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2장 17-24절

새벽설교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5 views
Notes
Transcript

제목: 말씀을 맡은자 답게

본문: 로마서 2장 17-24절

찬송: 204장 주의 말씀 듣고서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유대인들을 직접 비판한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언약과 법을 독점했다는 사실에 눈이 멀어 엄청난 영적 오만에 취해 있었다. 그러나 바울이 보았을 때 유대인들은 스스로를 눈먼 자의 인도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며, 어리석은 자의 교사이자 어린아이의 선생이었다. 바울은 이들이 자랑하는 신분적 특권, 법의 소유, 하나님에 대한 과시, 그리고 선한 것을 분간하는 지식의 탁월함을 하나씩 들추어내며 그 기만성을 매섭게 꼬집는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는 그 안일한 확신은 정작 자신들의 추악한 실상을 발견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눈가리개였다. 바울의 비판은 집요하다. 말씀을 깊이 소유하고 남을 가르치는 위치에 서 있다는 사실이 결코 그 사람의 신앙생활의 거룩함을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고, 도리어 그 축적된 영적 지식, 즉 말씀을 듣고 아는 것이 삶의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을 때, 그것은 마지막 날에 자신을 파멸로 몰고 갈 준엄한 고발장으로 변한다는 것을 경고한다.
이러한 신행불일치의 영적 위선에 대하여 20세기 최고의 설교가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는 자신의 로마서 강해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대하는 악한 태도를 두고 다음과 같이 경고한 바가 있다. 본문 21절 전반부에서 바울이 던지는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라는 질문과 완벽히 일치한다.
만약 우리가 매일 성경을 펼치면서도 그 진리의 칼날을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조금도 들이대지 않고 있다면, 그 영혼은 심각한 영적 파탄에 처해 있는 상태이다. 단지 성경 구절을 얼마나 잘 아는지를 남들과 논쟁하여 이기고, 자신의 유식함을 자랑하기 위해서만 말씀을 접하는 행위는 우리에게 은혜가 되지 않는다. 성경을 마주할 때마다 가르치고 말씀하는 대상이 다른 이가 아닌 나 자신이라는 정직한 두려움을 가지고 자신의 영적 부패함을 살피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성경에 관한 지식이 쌓이면 쌓일수록 그것이 오히려 우리의 영혼은 교만해지고 결국 지옥에 가까워질 뿐이다. 자신을 향한 뼈아픈 성찰이 배제된 메마른 신앙은 어느 누구에게도 유익이 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러한 신앙이 우리를 겉으로는 믿음이 있는 것처럼 자랑하게 만든다. 그 사람의 모습을 보게 되면 겉보기에 도덕적으로 완벽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이 가진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내면의 근본적인 죄악과 탐욕의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하고 단지 안 보이도록 숨겨줄 뿐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21b-22절에 이르는 바울의 날카로운 지적에서 잘 드러난다. 바울은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면서 도둑질하고, 간음하지 말라 하면서 간음하며, 우상을 가증히 여기면서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는 유대인들의 실상을 폭로한다.
겉으로는 깨끗해 보이는 도덕주의는 사람들에게 도덕적 기준을 외치게 만들지만, 정작 그 말을 외치는 자의 보이지 않는 마음 깊은 구석에서는 온갖 시기와 음란과 사리사욕의 우상이 버젓이 작동하는 모순을 통제하지 못한다. 마음의 진정한 회심이 없는 도덕적 행위의 집착은 인간 스스로를 속이는 종교적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도덕적 우월성은 복음의 심판대 앞에서 자신을 방어하는 견고한 요새가 되어, 참된 구원의 은혜를 경험할 수 없도록 심령을 황폐하게 만든다. 결국 도덕주의 속에 갇힌 인생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우상에 절하는 것과 다름없이, 자신의 종교적 열심을 구원자로 삼아 숭배하는 또 다른 영적 간음을 저지르는 셈이다. 이처럼 마음속의 교묘한 자기 자랑을 포장하기 위하여 경건을 수단으로 삼는 행위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하는 가장 가증한 우상숭배가 된다.
이처럼 말씀의 지식을 자랑하면서도 뒤에서는 은밀한 마음의 죄를 그대로 방치한 채 위선적인 이중생활을 지속하게 될 때,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이 이방인들 사이에서 짓밟히고 모독을 당하게 되는 비참한 파멸이 일어난다. 바울은 23-24절에서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라고 선언하며 성경의 지식을 가졌다는 자들의 이중성을 고발한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세상 속에서 소금과 빛의 생명력을 상실하고 선한 영향력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된 뼈아픈 현실의 근본 원인이 바로 이 지점에 맞닿아 있다. 교회가 사회적으로 비난을 듣는 까닭은 어떤 특별한 정치적 발언의 공방이나 외부적인 정책의 흠결 때문이 아니다. 말씀의 기준은 누구보다 완벽히 알고 있으면서도 실제 그 기준대로 단 하나도 삶의 현장에서 순종해내지 못했던 우리의 철저한 신행불일치가 세상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비웃게 만든 주범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타인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용도로만 성경 구절을 휘두르고 자신을 그럴듯하게 숨기는 일체의 위선적인 종교적 행태를 완전히 철폐해야 마땅하다. 말씀을 소유한 자의 진정한 가치는 단순히 성경 지식의 박식함에 있는 것이 결코 아니며, 기록된 한 줄의 말씀 앞에서도 두려움으로 전율하며 그것을 삶의 열매로 증명해내는 무거운 책임감에 있다. 마음에는 변화를 일으키지 못한 채 오직 머리에만 가득 찬 죽은 성경 지식을 십자가의 제단 앞에 즉각 쳐서 복종시키고, 마음 중심의 회개와 삶의 열매가 단호히 일치하는 참된 행함의 자리로 한걸음 걸어가야 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곪아 터진 위선과 모순을 정직히 자복하고, 말씀을 맡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삶의 현장에서 행함과 진실함으로 주님의 영광스러운 얼굴을 거룩하게 증명하는 진짜 성도들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