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731 설교
0 ratings
· 2 viewsNotes
Transcript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향해 보낸 편지글인 고린도전서입니다.
우리가 사실 이 말씀을 성경에서 보았기 때문에 그러한 느낌이 적을지도 모르지만, 사실 이 글은 편지글인 만큼 편지의 형식을 띄고 있습니다.
보통 편지글이 갖는 형식은 어떤게 있을까요? 수신인과 발신인이 있고, 편지를 보내는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신인은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이고, 발신인은 사도 바울입니다.
그러면 편지를 보낸 목적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고린도교회 안에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바울은 여러 지역을 다니며 많은 교회들을 세웠습니다. 소위 말하는 순회목회를 한 셈이지요.
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교회 안에서 발생하는 급박한 문제들을 바로바로 대처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교회를 사랑하는 바울의 마음은 모두 동일했기에, 각 교회에 사람을 세우고 그들을 통해서 교회의 소식들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에서 여러 이슈들을 듣게 된 것이죠. 그리고 그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이 편지를 쓰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이슈 중에 하나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는데요, 어떤 이슈였냐, 오늘 본문 앞에 나오는 3절에 나타납니다.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어떤 문제인가요? 교회 안에 시기와 분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교회의 리더들을 중심으로 파가 나뉘게 된 것입니다.
뒤이은 구절에 나타나지만, 누군가는 바울을, 누군가는 아볼로를 따르겠다 말한 것입니다.
왜 이런 일들이 나타나게 되었던 것일까요?
사실 실제 고린도교회의 상황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앞선 1장을 보면 그 파벌은 더욱 심각했습니다.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바울과 아볼로 뿐만이 아니라 어떤 사람은 베드로,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파벌을 형성하게 된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에는 왜 이런 문제들이 있었을까요?
이것은 고린도라는 지역 자체가 헬라문화권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고대 헬라는 그리스 철학이 지배하고 있었죠. 그리고 그리스 철학에서는 한명의 스승을 따라 학파를 형성하는 분위기가 짙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고린도교회에서도 자연스럽게 자신이 스승으로 따르고자 싶은 사람을 중심으로 나뉘게 된 것이었습니다.
또한 바울과 아볼로의 사역 스타일이 다른 영향도 있었습니다.
바울의 경우는 여러 성경을 기록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논리적이고 신학적인 가르침을 주는 것에 탁월했습니다. 하지만 사도행전에서 유두고가 졸기도 했고, 항상 말이 약하다는 비판이 있었던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스피치는 그만큼 탁월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반면에 아볼로는 학문의 도시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서 학식도 뛰어났지만, 특별히 웅변에도 능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또한 바울은 교회를 개척하는 설립자로서 일을 감당했고, 아볼로는 바울이 설립한 교회를 목양하는 일을 감당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두 사람의 사역 스타일에 따라 사람들이 나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로 굳이 적용하자면, 각 진장님의 스타일에 따라 우리 진이 더 좋다, 아니다 우리 진이 더 좋다 이런 파벌이 생겨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한 교회에 이렇게 파벌이 생기면 사실 좋을게 없죠. 서로를 비방하다가 결국 분쟁으로 결론이 나게 되니까요.
그래서 이 이야기를 들은 바울은 오늘의 본문 이야기를 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오늘 본문 앞인 5절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아볼로가 뭐고, 바울이 뭐냐, 그들은 모두 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너희들을 믿게 한 사역자이다.
이게 무슨 이야기냐면, 아볼로가 능력이 좋아서, 바울이 능력이 좋아서 너희가 믿은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의 본문이 나옵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신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세우고, 아볼로가 양육하고 있지만, 결국 성도 개개인을 주님께로 이끄는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7절에서도 그렇게 말하죠. 심는 바울이나, 물 주는 아볼로나 다 아무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이다.
그러니 바울이 옳고 아볼로가 옳고 이런 파당을 짓는 것은 하등 쓸모가 없는 일이라는 것을 성도들에게 이야기한 것이죠.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린도교회에 바울과 아볼로를 보내신 것은, 각자 다른 능력으로 그룹을 짓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가진 능력, 아볼로가 가진 능력이 고린도교회의 필요한 시기에 맞춰 잘 사용되도록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이었습니다.
결국 비유하면 이런 셈입니다.
우리가 종이를 자를 때, 칼을 쓸 수도 있고, 가위를 쓸 수도 있죠. 그런데 칼이 더 좋다, 가위가 더 좋다 서로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결국 그 도구를 사용하는 것은 여러분인데, 그렇게 칼이 서로를 자랑하면 어떤 생각이 드시겠어요?
어이가 없죠. 칼이 더 좋든, 가위가 더 좋든, 내가 좋은 것을 쓸건데 각자가 자랑하든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죠.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각 사람이 자신을 아무리 자랑해도 그것을 이루게 하실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3장 마지막 22절과 23절에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무슨 말씀인가요? 결국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각 개인의 능력이 대단하게 보여도, 그들이 모든 것을 행하는 것 같아보여도, 결국 행하실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선교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까지 선교를 행하면서, 여러가지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네.’ ‘지금까지 잘 하고 있는 것 같아’
‘나는 여기서 지금 뭐하는거지?’ ‘내 능력이 다른 분들에 비하면 너무 부족한 것 같아’
충분히 그런 생각들이 들 수도 있죠. 하지만 방금까지 말씀드렸던 것처럼, 그런 생각들은 하나님 앞에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눈과 세상의 상식에서 보았을 때, 능력이 많고 좋아보이고, 반대로 능력이 없어 보일지라도, 그 모든 것을 사용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가위보다 칼을 사용하기 좋은 곳에서도 가위로 잘 자를 수 있는 것처럼, 세상적인 능력이 부족해 보여도, 하나님은 그들도 사용하셔서 놀랍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결국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단 한가지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행하고, 모든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봤을 때 능력이 좋아보여도 그 열매가 맺혀지지 않을 수 있고, 우리가 봤을 때 별로인 것 같아보여도 그 열매가 풍성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결과는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나도 아름다울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선교를 돌아보면서 어떤 마음이 드셨든지 다 괜찮습니다. 그 모든 것을 통해 앞으로의 선교일정 가운데 하나님께서 놀랍게 일하실 것입니다.
그것을 믿고 의지하며 내일의 사역에도 담대히 나아가는 우리 모든 선교대원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찬양: 내 영혼은 안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