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사람이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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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도행전 11장 19절~21절

도입 인사

인사: “우리는 사람에게 실망하여 절망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십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는다고 해서 노여워하지 마라. 왜냐하면 나도 내가 바라는 모습으로 자신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신학자 <토마스 아 켐피스> 여러분은 혹시 삶의 자리에서 이 질문을 깊이 던져보신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왜 나를 바로 ‘이곳’에 보내셨을까요?”
원치 않는 직장에 입사하게 되었을 때, 예상치 못한 대학에 진학했을 때, 혹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고난과 경제적 어려움, 관계의 어그러짐 때문에 삶이 흔들릴 때,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께 묻곤 합니다.
“하나님, 왜 하필 나입니까? 왜 나를 이런 힘든 환경에 내버려 두십니까?”
인간의 눈으로 보면 그것은 우연한, 즉 '어쩌다 밀려난 좌절과 억울한 흩어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선에서 그것은 '거룩한 파송'이었습니다.

흩어진 '보통의 크리스천들'

오늘 본문은 초대교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선교의 요충지인 '안디옥 교회의 탄생'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 본문의 시점은 스데반의 순교 이후,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에게 대대적인 핍박이 밀려왔던 시기입니다. 성도들은 핍박과 어려움으로 삶의 터전을 잃고 북쪽으로, 바다 건너로 흩어지게 됩니다. 그들은 핍박으로 두려움에 사로잡혀 도망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핍박이 심한 예루살렘에서는 할 수 없으니, 이제 베니게, 구브로, 그리고 당대 로마 제국 3대 도시 중 하나였던 안디옥까지 전파하러 가게 된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핍박으로 인해 살길을 찾아 떠난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복음을 전하기 위한 열정으로 떠났던 것입니다. 그렇게 흩어진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처음에는 오직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전했습니다(19절). 아직까지도 문화적 익숙함과 혈통적 한계의 벽을 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20절에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행 11:20)
유대인들에게만 전하던 사람들이 이제 헬라엔에게도, 즉 이방인에게도 예수를 전파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름도 없는 '구레네의 몇 사람'

성경은 이 위대한 일의 주인공들 이름을 밝히지 않습니다. 앞에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베드로나 고넬료처럼 하나님이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시고 이방인을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사건과 어떤 한 인물을 통해 보여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말씀한 구절로 보여주십니다. 이들은 어떤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사도들도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그저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라고만 기록합니다.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 어떤 지역의 사람일까요? '구레네'는 북아프리카 지역입니다. 이방지역이죠. 성경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 시몬이라는 사람이 구레네가 고향이기도 합니다. 또한 오순절 성령 강림의 현장에서도 구레네에서 온 유대인들이 있었으며, 스데반과 논쟁하던 회당 중에도 구레네 사람들의 회당이 있었습니다. 네. 그들은 모두 타국에서 태어나 자란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습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이란? 흩뿌려진 자들 이라는 뜻을 가진 디아스포라에 유대인이 붙어있습니다. 구약의 바벨론 포로기 이후 팔레스타인(가나안 땅)을 떠나 로마 제국 전역에 정착해 살던 유대인들을 말합니다. 이유는 포로기 시대가 있었고, 그 기간동안 로마제국에서 기반을 잡고 살아왔기 때문에 사회적 경제적으로 이동하기 어려워져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 않았던 사람들이었죠. 이들은 이중적 문화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사용했으며, 이방인 사회의 문화와 생각들 그리고 그들의 어려움을 깊이 이해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정통 팔레스타인 유대인들은 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좋지 않았습니다. 먼저는 정통 유대인들은 종교적 우월감으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믿음이 적고 이방 문화에 오염된 2등 유대인으로 여겼습니다. 두번째로는 문화적으로 얕잡아보았습니다. 이방문화는 하찮고 미련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 사회에 속하지 못하기 때문에 디아스포라 유대인 회당이 따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통 유대인들은 정기적으로 예루살렘에 예배를 드리며 성전세를 내고 섬기는 그들을 또한 마냥 미워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어찌되었든지 힘들 때 도움이 되는 동족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유대인으로 인정하지만 은근이 무시당하고 세속적이라는 비난을 받습니다. 그래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율법을 유별나게 잘 지키려고 애쓰는 경향도 있습니다.
이처럼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유대교 사회에서는 "세속적이다"라고 은근히 무시당하고, 이방 사회에서는 "유별나게 여호와를 믿는다"며 핍박받던, 중간에 끼인 고달픈 자들이었습니다.

은혜의 반전

그러나 하나님은 정통 유대인의 시선, 그 인간의 편견을 깨뜨리셨습니다!
예루살렘의 수제자 베드로조차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가기를 주저했습니다. 환상을 몇번이고 봤지만 여전히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본토에서 무시당하던 이 이름 없는 구브로와 구레네 출신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주저함 없이 안디옥의 헬라인들(이방인)들에게 다가가 주 예수를 선포하며 섬겼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담대하게 이방인들에게 전할 수 있었을까요? 예루살렘에서 정통 유대인으로서 살다가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었습니다. 은혜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이제 흩어진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되었습니다. 그 모습으로 구브로와 구레네에 살고 있었던 이제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들에게 다가갔습니다. 성령이 그들의 마음을 만지셔서 자신들을 찾아온 본토 유대인들, 이제는 그들도 흩어진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 다가왔습니다. 판단하지 않고 차별하지 않으며, 환대하고 받아주고 서로를 위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본토 유대인들에게 무시당하고 현지 사회에서는 환영받지 못했던 방황하던 그들이 예수의 이름을 알게 되고 믿게 됩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었을 때, 자신들의 삶이 단순한 '피난'이나 ‘상황’에 어려움으로 배제된 그런 하나님의 자녀로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보내신 이유가 있다!"라는 소명의식으로 받아들였던 것이죠.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적극적으로 섬기지 못했던 삶을 회개하고, 그들은 안디옥으로 가서 “하나님이 나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해서 준비된 자다” 라는 것을 깨닫고 열정을 다해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게 몇 사람의 순종을 통해 역사상 최초로 이방인과 유대인이 한 가족이 된 안디옥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은 현대의 어떤 성도들인가?

이 '구레네 출신 몇 사람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입니다.
저는 청년 여러분들을 ‘보통의 크리스천’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우리는 어떤 잘난 사람들이 아닙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지치고, 취업과 직장 생활 속에서 실패하고 넘어지는 자들입니다.
월세 걱정, 통장 잔고 걱정, 경제적인 어려움에 한숨짓는 사람들입니다.
직장 상사와의 갈등, 연인이나 친구와의 관계에서 오해받고 상처받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약한 자들입니다.
또한 영적 거인이 아닙니다. 매번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죄로 인해 무너지고 힘들어합니다. 무언가 제대로 하나도 하는 것이 없는 것만 같습니다. 반복되는 죄와 허물로 인해 우리의 마음을 점점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만 같습니다.
아 하나님은 나를 전혀 신경쓰지 않는 그저 그런 자녀로 내버려두시는건가?
그렇게 우리는 내 힘으로 무언가 막 해보려고 애쓰다가도 다시 똑같은 현실로 되돌아가는 어려움에 마주합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던 그 구레네 몇사람들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배제된 것과 같은 현실에서 그들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주님이 성령으로 임하셔서 너와 함께 하겠다 하시니 그들은 힘이 났습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의 관계가 되었음을 실감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니 이전과는 다른 하나님의 친밀한 사랑 속에 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에 디아스포라 유대인 몇 사람들을 만났던 그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믿는 자에게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가 되게 해주십니다. 그는 부활하셔서 살아계신 분이시며, 성령이 증언하고 성경이 증언합니다.
이 사실을 믿는 여러분의 삶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과 현실에는 여전히 죄가 있으며, 어려운 현실과 그 문제를 우리는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보통의 크리스천'은 그 현실에 침몰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쓰라린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만, 그 현장 속에서 믿음의 질문을 던집니다.
"하나님, 왜 나를 이 힘든 직장에 보내셨습니까?"
“하나님, 왜 나에게 이런 상황을 주셨습니까?”
"하나님, 왜 내게 이런 아픈 관계와 경제적 상황을 지나게 하십니까?"
그렇게 우리는 예수님을 만날 때, 그의 십자가 은혜를 입게 될 때,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깨닫습니다.
"아!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보내신 이유가 있구나! 나처럼 아파하는 사람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저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들을 하나님과 연결하라고 나를 이곳에 파송하셨구나!"
이것을 경험하고 느끼는 성도가 세상 속에서 구원의 기쁨과 소명으로 살아가는 '보통의 크리스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연결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행복한 청년 여러분!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역사와 복음 전파는, 교회의 특출난 엘리트나 거창한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상처받고 깨어진 현실을 살아가지만, 자기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연결하고자 했던 '보통의 크리스천들'을 통해 이루어져 왔습니다.
월요일 아침마다 출근하기 싫어 힘들어하는 마음, 시험에 떨어져서 자괴감과 낙심에 빠진 친구의 슬픔, 미래가 불안한 현실을 도피하는 청년들의 한숨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도 세상의 친구들과 똑같이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그 삶을 허락하신 이유는 세상과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눈높이에서 그들의 아픔을 듣고, 그 손을 잡아 하나님께로 연결하는 '복음의 다리(Bridge)'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 보통의 크리스천들에게 '주의 손'이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하는 다리로 서고자 할 때, 성경은 놀라운 약속을 주십니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행 11:21)
우리의 가치는 나의 능력이나 스펙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우리를 붙들고 계신 '주의 손'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보잘것없는 '몇 사람'이라 할지라도, 주님의 손이 함께하시면 세상을 변화시키는 거룩한 통로가 됩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연결하셨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세상 속에서 사람들을 하나님과 연결할 수 있습니까? 바로 예수님께서 하신 방법 그대로 찾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우리와 같이 똑같은 사람이 되셔서 우리의 아픔과 어려움을 아십니다. 그렇기에 거룩한 성전에만 가만히 머물러 계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일터 현장에 홀로 있던 세리 마태를 찾아가셨습니다. (마 9:9-13) 당시 세리는 동족의 피를 빠는 매국노라며 손가락질받던 외로운 직업이었습니다. 아무도 그와 친구가 되어주지 않을 때, 예수님은 마태가 일하고 있던 '세관 책상 앞'으로 직접 걸어가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나를 따르라"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집으로 들어가 손가락질받는 죄인들이라 여김을 받았던 세리의 친구들 함께 음식을 나누셨습니다. 예수님은 거룩한 바리새인들처럼 죄인들과 담을 쌓지 않으시고, 세상이 버린 자의 일터와 일상 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하나님 아버지와 연결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이 무시하던 길가의 소경 바디매오를 위해 발걸음을 멈추셨습니다. (막 10:46-52) 여리고 길가에 앉아 구걸하던 바디매오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나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외쳤을 때, 주위 수많은 사람들은 "시끄럽다, 잠잠하라"며 그를 억누르고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바쁜 길을 가시다가 그 한 사람의 부르짖음에 발걸음을 멈추어 서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부르라" 말씀하시며, 세상이 외면한 그의 보이지 않던 눈을 바라보시고 아픔을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눈을 뜨게 하시며, 그를 하나님 나라의 구원으로 연결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나를, 바쁜 일상 속에서 소외된 나를 오늘 말씀으로 찾와 만나주십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요 20:21)

평범한 이야기

한 마케팅 대리점에 다니던 20대 크리스천 청년의 간증입니다.
그 팀에는 연이은 업무 실수로 상사에게 크게 질책을 받고, 팀 내에서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며 퇴사를 고민하던 한 동료가 있었습니다. 월요일 아침이 오는 것이 지옥 같다고 말하던 그 동료는 늘 자괴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던 크리스천 청년은 주일에 들었던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다"라는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청년은 그 동료의 실수로 발생한 재작업을 아무런 대가 없이 함께 밤을 새우며 도와주었습니다.
그 동료가 미안해하며 "너까지 나 때문에 고생해서 어떡하냐"라고 미안해할 때,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괜찮아요. 저도 매일 실수하고 무너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저 같은 사람도 포기하지 않고 매일 일으켜 주시더라고요. 그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저도 당신의 짐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지고 싶었습니다."
그 동료는 세상의 그 누구도 자신을 위해 짐을 나누어 지지 않는 삶 속에서, 처음으로 '대가 없는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너라는 사람을 보니 네가 믿는 하나님이 진짜 있는 것 같다"며 마음을 연 동료는 그 청년과 함께 성경 공부를 시작했고, 지금은 신앙 안에서 기쁨으로 직장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꼭 선교가 아니어도 됩니다. 거창하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우리는 모두 월급날을 기다리고 야근에 지치는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그저 예수 그리스도로 살아가는 '보통의 크리스천'입니다. 그 보통의 크리스천 청년은 자신이 있는 고단한 직장을 '하나님이 보내신 선교지'로 받아들이고 예수님처럼 먼저 다가갔을 때, 주의 손이 역사하셔서 영혼이 하나님께 연결되는 놀라운 기적이 보았습니다.

결단: 예수님처럼 찾아가고 만나십시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결단합시다.
오늘 예배가 끝나고 순원들이랑 교제하며, 사회로 나설 때, 나와 잘 맞고 편한 사람들하고만 교제하는 그런 안전지대에 머물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렇게 잘난 사람들이 아닙니다. 여전히 육신을 가지고 죄의 연약함을 가진 보통의 크리스천 입니다. 실패할 수 있고 넘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무너지지 않고 성장합니다. 그분은 여전히 나를 만나주시고 찾아오시며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그 평범한 시간 속에서 괴로워하고 어렵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마음으로 다가가 섬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기도해주시고, 예수님을 전하여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도록 도우십시오.
더욱이 지금 우리와 함께 예배 드렸다가 함께하지 않고 있는 친구들이 있지 않습니까? 많은 빈자리가 있습니다. 순장만 관심을 가지고 찾아가는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관심을 기울이며 그들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와 기쁨으로 예배하기를 기대하며 섬겨야 할 것입니다.
마음이 상해 있는 친구, 외로워하는 순원, 관계가 어그러진 청년들에게 예수님처럼 먼저 다가가십시오.
따뜻한 밥 한 한 끼를 사주고, 마음을 들어주며, 그들의 아픔을 안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십시오.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찾아가 만날 때, 역사를 주도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손, '주의 손'이 반드시 우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화려하지 않습니다. 위대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믿고, 내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연결하고자 순종하는 ‘보통의 크리스천 몇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해 여러분의 직장을, 여러분의 학교를, 그리고 행복한 교회 청년회와 이 세대를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몇 사람이면 충분합니다. 그 사람이 바로 나입니다."
그 구브로와 구레네의 몇 사람이 바로 오늘 예배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찬양 - 주의 손이_G
[합심기도]
“주님! 부르신 자리에서 답답한 현실에 침몰하지 않도록 나를 붙들어주옵소서.” “나 같은 사람도 만나주시고 회복하신 예수님을 기쁨으로 증거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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