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801 설교

54차 일본선교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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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먹으라

오늘의 말씀은 엘리야의 전체 사역에서 절정에 이르렀다가 가장 밑바닥까지 떨어진 엄청난 순간을 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는 이사야의 대표적인 사건은 무엇인가요?
아마도 갈멜산 전투 장면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맞습니다. 북이스라엘에서도 손꼽히는 강력한 군주인 아합왕의 치하에서 수많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왕비 이세벨이 신봉하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로 가득 채웠죠.
결국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숭배하는 나라가 되어버립니다.
그런데 보통 이렇게 우상숭배를 하고 하나님에게서 벗어나면, 뭔가 나라가 잘못되고 이상한 일들이 벌어져야 할 것 같은데, 북이스라엘은 그렇지가 않았어요.
사실 우리는 이 아합이라는 사람을 성경에서만 보게 되니까, 엄청난 암군인 것처럼 생각을 하는데요, 비슷한 시기 근동지역에서 발굴된 기록물에 따르면, 당시 아합을 정복왕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말씀의 시선이 아닌 그냥 세상의 시선에서 아합 왕은 엄청난 정복자이자 나라를 전성기로 이끈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북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어떤 생각이 들까요?
왜 도대체 하나님이 이렇게 악한 자들을 형통하게 하시는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이 질문은 하박국도, 예레미야도 했던 질문이었죠.
그리고 아합왕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나라가 잘 되어가는데, 당신 잘못하고 있어! 라는 말을 했을 때, 어떤 결과가 따라오게 될지는 불보듯 뻔한 것이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나마 남아있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오바댜가 엘리야를 만났을 때, 아합에게 가려고 하는 그를 막아서기도 했었죠.
하지만 엘리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아합왕에게 나아갔고, 그가 데리고 있던 바알 선지자 450명, 아세라 선지자 400명 총 850명의 선지자와 대결을 합니다.
바로 850대 1의 대결이 된 것이죠. 우리가 늘 대단하다고 이야기하는 이순신장군의 명량대첩도 133대 13인데, 엘리야는 훨씬 더 엄청난 대결이었던 것이죠.
그런데 놀랍게도 그 대결은 혈혈단신 엘리야의 승리로 끝납니다. 심지어 제단에 물을 도랑에 찰 정도로 끼얹는 패널티를 스스로 부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불똥조차 튀지 않았던 바알과 달리 큰 불이 임하여 모든 도랑의 물을 증발시키는 엄청난 승리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그 기세를 힘입어 그 자리에 있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를 끝까지 쫓아가 진멸하는 엄청난 승리를 이뤄내게 됩니다.
아마 엘리야를 비롯하여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승리는 엄청난 쾌재를 불러왔을 것입니다.
지금껏 눌려왔던 모든 설움이 한방에 가시는 상황이 찾아온 것이죠.
마치 유튜브에 나오는 영화의 참교육 장면 영상들이 엄청난 조회수를 얻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 것입니다.
우리의 입장에서 이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져야 할까요?
이 큰 승리를 통해 아합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며, 엘리야 선지자는 모든 나라를 하나님의 말씀대로 돌려놓는 엄청난 개혁이 일어나야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벌어진 일은 어떤 일이었나요?
열왕기상 19:1–3 NKRV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놀랍게도 우리의 예상과 완전 반대의 일이 일어납니다. 아합이 이 소식을 이세벨에게 전하고, 이세벨이 극대노해서 내가 반드시 저 엘리야 죽이겠다! 라고 선언하자 우리가 영웅으로 생각했던 엘리야가 도망친 것입니다.
심지어 말씀이 어떻게 기록을 하고 있냐면,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자기가 목숨을 잃을까봐 자기가 살려고 도망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 두려워서 도망한 엘리야의 도망친 거리입니다.
이해를 위해 지도를 보여드리자면, 엘리야는 단숨에 북이스라엘 위에서부터 남유다 아래까지 엄청난 거리를 도망했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로서는 정말 너무나도 실망스러운 모습이죠. 분명 방금까지 엄청난 일을 이뤄낸 영웅이었는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자랑스러운 사람이었을텐데, 그깟 한마디 말 때문에 두려움이 생겨 그렇게 소위 말하듯 꽁지 빠지게 도망을 쳤으니 말이죠.
그리고 그렇게 엄청난 거리를 빠른 속도로 도망친 엘리야는 함께한 사환은 잠시 브엘세바에 두고서 하루치를 광야 속으로 더 걸어간 후 로뎀 나무 아래에서 완전히 탈진합니다.
그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요즘 쓰는 말로 하면 현타가 찾아왔을 것입니다.
스스로도 이 상황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웠겠죠. 분명 하나님을 의지하여 엄청난 승리를 거뒀는데, 한순간에 그 모든 영광을 잃어버리고 한낱 도망자로 전락해버린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도 수치스러웠을 것입니다.
결국 엘리야는 하나님께 4절의 말을 올려드립니다.
열왕기상 19:4 NKRV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무슨 이야기죠? 저 죽여주세요. 극심한 수치 속에서 차라리 죽는게 낫겠다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순간 하나님의 대답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여러분들이었으면 뭐라고 했을 것 같으신가요? 에휴 너 도대체 왜그러냐? 왜그렇게 날 창피하게 하냐?
하나님의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열왕기상 19:5 NKRV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해 숯불에 구운 떡과 한병 물을 주십니다. 그리고 먹고 기운을 차리도록 하시죠.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음식을 먹고 마신 엘리야는 기운을 차렸는지 다시 눕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 다시 먹고 마시도록 말씀하시죠.
그리고 엘리야는 그 음식물을 힘입어 다시 40일을 걸어 호렙산, 다른 말로 시내산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곳에서 엘리야에게 3가지 미션을 주십니다. 예후와 하사엘, 엘리사에게 기름을 붓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자신을 죽여달란 엘리야의 말에 하나님의 대답은 무엇이었던 것인가요?
정신차리고 다시 나를 따라라. 이것이었습니다.
엘리야는 분명 엄청난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그 실패가 너무 커서 다시는 회복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엘리야를 다시 사용하십니다. 엘리야에게 실패에 대한 어떤 말도 하시지 않고, 그저 먹고 마실 것을 주시며 그를 다시 일으키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또다른 사명을 맡기십니다. 하나님이 기름붓도록 명하신 세 인물은 이후 이스라엘의 역사를 바꾸는 인물들이 됩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뒤를 이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고, 예후는 북이스라엘에서 반역을 일으켜 이세벨을 죽게 만듭니다. 하사엘은 아람의 왕이 되어 그의 일생 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은 실패한 엘리야를 너무나도 귀한 일에 다시 사용하십니다. 심지어 엘리야는 그 세가지 일을 다 완수하지도 못했습니다. 그저 자신의 뒤를 이을 엘리사만을 기름부었을 뿐이죠.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셨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알듯이 그의 마지막은 죽음이 아니라 바람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에녹만이 누렸던 엄청난 일이었죠.
하나님은 이처럼 그의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회복케 하십니다.
이제 우리에게로 돌아와볼까요? 이제 네번째 날이 마무리됩니다. 우리에게 남은 날은 많지가 않죠.
어쩌면 우리 중에 여러모로 지친 마음들도 있을 것입니다. 혹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 만큼 이루어지지 않은 마음에 엘리야처럼 낙심한 마음들이 있을 수도 있죠.
하지만 하나님은 그 결과를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먹고 마실 것을 주시며 우리의 마음을, 체력을 회복시키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이 모든 사역을 주님의 뜻 안에서 완수하도록 인도하십니다.
이것은 우리의 선교사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각자의 삶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면 우리 안에도 엘리야와 같이 엄청난 성공을 거둘 때도 있을 것이고, 그것이 무색하게 엄청난 실패를 거둘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결과를 우리를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오직 우리 자신의 모습 그대로 놀랍게 사용하십니다.
지치고 힘들 때, 마음이 낙심될 때, 우리의 피난처시요, 로뎀나무가 되시는 주님께 모든 것 맡기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이사야가 그랬던 것처럼 심한 말이라도 내어놓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장 깊숙한 마음을 터놓기를 원하시기 때문이죠. 오히려 우리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마치 괜찮은 것처럼, 우리를 가장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오직 주님께 모든 것을 내어놓읍시다. 주님께서 우리를 안아주실 것이고, 다시 힘주시며 일으켜세워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선교의 자리가 그러한 자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제 남은 주일의 사역 가운데 그 주님을 의지하며 나아가는 우리 귀한 선교팀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찬양: 사랑한다 말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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