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719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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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너는 두로를 위하여 슬픈 노래를 지으라
3 너는 두로를 향하여 이르기를 바다 어귀에 거주하면서 여러 섬 백성과 거래하는 자여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두로야 네가 말하기를 나는 온전히 아름답다 하였도다
4 네 땅이 바다 가운데에 있음이여 너를 지은 자가 네 아름다움을 온전하게 하였도다
5 스닐의 잣나무로 네 판자를 만들었음이여 너를 위하여 레바논의 백향목을 가져다 돛대를 만들었도다
6 바산의 상수리나무로 네 노를 만들었음이여 깃딤 섬 황양목에 상아로 꾸며 갑판을 만들었도다
7 애굽의 수 놓은 가는 베로 돛을 만들어 깃발을 삼았음이여 엘리사 섬의 청색 자색 베로 차일을 만들었도다
8 시돈과 아르왓 주민들이 네 사공이 되었음이여 두로야 네 가운데에 있는 지혜자들이 네 선장이 되었도다
9 그발의 노인들과 지혜자들이 네 가운데에서 배의 틈을 막는 자가 되었음이여 바다의 모든 배와 그 사공들은 네 가운데에서 무역하였도다
10 바사와 룻과 붓이 네 군대 가운데에서 병정이 되었음이여 네 가운데에서 방패와 투구를 달아 네 영광을 나타냈도다
11 아르왓 사람과 네 군대는 네 사방 성 위에 있었고 용사들은 네 여러 망대에 있었음이여 네 사방 성 위에 방패를 달아 네 아름다움을 온전하게 하였도다
12 다시스는 각종 보화가 풍부하므로 너와 거래하였음이여 은과 철과 주석과 납을 네 물품과 바꾸어 갔도다
13 야완과 두발과 메섹은 네 상인이 되었음이여 사람과 놋그릇을 가지고 네 상품을 바꾸어 갔도다
14 도갈마 족속은 말과 군마와 노새를 네 물품과 바꾸었으며
15 드단 사람은 네 상인이 되었음이여 여러 섬이 너와 거래하여 상아와 박달나무를 네 물품과 바꾸어 갔도다
16 너의 제품이 풍부하므로 아람은 너와 거래하였음이여 남보석과 자색 베와 수 놓은 것과 가는 베와 산호와 홍보석을 네 물품과 바꾸어 갔도다
17 유다와 이스라엘 땅 사람이 네 상인이 되었음이여 민닛 밀과 과자와 꿀과 기름과 유향을 네 물품과 바꾸어 갔도다
18 너의 제품이 많고 각종 보화가 풍부하므로 다메섹이 너와 거래하였음이여 헬본 포도주와 흰 양털을 너와 거래하였도다
19 워단과 야완은 길쌈하는 실로 네 물품을 거래하였음이여 가공한 쇠와 계피와 대나무 제품이 네 상품 중에 있었도다
20 드단은 네 상인이 되었음이여 말을 탈 때 까는 천을 너와 거래하였도다
21 아라비아와 게달의 모든 고관은 네 손아래 상인이 되어 어린 양과 숫양과 염소들, 그것으로 너와 거래하였도다
22 스바와 라아마의 상인들도 너의 상인들이 됨이여 각종 극상품 향 재료와 각종 보석과 황금으로 네 물품을 바꾸어 갔도다
23 하란과 간네와 에덴과 스바와 앗수르와 길맛의 장사꾼들도 너의 상인들이라
24 이들이 아름다운 물품 곧 청색 옷과 수 놓은 물품과 빛난 옷을 백향목 상자에 담고 노끈으로 묶어 가지고 너와 거래하여 네 물품을 바꾸어 갔도다
25 다시스의 배는 떼를 지어 네 화물을 나르니 네가 바다 중심에서 풍부하여 영화가 매우 크도다
우리는 저마다 배 한 척을 만들며 살아갑니다. 학점과 자격증으로 판자를 대고, 경력으로 돛대를 세우고, 통장 잔고로 배 밑을 채웁니다. 그리고 꿈꿉니다. 언젠가 이 배가 완성되는 날, 누가 봐도 "저 사람은 성공했다"고 말하는 날을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실제로 그 꿈을 다 이룬 도시가 나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배를 완성한 도시, 두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완벽한 배를 두고 축하의 노래가 아니라 장례식 노래를 부르라고 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그 이유를 함께 보려고 합니다.
1. 살아 있는 도시를 위한 장송곡 (1-2절)
본문 2절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명령하십니다. "인자야 너는 두로를 위하여 슬픈 노래를 지으라." 여기서 슬픈 노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장례식에서 부르는 노래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이때 두로는 죽은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가장 잘나가던 때였습니다. 두로는 지중해 바닷가의 섬 위에 세워진 무역 도시였습니다. 오늘로 말하면 세계 최고의 항구이자 금융 도시였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백성 유다는 그 시기에 나라가 망해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있었습니다. 에스겔의 설교를 듣던 사람들이 바로 그 포로들입니다.
그 포로들의 마음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망했는데, 하나님 없이 사는 두로는 저렇게 잘삽니다. 세상이 거꾸로 된 것 같은 현실입니다. 바로 그들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지금 저렇게 화려한 두로를 위해 장례식 노래를 미리 지어 두라. 하나님의 눈에는 두로의 끝이 이미 보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첫 번째 메시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을 보지만, 하나님은 '끝'을 보십니다. 지금 화려하다고 끝까지 화려한 것이 아니고, 지금 초라하다고 끝까지 초라한 것이 아닙니다. 포로들에게는 회복이 준비되어 있었고, 두로에게는 장송곡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2.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는 배 (3-25절)
이제 하나님은 두로를 한 척의 배로 그리십니다. 두로가 섬 도시이고 배로 먹고사는 나라였으니 딱 맞는 그림입니다.
그런데 이 배가 보통 배가 아닙니다. 5절과 6절을 보면 판자는 스닐의 잣나무, 돛대는 레바논의 백향목, 노는 바산의 상수리나무, 갑판은 상아로 꾸몄습니다. 7절을 보면 돛은 애굽의 수놓은 베로 만들었습니다. 하나하나가 다 그 시대 최고급 명품입니다. 오늘로 말하면 부품 전부가 세계 일류 브랜드인 배입니다. 사람도 최고였습니다. 8절에서 11절을 보면 최고의 뱃사람들이 노를 젓고, 최고의 기술자들이 배를 고치고, 외국에서 온 용병들이 배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12절부터 25절까지는 두로와 거래한 나라들의 목록이 길게 이어집니다. 은과 철, 말과 노새, 보석과 자색 옷감, 밀과 꿀과 기름, 포도주와 양털, 향품과 황금. 서쪽 끝 스페인 지역에서 동쪽 아라비아 사막까지, 그 시대에 알려진 온 세상이 두로와 장사를 했습니다. 그래서 25절이 이렇게 요약합니다. "네가 바다 중심에서 풍부하여 영화가 매우 크도다."
솔직히 이 목록은 읽기 지루할 만큼 깁니다. 그런데 그 길이 자체가 메시지입니다. 이렇게까지 다 가졌다는 것입니다.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대목에서 정직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 배는 사실 우리가 갖고 싶은 바로 그 배이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스펙, 최고의 인맥, 끊이지 않는 수입. 우리가 밤새워 만들고 싶은 인생의 완성형이 여기 있습니다. 성경은 이 배를 일부러 눈부시게 그렸습니다. 그래야 다음 한 문장이 무겁게 들리기 때문입니다.
3. 문제는 배가 아니라 한 마디 말이었습니다 (3절)
3절에서 두로가 스스로 한 말이 나옵니다. "나는 온전히 아름답다."
이 한 문장이 오늘 본문 전체의 열쇠입니다. 두로의 죄는 배를 잘 만든 것이 아닙니다. 부자가 된 것도 아닙니다. 두로의 죄는 이 선언이었습니다. 나는 내 힘으로 완전해졌다. 나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하나님이 필요 없다는 선언입니다.
원래 성경에서 "온전히 아름답다"는 표현은 하나님이 계신 시온, 곧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시편 50편 2절은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나님이 빛을 비추셨도다"라고 노래합니다. 시온이 아름다운 이유는 건물이나 돈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기 계시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두로는 하나님께 드려야 할 그 말을 가져다가 자기 이름 앞에 붙였습니다.
여기에 뼈아픈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두로가 자랑한 것은 전부 받은 것이었다는 점입니다. 잣나무는 스닐에서 왔고, 백향목은 레바논에서 왔고, 상수리나무는 바산에서 왔습니다. 두로의 작은 섬에서 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 밖에서 들어온 것입니다. 남의 나무로 배를 짓고, 남의 물건을 실어 나르며 부자가 되어 놓고, "내가 만들었다, 나는 완전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의 배도 똑같습니다. 건강도, 머리도, 기회도, 우리를 도와준 사람들도, 오늘 살아 있는 시간 자체도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라 받은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 7절 말씀 그대로입니다.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받은 재료로 지은 배 위에 서서 "이건 다 내가 이룬 것이다"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의 배는 두로의 배가 되기 시작합니다.
4. 그 배는 가라앉았습니다 (26절 이하)
이제 왜 이 노래가 장송곡인지 드러납니다. 26절입니다. "동풍이 바다 한가운데에서 너를 무찔렀도다." 그 완벽한 배가 바다 한가운데서 폭풍을 만나 깨어지고, 그 많던 재물과 사람들과 함께 가라앉습니다. 온 세상에서 모은 것이 한순간에 사라집니다.
역사도 그대로 흘러갔습니다. 두로는 바벨론에게 13년 동안 포위당해 힘이 꺾였고, 나중에는 알렉산더가 바다를 흙으로 메워 길을 만들고 건너가 그 섬 도시를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던 바다의 요새가 무너졌습니다.
그러니까 1절부터 25절까지의 그 화려한 묘사는 찬양이 아니었습니다. 장례식장에 걸린 고인의 사진이었습니다. 가장 빛나던 시절의 사진일수록 장례식은 더 슬픕니다. 하나님 없이 "나는 완전하다"고 말하는 배는, 아무리 아름다워도 이미 가라앉는 중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적용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우리가 하는 선언을 점검하게 됩니다. 열심히 배를 짓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공부하고 일하고 저축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문제는 배가 아니라 선언입니다. 이 회사에 들어가면 완성될 거야. 이만큼 모으면 안전할 거야. 이 사람만 있으면 부족한 게 없을 거야. 이 문장들의 공통점은, 내 인생을 완성하는 주어가 하나님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그 선언이 마음에 자리 잡는 순간, 성실하게 지은 배라도 두로의 항로로 들어섭니다.
또한, 세상의 화려함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포로들이 두로를 부러워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 없이 잘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시편 73편의 기자도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시 73:3)라고 고백했습니다. 그가 그 질투에서 벗어난 것은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시 73:17)라고 고백한 순간이었습니다. 장송곡을 미리 들은 사람은, 가라앉을 배를 부러워하느라 자기 인생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5. 우리 대신 가라앉으신 분
그런데 오늘 본문은 여기서 끝나면 안 됩니다. 이 말씀이 복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두로는 자기를 높이 올리다가 가라앉았습니다. 그런데 복음서에는 정반대로 움직이신 분이 계십니다. 빌립보서 2장은 예수님이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낮아지셨다고 말합니다. 두로는 받은 것을 모아 자기를 높였지만, 예수님은 원래 자기 것이던 하늘의 영광을 내려놓고 내려오셨습니다. 두로는 "나는 온전히 아름답다"고 외쳤지만, 예수님에 대해 성경은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 53:2)라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가라앉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교만과 죄가 받아야 할 심판의 깊은 물속으로 대신 내려가셨습니다. 두로는 자기 무게 때문에 가라앉았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무게를 지고 가라앉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그 깊음에서 다시 올라오셨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우리에게 놀라운 역설을 선포합니다. 자기를 높이며 올라가는 배는 가라앉고, 예수님과 함께 낮아지는 사람은 다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의 아름다움은 우리가 스스로 완성해야 할 숙제가 아닙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은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라고 선언합니다. 우리는 배를 다 완성해야 아름다워지는 존재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지금 만들고 계시기에 이미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두로는 온 세상 것을 다 모으고도 가라앉았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날에도 십자가 때문에 하나님께 "너는 내게 아름답다"는 선언을 받았습니다. 이 선언은 우리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것이기에, 결코 가라앉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음 주에도 각자의 배를 지으며 살아갈 것입니다. 공부하고, 일하고, 이력서를 채울 것입니다. 다만 오늘 이후로 우리 뱃머리에 새겨진 문장이 바뀌기를 원합니다. "나는 온전히 아름답다"가 아니라, "나를 아름답다 하신 분이 이 배의 주인이시다"로 말입니다. 자기 영광을 싣고 떠난 배는 장송곡으로 끝났지만, 예수님이 주인 되신 배는 폭풍 한가운데서도 그분이 함께 타고 계십니다. 이번 한 주, 우리 모두 그 주인께 우리 배의 키를 내어드리며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