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여름성경학교 첫째날 저녁집회 : 결국, 나의 무거운 짐을 벗기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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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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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밤: 결국, 나의 무거운 짐을 벗기시다

본문: 로마서 7:24-25a, 8:1-2 대상: 청소년부 (난이도 조절 가능) 예상 소요 시간: 40분
Romans 7:24–25 NKSV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니 나 자신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고,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습니다.
Romans 8:1–2 NKSV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당신을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Intro

지난 6월에 일본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가지 않는
기타큐슈라는 동네를 다녀왔어요.
그렇게 바라던 일본에 처음으로 가게 되었고,
처음으로 가보는 가족들과의 해외여행이었어요.
아내와 18개월된 아기, 그리고 뱃속에 18주정도 된 둘째 아이까지
4명이 함께 했던 정말 즐거운 가족여행이었어요.
아이를 데리고 가니까 자동차를 렌트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비싸기도 했고,
대중교통이 제법 잘 되어있는 것 같아서
JR이라는 전철을 많이 이용했습니다.
어느 날은 전철에 타서 아내와 함께
토이카메라를 가지고 재미있게 놀았어요.
손바닥만한 사이즈고,
옛날에 쓰던 디지털카메라 같은
화질로 찍혀서 사진이 제법 감성있게 나와요.
근데 여기에 필터 기능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전철 타고 가는 내내 이러고 놀았습니다.
(필터사진)
그렇게 정신없이 킼킼킼 거리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는데,
“다다이마
스페이스월드 에키”
라고 버젓이 적혀있는거에요.
다다이마가 원래 ‘다녀왔습니다~’인데,
대중교통에서는 현재, 지금역을 의미해요.
그런데 다녀왔습니다만 생각하고,
전광판에 광고가 나오고 있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등골이 쎄해서
문이 열린 곳을 바라보니
바깥에 대놓고 스페이스월드 역이라고
써져 있는거에요.
그래서 아내랑 후다다다다닥 내렸던 기억이 있어요.
그거 필터 씌우는게 뭐 그리 재미있다고
둘이 정신없이 킥킥킥거리다가
정작 놓쳐서는 안 될 것을
놓쳐버릴 뻔 했죠.
남학생들은 잘 모르겠는데,
여학생들은 스토리나 프사 찍을때
필터 많이 씌우죠?
우리는 왜 그렇게 필터를 씌우는 걸 좋아할까요?
그 자체로도 재미있어서 친구들끼리 놀때 쓰기도 할겁니다.
하지만 보통 필터는 무언가 가리고 싶고,
더 잘 보이고 싶고,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을때 쓰잖아요?
내 못난 점, 잡티 모두 가리고 싶고,
인스타에 올리면 내가 삭제하지 않는 이상
쭉 남는건데 이왕이면 예쁘게 잘 꾸며서 올리고 싶죠.
다른 사람에게 내 잡티를 가리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내 모습을 가리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마음인 것 같아요.
목사님은 어렸을때
그런 필터를 참 많이 끼고 살았던 것 같아요.
아주 어릴때부터
제 삶 전체에 아주 두꺼운 필터를 씌우고 살았었어요.
여러분 중에 혹시
전학 다녀본 친구 있나요?
목사님하고
누가누가 전학 많이 다녀봤는지
전학배틀 뜰사람 손!
목사님은 초등학교를 5군데를 다녔어요.
대전 석교동에 있는 석교초등학교,
청주에 있는 창신초등학교,
한화이글스 야구장 앞에 있는 문창초등학교,
그 야구장과 제법 가까이 있는 대흥초등학교,
그리고 문화동 중구 보건소 앞에 있는
보성초등학교에서 졸업을 했어요.
즉, 목사님은 전학을
4번이나 갔었어요.
전학을 한 번이라도 가 본 친구들은 알거에요.
그 어색한 분위기, 환영받지 못하는 듯한 느낌
이방인같은 그 느낌…
그렇게 전학을 다니면서
가장 힘들었던 사람은
제 형이었어요.
지금 저와는 완전 다르게
형은 쏘 샤이보이였고,
환경이 바뀌는 것을 매우 싫어했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걸
굉장히 힘들어했어요.
저는 어땠을 것 같아요?
가는 곳곳마다
친구들을 끌고 다녔습니다.
골목대장마냥 내가 이 구역의 짱이다
라는 느낌으로 끌고 다녔어요.
그래서 저는 제가 원래 그런 사람인줄 알았어요.
사람 좋아하는 사람, 누군가와 친해지는게
그렇게 어렵지 않은 사람.
그런데,
초등학교, 청소년기,
대학생, 그리고 지금 여기 오기까지
저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면
생각보다 사람하고 친해지는데
굉장히 오래 걸리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전학을 그렇게 많이 다니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게
괜찮다고 느껴졌던 이유는
딱 하나였어요.
“살아남아야 한다.”
“나는 이 무리에서 도태되면 안 된다.”
“그러면 괜찮은척 웃어야 한다.”
여러분도 혹시 친구들 사이에서
이렇게 진짜 웃음이 아니라
나를 가리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일부러 웃은 적은 없나요?
괜찮은 척?
저의 이 웃는 삶은
학교에서만 만들어진 웃음이 아니었어요.
집에서부터 만들어졌던 웃음이었어요.
목사님이 기억도 제대로 없는
3살의 나이에 부모님께서 이혼을 하셨고,
그 영향 때문인지 집안에서 어른들이
저를 불쌍하게 바라보는게 너무 싫었어요.
물론 어른들 입장에서는 불쌍하죠.
당연히 불쌍한데, 저를 볼때마다
아유… 딱한 것…아유… 불쌍한 것…
하는 그 말을 듣는게 너무 싫었고,
그래서 그때부터 모든 것이 괜찮은 것처럼
웃기로 결정했어요.
그냥 저는 하나하나 모든게 다
괜찮은 사람이어야 했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보니까 웃음만으로는
내가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공부라는 걸 열심히 해보기로 했어요.
이 공부를 잘 하면 어른들이
저를 조금 더 예뻐해주는 것 같더라고요?
원래는 100만큼 예뻐해줄거
200, 300만큼 더 예뻐해주더라고요.
그리고 가족들이 원하는 꿈도
나의 꿈이라고 결정하기로 했어요.
나는 이런 사람이 될래요!
우와! 이거 재밌겠다!
나 이거 해볼래요! 라고 말할때는
약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다가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하니까
굉장히 좋아해주시고
굉장히 기특해하시더라고요?
그때부터 제 꿈은
한의사였습니다.
제가 원하지는 않지만,
제가 막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
뭐 돈도 잘 벌고, 남들한테 인정도 받는 직업이고,
무엇보다 이렇게 성공하면
가족들이 나를 더 사랑해줄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 기대를 만족시켜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러기 위해 나의 부족한 점은 어떻게든 가리려고 했고,
결국엔 그 쌓였던 모든 것이
사춘기때 굉장히 크게 폭발했던 것 같아요.
여러분은 어때요?
어떤 필터를 씌우고 살아가고 있어요?
내 인생에 예쁜 사진만 남기고 싶어
내 연약함, 약점, 부족한 점들을
어떤 필터로 가리고 살고 있어요?

1. 모세의 필터

가장 먼저 나누고 싶은 사람은 모세입니다.
Numbers 11:15 NKRV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 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
나를 죽여달라는 말 앞에
“내게 은혜를 베푸사”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왜 이런 말을 하고 있을까?
과정이 굉장히 길지만 짧게 말씀드릴게요.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했습니다.
그리고 멋지게 홍해바다를 쏵 가르고
바다를 건너며 완벽하게 탈출을 했죠.
그런데 문제가 생겨요.
기본적으로 이들의
의식주를 해결해줘야 합니다.
의식주 중에서 딱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뭐가 가장 중요할 것 같아요?
맞죠, 먹을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먹을 것을
충분히 주셨는데,
고기가 없다고 징징거리기 시작한거에요.
아 물론,
저도 밥상에 고기가 없으면
징징거리긴 해요.
고기 없으면 근손실 오니까…
3대 영양소가 괜히 3대 영양소냐…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서 그런거지
어떻게 식단에 단백질이 빠질 수 있냐…
저도 그렇게 불평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불평은 불평이지만
이 말을 듣는 모세의 입장은 어땠을까요?
노예생활이 힘들든 어쨋든
이집트에서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끌고 나왔어요.
그럼 끌고 나왔으니 다됐다!
에서 끝날 수 있을까요?
아니요, 끌고 나왔어 그 다음은?
이들은 엄청난 기대를 갖고
모세를 따라 나왔어요.
그럼 그 기대에 맞게
모세가 무언가를 보여줘야 할 때에요.
그런데 모세는 지금
그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고
그래서 문제가 생겼고,
그 부담감에 짓눌려서
모세는 무너졌어요.
모세가 멘탈이 약하거나
리더쉽이 없어서였을까요?
아니에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누군가가 나에게
기대하고 바라고 소망하는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당연히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문제는 그걸 그냥 우리의 힘으로 이겨내려고 하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거죠.
모세의 입장에서 생각해봤어요.
문자 그대로만 보자면
200만에서 300만명을 이집트에서 끌고 나왔고,
다른 시각에서 언어학적으로 보자면
2만에서 3만명을 끌고 나왔고,
의견이 분분해요.
그러나 확실한 것 하나는
많은 무리를 끌고 나왔다는거에요.
그게 천명이든 백명이든
사람들의 기대가 분명 있었다는거에요.
목사님이 경험을 해봐서 알아요.
집안의 10명도 안 되는 어른들이
목사님을 향해서 얘는 의사가 될거야!
너는 의사가 되어야 해!
라고 했던 그 기대와 바람도
결국 저를 무너지게 만들었어요.
너무 부담스럽더라고요.
10명까지 갈 필요도 없어요.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나의 가족 단 한 명만이라도
나에게 무언가 기대를 하고 있다는 걸
내가 알게 되면
그것만큼 부담스러운 건 없는 것 같아요.
이게 저만의 이야기는 아닐겁니다.
지금 여기 모인 청소년들 중 상당수가
부모님의 기대,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
내가 이 세상을 살면서 무언가는 보여줘야하지 않겠냐는 압박감.
그게 반복되면 우리는 결국에 무너질 수밖에 없게 돼요.
모세가 힘겹게 노예생활을 했던 이들에게
더 나은 삶을 선물하고 싶어서,
이들이 정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땅에 가서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얼마나 바랬을까요?
그러다보니 모세는 좋은 리더여야했고,
모세는 훌륭한 사람이어야 했을겁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을 마주했을때,
내가 꿈꾸는 이상과 그렇지 못한 지금의 나의 모습을 마주했을때,
모세는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모세가 유튜브로 동기부여 영상을 보면서
어이어이 너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라고 마인드 컨트롤 했으면
안 무너졌을까요?
나는 할 수 있어! 라는 필터를 쓰고,
살아가봤자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는게
우리라는겁니다.

2. 다윗의 필터

또 하나의 필터를 씌우고 살아가다
무너져버린 사람이 있습니다.
Psalm 32:3–4 NKSV
내가 입을 다물고 죄를 고백하지 않았을 때에는, 온종일 끊임없는 신음으로 내 뼈가 녹아 내렸습니다. 주님께서 밤낮 손으로 나를 짓누르셨기에, 나의 혀가 여름 가뭄에 풀 마르듯 말라 버렸습니다. (셀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왕,
이스라엘 역대 가장 위대한 성군,
다윗의 고백입니다.
다윗이 살았던 때는
집 구조가 되게 독특했어요.
지금으로 치면 군인이나 공무원들은
국가에서 집을 선물로 받는데,
그 집은 ㅁ자 모양으로
가운데가 뚫려 있어요.
ㅁ자 모양으로 뚫린 곳에서
공무원들끼리 모여서 중요한 회의도 하고,
각자 목욕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일반 백성들이 지나갈때는
공무원들의 집을 볼 수 없지만,
왕은 궁전 꼭대기에서 보면
그 집을 어느 정도 다 볼 수 있는거에요.
누구랑 누구가 모여서 회의를 하는지
누가 작당모의를 하지는 않는지
보기 위해서 그런 구조로 만들었죠.
그러던 어느 날 다윗이 궁전 옥상을 거닐다가
누군가의 집을 봤는데,
아리따운 여성분이 목욕을 하고 있는거에요.
그 사람이 누군가 했더니
다윗의 부하 중에서도
정말 충성스러운 부하의
아내였습니다.
궁전 꼭대기가 가장 높으니까
당연히 보일 수 있겠죠.
그런데 보였으면 고개를 홱 돌리던지 해야하는데
눈이 뒤집혀버린거에요.
눈이 뒤집혀서 마음까지 뒤집혀져가지고
해서는 안 될 짓을 하게 됩니다.
왕의 권력을 이용해서
야야 그 저기 내 부하 중에
우리야라는 애 있지?
걔 아내한테 가서 잠시 나랑 만나자고 전해라
그렇게
부하의 아내를 불러다가
하룻밤을 같이 보냈습니다.
눈이 돌아가서
말이 안 되는 잘못을 저질렀죠.
다윗에게 상당히 실망했던 대목이에요.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았어요.
다윗은 완전범죄를 위해서
자신이 사랑하고 아끼는 부하를
일부러 사지로 내보내서 죽게 만듭니다.
누가봐도 빡세게 전쟁을 해야만 하는 곳에
우리아를 보냈고, 아주 의도적으로 살해를 했어요.
2 Samuel 11:15 NKSV
다윗은 그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너희는 우리야를, 전투가 가장 치열한 전선으로 앞세우고 나아갔다가, 너희만 그의 뒤로 물러나서, 그가 맞아서 죽게 하여라.”
다윗이 참 별로였습니다.
이 정도면 쓰레기가 아니라 폐기물 수준이죠.
목사님이 고등학교때 쉬는시간에 자고 있는 친구가 있는데
너무 시비를 거고 싶은거에요.
그래서 친구들 불러다가
“니가 얘 등짝을 쎄게 때려
그럼 우리가 다같이 이렇게(반짝반짝)하고 있자.”
그래서 제 말을 들은 친구가
등짝을 때릴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번뜩, 이 친구도 약올리고 싶은거에요.
그래서 뒤통수 때리는 친구들 말고
함께 반짝반짝하기로 한 친구들한테
야야 가만히 있자. 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그 친구 혼자 자는 친구의 등짝을 때리고
그 친구 혼자 반짝반짝 하고 있었어요.
나머지는 다 뒤에서 무표정으로 서 있었죠.
그래서 그 친구는 잠에서 깬 친구에게
점심시간 내내 괴롭힘을 당했어요.
맞아요. 제가 거의 뭐 사탄이죠.
아마 사탄도 목사님 보면서 아....이건 쫌… 했을 것 같아요.
다윗이 지금 저보다 더한 짓을 하고 있는거에요.
사람의 목숨이 오가는 상황에서
게다가 본인이 저지른 잘못을 숨기기 위해서
부하를, 아니 사람을 죽게 만든다는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죠.
그렇지만 다윗은 많은 백성과 신하들에게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으로 기억되어야 했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잘못을 감추기 위해
더 말도 안 되는 잘못을 저지른 겁니다.

3. 거짓된 필터를 벗어버리고...

우리는 모세처럼 잘 해내야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누군가의 기대를 만족시켜주고 싶어서
내 인생에 필터를 씌울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처럼 실수를 하고 잘못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거룩하고 위대한 사람처럼 보여야한다는 생각 때문에
내 인생에 필터를 씌울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랬던 모세도 결국에는 무너졌고,
다윗도 뼈가 녹아버릴 정도로 고통을 받았어요.
맞아요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어요.
그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에요.
잘 보이고 싶고, 잘 해내고 싶고…
그렇지만 그 마음이 이해된다고 해서
그 마음이 옳다고 말할 순 없어요.
이건 죄입니다.
예수님은 단 한 번도 우리에게
사람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
사람들에게 거룩하게 보여야 한다. 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어요.
그런 생각이 든다면 그건 그냥 내 욕심인거고,
그냥 나의 만족을 위한거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그렇게나 화를 내셨던거에요.
거룩해보이려고, 괜찮은척하려고 하는
그 모든 시도들이 결코 사람에게 좋은 것이 아닐 뿐더러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옳지 못한 모습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서
세상에서 말하는 모습으로
필터를 뒤집어 쓰는 행동,
내 스스로가 나의 삶을 책임지고
내 스스로가 나를 구원하겠다는 뜻이에요.
한 번 잘 생각해보세요.
일주일, 우리의 삶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이 내 삶을 책임지시는 것처럼 행동하는가?
아니면 좋은 대학이나 성공이 내 삶을 책임져주는 것처럼
행동하고 살아가는가?
조금만 고민해보면 답은 금방 나오죠.
그냥 다 내 욕심일 뿐이에요.
욕심을 넘어서 교만이라고 부르고요.
그걸 죄라고 부릅니다.
하나님 없이도 내 인생을 멋지게 포장할 수 있다는
아주아주 무의미하고 헛된 시도이자
죄 그 자체라는거에요.
누군가는 이렇게 말해요.
뭐가 되었든 내가 만족하는게 가장 중요한거 아니야?
필터를 잘 씌워서라도 내가 만족하면 되는거 아니야?
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 결과로 모세도 무너지고 다윗도 무너졌어요.
성공적인 모습, 착한 사람의 모습,
거룩한 사람의 모습, 괜찮은 척하는 모습,
그런 걸로 우리를 덮으려고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인생이 힘든거에요.
자꾸 거짓된 필터로 나를 덮으려고 하니까.
우리는 절대 우리의 삶을 우리 스스로 구원할 수 없어요.
[잠시 멈춤]
하다못해 엘리트 중의 엘리트라고 불렸던
사도바울조차 이렇게 고백해요.
로마서 7:24
NKSV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신약성경의 절반을 쓴 사람이고,
그 당시 최고의 학문을 공부했으며
그 중에서도 엘리트였던 사람,
그런 사람조차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 앞에서 무너져요.
이건,
특별히 못났거나 특별히 잘난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문제라는거에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내 인생을 더 좋은 필터로 뒤집어 쓰려다가
실패하고 만다.
하지만 오히려 세상의 여러 가지 필터로
나를 덧씌우려는 시도가 아닌
“나는 그런 비참한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할때
그때부터 우리 삶에 은혜가 시작되는겁니다.
그것도 특별히
자존감 낮은 사람처럼 이사람 저사람 앞에서
나는 비참한 사람이에요… 하고
주눅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이름 앞에서
자신을 솔직하게 돌아보고 고백하고 인정할때
그때부터 모든 것이 변화되기 시작된거에요.
이 둘은 완전히 달라요.
“나 진짜 별로야, 나 같은 게 뭘…”
하면서 주눅드는 건
여전히 내가 나를 정죄하고 있는거에요.
필터를 씌우는 것도 나,
필터를 벗기고 자책하는 것도 나.
결국 계속 나한테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거에요.
그런데
“저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저를 건져주세요.”
이건 완전히 다른 방향이에요.
나에게서 눈을 떼서
예수님께로 향하는 고백인거죠.
자책은 나를 보고,
회개는 예수님을 봅니다.
[잠시 멈춤]
로마서 7:25
NKSV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니 나 자신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고,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습니다.
이런 비참한 사람을
예수님을 통하여 건져주셨다는거에요.
육신이 죄의 법을 섬기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연약함 속에서 살지만
이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심겨져 있고,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능했다는거에요.
로마서 8:1–2
NKSV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당신을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에요 그러므로
아무도 여러분을 못났다 모지라다
부족하다 별 볼품없다 쓰레기다
할 수 없는거에요.
세상이 여러분을 아무리 뭐라고 한들
루저다, 잘하는게 대체 뭐냐,
니가 뭐 돼냐, 좋은 대학을 나왔냐,
돈 얼마버냐, 니 인성은 왜 그모양이냐,
이런 쓸모없는 말을 아무리 늘어놔도
[잠시 멈춤]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들을
그 누구도 뭐라할 수 없다는거에요.
정확히 말하자면 뭐라고 한다고 한들
그것이 나의 알바가 아니에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써 증명된 것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뜻입니다.
내가 세상에서 별 소리를 다 듣는다고 한들
변하지 않는 단 한 가지,
그 어떤 세상의 소리도 감히 어떻게 할 수 없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그건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거에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건 바로 그겁니다.
모세가 그 부담감에 짓눌려서
“차라리 나를 죽여달라”고 무너졌던 그 순간도,
다윗이 자기 죄를 감추려고
우리아를 사지로 몰아넣었던 그 죄까지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짊어지셨어요.
그래서 우리는 나에게 씌워져 있는
아니, 내가 내 스스로 열심히 필터를 씌워서 가리려 했던
내 부족한 모습들,
하나님은 그마저도 사랑한다고 하신거에요.
그래서 예수님을 보내주신거에요.
하나님이 진짜 마음아파하시는 건
여러분이 어떤 모습을 가지고 살아가느냐가 아니라
여러분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예수님의 십자가로 덮지 않고
자꾸 대학, 성공, 거룩한 모습으로 덮으려는
헛된 시도들이에요.
예수님을 바라보면,
예수님이 도와주실거에요.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다른게 아니에요.
여러분의 마음 속에서 계속해서
너는 하나님의 자녀야.
너의 정체성은 그 누가 뭐라해도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야.
너는 사랑받는 사람이야.
라고 말씀해주신다는거에요.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했던
해방이자 자유인거에요.
여러분의 못난 모습이 있다면
그건 예수님이 자기 몸에 다 뒤집어쓰고
이미 십자가에서 다 해결하셨어요.
[잠시 멈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늘 목사님이 처음에 이야기했던
그 전철 이야기 기억나요?
필터에 정신 팔려서 킥킥거리다가
정작 내려야 할 역을 하마터면 놓칠 뻔 했잖아요.
우리도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온 건 아닐까요.
내 삶에 예쁜 필터 씌우는 데 정신이 팔려서
정작 나를 건지실 분,
내려야 할 그 자리를 놓치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는
새로운 질서로 들어가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 밤 우리가 가진
내가 나에게 씌우려고 했던
헛된 필터들 가면들
다 내던지고 예수님 앞에서 솔직하게 서야합니다.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못견디겠습니다.
솔직히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조명/음악 큐 — 기도로 전환]
우리 잠시 기도할건데
마음속으로 이렇게 기도했으면 좋겠어요.
"주님, 저 너무 지쳤어요.
제 힘으로 해보려 했는데 너무 무겁습니다.
이제 나를 해방시켜 주시옵소서."

기도

깊은 내면을 돌아보길 소망합니다. 우리 모두 연약한 사람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기대와 바람을 만족시켜주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부모님께서 나를 향해 품고 있는 기대와 바람 때문에 지칠 때가 있습니다. 공부 잘 하는 아이, 운동이든 음악이든 1등 하는 아이, 어떨 때는 착한 아이가 되어야만 해서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기도 합니다. 솔직하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하나님, 저 숨좀 쉬고 싶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옵소서. 딱딱하고 차갑게 굳어진 내 마음에 주님 찾아오셔서 자유함을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그렇게 주님의 이름 한 번 간절하게 부르짖으며 기도하겠습니다.
깊은 내면을 돌아보길 소망합니다. 우리 모두 연약한 사람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기대와 바람을 만족시켜주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부모님께서 나를 향해 품고 있는 기대와 바람 때문에 지칠 때가 있습니다. 공부 잘 하는 아이, 운동이든 음악이든 1등 하는 아이, 어떨 때는 착한 아이가 되어야만 해서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기도 합니다. 솔직하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하나님, 저 숨좀 쉬고 싶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옵소서. 딱딱하고 차갑게 굳어진 내 마음에 주님 찾아오셔서 자유함을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그렇게 주님의 이름 한 번 간절하게 부르짖으며 기도하겠습니다.
우리의 죄를 두고 기도하길 소망합니다. 분명 내 안에 내가 숨기고 싶은 죄악들, 내가 가리고 싶은 나의 부정적인 모습들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나눴던 다윗처럼 우리도 누군가에게 착해보이고 싶고, 거룩해보이고 싶어서 내 죄를 덮으려고 했던 순간이 정말 많았습니다. 이 시간 우리의 죄악이 떠오르게 하시고, 우리가 잘못했던 모든 것들을 떠오르게 하셔서 주님 앞에 회개 하며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나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이렇게나 죄인입니다. 라고 고백하며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주님의 이름을 한 번 부르짖고 기도하며 나아가겠습니다!
#1 내 모습 이대로
4. 거짓된 관계와 SNS의 필터 벗기
“우리 안에 있는 가식과 포장을 주님 앞에 내려놓길 원합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 남겨질까 봐, 무리에서 도태될까 봐 억지로 웃으며 괜찮은 척했던 나의 진짜 모습을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SNS에 예쁜 필터를 씌우듯 내 삶을 거짓으로 꾸며왔던 것을 회개합니다.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에 묶여있던 나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는 목마름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사오니, 사람의 평가가 아니라 나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에만 집중하게 하옵소서.”
5. 가정에서의 상처와 ‘괜찮은 척’하는 가면 벗기“가정 안에서 받은 상처와 아픔을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부모님의 갈등, 경제적인 어려움, 혹은 나를 향한 무관심 속에서도 짐이 되지 않으려고 억지로 밝은 척, 철든 척하며 살아왔던 나의 굳어진 마음을 만져주시옵소서. 불쌍하게 보이기 싫어서, 혹은 사랑받고 싶어서 내 감정을 숨기고 살았던 깊은 상처들을 이 시간 성령님께서 어루만져 주시옵소서. 주님 앞에서는 울어도 괜찮고, 아파해도 괜찮다는 것을 깨닫게 하사, 내 영혼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주님의 위로를 경험하게 하옵소서.”
6. 은밀한 죄악과 숨겨진 습관의 단절 (다윗의 필터)“다윗처럼 내 죄를 숨기기 위해 더 큰 잘못을 저지르고, 거룩한 척 포장했던 우리의 위선을 회개합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습관적으로 무너졌던 음란함, 미디어 중독, 친구를 향한 시기와 미움, 내 입술의 거친 말들을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 주시옵소서. 교회 안에서는 거룩한 척하지만, 일상에서는 철저히 하나님 없이 살았던 나의 이중적인 모습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죄를 숨기려는 필터를 찢어버리고, 빛 되신 주님 앞에 내 어둠을 낱낱이 고백하는 정결한 마음을 창조하여 주시옵소서 (시편 51:10).”
#2 온 땅의 주인
7. 자기 혐오와 정죄감으로부터의 해방 (로마서 8:1)“‘나는 왜 이 모양일까, 나는 쓰레기야, 나는 도저히 안 돼’라며 끊임없이 나 자신을 깎아내리고 정죄했던 나의 목소리를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끊어냅니다. 마귀는 계속해서 너의 약점과 실패를 보라고 정죄하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음을 선포합니다. 내 안의 우울감, 무기력함, 자기 혐오를 성령의 불로 태워 주시옵소서. 내가 나를 정죄하던 재판석에서 내려와, 나를 위해 피 흘리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만을 온전히 품게 하옵소서.”
8. 미래에 대한 불안과 ‘성공’이라는 가짜 구원자 버리기“좋은 대학에 가야만, 돈을 많이 벌어야만, 세상에서 성공해야만 내 인생이 가치 있어질 것이라고 믿었던 우리의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이 내 삶을 책임지신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세상의 스펙과 성적이 나를 구원해 줄 것처럼 불안해하며 발버둥 쳤던 불신앙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모세가 사람들의 기대에 짓눌려 무너졌던 것처럼, 성적과 미래에 대한 압박감으로 숨 막혀 하는 우리들을 살려 주시옵소서. 나의 미래가 세상의 평가에 있지 않고 오직 예수님의 손에 있음을 굳게 믿게 하옵소서.”
9. 도파민과 미디어로 도피했던 삶의 회개 (회피의 필터)“내 안의 공허함과 학업의 스트레스, 관계의 아픔을 마주하기 싫어서 게임, 유튜브 쇼츠, 인스타 릴스, 자극적인 미디어 속으로 도망쳤던 나의 연약함을 고백합니다. 현실의 비참함을 잊으려고 뇌를 마비시키는 도파민이라는 필터 뒤에 숨어, 정작 하나님을 찾지 않았던 나의 영적 게으름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낭비했던 시간들을 돌이켜, 이제는 내 영혼의 공허함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만 꽉 채우는 밤이 되게 하옵소서. 자극적인 세상의 기쁨이 아니라, 성령이 주시는 진짜 평안을 맛보게 하옵소서.”
#3 예수 나의 치료자
10. 비교의식과 열등감 치유“남들의 화려한 ‘하이라이트’와 나의 초라한 ‘원본’을 비교하며 나를 비참하게 여겼던 시선을 치유하여 주시옵소서. 나보다 공부 잘하는 친구, 나보다 외모가 뛰어난 친구, 나보다 잘사는 친구를 보며 열등감에 사로잡혀 나의 존재 가치를 잃어버렸던 시간들을 주님께 맡깁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가장 아름다운 걸작품으로 만드셨음을 믿습니다. 남과 비교하며 질투하는 마음을 거두어가 주시고, 하나님이 나에게만 주신 고유한 달란트와 계획을 기대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부어 주시옵소서.”
11. 하나님의 형상(Imago Dei)과 진짜 정체성 회복 (로마서 8:2)“세상의 그 어떤 조건과 상관없이, 나는 하나님의 가장 사랑받는 자녀라는 가슴 벅찬 정체성이 회복되게 하옵소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완전히 해방하였음을 내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믿고 선포하게 하옵소서. 세상이 나를 향해 ‘너는 루저다, 부족하다’라고 조롱할지라도,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이 나를 존귀하다고 말씀하심을 붙잡게 하옵소서. 망가진 하나님의 형상이 내 안에서 온전히 회복되어, 내가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인지 깨닫는 밤이 되게 하옵소서.”
#4 나는 일어섭니다
12. 우리가 고백한 찬양의 가사처럼 더 이상 내 삶에 있는 아픔들이 아픔이 되지 않게, 이제 눈을 들어서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일어서겠습니다. 나의 힘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손 붙잡고 일어서겠습니다. 그렇게 결단하며 기도합시다
#5 결국
마무리 기도
#6 주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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