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아신다

가창교회 중고등부 설교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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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을 모르는 파라오

여러분 수련회가 이제 1주일도 남지 않았습니다. 이번 주 목요일에 우리는 ‘건너다’라는 주제로 수련회를 시작하게 됩니다. 수련회 저녁집회 말씀으로 우리는 출애굽기부터 여호수아의 초반에 이르는, 영화 스케일보다 훨씬 더 길고 큰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사실 3-4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해당 주제를 배경까지 완전히 풀어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수박 겉핥기로 지나갈 확률이 매우매우 높습니다. 그래서 오늘 예배에서 먼저 출애굽기의 배경을 알아보고 수련회에서는 바로 본문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설교를 들을 때, 수련회 말씀의 배경이 되는 말씀임을 잘 기억하면서 말씀 속으로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출애굽기는 토라, 즉 모세오경의 두 번째 책입니다. 이 책은 우리나라 성경과 많은 영어 성경에는 창세기와 분리된 책처럼 시작합니다.
개역개정: 야곱과 함께 각각 자기 가족을 데리고 애굽에 이른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공동번역: 야곱을 따라 가족을 데리고 이집트로 내려간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새번역: 야곱과 함께 각각 자기 가족을 데리고 이집트로 내려간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이름은, ESV: These are the names of the sons of Israel who came to Egypt with Jacob, each with his household: MT: וְאֵ֗לֶּה שְׁמוֹת֙ בְּנֵ֣י יִשְׂרָאֵ֔ל הַבָּאִ֖ים מִצְרָ֑יְמָה אֵ֣ת יַעֲקֹ֔ב אִ֥ישׁ וּבֵית֖וֹ בָּֽאוּ
그런데 원어에는, 이 번역본들에는 없는 아주 중요한 단어가 하나 들어가 있습니다. ‘וְ’ ‘그리고’ 이것들이 그 이름들이다.
여러분 보통 책의 가장 처음에 접속사가 들어가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접속사는 앞의 이야기와 연결해서만 사용되는 것이잖아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대인들은, 그리고 무엇보다 모세에게 이 책을 쓰게 하신 하나님은, 출애굽기를 창세기와 동떨어진 별개의 책으로 우리가 읽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모세의 마지막 말, 그리고 다시 주어진 언약이 기록된 신명기를 제외한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는 모두 ‘그리고’라는 접속사로 책이 시작됩니다. 그 말은 창세기부터 민수기까지의 네 권의 책은 마치 한 권인 것처럼 읽어야 하며, 그 내용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창세기의 마지막은 어떻게 끝납니까? 우리가 잘 아는, 그리고 참 많이 들어본, 이집트의 넘버투가 된 요셉이 그의 아버지와 형들 그리고 온 가족을 이집트로 데려와서 기근을 피하게 하는 내용입니다. 요셉은 그의 가족을 ‘고센’이라는 지방에 살게 합니다. 지도에서는 이 지역입니다. 딱 봐도 비옥할 것 같지 않습니까?
창세기 46:34 NKRV
당신들은 이르기를 주의 종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목축하는 자들이온데 우리와 우리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소서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 당신들이 고센 땅에 살게 되리이다
창세기 47:6 NKRV
애굽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땅의 좋은 곳에 네 아버지와 네 형들이 거주하게 하되 그들이 고센 땅에 거주하고 그들 중에 능력 있는 자가 있거든 그들로 내 가축을 관리하게 하라
창세기 47:11 NKRV
요셉이 바로의 명령대로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에게 거주할 곳을 주되 애굽의 좋은 땅 라암셋을 그들에게 주어 소유로 삼게 하고
이집트는 나일 문명을 기반으로 한 농경사회를 이룬 국가입니다. 그들은 목축하는 사람들을 깔보았고, 그들과 섞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파라오에게 그들의 가족이 이미 고센 땅에 와있으며 목축업자라고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고센 땅을 그들의 거주지로 삼게 한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기근 중에도 풍성함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고, 이집트 민족과 혼합되지 않고 그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에도 유용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요셉이 살아 있고,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요셉의 공적을 기억하고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에게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400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기억이 휘발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집트의 왕조가 바뀌면서 전 왕조에 공적을 세운 것들이 가치가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출애굽기 1:8–9 NKRV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그가 그 백성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이제 이스라엘 사람들은 요셉을 통해 이집트에 은혜를 베푼 감사의 대상이 아니라, 이집트 내의 불온세력이 된 것이죠. 그래서 파라오는 두 가지 결정을 내립니다. 첫째, 강제 노역을 시켜서 노예로 삼고 괴로움을 주자. 둘째, 그것도 잘 먹히지 않으니까 산파들을 매수해서 히브리 남자아이가 태어날 때 아기들을 죽이라고 하자. 그것도 히브리 산파들이 하나님을 경외해서 남자아이들을 살려두니, 셋째, 히브리 아기가 태어나면 남자는 나일 강에 던져버리고 딸이면 살려두게 명령하자.

모세의 탄생과 성장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히브리 사람들의 고통을 보셨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남자아이를 태어나게 하셨고, 그를 통해 놀라운 계획을 이루시려고 하셨습니다. 그 남자 아이의 어머니는 3달 동안 아이가 태어난 것을 숨겼지만, 더 숨길 수 없게 되자 갈대 상자에 아이를 담아서 나일 강에 띄워보냅니다.
하필 그 타이밍에, 마침 그 때, 파라오의 딸이 나일 강에 목욕하러 왔다가 갈대 상자를 발견하게 됩니다. 공주니까 정황을 대략 파악했겠죠? “우리 아빠가 다 죽이라고 해서 이렇게 아기가 버려졌구나.”
출애굽기 2:6 NKRV
열고 그 아기를 보니 아기가 우는지라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
그녀에게 긍휼의 마음이 올라왔고, 그 아이를 데려가서 키워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때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아기의 누나가 공주에게 달려와서 말합니다.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데려와서 젖을 먹이게 할까요?” 공주가 허락하자, 그 소녀는 아기에게 젖을 먹일 히브리 여인 한 명을 데려옵니다. 바로 자기와 그 아기의 엄마였어요. 담대하면서도 지혜롭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남자 아기의 이름은 우리가 잘 아는 모세가 됩니다. 이 이름은 이집트 공주가 지어주었거든요? 이집트어의 모세는 ‘태어남’ 또는 ‘~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같은 발음의 다른 뜻이 히브리어에도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건지다’의 자음이 משׁה입니다. 모세도 히브리어 자음을 똑같이 משׁה을 쓰거든요. 놀랍게도 이 아기는 건짐을 받은 아기이면서, 장차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건져낼 사람으로 쓰임받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끝났다’고 생각할 때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역사를 이루어가는 분이십니다. 모세가 태어나서 자라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그를 보호하셨습니다. 누나가 갈대 상자를 따라가게 하셨고, 공주의 눈에 띄게 하셨고, 그녀에게 긍휼의 마음을 부어주셨고, 누나에게 지혜를 주어 결국은 어머니의 젖을 먹으며 자라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시면, 아무도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모세가 능력이 있었습니까? 아니요. 말도 못하는 생후 100일의 아기였어요. 사람이 자기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때, 하나님이 전적으로 그의 삶을 이끄셨습니다. 오히려 그가 장성하여 힘을 가지게 되어 스스로 히브리 사람을 구하고자 했을 때, 그는 실패하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는 살인 수배범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의 삶이 마치 이와 같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스스로 삶의 주도권을 쥐고 무엇을 하려고 할 때, 우리는 반드시 실패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내가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어.’라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일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얼마 전에 시험이 있었죠? 엽이가 수학시험을 매우 잘 쳤다고 어깨가 하늘로 치솟은 것을 봤는데 참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원하는 성적을 얻어낼 수는 없어요. 누군가는 성적 때문에 심연 속으로 동굴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또 누군가는 내가 원하는 대학, 원하는 전공이 있는데 지금 성적으로는 택도 없어서 좌절할 수도 있어요. 수능을 치면 그런 생각이 더 심해지죠.
“내 인생은 끝났다.”고 속이는 소리가 얼마나 크게 들리는지 모릅니다. 저도 너무 편안한 마음으로 수능 쳤다가 평소 모의고사만큼 성적이 안 나왔거든요. 원래 저는 경북대학교 역사교육과에 가고 싶었고, 역사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 갖은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수능도 망했고, 사학과 교직이수도 한끗 차이로 실패했어요. 망한 인생 아니겠습니까? 역사선생님의 꿈을 가진 게 14살 때니까, 8년을 바라보고 달려온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저는 망하지 않고 여러분 앞에 서있습니다.
저는 2013년 예수전도단 찬양사역 전임간사로 사역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2015년 2월 처음으로 대구화요모임에서 찬양인도자로 세워졌습니다.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저를 사용하셔서 예배에 성령이 충만한 것이 보여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예배사역자로 살아가는 좋은 형들, 선배들을 계속 만나게 하셨어요. 그런데 어느 날, 전임사역을 그만두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세상으로 들어가서, 믿지 않는 자들과 함께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너무 싫었어요. 그런데 순종하는 마음으로 스타벅스에 들어가서 6년을 넘게 있었습니다. 예배사역을 생각하면 제가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나는 끝났다. 찬양인도자로는 이제 끝이다.’ 제가 더이상 스스로 삶을 이끌어 갈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나의 능력이 참 보잘 것 없다고 인정했을 때, 하나님은 다시 저를 새로운 사역의 길로 이끄셨습니다. 예전에 이미 사역을 해보았던 화요모임이지만, 그때의 저와 지금의 저는 다른 존재가 된 것이죠. 왜냐하면 6년이라는 시간 동안,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통하여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경험한 새로운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을 경험적으로 더 많이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망하지 않고 여러분 앞에 서있습니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그렇게 살면 니 인생은 끝난다. 보잘 것 없는 인생이 된다. 먹고 살기 어렵다. 고생길이다.’ 말할 때, 오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 앞에 서있는 저의 인생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저는 하나 더 나아가서, 이번 수련회 가운데 여러분을 만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여러분의 삶이 이러한 삶으로 세워지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찬양팀이 뛰어나서도 아니고, 설교자가 말을 잘해서도 아니고, 프로그램이 좋아서도 아니고, 이 수련회 가운데 일하기를 원하시는 분의 성품과 능력을 신뢰하면 좋겠습니다. 모세를 죽음에서 건지신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여러분의 삶을 건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기대하는 마음을 가집시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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