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에 응답을 받았을 때

개인기도의 문을 열 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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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기도의 문을 열 때2 (20220703 주일오전)
사무엘상 1:24–28 “젖을 뗀 후에 그를 데리고 올라갈새 수소 세 마리와 밀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지고 실로 여호와의 집에 나아갔는데 아이가 어리더라 그들이 수소를 잡고 아이를 데리고 엘리에게 가서 한나가 이르되 내 주여 당신의 사심으로 맹세하나이다 나는 여기서 내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라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녹취자: 조복령

I. 본문해설

인생에는 항상 삶의 상황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삶의 상황이라는 것은 항상 문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문제가 없으면 상황이라는 것이 있을 수도 없고,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숙고를 요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사람은 저마다 문제없는 삶을 살고 싶어 하고, 평안하고 풍족한 인생을 즐기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실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삶은 언제나 문제투성이입니다. 이 문제가 인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 문제는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평화롭고 모든 것이 아쉬울 것이 없음 없이 지내던 날들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없습니다. 인생에 대한 깨달음, 인생에 대한 묘미, 그리고 삶의 환희와 기쁨,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 이 모든 것은 문제와 씨름하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보람입니다. 그래서 명랑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문제가 없기를 희망하는 그런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그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고 실제로 문제가 사라지고 나면 삶의 명랑함도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흐르는 물을 생각해 보십시오. 계곡에 흐르는 아름다운 물소리를 들어보십시오. 그 물들은 계곡을 휘돌아 흘러가고 흘러내리는 아름다운 물소리는 부딪히는 나뭇잎들을 사각거리는 소리와 하늘을 나는 새들의 소리와 어우러져 숲 속에 아니면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그만의 정서를 우리에게 안겨줍니다. 만약에 계곡의 소리 소리 없이 물이 흐른다면 얼마나 무서운 계곡이 되겠습니까? 흐르는 수많은 물은 왜 그렇게 소리를 내는 것이 흐르는 물은 크고 작은 바위에 부딪히며 여러 가지 소리를 만들어 내고, 어떻게 보면 그것은 무리의 바위에 부딪히는 비명 소리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아래에 고여 있는 깊은 깊고 넓은 물에는 파랗게 멍이 들어 있습니다. 조크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흐르는 물이 부딪히는 바위가 있기 때문에 소리를 내고, 그 소리 때문에 계곡 사이를 흐르는 물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처럼 우리 인생의 묘미도 그러 그러한 것입니다. 문제가 없는 인생을 꿈꾸지 마십시오. 문제가 사라지고 나면 인간은 지루해질 것이고, 지루함은 인간에게 허물을 가져올 것이고, 허무의 끝은 낙심이며 절망이고 모임이 입니다. 결국 우리가 깨달았던 인생의 의미는 알고 보면 문제와 씨름하면서 찾아낸 것이니, 문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기도 한 것입니다.
문제는 문제 그 자체가 아니라 문제를 다룰 수 있는 기술과 그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문제를 풀 수 있는 기술과 문제를 끝까지 붙들고 씨름하며 풀어낼 수 있는 힘이 우리 안에 있을 때 우리는 명랑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인생을 오히려 아름답게 하는 아주 아름다운 장식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한나는 무슨 엄청난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냥 문제가 있어서 하나님 앞에 나갔습니다. 역사를 움직이는 어떤 위대한 기도의 제목도 아니었고, 당시 평범한 아낙네 모두가 한 번쯤은 해 봄직한 사내 아이 하나를 점지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지극히 아주 평범한 기도였습니다. 한나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아이를 가져야 되겠다느니, 혹은 이 아이를 길러서 이스라엘 역사의 물줄기를 돌려놔야겠다느니 하는 그 따위의 양심은 없었습니다. 그냥 아들이 없는 것이 너무 서러웠고, 그 서러움 때문에 부인 나가 미웠고, 우유부단해 보이는 남편의 사랑도 그녀의 마음에 위로가 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그 여자가 하나님 앞에 아들을 구한 이유 전부였습니다.
참석자 2 03:38
오랜 세월 동안 그는 방황하고 고민하고 괴로워하였습니다. 그리고 괴로움은 마음에 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때가 왔습니다. 그녀는 여호와의 집에 올라갔습니다. 왜 그런지 그날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지극히 초라한 존재라는 사실이 깨달아졌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사랑이 많은 남편을 의지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의 순전한 사랑도 그녀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군인 나에게 당한 설움과 원통함이 하늘을 찔러 마음으로 복수를 꿈꾸는 날도 있었고, 눈물로 베갯잇을 적시며 잠드는 날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도 그녀에게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가운데 이 여자는 그 순간 마음을 하나님 앞에 쏟아 넣게 되었습니다. 통곡과 눈물로 하나님 앞에 자신의 마음을 모두 내려놓으며 아버지께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참석자 2 04:37
문제의 상자는 오래 붙어 있었지만 바로 그 옆에 누워 있는 열쇠는 방금 전에 발견하였습니다. 결국 그 열쇠로 한나는 기도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제대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마음을 물처럼 쏟아내었고, 하나님이 기다렸다는 듯이 한나의 마음을 받으시고 그녀의 심성을 고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 놓을 위대한 인물을 양육하도록 맡길 때 기꺼이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엄마로 다시 태어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녀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바뀐 것은 없었습니다. 집에 가도 여전히 아들은 없었고, 기세등등한 뿐인 나의 염장을 지르는 악행은 계속되었을 것입니다. 착하기는 하지만 약간은 우유부단해 보였던 엘가나의 태도에도 무슨 큰 변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더욱 놀라운 변화가 그녀의 마음속에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환경에 휘둘리지 않는 놀라운 평강이었습니다. 더욱이 제사장까지도 이 여자를 축복하였습니다.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내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삼상 1:17) 하니 축복의 기도를 받고 돌아갔고, 그 후 한나의 마음은 확정되고 확정되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이제는 부질없는 근심과 애태움, 그리고 마음의 고통으로 밤을 새우며 자신의 인생을 하얗게 태우는 미친 짓은 안 하기로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삶에 임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굶주림을 피하고 그는 가서 즐겁게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에 빛이 없는 나날을 이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참석자 3 06:15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 기도 응답을 받고자 안달을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기도가 자기 원하는 대로 응답되기를 구하기 전에 먼저 기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마음의 평화입니다. 저는 지지난주에도 이 사실을 아주 뚜렷하게 경험했습니다. 올란도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와야 되는데 1시간 연착을 하더니 잠시 후에는 뜻밖에 일어난 태풍 때문에 비행기가 2시간 38분 늦게 도착한다는 두 번째 공지가 떴습니다.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아무리 계산을 해도 그 비행기를 타고 뉴욕에 내려서는 도저히 한국 가는 비행기를 탑승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고 불안한 마음이 밀려왔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교회의 일정과 우도 같지 못하게 된 나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그때 즉시 하나님이 지혜를 주셨습니다. 저는 공항 한 구석에서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한국을 가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내 마음을 평안하게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손에 있으니 제가 한 주쯤 교회에 못 돌아온들 무슨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날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새가족 환영회가 취소되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는 했겠지만, 제가 정상적으로 돌아왔어도 만약 토요일 날 매우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으면 어차피 연기될 행사가 아니 없겠습니까? 무슨 큰일이 있겠습니까?
이렇게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했더니 하나님 이 놀라운 평화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정말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평화였습니다. 저는 모든 일정을 주님의 손에 맡겼습니다. 여기 머물러 있어도 좋고 가면 더 좋고 가기를 원했기에 우리 부부는 모든 사람이 토요일 날 한국에 도착해야 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기도를 하긴 했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은 주님께 맡겨졌고 제 마음에 평화가 넘쳤습니다. 찬송이 나왔습니다. 염려할 이유가 없는 것이고, 그것은 우리의 인생 전체에서 일어난 아주 작은 일에 불과했습니다. 마음에 평화를 주시고 나의 손을 주님의 손에 맡겼습니다. 주님이 어린아이 같은 내 손을 붙들고 계심을 확신할 수 있었고, 어디로 이끌든지 나를 가장 좋은 곳으로 데려가실 것이라는 확신이 내 마음을 지배하는 순간 모든 염려는 내 마음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을 즐기기로 하였던 것입니다.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고 말입니다. 이게 인생을 긍정적으로 사는 비결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한 것이 매우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매우 쉽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느 것이 정답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아주 쉽기도 하고 매우 어렵기도 합니다. 이런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아름다운 풍광이 눈앞에 놓여 있고, 그 풍광 앞에 넓은 호수가 있습니다. 날씨는 청명하고 바라는 점 없습니다. 그때 호숫가에 있는 아름다운 풍경은 호수라는 도화지 위에 그려진 데칼코마니가 됩니다. 굳이 풍경을 보지 않아도 호수 위를 보면 그림처럼 뚜렷하게 풍광이 나타나고 나무 한 그루까지, 그리고 나뭇가지에 흔들리는 잎사귀에 하늘 저 버림까지 그대로 물 위에 칩니다. 그러나 후 바람이 붑니다. 잔물결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굳이 폭풍이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가벼운 바람만 불면 물결은 춤을 추게 되고 아무 풍광도 일궈낼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탐욕과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마음의 평화가 깨집니다. 마음의 평화가 깨지고 나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한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아니 오히려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고 있을 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은 매우 쉬운 것입니다. 탐욕과 두려움에 가득 찬 사람이 오래도록 기도하여 도달한 결론보다는 마음의 평강을 누리고 하나님과 평화를 스스로 지키고 있는 한 사람의 마음에 떠오른 판단이 오히려 더 정확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한나는 하나님께로부터 평강을 받았습니다.

II. 기도에 응답받았을 때

결국 그녀가 결국 그녀가 기도의 응답을 받았던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은 한나는 삶의 상황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바뀌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하나님께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할 때에는 보지 못했던 전혀 다른 시각으로 자신의 인생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제 긍정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마음에 근심하는 얼굴에 염려의 빛이 사라졌습니다. 결국 기쁨의 빛이 얼굴에 화색으로 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분의 응답을 믿으며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흐르는지 모르나 엘가나는 한나와 동참하였고, 하나님께서 한나를 생각하심으로 아이를 잉태하게 하셨으니 아들이었습니다. 때가 되었고 아주 순적하게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 이름을 사무엘이라 불렀으니 이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들으신다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니 사무엘을 볼 때마다 이 하나의 마음에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건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집에 올라가 눈물과 통곡으로 자신의 마음을 쏟을 때, 하나님이 자기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그 생각이 없이는 사무엘을 볼 수 없었기에 그 아름다움을 아이의 이름을 사무엘이라고 지었던 것입니다.
정말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사건이었겠습니까? 아마 이 한나에게는 꿈꾸는 것 같은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한나에게 이 사건을 꼬집어도 또 꼬집어도 깨지 않는 꿈과 같은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이제 단순히 그녀는 그의 집 안에서 자기의 집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을 괴롭히던 모든 염려와 근심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부인나는 자신의 고민거리가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적자가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이 놀라운 일을 경험했습니다. 만약에 여기서 끝났더라면 그냥 우리 가운데 흔히 있을 수 있는 간증거리의 하나였을 것입니다. 한나의 믿음은 기도의 응답을 받은 데에만 입증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도에 응답받은 후에 한나가 하나님 앞에 한 행동 속에서 우리는 과연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살야 하는가 하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참석자 5 11:54

A. 서원을 갚음

제일 먼저 그녀는 서원을 갚았습니다. 그녀는 서러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집에 올라가 마음의 중심을 쏟아 놓았습니다. 그녀의 서러움은 그날 시작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랫동안 계속되었던 설움이었고 눈물이었고 고통이었습니다. 수많은 밤들을 뜬 눈으로 세우고 베갯잇을 눈물로 적시며 잠들었습니다. 그리고 엘가나의 따뜻한 포옹에도 마음이 차가운 겨울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왜 그런지 이때 하나님 앞에 자신의 마음을 쏟아놓을 결단을 하게 되었으니, 하나님의 은혜는 이 여자의 자유 의지와 신비하게 조화를 이루며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 정하신 그 일들을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중심을 쏟아 놓으며 그는 물처럼 자신의 마음을 토하며 하나님 앞에 통곡과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모든 소원과 인생의 문제를 처음으로 하나님 앞에 모두 아뢰게 되었던 것입니다.
참석자 5 12:48
문제의 상자 바로 옆에 해결의 열쇠가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아 놓기 전까지는 문제의 상자는 그녀 앞에 있었지만, 그 상자를 열 수 있는 열쇠는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아 놓을 때 바로 옆에 있는 기도라는 이 열쇠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녀는 하나님 앞에 중심을 쏟아 놓으며 자신을 녹여서 하나님 앞에 통곡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괴로운 마음을 신앙으로 승화시키고 아버지 앞에 호소하는 마음으로 절대 의존의 감정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것도 모자랐는지 그 여자는 그때 하나님 앞에 서원을 하였습니다.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 1:11) 서원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에서 소위 나실인의 서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실인이라는 것은 구별된 사람이라는 뜻이고, 적극적으로 말하면 하나님께만 바쳐진 사람이다라는 뜻입니다. 이 나실인의 규례가 민수기 6장 2절에서 5절 이하에 나옵니다. 하나님께만 바쳐진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바로 이 나실인의 서원에는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임시적인 나실인과 영구적인 나실인이었습니다. 임시적인 나실인은 생후 30일 이후에 정한 기간 동안 하나님 앞에 아이를 바치는 한정적인 나실인의 헌신 기도였습니다. 그것을 서원한 후에는 그것을 그대로 지켜야 했으니 이 나실인의 서원은 대개 부모를 통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두 번째, 영구적 나실인은 아이를 여호와께 바치되 한정된 시간에만 바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일생을 모두 하나님께 바치고, 부모는 그 자식과의 인간적인 인연을 끊는 것입니다.
참석자 1 14:32
사실상 이 나실인에게는 세 가지 규제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첫째는 포도주와 포도에서 난 어떤 소산도 먹을 수가 없습니다. 왜 이런 기회를 주셨는 왠지 정확하지 않지만, 아마도 생각하기에는 음료처럼 여겨졌던 포도주였지만, 나시리는 항상 맑은 이성으로 살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이렇게 저는 생각 해석을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의 평생의 머리를 자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머리털을 미는 삭도를 결코 머리에 대지 말아야 할 것이 나시리린이 지켜야 할 두 번째 규례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가 시체를 가까이할 수 없으니 나시린은 부모가 죽어도 장래에 참여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 서원은 하나님 앞에 드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한나의 기도를 용납해 주셨고, 한나는 이 아이를 하나 앞에 데리고 와서 나시린의 소원대로 바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참석자 1 15:26
이 이야기가 너무나 당연하고 간단해 보이는 것은 우리 자식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아이가 없어서 소름 이 되고 한이 맺혔던 이 여자에게 아름다운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온 집안의 시선은 이제 부인 나의 집 아이들이 아니라 한나가 낳은 사무엘에게 쏠렸고, 그리고 그 그리고 집 안에서는 경사가 났습니다.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이 아들과 함께 마치 연애하는 것처럼 꿈꾸는 시간을 들을 보내었을 것입니다. 어린 자식을 품에 안고 섶을 헤쳐 젖을 물리고 그 아이의 얼굴과 눈을 마주 마주 맞추며 아이는 엄마를 알아가고, 엄마는 아이를 알아갔습니다. 아이가 이제 뒤집기 시작 하고, 아이가 엉금엉금 기기 시작하고, 아이가 벽을 붙들고 일어서기 시작합니다. 서툰 말로 엄마 아빠를 부르기 시작하고, 한 걸음 한 걸음 뒤뚱뒤뚱 걸음을 떼어 놓기도 하고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참석자 1 16:32
평생에 한이 맺힌 한나에게 이 아이는 인생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를 여호와께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에게 그렇게 쉬운 일이었겠습니까? 한나가 아이를 낳고 아마 첫 번째 실로에 올라가야 하는 그때는 아이가 어렸던 것 같습니다. 엘가나 홀로 올라가서 재물을 드리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한나는 그다음에 실로에 올라갈 때 이 아이를 데리고 올라갔습니다. 이제 육신의 아들로서는 마지막 보는 때였습니다. 이 아이를 거기에 두고 오면 내일이고 모레고 급필고 수시로 찾아가서 안고 쓰다듬고 끌어안고 잘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 이제는 인간적으로는 이 아이와 절연해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때는 군대가 36개월이었습니다. 그리고 누가 어디다 데려다 주는 것 그런 거 없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자기가 알아서 세수하고 그 전날 깎은 머리로 군대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요즘은 애들 입대할 때가 되면 온 가족이 논산까지 내려갑니다. 내려가는 동안에도 침을 합니다. 그러니까 맛있는 걸 사서 먹이고 입대할 때가 되면 마치 형장에 끌려가는 사람처럼 아이를 끌어안고 엄마가 통곡을 하고 웁니다. 올라올 때 아빠는 눈물을 훔치면서 운전을 하고, 엄마는 손수건을 꺼내어 펑펑 울고, 누나와 동생들은 그렇게 슬프지는 않지만 엄마 아빠 눈치 보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20개월입니다. 그리고 한 달만 있으면 휴가 나옵니다.
참석자 2 18:14
그런데 이 한나는 그 아이를 여호와의 집에 갖다 두고 20개월이 되면 만나는 사이가 아니라 이제 영원히 인간적인 인연은 끊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자는 합니다. 왜냐하면 예전에 한나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욕심으로 살던 여자가 아니었고, 주님을 만나고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여자가 말합니다.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제사에게 고백을 합니다. 결국 아이에 대한 집착을 이제는 버렸고, 자신의 소원을 따라 좋으신 하나님께 이 아이를 기쁘게 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 여자가 전에는 하나님 바깥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 안에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안에 한나 있고 한나 마음 안에 하나님이 계셨더니, 이 아이를 하나님께 바쳐도 자신이 하나님 안에 있으므로 이 아이를 잃어버리지 않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기쁨이 자신의 기쁨이었기에 기꺼이 인간 보호자의 인연을 끊은 것 같은 모진 이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신앙으로 승화시키며 아가페의 사랑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무엘을 통해서 이스라엘 역사의 위대한 물줄기를 바꿔 놓을 계획이셨습니다. 예전에 한나로는 그런 사람을 교육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하나님이 허락을 안 하셨습니다. 그리고 한나가 새 사람이 되어 과연 그 많은 인물을 양육할 수 있는 그릇을 가진 어머니로 변화 받을 때까지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변화시킨 후에 하나님은 사무엘을 그녀에게 맡기셔서 과연 이스라엘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 놓은 위대한 인물이 되게끔 만들어 놓으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무엇인지 압니까?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무엇인지 아십니까? 기도하는데 응답은 받는데, 기도할 때 들어가는 마음과 응답받은 후에 나오는 마음이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할 요량으로 기도는 합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 앞에 원하는 것을 얻어낸 후에는 마음이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급한 때는 하나님 앞에 수없이 약속하고 다짐을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노라고 이 기도에만 응답해 주시면 주님께 순종하겠노라고 다짐을 해놓고는 막상 응답을 주시면 그는 딴 길로 갑니다. 이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상황을 바꾸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바꾸기 위해 기도하도록 만드십니다. 그래서 문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문제는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도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기도한 후에 소원을 갚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참석자 3 21:05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마지막으로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으며 여러분의 인생을 다하여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한 기도의 제목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리고 그 기도의 제목을 응답해 주실 때 여러분 하나님 앞에 무엇을 약속했습니까? 주님의 뜻대로 살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다짐하지 않았습니까? 다시는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일이 없도록 주님의 뜻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며 살겠다고 맹세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기도에 응답을 받은 후 여러분의 삶을 진실했습니까? 그리고 주님의 뜻대로 살았습니까? 그 소원을 기꺼이 갚았습니까? 인간적으로 절연하는 아픔이 있었지만 기꺼이 하나님께 선언한 대로 아이를 하나님의 집에 맡기고 돌아오는 한 날을 생각해 보 시 하나님께 올라갈 때는 사무엘의 손을 잡고 올라갔습니다. 내려올 때는 주님이 그녀의 손을 잡아 주셔서 집까지 내려왔습니다.
참석자 3 21:50
신실하신 하나님 실수가 없으신
좋으신 나의 주 신실하신 하나님
실수가 없으신 좋으신 나의 주
저는 요즘 자주 제 인생의 뒤를 돌아봅니다. 돌아보며 눈물밖에 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신실하신 하나님이 내 손을 잡고 이끌어 오신 생이었기 때문입니다. 잘못한 것은 덮어주시고, 잘한 것은 칭찬해 주시고, 위기에 놓였을 때 보호해 주시고, 아무 희망이 없는 깊은 웅덩이에서 울고 있을 때 주님은 밧줄을 내려서 나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힘들 때 업어 걸으셨고, 벼랑 끝에서 비명을 지를 때는 기적의 날개를 달아주셨습니다. 어찌 이것이 어찌 저뿐이겠습니까? 여러분 모두 탐욕과 두려움의 감정을 털어내버리고 고요한 마음으로 여러분의 인생을 돌아보며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반석이신 하나님, 그리고 신시하신 하나님이 여러분을 변함없이 인도해 오셨기 때문에 여러분은 여기에 지금 서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여러분 인생의 매 발걸음마다 곁에 계셨고 기도할 때마다 언제나 거기 계셔서 응답하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키워왔습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무언가 자 내 삶에 대해 욕구 불만을 느끼는 것이 있으니까 뭔가 부족한 것들이 있으니까 나는 희망이 없어 나는 안 돼. 좌절만 하게 하는 해도 해도 안 되는 것들이 있으니까 그걸 보지 마십시오. 그러면 숨 막혀서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문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문제 속에서 인생이 우리 마음대로 흘러갈 때보다는 우리 뜻대로 되지 않을 적이 너무나 많았고, 사실은 그것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믿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도라는 것을 하게 되었고, 그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오히려 여러분은 지난날을 돌아보면서 하나님 앞에 응답받았던 때를 회고해 보십시오. 그때 어떻게 위기 속에서 하나님을 선택했어? 그리고 여러분은 착하게도 원망과 좌절을 모두 버리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마음을 쏟아 놓았던 그때를 추억해 보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마음을 모두 쏟아 놓을 때 통곡과 눈물로 기도를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이 어떻게 찾아오셔서 여러분의 마음을 어루만지시고 여러분을 불쌍히 여기셨는지를 기억해 보십시오. 그러면 지금도 착한 마음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그렇게 놀라운 응답을 받고 새로운 길을 찾았을 때 주님 앞에 무엇을 약속하고 무엇을 서원했는지를 기억할 것입니다.
다시 그 서원의 자리로 돌아가십시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십시오. 하나님은 죽어도 여러분에게 잘못한 것이 없으니, 여러분에게 일어난 모든 좋은 일은 하나님 때문에 온 것이고, 나쁜 일은 여러분 자신이 만든 것들입니다. 그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찬송하십시오. 그리고 큰 응답 속에서 기쁨을 느꼈던 때를 회상하십시오. 거기서 하나님 앞에 주님 뜻대로 살기로 한 것을 지금 지키십시오.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다짐한 것을 지키십시오. 세상을 사랑하는 대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대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사랑하며 살겠노라고 다짐했던 그때의 그 결심으로 돌아가십시오. 서원을 갚으십시오. 거기서 하나님, 당신은 살아계심을 여러분에게 지금도 보이실 것입니다.
참석자 4 24:38

B. 주께 경배함

마지막 두 번째는 주께 경배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삼상 1:28)지금 경배할 만한 때입니까? 이 여자의 마음과 마음에 과연 경배할 정신이 있겠습니까? 이제 갓 태어났고 정이 들 때로 들어서 엄마의 품을 떠 떨어지기에는 너무나 어린 아들이었습니다. 이제 두고 가면 도대체 누가 이 아이를 돌볼까 사랑이 깊으면 염려도 깊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사랑하는 아들을 거기에 떼어놓고 돌아오는 그 순간, 그녀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경배로 가득 찼습니다. 그리고 높으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온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경배했으니, 신뢰에 두고 온 아들이 주는 슬픔을 능가하는 하늘의 기쁨이 한나의 마음을 가득 채웠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누리는 특권일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참석자 4 25:43
하나님 안에 있는 것들은 결코 잃어버릴 수도 없고, 하나님 밖에 있는 것들은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 잃어버리는 것이 오히려 기쁨이 되기에 세상에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그렇게까지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첫 아이를 낳고 아내가 아이를 얼마나 좋아하고 사랑하는지를 사랑하는 지, 아이를 집에 잠깐 저한테 맡기고 목욕을 하러 가면 목욕을 끝내고 오는 동안에 애가 너무 보고 싶어서 목욕을 제대로 못하고 왔습니다. 그게 엄마 마음입니다. 그게 어린 아이를 향한 엄마의 마음입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이 한나는 어땠겠습니까? 기도의 위협으로 얹은 그 아이를 인간적으로 절연하고 내려와 와야 되는 그 순간에 여호와 하나님을 온 마음으로 경배했던 이 여자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이것은 한 나의 신앙이 변화되는 것과 그가 하나님을 향한 얼마나 순수한 마음으로 가지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들이 없는 문제는 이 여자의 가슴을 후벼팠지만 그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여호와 앞에서 마음 쏟아놓으며 통곡과 눈물로 기도를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거기서 높으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의 영혼을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일평생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살 수 있는 담대한 여인으로 다시 태어났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있는 그 문제는 여러분을 고하게 하려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배우게 하시기 위해서 문제의 옆에 있는 기도의 열쇠를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법을 터 위하여 여러분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오늘 용기를 가지십시오. 나의 인생의 문제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문제의 문제를 문제의 답 지 못하게 다루는 것이 내 인생의 문제다. 나는 문제를 다루는 기술과 그 문제를 극복하는 힘을 우리 하나님께로부터 받기를 원하노라. 아멘 그렇게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참석자 4 28:01
한나는 하나밖에 없는 이 아이를 하나님 앞에 바치는 것으로 충분히 행복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들이 태어나기 전에 그녀의 마음에 하나님이 없었는데, 이제 이 아이가 태어나면서 하나님 이 그녀 마음 안에 있었고, 그녀는 하나님의 마음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여자가 간과하지 않았는데도 여호와께서는 가엾은 여인에게 세 아들과 두 딸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 아무도 나실인으로 바치지 아니하고 늘 엄마 옆에 있으며 위로를 받고 위로를 하며 살게끔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자상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엄마, 아버지와 같은 하나님이 아니라 아주 따뜻하고 자상한 어머니 같은 손길을 만나게 됩니다. 믿음으로 사는 여자 였지만 그 여자의 연약함을 보시고 사랑하는 새 아들과 두 딸을 통해 위로를 얻으며 일평생 하나님을 이 받으신 사모를 위하여 믿음으로 기도하며 살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후 그녀는 주님을 높이 경배했습니다.
참석자 5 29:09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도움이 필요해서 우리에게 올 때는 온갖 아부와 아양을 다 떨고 원하는 것을 받아가고 난 후에는 언제 보았냐는 듯이 안면을 몰수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배신감을 느낍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응답을 받은 후 우리의 모습은 아니었는지 반성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도의 응답을 주시는 이유는 주님을 경배하며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어떤 위기에서 주님께 구원을 얻었든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송하고 경배하며 살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남들에게 없는 특별한 응답의 경험을 주신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니 여러분 여러분의 문제를 문제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문제 때문에 명랑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믿음이 없기 때문에 명랑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이고,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를 지배하는 대신 문제의 지배를 받는 노예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참석자 5 30:08
주체성을 잃어버리고 자유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그 삶을 어떻게 우리가 행복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여러분 인생의 문제를 위로 올려보지 마십시오. 그것들은 여러분만 못한 존재로 여기십시오. 그리고 아래로 내려 깔면서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믿음으로 그 문제를 밟고 일어서, 그리고 어떻게 이 문제가 내 인생에 흐르는 아름다운 물소리처럼 바뀌는 상황으로 변화될지를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따라 흘러가십시오. 그리고 유연하게 그것을 따라 여러분 인생의 갈 길을 걸어가십시오. 그것들은 극복하라고 있는 것이지 여러분을 굴복시키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무릎 꿇을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이외에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III. 적용과 결론

그러므로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는 언제나 있습니다. 문제가 우리 인생의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극복하라고 있는 것이고, 문제의 상자 옆에는 항상 그것을 열 수 있는 열쇠가 놓여 있습니다.
참석자 5 31:11
그것은 기도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그 열쇠를 찾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인생을 역전하는 기회로 삼으십시오. 삶의 명랑함을 잃어버리지 마십시오. 문제보다 더 큰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고, 문제보다 더 큰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면서 오늘의 삶을 긍정적으로 사랑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십시오. 그리고 실로에 올라갔던 한나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집을 찾으십시오. 그리고 마음을 서두십시오. 주님께만 모든 고민을 아뢰고, 그분께만 여러분의 문제를 토해 놓으며 그분께만 호소하십시오. 그분이 긍휼히 여겨주시도록 하나님 앞에 매달리십시오. 여러분은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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