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함께하는 믿음의 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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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유초등부 여름성경학교
2026 유초등부 여름성경학교
예수께서 돌아오시매 무리가 환영하니 이는 다 기다렸음이러라
이에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이는 자기에게 열두 살 된 외딸이 있어 죽어감이러라 예수께서 가실 때에 무리가 밀려들더라
이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하시니 다 아니라 할 때에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무리가 밀려들어 미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 하신대
여자가 스스로 숨기지 못할 줄 알고 떨며 나아와 엎드리어 그 손 댄 이유와 곧 나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말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선생님을 더 괴롭게 하지 마소서 하거늘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
그 집에 이르러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아이의 부모 외에는 함께 들어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모든 사람이 아이를 위하여 울며 통곡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그 죽은 것을 아는 고로 비웃더라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이르시되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시니
그 부모가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경고하사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시니라
사랑하는 친구들! 여러분은 배를 타 본 적이 있는가? 큰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것은 정말 신나는 일이다. 하지만 바다에는 언제나 잔잔한 날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별히 전도사님은 독도에 가본 적이 있는데, 그곳은 자주 비가 오기도 하고, 바람이 거세게 불기도 하고, 파도가 높게 일어나기도 한다. 그래서 멀미가 엄청나게 났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만약 아주 큰 파도가 오는데 선장이 없다면 어떨까? “어디로 가야 하지?” “우리 배가 괜찮을까?” 정말 무서울 것이다. 하지만 선장이 함께 있다면 어떨까? 비가 오고 파도가 높아도 안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선장이 길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도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비슷하다. 즐거운 날도 있지만, 슬픈 날도 있고, 아픈 날도 있고, 무서울 때도 있다. 오늘 성경에는 그런 친구들이 나온다. 12년 동안 아팠던 여자와 사랑하는 딸을 잃을 뻔한 아빠 야이로이다. 그런데 이 두 사람에게 공통점이 있다. 예수님과 함께 믿음의 항해를 했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과 함께하는 믿음의 항해는 어떤 항해인지 함께 알아보자.
1. 믿음의 항해는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에서 시작된다.
예수님께서 12년 동안 아픈 병으로 힘들게 살던 여자를 고쳐 주시고, 12살 소녀를 다시 살려 주신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회당장 야이로가 아픈 딸을 살려 달라고 예수님께 찾아오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예수님께서 딸을 다시 살려 주시는 기적으로 끝난다. 그리고 이야기 중간에 나오는 아픈 여자는 야이로가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사람이다. 예수님께서는 귀신 들린 사람을 고쳐 주신 뒤 갈릴리로 돌아오셨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 가운데 회당장 야이로도 있었다. 회당장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을 돌보고 예배를 준비하는 책임자이다. 그런데 그의 12살 된 하나뿐인 딸이 아주 위독한 상태였다. 예수님께서 집으로 가시는 도중에 딸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을 보면, 딸은 죽기 직전까지 매우 아팠던 것이다. 야이로는 예수님 앞에 엎드려 “제 딸을 살려 주세요.” 하고 간절히 부탁하였다. 딸은 야이로에게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자녀였다. 야이로는 예수님만이 딸을 살려 주실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님께 나아온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야이로의 부탁을 들으시고 그의 집으로 함께 가셨다. 성경은 이때 예수님께서 많은 말씀을 하셨다고 기록하지 않는다. 대신 예수님께서 직접 야이로의 집으로 걸어가셨다는 행동을 강조한다. 예수님은 말로만 도와주신 것이 아니라 직접 찾아가셨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실 때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몰려왔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여서 서로 밀고 밀릴 정도였다. 그만큼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했고, 예수님께 큰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따라갔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가운데, 12년 동안 피가 멈추지 않는 병(혈루병)으로 고생하던 여자가 있었다. 이 병은 몸이 아픈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당시에는 이런 병이 있는 사람은 예배에도 마음대로 갈 수 없었고, 사람들과 함께 지내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여자는 12년 동안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몸도 아팠고, 사람들에게도 외면받으며 살아야 했다. 하지만 여자는 예수님이라면 나를 고쳐 주실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 조용히 예수님께 다가갔다. 그리고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나을 것이라고 믿고 살며시 옷자락을 만졌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12년 동안 낫지 않던 병이 바로 나았다. 여자는 몸이 회복된 것을 즉시 느낄 수 있었다. 원래라면 사람들은 아픈 여자가 다른 사람을 만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달랐다. 예수님은 그 여자의 아픔 때문에 더러워지는 분이 아니었다. 오히려 예수님의 거룩한 능력이 여자에게 전해져 병을 깨끗하게 고쳐 주셨다. 예수님은 사람을 멀리하시는 분이 아니라, 아픈 사람을 찾아오셔서 회복시키시는 분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또한 예수님을 믿고 나아오는 사람은 누구든지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여러분, 학교에서 친구들이 한 명을 자꾸 피하는 모습을 본 적 있는가? “쟤랑은 안 놀 거야.”, “너는 우리 팀 아니야.”, “너 저쪽 가.” 그 말을 들은 친구의 마음은 어떨까? 너무 속상하고 외롭다. 혈루증을 앓던 여자가 바로 그런 마음이었다. 무려 12년 동안 사람들과 마음대로 함께하지 못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여자를 피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가까이해 주시고 고쳐 주셨다. 예수님은 모두가 멀리하는 사람도 사랑하시는 분이다.
혈루병이 나은 뒤에도 예수님은 그냥 보내지 않으셨다. 예수님께서는 여자를 사람들 앞에 부르시고 말씀하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예수님께서는 여자의 병만 고쳐 주신 것이 아니라, 여자와 직접 만나 말씀하시고 사랑을 전해 주셨다. 사실 여자는 병만 낫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주고 싶으셨다. 바로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이야기에서 가장 큰 기적은 병이 나은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사랑을 듣고, 예수님과 가까워진 것이 가장 큰 기적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이시지만, 그것보다 더 원하시는 것은 우리와 가까이 만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예배드리면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내 자녀야.”라고 말씀하시는 분이다. 예수님은 병보다 우리의 마음을 먼저 사랑하시는 분이며, 우리와 함께하는 것을 가장 기뻐하시는 분이다. 또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문제만 해결해 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와 친구처럼 가까이 만나기를 원하시는 분이다.
2. 믿음의 항해는 끝까지 예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혈루증 앓던 여자와 말씀을 나누고 계실 때, 야이로의 집에서 한 사람이 급하게 달려왔다. 그 사람은 야이로에게 말했다. “이제는 늦었습니다. 따님이 죽었습니다.” 야이로는 얼마나 마음이 무너졌겠는가? 예수님께서 조금만 더 빨리 오셨다면 딸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때 예수님께서 야이로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예수님께서는 야이로에게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믿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여러분도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 넘어져 본 적이 있는가? 한 번 넘어지면 “난 못하겠어.” 하며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옆에서 아빠나 엄마가 “괜찮아. 한 번만 더 해 보자!” 라고 응원해 주시면 다시 용기를 내게 된다. 야이로도 마찬가지였다.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모든 희망이 끝난 것 같았지만, 예수님께서는 “포기하지 말고 나를 믿어라.” 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야이로의 집으로 가셨다. 집에는 많은 사람들이 울고 있었다. 모두 소녀가 죽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아이에게 다가가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얘야, 일어나라.”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죽었던 소녀가 다시 살아나 눈을 뜨고 일어났다. 예수님께서는 부모님에게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다. 정말 살아났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병만 고치시는 분이 아니라 생명까지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 준다. 또한 야이로가 끝까지 예수님을 믿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 믿음 가운데 놀라운 일을 이루어 주셨다. 우리도 힘든 일이 생기면 금방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말씀하신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예수님은 우리가 보기에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하실 수 있는 분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끝까지 믿고 의지해야 한다. 믿음은 모든 일이 잘될 때만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힘들고 두려울 때에도 예수님을 끝까지 믿는 것이다. 혈루증 여인은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갔고, 야이로는 믿음으로 끝까지 예수님을 기다렸다. 두 사람 모두 예수님을 믿었을 때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였다.
왜 예수님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을까? 예수님은 소녀가 정말 살아났다는 것을 부모에게 보여 주고 싶으셨다. 아마 가장 먼저 딸에게 밥을 먹여 준 사람은 엄마였을 것이다. 엄마와 아빠는 다시 딸과 함께 웃고 이야기하며 식사할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소녀만 살려 주신 것이 아니라 슬픔에 빠져 있던 가족 모두를 다시 행복하게 해 주셨다. 앞에서 혈루증을 앓던 여인도 다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는 야이로의 가족이 다시 함께하게 되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사람 한 사람뿐 아니라 가정도 회복시켜 주시는 분이다.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 가정이 서로 사랑하고, 함께 웃고, 함께 예배드리는 가정이 되기를 바라신다. 여러분은 집에서 가족과 함께 밥을 먹으며 이야기한 적이 있는가? 엄마, 아빠와 함께 웃으며 식사하는 시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선물이다. 예수님은 우리 가족도 서로 사랑하고 아끼며 행복하게 지내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가족에게 “사랑해요.”, “감사합니다.”, “죄송해요.”라고 먼저 말하는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
여러분, 죽은 사람은 스스로 일어날 수 있을까? 아무리 크게 “일어나!" 라고 외쳐도 스스로 일어날 수 없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소녀에게 다가가 말씀하셨다. “얘야, 일어나라." 그러자 죽었던 소녀가 눈을 뜨고 벌떡 일어났다. 왜 그럴 수 있었을까? 예수님의 말씀에는 생명을 주시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도 하나님을 모르고 있을 때는 성경에서 죽은 것과 같다고 말씀하신다. 죽은 사람은 스스로 일어날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도 자기 힘만으로는 예수님을 믿을 수 없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를 불러 주신다.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을 두드리시고, “사랑하는 내 자녀야, 나에게 오렴.” 하고 불러 주실 때,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을 움직여 주신다. 그때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싶어요!" 라고 고백하게 된다. 여러분은 혈루증 앓던 여자가 왜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을 수 있었는지 기억하는가? 그 여자가 다른 사람보다 더 착해서도 아니고, 더 용감해서도 아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그 여자의 마음에 믿음을 주셨기 때문에, 그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예수님을 선택했어요.”라고만 말하지 않는다. 더 먼저는 “예수님께서 먼저 나를 사랑하시고 불러 주셨어요.”라고 고백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붙잡은 것이 아니라, 사실은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를 붙잡아 주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예수님께 감사한다. 혹시 아직 예수님을 잘 모르겠는 친구가 있을 수도 있다. 괜찮다.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알고 계신다. 야이로의 딸을 부르셨던 것처럼, 혈루증 여인을 사랑으로 만나 주셨던 것처럼,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사랑하는 내 아이야, 나에게 오렴.” 그 예수님의 부르심을 듣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어린이가 되기를 축복한다.
3. 믿음의 항해는 다른 친구를 예수님께 초대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설교를 잘 들었는지 한번 문제를 내보겠다. 누가 야이로의 딸을 살렸는가? 예수님이다. 누가 혈루증 앓던 여자의 병을 고쳤는가? 예수님이다. 사람은 생명을 줄 수 없다. 생명을 주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다. 오늘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을 아직 모르는 친구들은 성경에서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사람과 같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내 사랑하는 아이야, 나에게 오렴.” 하고 부르고 계신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그 친구의 마음을 열어 주시면 그 친구도 예수님을 믿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친구들을 부르신다. 친구가 교회에 오는 것은 우리가 억지로 데려와서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같이 교회 가자.” 하고 말할 때, “이번 여름성경학교 정말 재미있어!”하고 초대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말을 사용하셔서 친구의 마음을 두드리실 수 있다. 생각해 보자. 야이로가 예수님께 가지 않았다면 딸은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을까? 혈루증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가지 않았다면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었을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부르시지만, 그 부르심을 전하는 일에는 우리를 사용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들에게 용기 있게 말해야 한다. “같이 교회 가자.”, “같이 예수님 만나러 가자.”, “성윤범 목사님 완전 웃긴 분이셔” 혹시 친구가 처음에는 거절할 수도 있다. 괜찮다. 친구의 마음을 바꾸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우리가 할 일은 사랑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친구를 부르시면, 그 친구도 예수님을 만나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다. 이번 여름성경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면 딱 한 명만 떠올려 보자. ‘이 친구도 예수님을 만나면 좋겠다.’ 그 친구를 위해 기도하고, 용기를 내어 “다음 주에 나랑 같이 교회 갈래?” 라고 말해 보자. 누가 알겠는가? 예수님께서 우리의 작은 한마디를 사용하셔서 그 친구를 부르고 계실지도 모른다. 사람의 마음을 여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친구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아름다운 사명이다.
친구들. 오늘 우리는 두 사람을 만났다. 혈루증 여인은 예수님을 믿고 용기 있게 나아갔다. 야이로는 모든 희망이 끝난 것 같을 때도 예수님의 말씀을 붙잡았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예수님을 만났을 때 새로운 생명을 경험했다. 우리의 인생도 바다를 항해하는 배와 같다. 공부가 어려울 수도 있고, 친구 때문에 속상할 수도 있고, 아플 수도 있고, 무서울 수도 있다. 하지만 기억하자. 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파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선장이 함께 있는 것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려움이 없는 삶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삶이다. 더 놀라운 것은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를 부르신다는 것이다. 야이로의 딸에게 “얘야, 일어나라.” 말씀하셨던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사랑으로 부르신다. 그리고 우리를 믿음의 자녀로 삼아 주신다. 이제 예수님과 함께 항해하는 우리는 혼자만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다.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친구에게도 손을 내밀어야 한다. “같이 교회 가자.”, “같이 예수님 만나자.” 하고 초대하는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작은 초대와 사랑을 통해 하나께서는 또 다른 친구를 예수님께로 부르실 수 있다. 이번 여름성경학교가 끝난 뒤에는 한 명의 친구를 위해 기도하고, 한 명의 친구를 예수님께 초대하는 어린이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제나 기억하자. 예수님과 함께하는 믿음의 항해는 절대 길을 잃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와 함께 항해하시는 선장은 언제나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