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신 주님, 훈련받는 우리 2026 0718 히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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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338장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1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택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2 그가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휩싸여 있음이라
3 그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신을 위하여도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4 이 존귀는 아무도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5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6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11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12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13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배우신 주님, 훈련받는 우리
본문: 히브리서 5:1-14
제목: 배우신 주님, 훈련받는 우리
주제: 예수님이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셨듯, 우리도 훈련으로 자랍니다
대상: 새벽예배 · 일반성도 (20분, 2대지)
서론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편안한 아침 맞이하셨습니까. 오늘도 이 새벽에 나와 주님 앞에 앉아 계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혹시 집에서 김치를 오래 담가오신 분 계십니까. 삼십 년, 사십 년 김치를 담가오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오랜 세월 김치를 담가오신 분들도, 김치를 담글 때마다 반드시 하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간을 보는 일입니다. 이제는 눈 감고도 담그실 것 같은데, 그래도 손은 소금 한 줌을 더 넣기 전에 꼭 간을 봅니다. 연차가 아무리 쌓여도, 간보기를 생략하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운전도 마찬가지입니다. 흔히 초보 운전자보다 오히려 오래 운전한 사람이 사고를 낸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 통계도 있습니다. 익숙해졌다는 이유로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백미러를 확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래 되었다는 것이, 저절로 안전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 것입니다.
건강도 다르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건강검진을 더 자주, 더 꼼꼼히 받아야 합니다. "이제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안다"는 생각이, 오히려 병을 키우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보아 왔습니다.
오늘 본문인 히브리서 5장도 바로 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온 유대인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이들은 박해와 피로 속에서 신앙이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예전의 익숙한 신앙, 곧 유대교의 옛 체계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을 받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 4장 14절에서 16절을 보면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성도들을 격려합니다.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담대히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자." 그런데 5장에 들어서면서, 저자는 그 대제사장이 누구시며 어떤 자격을 가지셨는지를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11절에 이르러서, 갑자기 어조가 확 바뀝니다.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에 대한 더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독자들의 신앙이 그 깊은 이야기를 받아들일 만큼 자라 있지 않았습니다. 오래 믿었던 사람들인데, 오히려 처음 믿을 때보다도 못한 상태에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바로 이 안타까운 현실 앞에서, 왜 너희는 자라지 못했는가를 묻기 위해 쓰인 편지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두 가지 얼굴을 보여줍니다. 하나는 우리를 위해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우신 예수님의 얼굴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 예수님을 오래 믿었으면서도 여전히 자라지 못한 우리의 얼굴입니다. 오늘 이 새벽, 이 말씀 앞에서 우리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본론 1.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신 대제사장
본론 1.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신 대제사장
먼저 1절부터 4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1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택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2 그가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휩싸여 있음이라
3 그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신을 위하여도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4 이 존귀는 아무도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대제사장은 사람들 가운데서 택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자신도 연약함에 둘러싸여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제사장은 무지하고 미혹된 자들을 능히 용납할 수 있습니다. 자기도 같은 연약함을 겪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5절과 6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도 스스로 그 영광스러운 자리를 취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5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6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셔서, 그리스도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7절부터 10절이, 오늘 본론의 핵심입니다.
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여러분, 저는 이 본문에서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라는 이 한 구절 앞에 오래 머물게 되었습니다. 헬라어 원문을 보면, "배우셨다"는 단어와 "고난받으셨다"는 단어가 소리도 비슷하고 결도 비슷하게 나란히 붙어 있습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순종은, 책으로 미리 익힌 지식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들이셨지만, 순종이라는 것을 이미 다 알고 계셨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의 심한 통곡과 눈물 속에서, 그 순종을 실제로 몸으로 살아내며 배우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9절의 "온전하게 되셨다"는 표현도 우리가 오해하지 않아야 할 부분입니다. 이 표현의 원래 의미는, 없던 흠이 없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격을 완전히 갖추셨다는 뜻이고, 그 여정을 끝까지 완주하셨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예수님께 부족한 무언가가 채워졌다는 말이 아닙니다. 대제사장으로서의 그 자격이, 고난의 전 과정을 통과하시면서 온전히 완성되었다는 뜻입니다.
아이를 키워보신 분들은 이 마음을 아실 것입니다. 아무리 육아 서적을 완벽하게 읽어도, 그것만으로 좋은 부모가 되지는 않습니다. 밤새 우는 아이를 안고 뜬눈으로 지새우고, 실수하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그 과정을 통과하면서, 우리는 비로소 진짜 부모가 되어 갑니다.
레지던트 의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의과대학에서 이론을 아무리 완벽하게 배워도, 실제로 환자를 살리는 의사가 되려면 밤샘 당직과 크고 작은 실패의 시간을 반드시 통과해야 합니다. 진짜 실력은 교과서가 아니라, 현장에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순종을 미리 다 알고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와 똑같이 육신을 입으시고, 눈물로 기도하시고, 고난을 겪으시면서, 그 순종을 몸으로 배우셨습니다. 그렇게 온전하게 되셔서, 이제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여러분, 지금 겪고 계신 고난이 있으십니까. 그 고난을 혹시 피해야 할 재난으로만 여기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지금 이 고난을, 순종을 배우는 학교로 받아들이고 계십니까.
본론 2. 훈련으로 분별력을 키우는 성도
본론 2. 훈련으로 분별력을 키우는 성도
이제 11절부터 14절을 보겠습니다.
11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12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13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여기서 갑자기 말을 멈춥니다.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되심에 대해 더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독자들이 그 이야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2절 말씀이 참 아픕니다. 때가 오래 되었으면 마땅히 선생이 되어 있어야 할 사람들인데, 오히려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를 배워야 할 처지가 되어 있었습니다. 단단한 음식이 아니라, 아직도 젖이 필요한 상태였던 것입니다.
여기서 "둔하다"는 표현을 원어로 살펴보면, 이것은 나이가 많거나 지식이 부족해서 둔한 것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습관적으로 게을러지고, 노력을 멈추어서 무뎌진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이것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습관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14절의 "지각을 사용함으로"라는 표현도 흥미롭습니다. 원어에서 이 "사용하다"라는 단어는, 본래 체육관에서 몸을 반복해서 단련한다는 뜻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다시 말해, 분별력이라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거나 저절로 자라나는 것이 아니라, 근육처럼 반복된 훈련을 통해서만 만들어지는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앞서 말씀드린 김치 이야기를 다시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사십 년 경력의 권사님도 김치를 담글 때마다 반드시 간을 보십니다. 신앙의 연차가 아무리 쌓여도, 매일의 말씀 묵상과 기도라는 그 간보기를 생략하면, 우리는 분별력이라는 맛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근육을 생각해 보아도 같습니다. 근육은 한 번의 운동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매일 조금씩, 꾸준히 단련해야 비로소 붙습니다. 지금 이 새벽예배의 자리가, 바로 우리의 영적 근육을 만드는 체육관인 것입니다.
베테랑 운전자 이야기도 다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래 운전했다는 이유로 방향지시등과 백미러 확인이라는 기본기를 생략하면, 반드시 사고가 나고야 맙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은 연수와 상관없이, 말씀과 기도라는 그 기본을 매일 반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본론 1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고난 속에서 순종을 겪어내며 배우신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본론 2에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말씀과 기도의 자리에서 반복하여 훈련받는 삶입니다. 예수님의 배우심과 우리의 훈련됨은, 서로 다른 이야기가 아닙니다. 같은 원리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믿은 연수만큼 자라고 계십니까. 아니면 연수만 쌓인 채, 여전히 처음 그 자리에 머물러 계시지는 않습니까.
결론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통해 순종을 몸으로 배우셔서, 우리의 온전한 대제사장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예수님을 오래 믿었으면서도, 여전히 젖만 먹는 어린아이의 자리에 머물러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신앙은 연차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훈련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새벽, 이 자리에 나오신 것 자체가 이미 훈련의 시작입니다. 오늘부터 하루에 말씀 한 구절이라도 그냥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김치 간을 보듯이, 그 말씀을 곱씹고 되새겨 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 작은 반복이, 우리 안에 분별력이라는 근육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이 새벽의 결단이 하루의 삶으로 이어지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