
이러한 고난과 환난은 단순히 하나님께서 형벌을 내려 심판하여 우리를 버려두시기 위함이 아니라,
정결의 심판이라는 측면에서 우리의 믿음의 인내와 연단을 위한 은혜의 장치와 방편임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함.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우리를 향한 심판의 형벌을 이미 내리셨고 그리스도께서 대신 감당하셨기 때문.
또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과 자녀들을 사랑하시기에,
세상 사람들과 다름 없이 세상의 가치관과 타협하고 탐심의 우상을 섬기며 공의와 정의를 잃어버린 채,
찌꺼기가 가득한 은이나 물섞인 포도주처럼 가치없는 존재로 세상에서 살아가도록 방치하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기 때문.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은 이 고난과 환난이 결국 세상을 향해있던 시선과 마음을 주님께로 돌리고,
그리하여 주님의 통치 안에서, 이 세상에 진정한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존재들로 회복시키시기 위한,
하나님의 가장 뜨거운 사랑과 은혜의 증거임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봄이 필요함.
다음으로 27절에서는, 이처럼 고난과 환난의 연단 속에서 자신의 교만과 죄를 죄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자들은, 결국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로 구속함을 얻게 됨을 선포함.
즉, 그러한 고난과 환난이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오게 하시는 은혜의 방편임을 깨닫고 주님께 돌이키는 자들에게는,
오직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에 따라 구속의 은혜가 임하게 된다는 것을 알려줌.
그러나 이렇게 하나님께서 정결케 하시는 은혜의 방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는 패역한 자가 있음을 28절에서 밝히고 있음.
이들은 주님을 찾아야 함을 몰라서 주님께 안 돌아온 것이 아님.
그 이유가 29절에 이어 나옴.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상수리 나무와 동산을 기뻐하고 택했기 때문.
상수리나무와 동산은 당시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는 장소를 의미.
그들에게 있어 하나님보다도 눈 앞에 있는 농사의 풍요와 생명, 경제적 번영을 줄 것 같은 세상의 우상을 선택.
즉, 그러한 세상의 우상과 가치관이 자신의 삶을 책임진다고 생각하고,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기 때문에 돌아오지 않은 것.
그러한 자들은 29-30절에서 분명히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할 것이라고 선언함.
왜냐하면 먼저, 그들이 믿고 있는 우상들은 어떤 생명의 원천도 없고, 능력도 없는 유한한 것에 불과함.
그래서 29절에서 나온 것처럼 잎사귀가 마르고 물이 없게 되었을 때 그것들의 무능력이 입증됨.
그리고 그러한 만들어진 우상을 숭배하기 위해, 이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어리석은 것.
그래서 결국, 31절에서와 같이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그 우상들이 꺼지지 않는 불에 의해 소멸되었을 때,
그것들을 믿고 의지했던 자신의 신뢰가 무너졌고, 속았음을 그때서야 깨닫게 됨.
결국 이미 오래전부터 언약과 율법을 통해 무엇이 참된 진리이고 생명인지 계시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거부하고 오히려 영적 무지와 탐욕속에 거짓된 우상을 좇는 어리석음이 다 드러나기에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하게 됨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하면서도, 우리의 삶을 책임져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여러 우상과 세상의 가치관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섬기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결국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할 것이라는 점.
세상의 가치관과 여러 우상들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대단해 보이고, 마치 영원할 것처럼 보임.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당신께 돌아오라는 은혜의 방편으로써 여러 고난과 환란을 허락해도,
오히려 그것들을 더 신뢰하고 따르려는 모습을 보임.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그저 잠깐 반짝하다 지나갈 유한한 것들에 불과함.
본문은 하나님을 떠난 인생이 얼마나 헛되고 비참한 결과를 받아들이게 되는지를 경고하고 있음.
이제 말씀을 맺고자 함. 우리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받아,
그 사랑 안에서 공의와 정의를 품고 살아가도록 부름받은 존귀한 백성임.
그러나 어느덧 그 뜨거웠던 첫사랑은 식어지고, 세상의 헛된 우상과 타협하며
내 유익만을 구하는 이기적인 모습으로 전락해 버린 것은 아닌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함.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영적으로 무뎌진 우리를 결코 그냥 방관하지 않으심.
때때로 우리 삶에 이해할 수 없는 고난과 막막함이 찾아올 때,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나' 원망하며 세상의 방법으로 도피하려 함.
그러나 이 연단의 시간은 우리를 향한 형벌이나 외면이 아님.
오히려 세상의 것들로 물들여진 우리의 영혼을 흔들어 깨우시고,
거룩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으로 다시 빚어내시려는 사랑의 표현이시자 은혜의 부르심임.
만약 이 부르심 앞에서도 끝까지 주님께로 돌이키지 않고, 세상의 우상과 가치관을 끝까지 고집한다면,
장차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그러한 것들을 신뢰하였던 영적 무지와 어리석음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기에,
결국 부끄러움과 수치를 피할 수 없게 될 것임.
우리는 이 사실 앞에 마땅히 거룩한 두려움과 떨림을 가져야 함.
그러므로 이제는 나의 인생을 책임져 주지도 못할 썩어질 세상의 우상들을 과감히 버리고,
우리를 정결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앞으로 온전히 돌이켜야 함.
그리하여 무너졌던 주님을 향한 첫사랑과 그리스도인의 고귀한 정체성을 다시금 회복하고,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행하여 결국 거룩한 영광을 드러내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망.
함께 기도
세상의 헛된 우상을 버리고 십자가의 첫사랑을 회복하여, 우리를 정결케 하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거룩하고 신실한 주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실현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될 수 있도록,
담임목사님을 비롯하여 부교역자들 그리고 여러 교회를 섬기는 직분자들에게 영육간의 강건함과 맡겨진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현재 여름 성경학교 & 수련회가 준비되는 과정 가운데, 주님의 뜻과 계획 안에서 잘 준비되어서, 그 시간들이 더욱 주님을 만나는 시간, 또 주님께 영광이 되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우리교회 직분자 선거를 앞두고 있는데 그 모든 과정 가운데, 사단 마귀가 틈타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계획 안에서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우리 교회에 허락하신 사역들이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을 세우고, 또한 아버지의 나라를 확장하고 온전히 영광을 올려드리는 은혜의 통로가 될 수 있도록,
육체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환우분들을 위해서도 함께 기도해주시고,
이 나라와 민족, 그리고 열방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마지막으로 각자 가지고 오신 기도제목 가지고 기도하시다 자유로이 돌아가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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