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사랑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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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봉독

1 Peter 1:1–13 NKRV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B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bu 10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12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서론

예수님을 사랑하시나요?

오늘 설교 제목
“예수님을 사랑하시나요?”
여러분은 이 질문에 뭐라고 답할 것인가?
여러분은 예수님을 사랑하시나요?
단순히 ‘예수님을 사랑하는가’ 하는 질문뿐 아니라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가 하는 것까지 포함한 질문이다.
사실 당연한 질문이고, 질문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결혼한 남편에게 ‘아내를 사랑하시나요?’
결혼한 아내에게 ‘남편을 사랑하시나요?’ 질문하는 것과 같다.
당연히 사랑하니까 결혼하고 함께 살고 있는 것 아닌가?
예수님을 사랑하니까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하고 있는 것 아닌가?

사랑없는 신앙생활, 가능한가?

그런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고도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지난 주일 저녁예배
이석진 목사님이 요한계시록 설교 때 이야기
만나는 성도들에게 가끔 질문을 한다.
‘요즘 남편과 아내와 잘 지내고 있나요?’
가장 많은 대답, ‘그냥 사는 거지요.’
기대한 대답
‘네, 사랑하며 잘 살고 있어요.’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분명 사랑해서 결혼도 하고 함께 살고 있는데
어느 순간 사랑을 잃어버리고 살아갈 수도 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그럴 수 있다.
열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은데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린 채 신앙생활을 할 수도 있다.

에베소교회 성도들 - 처음 사랑을 버렸다

우리가 잘 아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그러했다.
예수님이 그들을 향해서 무엇이라 책망하셨는가?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들은 분명 수고하고 인내하며
거짓 사도들을 물리칠 정도로
열심으로 신앙생활을 했다.
그러함에도 그들은 예수님을 향한 첫 사랑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것을 엄히 책망하셨다.
회개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겠다’고 경고하셨다.
‘예수님을 사랑하는가’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질문이다.
다시 한번 질문한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사랑하시나요?

믿음과 존경만의 대상이신 예수님?

이 질문에 이렇게 답할 수도 있다.
예수님은 믿음과 공경의 대상이지 사랑의 대상은 아니다.
엄하신 아버지 밑에서 자란 자녀들이 아버지를 향해 갖는 마음
아버지를 존경하고 따르지만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말은 한번도 안해본 자녀들이 있을 수 있다.
어머니를 향해서는 사랑한다 말하지만
아버지를 향해서는 사랑한다는 말이 왠지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며
믿음의 주로 고백하며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지만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지 못하며 지냈을 수도 있다.
다시 한번 질문한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사랑하시나요?

사랑은 입술로 고백해야 한다

이 질문에 또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연하지.
그러나 사랑한다는 걸 꼭 입으로 말하고 표현해야 하나?
마음으로 사랑하면 되지.
출근하는 남편에게 아내가 질문한다.
‘여보, 나 사랑해?’
남편 성도님들,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그럼, 당연히 사랑하지.’
‘세상에서 당신을 제일 사랑해’
이렇게 사랑의 고백이 넘치길 축복한다.
하루에 한 번 이상 사랑한다는 고백이 넘치길 축복한다.
그런데 이렇게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사랑하는 걸로 충분하다 생각하기도 한다.
다시 한번 질문한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사랑하시나요?
그리고 그 사랑을 입술로 고백하고 있는가?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우리 모두 되기를 축복한다.
이 사랑 고백이 참 중요하다.
결혼한 부부 사이에서의 사랑고백이
결혼 생활을 풍성하게 하고 끈끈하게 한다.
그 이상으로 예수님을 향한 사랑 고백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풍성하게 만들뿐 아니라
고난과 시험을 이기며
이 세상을 힘있게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이 은혜를 더욱 깊이 나누는 시간 되길 원한다.

본론

고난받는 나그네에게 쓴 편지

오늘 본문인 베드로전서는
베드로 사도가 쓴 편지이다.
오늘 본문 1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1 Peter 1:1 NKRV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에게 편지한다)
1절에 여러 지명이 나온다.
모두 지금의 튀르키예, 터키에 있는 땅이다.
이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쓴 편지
그런데 베드로가 이들을 나그네라고 부르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이 고향인 예루살렘과 유대 땅을 떠나 흩어져 살고 있기 때문인가?
아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어디에 살고 있든지 나그네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본향은
이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신 천국이기 때문이다.
그 천국을 바라보며 오늘도 천국을 향해 걸어가는 나그네이다.
베드로전서를 읽을 때 많이 나오는 단어가 고난이다.
베드로전서 = 고난의 책
하나님을 대적하고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이 세상 속에서
나그네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받게 될
여러가지 시험과 고난을 이야기한다.
그뿐 아니라 그 고난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있다.
고난 속에서도 인내하며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할 수 있게 해 주는 그 힘이 어디에서 나올까?
다름 아니라 예수님을 사랑하는데 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 속에 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그 고백이
나그네 같은 이 땅에서의 하루를 살아내게 하고
고난 가운데 승리하게 한다.
베드로의 이 편지를 받은 성도들이
그러한 삶을 살고 있었다.

예수를 사랑하는도다

8-9절을 같이 한번 읽어보자.
1 Peter 1:8–9 NKRV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읽을 때마다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구절이다.
예수님을 사랑할뿐 아니라
예수님으로 기뻐하고 있다 말씀한다.
예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그들이 받고 있는 고난과 시험을 이기게 하고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에 이르게 한다 말씀한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예수님을 직접 만나보면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편지를 쓴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로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져 보았다.
그러니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지, 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 편지를 받고 있는 이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져 보지는 못했다.
그러함에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기뻐하고 있다.
이들은 예수님을 직접 경험한 목격자이자 증인들인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들었다.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주신 예언의 말씀대로
고난 받으시고 영광 받으신 예수님이
그리스도, 메시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비록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하였지만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고 기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랑과 기쁨은
고난 속에서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하게 하고
영혼의 구원에 이르게 한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 예수님을 기뻐하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사랑하라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다시 오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그리고 다시 오심은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사랑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
2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1 Peter 1:2 NKRV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이 말씀은
나그네인 우리 그리스도인이 어떤 존재인지 말씀해 줄 뿐 아니라
우리가 받은 구원에 관한 놀라운 진리와 신비를 담고 있다.
먼저 나그네인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들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격을 얻은 자들이다.
또한 베드로는 믿는 자들을 향해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말씀한다.
성경은 내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
하나님이 이미 먼저 나를 아셨다 말씀한다.
또한 내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나를 택하셨다고 말씀한다.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 자녀의 자격이 그냥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거룩하신 하나님처럼 우리도 거룩해야 한다.
비록 하나님이 우리를 미리 아시고 우리를 택하셨다 하지만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나면서 죄를 갖고 태어나 죄를 짓고 살아가는 죄인이다.
죄로 더럽혀지고 오염된 채 그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는 없다.
무엇이 필요한가?
거룩해지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의 죄를 씻어버리고 깨끗하게 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아무리 깨끗해지려고 노력해도 우리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러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손을 내밀어 주셨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해 주셨다.
어떻게 우리를 거룩하게 해 주셨는가?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으로 이루셨다.
무엇에 대한 순종함인가?
복음에 순종함이다.
예수님께 순종함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며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것이 순종함이다.
이러한 순종함도
내가 순종한 것 같지만
사실 성령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성령께서 일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우리가 거룩함을 입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이다.
구원의 완성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기꺼이 죽으셨다.
그 생명을, 그 피를 아낌없이 내어주셨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이다.
애굽 땅에 10번째, 마지막 재앙인, 장자 죽음 재앙이 임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을 맺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는가?
하나님께서 제사장을 세우실 때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어떻게 거룩한 제사장이 될 수 있었는가?
이 모든 것에 ‘피 뿌림’이 있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 뿌림이 있었다.
희생 제물의 피 뿌림이 있었다.
그 피 뿌림으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거룩한 제사장이 되었다.
바로 이 유월절 어린 양이, 희생 제물이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그림자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며 그 피를 흘리셨다.
그 생명을 내어주셨다.
예수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을 때
비로소 우리는 거룩하게 되고, 구원을 얻게 되고, 영생을 얻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이유이다.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사랑하라

또한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이다.
3-4절 말씀이다.
1 Peter 1:3–4 NKRV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 피를 흘리신 예수님은 죽음 그 자체로 끝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온전한 순종하심으로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희생 제물과 화목 제물로 드리신
자신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은 하늘에 오르사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
그러하기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소망이 되신다.
산 소망, 살아 있는 소망, 생명의 소망이 되신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부활 안에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다.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소유, 즉 유업을 물려 받게 해 주셨다.
그 유업은 이 세상의 것과 차원이 다르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업이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이유이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사랑하라

또한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다시 오시기 때문이다.
5-7절 말씀이다.
1 Peter 1:5–7 NKRV
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베드로 사도는 우리의 구원이 예비되어 있다고 말씀한다.
그 구원은 언제 나타나는가? 말세에
말세가 언제인가?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이다.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 이 땅에 다시 오신다.
이것은 반드시 이루어질 하나님의 약속이다.
또한 하나님은 이 구원을 우리가 얻을 수 있도록
이 땅에서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
우리를 보호하시고 지키신다.
우리를 미리 아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신 하나님께서
또한 우리를 보호하시고 계신다.
이 세상에 하나님보다 더 크신 분은 없다.
그 크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고 계시니 우리는 안전하다.
우리가 고난과 시험 앞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여러 시험와 고난을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그로 인해 근심하게 되고 어려움을 겪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잠깐일 뿐이고 우리에게는 영원한 구원이 예비되어 있다.
또한 하나님께서 크신 능력으로 지키고 보호하고 계신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안심하며 크게 기뻐할 수 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시는 날,
예수님은 그냥 오시지 않는다.
끝까지 믿음을 지킨 우리에게
예수님은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가져다 주실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이유이다.

결론

오늘 본문 마지막 13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1 Peter 1:13 NKRV
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베드로 사도는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라고 말씀한다.
우리가 어떻게 느슨해진 마음을 다시 추스리고
믿음의 경주를 계속 힘있게 달려갈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을 할 때 가능하다.
요한복음 21장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이 편지를 쓴 베드로를 찾아오신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질문한 것은 딱 한 가지였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다른 것을 묻지 않으셨다.
동일한 질문을 세 번 반복하셨다.
베드로는 무엇이라 대답하는가?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베드로의 고백처럼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베드로의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다.
그의 마음에 있는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이미 잘 아셨다.
그러함에도 예수님은 굳이 베드로에게 질문하셨고
베드로의 입술을 통해 그 고백을 듣고 싶어하셨다.
“네, 주님, 제가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이 사랑의 고백이
실망과 좌절 가운데 있던 베드로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죄인처럼 붙잡혀 재판받으시고 고난받으시던 예수님,
그 곁을 지키지 못하고 도망칠 뿐 아니라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던 베드로였다.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던 모든 삶을 내려놓고
다시 물고기 잡던 어부의 삶으로 돌아가 버린 베드로였다.
그의 마음의 허리는 이미 풀어질대로 풀어졌고
삶의 의미와 목적도 잃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베드로는 평생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볼 면목이 없었을 것이다.
그냥 그렇게 베드로의 인생은 끝나 버릴 수도 있었다.
그런 베드로를 다시 일으켜 세운 예수님의 질문이 무엇인가?
그의 마음의 허리를 다시 동이게 만든 예수님의 질문이 무엇인가?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은 이미 그 질문에 답을 알고 계셨지만
베드로의 입술을 통해 그 사랑 고백을 듣기를 원하셨다.
“예, 주님 제가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그 사랑 고백이
베드로의 마음의 허리를 다시 동이게 했다.
베드로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예수님은
마음 속에 묻어두었던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끄집어 내어
자신의 입술로 ‘사랑합니다’ 고백한 베드로를
다시 사명의 자리로, 사역의 자리로 부르신다.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예수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이
우리를 다시 일으킨다.
우리를 다시 사명의 자리로 돌아가게 한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과 시험을 넉넉히 이겨낼 힘을 주신다.
우리 평생에 “예수님, 사랑합니다”라는 사랑 고백이 차고 넘치길 축복한다.
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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