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장 18-2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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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타난 하나님의 진노와 복음의 필연

본문: 로마서 1장 18-23절

찬송: 439장 십자가로 가까이

복음이 오늘날 우리의 잠든 영혼을 뒤흔드는 진짜 이유는 그 복음이 단순히 삶을 조금 더 편안하고 윤택하게 만드는 유용한 생활 정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은 듣기를 좋아하지만,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는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정직하게 대면하지 않는 한, 우리는 복음이 왜 기쁜 소식인지 결코 깨달을 수 없다. 진노가 빠진 복음은 진짜 복음이 아니다. 복음만 강조하는 것은 그저 심리적 위로에 불과할 뿐이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그 이유에 대하여서 인간의 두 가지 어리석은 모습을 통해 설명한다.
그 첫 번째 어리석음은 쏟아지는 계시의 밝은 빛을 강제로 움켜쥐고 가리는 진리의 억압이다.
하나님께서는 광활한 우주의 질서와 밤하늘의 찬란한 별들, 매일 흐르는 계절의 신비 등 만물을 통해 창조주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분명하게 보여주셨다. 하늘의 거대한 은하계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자리를 지키며 돌고 있는 모습, 작은 들꽃 하나가 봄이 되면 약속이나 한 듯이 고개를 내미는 그 완벽한 자연의 법칙 속에는 창조주의 손길이 가득하다. 눈으로 똑똑히 내려다보듯이 또렷하게 알려주셨으며, 인간의 가슴속 깊은 양심의 법판에도 그 흔적을 새겨놓으셨다.
그러나 인간은 그 창조주의 정당한 지배를 받기 싫어서, 자기 내면에서 끊임없이 고개를 드는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억지로 억눌렀다. 본문 18절에서 ‘진리를 막는다’고 할 때 사용된 본래의 단어는 엄청난 힘을 가해 강제로 짓누르고, 어두운 밀실 속에 가두어 문을 걸어 잠그는 행위를 뜻한다. 인간은 하나님을 정말로 몰라서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대로 인생의 왕이 되어 살고 싶어서 진리를 마음 깊은 어둠 속으로 강제로 깔아뭉개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모순되고 가련한 실존적 몸부림이다. 마치 매 순간 숨을 쉬며 생명을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공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온 힘을 다해 소리치는 모순적인 사람과 같다. 하나님이 만드신 땅을 딛고 서서, 하나님이 매일 공짜로 공급하시는 산소를 들이마시며, 하나님이 부여해주신 이성의 힘을 사용해 도덕적 판단을 내리면서도, 정작 그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정하는 것이 타락한 인류의 가련한 실체이다.
창조주의 은혜의 공기를 빌려 마시면서도 창조주를 온 힘을 다해 부정하는 이 기만적인 영적 억압이 하나님의 진노를 자초했다. 그러므로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최후 법정 앞에서 그 어떤 변명도 내놓지 못하고 철저히 유죄로 침묵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두 번째 어리석음은 창조의 위대한 목적을 배반하고 예배의 대상을 바꾸어 버린 비참한 맞바꿈이다.
인간은 아무런 이유 없이 세상에 내던져진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 풍성한 사랑에 평생 감사하도록 지어진 목적을 가진 피조물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반드시 숭배하고 예배하도록 아주 정밀하게 설계된 특별한 존재이다. 따라서 예배하기를 멈추는 인간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참된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인간은 경배하기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경배의 대상 자체를 바꾸어 버릴 뿐이다. 목적을 상실한 인생은 결국 끝없는 갈증과 소외감 속에서 방황하게 된다. 영적인 예배를 잃어버린 마음의 진공 상태는 결국 다른 것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돈이든, 성공이든, 자식이든, 자기 명예든 간에 인간은 끊임없이 가짜 신들을 소환해 낸다. 본문 23절에서 ‘우상으로 바꾸었다’고 할 때 사용된 단어는 가장 찬란하고 존귀한 진짜 보석을 스스로 던져버리고, 길거리의 하찮고 더러운 쓰레기와 기꺼이 맞바꾸었다는 참담한 영적 파산을 의미한다.
인간은 영원히 썩지 아니하는 창조주 하나님의 장엄한 영광을 제멋대로 조종하고 길들일 수 있는 썩어질 사람이나 짐승의 모양, 곧 피조물의 형상과 맞바꾸어 버렸다. 스스로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다고 자랑하며 내린 비합리적인 결단의 본질은, 결국 가장 미련하고 캄캄한 어둠에 갇히는 영적 사망이었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숭배하는 우상도 이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내 힘으로 돈과 성공을 쥐고 내 삶을 제어할 수 있다는 교만, 내 착한 성품과 윤리적인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로워질 수 있다는 도덕적 자부심이 바로 오늘날 현대인들이 가장 숭배하는 세련된 우상이다. 하나님의 은혜 대신 자기 자아와 피조물을 온 마음으로 숭배하는 이 어리석은 우상 숭배가 결국 하나님의 공의롭고 장엄한 진노의 불길을 당겼다.
하나님이 분명하게 보여주신 진리를 억지로 억누르고, 창조의 거룩한 목적을 헌신짝처럼 버린 채 가짜 우상과 맞바꾼 인간의 처참한 절망 앞에는 소망이 없다. 우리는 우리의 영적 비참함을 처절하게 깨달아야 한다. 복음이 절실한 이유는 바로 이 무서운 어둠에서 우리 스스로의 발걸음으로는 결코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는 이 타오르는 하나님의 의로운 진노로부터 스스로를 구출해낼 힘이 1%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오직 위로부터 강제적으로 뚫고 들어오는 구원,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오늘 새벽, 내 힘과 공로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으려 했던 모든 교만과 어리석은 자기 의의 우상을 십자가 앞에 완전히 산산조각 깨부수어야 한다. 핑계할 수 없는 비참한 죄인을 위하여 친히 진노의 방패가 되어주신 그 예수 그리스도만을 유일한 피난처로 삼아, 거저 주시는 은혜에 압도당하는 참된 예배자로 일어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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