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땅이여 찬송을 부를지어다

큰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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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성경: 시편 100:1-5
사랑하는 산샘교회 성도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렇게 만나게 되서 참 반갑습니다. 저도 이 동네 주민입니다. 웨스턴 길 바로 건너 동네게 저희 집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 Ralphs를 다닐 때에 이 앞길을 지나갑니다. 한글러 예쁘게 써진 산샘교회 간판을 보면 얼마나 반갑고 궁금했는지 모릅니다. 이곳에서 신앙생활하시는 분들은 어떤 분들이실까?
오늘 그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참 좋습니다.
부족한 종을 불러주시고 말씀을 나눌 기회를 주신 윤석형 목사님과 교회 리더십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2026년 후반기를 맞이하면서 새벽기도회를 통해서 믿음의 삶을 새롭게 하시는 여러분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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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00편은 배경이나 저자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시입니다. 다만 표제에서 보듯이 감사의 시이고 찬양의 시입니다. 따라서 보통 이 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전에 제사하러 올라가면서 부르는 찬양이라고 이해합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예배를 시작하면서 함께 부르는 찬양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시는 “온 땅이여”라고 부르며 시작합니다.
땅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에레츠”입니다. 이 단어는 때로는 땅이나 대륙과 같이 말 그대로 땅을 의미하기도 하고, 때로는 나라와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시적인 표현임을 감안할 때, “온 땅이여”라는 말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을 부르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니라, 온 세상 모든 민족을 여호와 앞으로 초대하는 것입니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모든 인류는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며, 하나님과 교제하고, 삶과 입술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인간의 본분입니다.
찬양은 단지 노래 몇 곡을 부르는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고, 우리의 삶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찬양입니다.
하나님은 놀라운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시며, 우리는 그 사랑 안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섬기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대리자와 청지기가 되어 세상을 돌보고 다스리며,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드러내는 것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로부터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 죄가 들어왔습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마땅한 사람들이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를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죄의 뿌리에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인간이 자기 능력을 의지하고, 자기를 높이며,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기의 능력과 권력을 의지하고 자랑하기 시작한 사람이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을 찬양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자기가 왕이 된 사람은 자기의 뜻과 계획을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자기 자랑과 자기 찬양을 통하여 힘을 얻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얼마나 인정해 주는지, 얼마나 높여 주는지가 삶의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성경은 마지막 때의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오늘날의 자기 자랑 문화는 시대가 발전하면서 갑자기 새롭게 생겨난 현상이 아닙니다. 하나님 없이 자신을 높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오래된 죄가 새로운 방식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요즘은 자기를 효과적으로 알리고 자랑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자기 PR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자기가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SNS에서 많은 사람이 자기의 삶을 드러냅니다.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곳에 가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차를 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물론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자신의 일이나 사업을 알리는 행위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구독과 좋아요가 실제 수입과 연결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통하여서만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려는 데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가,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부러워하는가를 통하여 내 가치를 증명하려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자신을 보여 주면서, 나를 인정해 달라고, 나를 높여 달라고, 나를 찬양해 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보다 자기 찬양과 자기 인정이 더 높은 가치를 갖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라는 말씀은 단순한 노래의 초청이 아닙니다.
자기를 찬양하느라 하나님을 잊어버린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간절한 부르심입니다.
“너희가 찬양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다. 너희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찬양받으셔야 한다. 너희가 왕이 아니다. 여호와께서 왕이시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르라.”

그렇다면 누가 정말 자신을 찬양하는 삶에서 벗어나 여호와를 찬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3절입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바로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어쩌면 이 말은 동어반복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너무 익숙하게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고백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그들의 아버지가 되시고, 그들과 함께하신 분이 여호와이십니다.
그런데 그 여호와가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고대의 민족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땅과 민족을 지켜 주는 신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집트에는 라를 비롯한 여러 신이 있었고, 가나안에는 바알과 아세라와 아스다롯과 같은 신들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때로는 주변 민족의 영향을 받아 여호와를 자신들의 민족만을 돌보시는 신처럼 축소하여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선포합니다.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여호와는 이스라엘만의 작은 민족 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여호와는 여러 신 가운데 조금 더 능력이 뛰어난 신이 아닙니다. 모든 신들 중에 가장 높은 신 정도가 아닙니다.
오직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십니다. 그분 외에 다른 참 하나님은 없습니다. 그분은 온 땅을 지으시고, 온 땅을 다스리시며, 온 땅으로부터 찬양받으실 창조주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아는 것은 동시에 우리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그가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나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나의 생명도, 재능도, 시간도, 내가 가진 모든 것도 궁극적으로 나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나 자신의 주인이 아닙니다. 나를 지으신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십니다.
“우리는 그의 것이니.”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우리를 함부로 사용하시는 폭군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를 지으시고, 사랑하시고, 책임지시며, 끝까지 돌보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의 백성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가 그분의 백성이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우리를 부르시고, 언약을 맺으시며, 자기 백성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또한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우리를 먹이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며, 넘어질 때 일으켜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3절은 하나님이 누구신지와 내가 누구인지를 동시에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
나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목자이시고, 나는 그분이 기르시는 양입니다.
이것은 내가 내 삶의 주인이 아니며, 내가 왕이 아니며, 내가 목자가 아니라는 고백입니다.
나의 주인, 나의 왕, 나의 목자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와 찬양의 근거는 인간의 기분이나 환경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우리가 누구인지를 아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감사는 형편이 좋아서만 드리는 반응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드리는 신앙고백입니다.
하는 일이 잘되고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에만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문제가 남아 있어도, 아직 기도 제목이 응답되지 않았어도, 나는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은 나의 목자이시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내 삶의 형편은 변할 수 있습니다. 건강도 변하고, 재정도 변하고, 사람들의 평가도 변합니다. 어제 나를 좋아하던 사람이 오늘은 나를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눌러 주던 좋아요가 어느 날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나의 목자이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만이 자신을 찬양하는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여기서 그의 문과 그의 궁정은 성전의 문과 뜰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에 들어갈 때 제물을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하여 제사를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제물만 들고 오는 형식적인 예배가 아니었습니다.
제물을 드리면서도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을 수 있습니다. 입술로는 찬양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자기를 높일 수 있습니다. 몸은 성전 안에 있지만, 중심에는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예배자가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야 할 가장 합당한 태도를 강조합니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라.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라.
그에게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송축하라.
제물 속에는 감사가 담겨 있어야 하고, 예배 속에는 믿음과 찬송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충분히 선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한 주 동안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도 아니고, 하나님께 드릴 만한 훌륭한 업적이 있기 때문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그 보혈로 우리의 죄를 씻으셨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셨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움으로 성전 문밖에 서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여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마지막 5절입니다.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시인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궁극적인 이유를 선포합니다.
여호와는 선하십니다.
하나님은 때로 선한 일을 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 존재와 성품 자체가 선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만날 때에도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우리의 기도가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응답되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그의 인자하심은 영원합니다.
인자하심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맺으신 언약을 따라 끝까지 사랑하시는 신실한 사랑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변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때로 하나님을 잊고 흔들려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릅니다.
한 세대가 지나가고 새로운 세대가 와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 부모 세대를 붙드셨던 하나님이 우리를 붙드시고,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자녀와 다음 세대도 붙드십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을 찬양하기보다 자신을 높이며 살았던 우리를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른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며, 영원토록 자신의 자녀로 품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더 이상 사람들의 좋아요와 칭찬을 통하여 우리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돌보심을 받는 양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자신을 높이는 데 우리의 입술과 삶을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이루었는가를 자랑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선하셨는지를 말해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드러내기보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큰 은혜를 베푸셨는지를 찬양해야 합니다.
다가오는 2026년 하반기에는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 “내가 무엇을 이루었는가”보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선하셨는가”를 더 많이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형편이 좋아서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감사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자기를 높이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높이고, 자기를 찬양하는 세상 속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이 거룩한 초청에 우리가 먼저 기쁨으로 응답하며, 우리의 입술과 삶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복된 2026년 하반기를 살아가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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