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감당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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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믿음으로 감당하라
제목: 믿음으로 감당하라
본문: 출애굽기 4장 10-12절
본문: 출애굽기 4장 10-12절
찬송: 545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찬송: 545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말씀의 문을 열며
말씀의 문을 열며
우리 신앙생활의 가장 큰 목적 중 하나는 주님의 참된 평안과 위로를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려 찾아온 교회에서조차, 때로는 봉사와 직분의 무게에 짓눌려 깊은 영적 무기력감과 탈진을 경험하곤 합니다. 특별히 다음 세대를 세우기 위해 헌신하는 우리 교사들의 마음속에도, 말하지 못하는 어려움도 있을 것입니다.
하늘의 기쁨을 누려야 할 거룩한 자리가 도리어 외면하고 싶은 무거운 부담이 되는 서글픈 현실을 우리는 솔직하게 마주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사역 현장에서 마주하는 부담감 역시 본질적으로는 우리의 힘으로 다음 세대를 변화시키고 가르쳐야 한다는 영적 오해에서 비롯됩니다.
본문의 모세 역시 하나님이 사명을 맡겨주셨을 때, 기쁨으로 일어서지 못하고 그 사역을 너무나 무겁고 버거운 짐으로 여겨 깊은 절망 속에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모세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다는 자신의 실존적 한계를 앞세워 하나님의 부르심을 완강히 거부하려 했습니다. 사명의 압도적인 하중 앞에서 철저히 무기력해진 모세의 모습은 오늘날 사역의 자리에서 낙심하는 우리의 모습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명의 부담감 속에서 신음하는 모세를 결코 다그치거나 억지로 순종을 강요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세밀하고 다정한 인격적 대화를 통하여 그의 두려움을 깨뜨려 주셨고, 신실한 임재의 약속을 주시며 낙심해 있던 사명자를 다시 견고하게 세워주셨습니다. 주님이 맡기신 교사의 직분은 우리의 실력으로 버텨내는 짐이 아니라, 따뜻하게 소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는 은혜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사역의 자리에서 나의 무능함에 낙심하기보다, 모세를 만나 세워주셨던 창조주의 따뜻한 소통 방식에 집중하여 새 힘을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명의 자리에 설 때마다 자신의 부족한 조건에 매몰되지 않고 온 우주와 우리의 입술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온전히 신뢰해야 합니다.
10절에서 모세는 하나님을 향하여 '주여'라고 불렀는데 이는 절대 주권자를 뜻하는 '아도나이'라는 칭호를 부르는 신앙적 태도를 취했습니다. 이 칭호는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의 소유자이시며 무엇이든 하실 수 있다는 위대한 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아도나이'라고 부른 것은 참으로 중대한 의미를 지닙니다.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무능함을 핑계로 사명을 주저하는 모습은 우리 삶의 모순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모세는 입술로는 하나님의 주권을 높여 부르면서도, 정작 자신은 본래 말을 잘하지 못하고 입이 뻣뻣하며 혀가 둔한 자라는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나를 부르신 주님의 전능하심보다 내 앞에 가득한 인간적 약점과 불완전한 조건들을 훨씬 더 크게 바라보는 신학적 모순에 갇혀 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모세의 주저함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11절에서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라고 말씀하시며 절대적인 주권을 단호하게 선포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명의 무게 앞에 신음하는 모세에게 단지 지혜나 말재주를 당장 더해주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창조주의 주권을 단호히 가르치시며 그를 믿음 위에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뛰어난 재주나 화려한 언변을 기대하셔서 교사의 자리에 우리를 세우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사명의 현장에서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요인은 인간이 가진 자질의 우수함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존엄한 임재와 다스리심입니다. 우리는 종종 가르칠 만한 능력이 부족하다는 자괴감으로 인해 사역을 무거운 부담으로 느끼곤 합니다. 그러나 사명자가 가진 본질적인 무능함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결코 제한할 수 없으며, 우리가 말씀에 순종할 때 주님의 강한 손이 우리를 통해 일하기 시작합니다. 내 능력을 바라볼 때 오는 것은 좌절뿐이지만 우리를 지으신 분을 바라볼 때 우리는 사명을 넉넉하게 감당할 거룩한 용기를 얻게 됩니다.
주님의 동행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주님의 동행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내 힘과 재주로 사역을 성취하려는 영적 교만을 내려놓고 오직 우리와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주님의 임재와 말씀에 순종함으로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본문 12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고 선포하시며, 떨고 있는 모세에게 웅변 학원에 갈 것을 명하지 않으시고 오직 임재의 절대 보증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적 지도자 모세를 이집트 왕궁의 권력과 학문이 충만했던 화려한 40세의 청년 시절에 부르지 않으시고, 광야의 초라한 늙은이로 변한 80세의 힘 빠진 노인일 때 부르신 영적 섭리를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내 안에 숨겨진 자아와 재주를 철저하게 부인하고 주님 앞에 납작하게 엎드릴 때, 비로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사역 현장을 이끌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교사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날마다 영성을 세우기 위해 우리의 삶을 훈련해야 합니다. 말씀의 능력으로 우리의 생각이 믿음의 관점으로 올바르게 바뀌면, 일상 속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거룩한 영적 습관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됩니다. 이러한 은혜의 습관을 기초로 하여 우리의 모든 일상적인 행동이 믿음의 선한 열매로 가득 채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 행동의 열매들이 신실하게 반복될 때 우리의 내면은 예수 그리스도의 온유하고 겸손한 성품을 점진적으로 닮아갑니다. 마침내 이 고귀한 성품의 토대 위에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때에 귀하게 들어 쓰시는 영적 실력을 갖춘 참된 하나님의 일꾼으로 우리가 우뚝 서게 됩니다.
교사라는 직분은 내 지식으로 다음 세대를 가르치는 세상적 훈련의 자리가 아니라, 나와 함께하시는 주님의 동행하심을 매 순간 기쁨으로 신뢰하는 신앙의 고백을 드리는 자리입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소중한 사명은 내 힘으로 하려 하면 무거운 짐이 되지만, 임재를 구하며 동행할 때 영적인 기적이 됨을 확신해야 합니다. 주님의 주권을 신뢰하는 자는 자신의 나약함을 부인하고 오직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을 증거하는 데에만 삶을 집중합니다.
우리의 수고를 통해 다음 세대가 살아나고 교회가 든든히 서가는 부흥의 기적은 오직 우리가 자아를 내려놓고 주님께 순종할 때 일어납니다. 예수의 마음을 품고 거룩한 성령의 동행을 의지할 때 비로소 우리는 두려움을 이기고 영적 성장을 아름답게 이룰 수 있습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말씀의 문을 닫으며
사명자의 인생은 나의 자질과 조건을 자랑하며 세상적인 업적을 자랑하는 인간의 무대가 결코 아닙니다. 오직 나의 한계와 연약함을 고백하고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능력만을 세상 가운데 찬란하게 드러내는 거룩한 순종의 여정입니다.
주님께서는 교사의 자리에서 지치고 낙심하여 눈물 흘리는 우리 교사들의 모든 피로와 마음의 스트레스를 이미 완벽하게 아시며 사랑으로 안아주고 계십니다. 인간의 실력은 유한하지만 하나님의 임재는 영원하기에 우리는 약속된 말씀을 붙잡고 하루하루 기쁨의 예배를 가슴 깊이 회복해야 합니다. 나의 어떠함에서 시선을 돌려 신실하신 하나님의 동행만을 굳세게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하여 다음 세대를 소생시키는 영적 부흥의 주역들이 되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