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2장 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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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도 심판받는다

본문: 로마서 2장 1-5절

찬송: 214장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어제 우리는 시간 관계상 로마서 1장의 가장 어두운 종착역인 32절을 깊이 다루지 못했다. 바울이 1장 끝자락에서 고발하는 세상의 타락은 단순히 개인의 일탈이나 도덕적 실수로 끝나지 않는다. 1장 32절에서 ‘옳다 하느니라’고 할 때 사용된 본래의 단어는 단순히 죄를 짓는 수준을 넘어, 죄짓는 자들을 적극적으로 격려하고 칭찬하며, 악을 세련된 문화와 제도로 포장하여 죄책감이라는 최소한의 브레이크마저 완전히 고장 내 버리는 집단적 동조 행위를 뜻한다. 세상은 "정직할 필요가 없다. 다들 그렇게 사는 거야"라며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고 박수를 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배제한 세상의 적나라한 자화상이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바울은 반전의 칼날을 매섭게 빼 든다. 본문 1절은 ‘그러므로’라는 강력한 포문으로 시작한다. 이 접속사는 세상의 썩어가는 타락상을 보며 혀를 차고 도덕적 우월감을 누리던 이들을 정조준한다. 로마서가 기록될 당시 바울은 유대인들을 겨냥하여 이 말을 썼지만, 오늘날 이 외침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겨냥하는 경고의 말씀이다.
우리는 세상의 방탕함을 손가락질하며 자신들은 안전하다고 착각하지만, 바울은 그 손가락을 꺾어 바로 우리 자신을 가리키게 만든다. 이 경고는 단순히 2천 년 전 유대인들만을 겨냥한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오늘날 성경책을 가슴에 품고 예배당 중심에 앉아 있는 바로 우리 기독교인들을 향한 엄중한 선포다.
본문 1절에서 ‘남을 판단한다’고 할 때 사용된 단어의 이면에는 마치 자신이 흠 없는 완벽한 판사가 된 것처럼 높은 재판석에 앉아, 타인의 허물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며 정죄의 망치를 끊임없이 두드림으로써 상대적으로 자신의 의로움을 돋보이게 만들려는 완악한 태도가 담겨 있다. 바울은 단호하게 선포한다. 세상이 그렇게 썩어가는 것을 보며 도덕적 재판관 노릇을 하던 너희 역시 결코 핑계 대지 못할 것이다. 남을 정죄하는 너희 역시 보이지 않는 은밀한 삶의 영역에서 똑같은 죄를 짓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허물에 대해서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며 온갖 변명과 핑계의 보호막을 치면서도, 타인의 잘못에 대해서는 그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가혹한 공의의 칼날을 들이댄다. 바울은 이러한 위선적 판단이 결국 자기 자신을 올가미에 옭아매는 셀프 정죄가 된다고 경고한다.
21세기 신학자 프란시스 쉐퍼는 이를 ‘보이지 않는 녹음기’라는 탁월한 개념으로 설명했다. 우리의 목에는 태어날 때부터 보이지 않는 성능 좋은 녹음기가 걸려 있어서, 우리가 평생 타인을 향해 뱉어낸 도덕적 기준과 매서운 비판들을 단 하나의 단어도 빠뜨리지 않고 고스란히 녹음한다. 마지막 심판 날, 재판관이신 하나님은 우리 목에서 그 녹음기를 벗겨 그대로 재생하실 것이다. "너는 저 사람이 무책임하다고 비판했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정죄했구나. 이제 다른 기준은 필요 없다. 오직 네가 평생 남에게 들이댔던 그 녹음기 속 기준 그대로 너를 심판하겠다." 이 엄중한 심판대 앞에서 세상 그 누구도, 심지어 모태신앙이나 중직자라 할지라도 자신의 도덕적 의로움을 무기로 살아남을 수 없다.
그렇다면 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성도들이 왜 이토록 쉽게 교만과 정죄의 덫에 걸려 넘어지는가?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철저하게 왜곡하고 오해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본문 4절에서 ‘인자하심’이라고 표현된 단어의 본래 뜻은 죄인을 향해 쏟아지는 하나님의 타오르는 진노를 잠시 억누르시며, 그가 스스로의 부끄러움을 깨닫고 돌이킬 때까지 아무런 대가 없이 베풀어 주시는 과분하고 풍성한 친절을 의미한다. 우리가 지금 당장 심판을 받지 않고 경건한 성도의 모양새를 유지하는 것은 우리가 저 세상 사람들보다 더 깨끗해서가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라는 은혜의 울타리 안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이 하나님의 참으심을 도덕적 면죄부로 착각한다. "내가 저 정죄 받는 자들보다 의롭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축복하시고 심판하지 않으시는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를 노골적으로 멸시하는 행동이다.
바울은 본문 5절에서 돌이키지 않는 종교인들의 마음을 가리켜 ‘고집’과 ‘회개하지 않는 마음’이라고 고발한다. 이 표현들은 구약성경에서 돌이나 나무로 만든 우상숭배에 빠져 목이 곧아질 대로 곧아진 백성들을 심판할 때만 쓰이던 아주 독특한 단어다. 바울은 종교적 자만이 본질적으로 가장 지독하고 무서운 우상숭배임을 꿰뚫어 본 것이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우상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세상의 돈이나 쾌락만이 아니다. "나는 주일을 성수하고, 십일조를 드리며, 저 세상 사람들처럼 타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당당하다"는 종교적 자기 확신과 자부심이 바로 현대 교회가 품은 가장 은밀하고 강력한 우상이다. 이 우상은 하나님보다 내 행위를 더 신뢰하게 만들며, 내 마음을 딱딱한 콘크리트처럼 굳어지게 하여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조건 없는 은혜가 내 삶에 흘러 들어오는 통로를 완전히 차단해 버린다.
기억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이건, 교회의 문턱을 밟아본 적 없는 세상 사람이건, 하나님의 엄중한 공의 앞에서는 우리 모두가 동일하게 하나님의 조건 없는 은혜가 필요한 죄인에 불과하다. 내 안의 종교적 자랑거리는 심판을 피하게 해주는 방패가 아니라, 오히려 십자가의 은혜를 거부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장애물일 뿐이다.
오늘 아침, 우리는 타인을 향해 거칠게 흔들던 판단의 손가락을 거두어야 한다. 그리고 나의 은밀한 내면의 죄악을 가감 없이 비추는 십자가의 거울 앞으로 정직하게 나아가야 한다. 맏아들의 종교적 우상을 완전히 깨뜨리고, 오직 예수의 보혈과 하나님의 거절할 수 없는 주권적 자비만을 갈망하는 복된 은혜의 아침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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