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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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12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13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환영
할렐루야~ 앞 뒤 옆사람과 이렇게 인사하겠습니다.
“일상의 행복을 누리며 삽시다.”
오늘은 전도서 3장 11~13절 말씀을 함께 살펴보면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권별설교
우리가 계속해서 성경을 매주 한권씩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잠언까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동안 함께 나눴던 성경들을 한번 쭉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 창조와 타락
출애굽기 - 애굽 탈출
레위기 - 거룩한 백성
민수기 - 40년 광야 훈련
신명기 - 모세의 고별설교
여호수아 - 가나안 정복기
사사기 - 가나안 정착, 암흑기
룻기 - 암흑기 속에 피어난 희망
사무엘상 - 이스라엘 첫 번째 왕 사울
사무엘하 - 두 번째 왕 다윗
열왕기상 - 세 번째 왕 솔로몬의 타락과 이스라엘 남북분열
열왕기하 - 선지자들의 외침
역대상 - 에스라의 가르침, 아담부터 다윗까지
역대하 - 솔로몬부터 이스라엘 멸망까지
에스라 - 2차 포로 귀환
느헤미야 - 3차 포로 귀환
에스더 - 포로 귀환기, 페르시아 수산 궁에서
욥기 —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도
시편 — 끝까지 하나님만 바라보며 찬양하고
잠언 — 삶의 순간마다 하늘의 지혜를 구하며
전도서 — 세상의 헛됨을 넘어 창조주를 기억할 때
아가 — 비로소 마주하는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
전도서 소개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책은 전도서입니다.
전도서는 전도자의 고백록입니다.
전도자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코헬렛”이라고 하는데
그 뜻이 “말하는 사람, 전도자, 설교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그 전도자는 누구일까요?
전도서 1장 1절은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로 시작합니다.
이것을 볼 때, 전도자는 솔로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서는 한평생을 한 나라의 왕으로 살던 지도자,
특별히 당대 최고의 부와 권세를 누렸던 사람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작성한 참회록입니다.
그런데 이 참회록은 첫 문장부터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3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한 나라의 왕으로 부족함없이 살았던 사람이
인생을 다 살고, 노년이 되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세상을 살아보니 모든 것이 다 헛되더라.
열심히 수고했는데, 그것 조차도 무엇이 유익한지 모르겠더라.”
아무리 수고한들 얻는 것이, 남는 것이 없다는 소리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도서가 말하는 핵심 메시지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열심히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지만,
정작 내 손에 쥐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돈, 명예, 성공, 바라는 목표, 꿈...
다 이루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남은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전도서는 모든 것이 헛되다고 말합니다.
“헛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헤벨”입니다.
“숨, 바람, 수증기, 입김”이라는 뜻입니다.
숨은 볼 수가 없습니다.
바람은 잡을 수 없습니다.
수증기는 이내 사라지고 맙니다.
이처럼 우리의 인생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고,
아무리 잡으려해도 잡을 수 없으며,
한때는 있다가도 금방 사라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뭐라고 말합니까?
9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지금 우리가 새롭다고 느끼는 모든 것들이
결국 과거에 했던 일들이고,
지금 하는 일들이 미래에 반복되어 일어날 것이다.
결국 해아래 새것이 없다.
결국 돌고 도는 반복되는 인생살이다.
끝나지 않는 불안과 헛헛함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살펴볼 전도서는
이런 철학적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만 읽어야 하는 책일까요?
여러분, 최근에 이런 생각 해보신 적 있습니까?
“내가 원하는 시험에 합격만 하면 참 행복하겠다.”
“이번에 취업하면, 그 회사에 입사하면
마음의 불안과 초조함이 사라지지 않을까?”
“이 일만 무사히 끝나면 이제 나는 편안하게 쉴 수 있을거야.”
그래서 우리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달립니다.
밤을 새워 공부하고, 자소서를 수정하고,
직장에서 내 몸을 갈아 넣듯이 최선을 다해 일을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목표했던 일을 이루었습니다. 다 끝냈습니다.
그 순간 엄청난 성취감과 기쁨이 몰려옵니다.
그런데 그 기쁨도 잠시 뿐입니다.
여러분은 과거에 이루었던 성취감 때문에 지금도 행복하시나요?
이제는 불안과 초조함 없이, 평안과 자유를 누리고 계신가요?
물론 사진을 보면서, 과거를 회상하면서
잠시 그 기쁨을 만끽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쁨이 어떤 문제와 상황 속에서도 견디게 해줄 만큼
나를 만족하게 하고, 자유하게 해줍니까?
불과 몇 주, 길어야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우리 마음 한 구석에는
다시 이상한 헛헛함과 무기력감이 찾아옵니다.
그러면서 이런 질문이 마음 속에 찾아옵니다.
“이제 다음엔 뭘 해야하지?”
“이 일만 끝나면 내 마음이 자유하고 편할 줄 알았는데...”
“내가 이것 때문에 그렇게 밤을 새웠던가?”
“이번에는 뒤쳐지면 어떡하지?”
이것은 목표를 이루지 못해서 느끼는 불안이 아닙니다.
목표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찾아오는
알 수 없는 불안과 허무함입니다.
열심히 살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그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우리 마음의 잔고는 늘 바닥이 나있습니다.
왜일까요? 도대체 왜 우리 인생은 이토록 애를 쓰고 달려가도
진정한 평안에 이르지못하고, 늘 불안과 헛헛함 사이를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 걸까요?
솔로몬의 통찰
오늘 우리가 읽은 전도서는
지금으로부터 3천년 전 인생의 가장 화려한 성공과
극심한 허무를 모두 경험했던 지혜의 왕 솔로몬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깊은 통찰이자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이 책이 단순히 인간의 한계와 인생의 덧없음만을 말하고 있다면
성경으로 선택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솔로몬이 한 평생 살아오면서 인간이 느끼는 한계를 돌아보며
하나님 안에서 해답을 찾았기 때문에,
이 통찰이 우리를 하나님의 진리까지 연결시켜 주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이 고통과 불안의 진짜 원인을
아주 뜻밖의 문장 하나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내 마음에 심긴 영원
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히브리어 원어 그대로 직역해보면,
“사람들 중심에 영원성을 넣어두셨다.” 이런 의미가 됩니다.
그런데 이 진리를 깊이 묵상하면,
오늘 본문의 의역이 참 잘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인간은 단순히 이 땅에서 70년, 80년 먹고 자다가 사라지는
유한한 존재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있는 영혼은 영원성이 있어서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은 영원하신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그분의 영원함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창조된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2장 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습니다.
그 때 생기가 히브리어 “루아크” 하나님의 영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존재는 영으로 영원히 존재하지만,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흙으로 빚은 육체에 담겨서
유한한 존재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중심, 본질, 영이 영원하기 때문에
우리는 유한한 이 땅의 것들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영원한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이 불행한 것입니다.
우리의 중심은 영원한 것으로 만들어졌는데,
우리는 자꾸 그 중심에 유한한 세상 것들로 채우려 하기 때문에
우리는 늘 만족하지 못하고, 불안과 헛헛함이 남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4K 고해상도 대형 TV 화면에
아주 낮은 화질의 옛날 영상을 틀면 화면이 어떻게 나올까요?
깨지고 지글거려서 제대로 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원한 존재로 창조된 우리의 마음에
“높은 연봉”, “큰 평수의 아파트”, “이름 있는 대학교”,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 등 세상의 유한한 가치들로 채우려 하니
크고 영원한 공간에 그것이 다 채워지겠습니까?
절대로 채워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6장 26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여기서 목숨은 영원한 생명, 우리의 영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을 합니다.
왜냐하면, 그 영혼에 영원한 가치가 담겨있기 때문에
아무리 온 천하도 결국 유한한 가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채워넣는다 하여도
한 사람의 중심, 그 마음을 다 만족시킬 순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깨닫지 못하면
우리가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결국 우리의 삶은
2가지 극단적인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첫째는 성공주의에 집착하게 됩니다.
“내가 조금만 더 성공하면, 내가 더 많은 돈을 모으면,
내가 저 자리에 올라가면 내 마음이 채워질꺼야.
나는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거야. 행복해질 수 있을거야.”
인생의 목표, 행복의 기준을 성공에 두는 것입니다.
성공이란 꼭 큰 업적을 남기거나, 큰 돈을 버는 것만이 아닙니다.
내가 계획한 목표를 이루는 것도 성공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목표에 집착한다는 것입니다.
성공, 목표에 집착하면 그것은 곧 우상이 됩니다.
우상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장 우선순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우선순위가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의 성공이라고 한다면,
그 성공이라는 유한한 것들로는
결코 우리의 영혼을 만족시킬 순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공을 우상으로 삼는 순간,
그것을 잃어버릴까봐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내 힘으로 완벽하게 통제하려고 애를 씁니다.
내가 통제할 수 있어야, 잃어버리지 않고,
계속 내 안에 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성공을 이루는 것이 그렇게 쉽습니까?
그리고 그 성공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말처럼 통제 가능한가요?
모든 사람들이 서로 가지려고 하는 부와 명예를
내가 계속 쥐고 있으려면
끊임없이 누군가를 짓밟고, 망가뜨리고, 넘어뜨려야 하는
전쟁터와 같은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극심한 조급함과 불안에 시달리게 됩니다.
과연 이것이 우리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까요?
쾌락주의, 허무주의
둘째는 인생의 허무함을 깨닫고, 쾌락주의에 빠지는 것입니다.
성공주의를 향해 미친들이 달려가다 보니 지쳤습니다.
어떤 이는 자신의 목표를 이루었는데, 허무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반대로 빠지는 낭떠라지가
허무주의와 쾌락주의입니다.
“아… 노력해봤자 소용없네. 남는 건 허무함 뿐이네.
어차피 덧없는 인생, 갓생 살아봐야 뭐하나?
그냥 오늘 하루 즐기다가 죽으면 끝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면서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쾌락만을 쫓아가는 것입니다.
전도서에서도 이 문제를 간파했습니다.
인생은 허무하다. 모든 만물이 해아래 새 것이 없다.
그래서 우리의 수고도 의미가 없다.
그런데 전도서에서 말하는 허무는 결론이 아닙니다.
우리의 한계를 가려쳐주기 위한 서론에 불과합니다.
십자가가 복음인 이유를 설명하려면,
먼저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안에 담긴 영원성을 설명하려면,
우리 육체에 있는 유한성, 인간의 한계를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크로노스의 시간
그렇다면 우리는 성공주의와 쾌락주의, 삶의 집착과 방관
이 두 가지 극단적인 삶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극복할 수 있을까요?
먼저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간의 2가지 개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날때와 죽을 때, 심을 때와 뽑을 때.
정해져서 흘러가는 시간, 물리적이고 유한한 시간이 바로
크로노스의 시간입니다.
“청년부 예배는 2시에 시작합니다.”
“벌써 내 나이가 서른이네.”
“올해도 벌써 절반이 지났네.”
이렇게 절대적인 시간 개념. 언제인지 정확히 알 수 있는
손에 잡히는 유한한 개념이 바로 크로노스의 시간입니다.
이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 인간은 늘 쫓기고,
남들과 비교하며, 불안 속에 살아갑니다.
이 크로노스의 조급함 때문에 실패했던 인물이 사울 왕입니다.
사무엘상 13장을 보면, 사울왕이 블레셋과 대치하고 있을 때,
출전하기 전에 사무엘 선지자가 와서 예배를 드리기로 했는데,
사무엘 선지자가 정해진 시간까지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사울 왕 입장에서는 군대가 기다리고 있고,
지금이 블레셋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가장 좋은 타이밍인데
사무엘 선지자가 늦어서 전쟁을 망칠것 같은 거에요.
그래서 사울 왕은 자신이 선지자나 제사장이 아닌데
마음대로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계기로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십니다.
하나님의 때를 자신의 힘으로 통제하려다가
결국 하나님께 버림받는 왕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카이로스의 시간
두번째 시간의 개념은 카이로스입니다.
카이로스는 하나님의 때, 상대적인 시간의 개념입니다.
인간의 계산으로는 멈춰있는 것 같고, 늦은 것 같지만
하나님의 계산으로는 가장 완벽한 때가 바로 카이로스입니다.
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작과 끝을 우리 인간은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영원의 개념에서 일어나는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카이로스의 시간입니다.
카이로스의 시간을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아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때,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요셉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팔려 애굽의 노예가 되었고,
보디발 장군의 아내에게 억울한 누명을 써 감옥에 갇혔습니다.
요셉에게 있어서 감옥에서 보낸 10여 년의 세월은
헛되이 흘러가는 크로노스의 시간처럼 보였습니다.
가장 많이 배우고 성장해야 할 10대, 20대를
모두 감옥에서 썩었기 때문입니다.
요셉 입장에서는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완전히 끝나버린 인생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당시 가장 강대국이었던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훗날 요셉이 자신을 팔았던 형들을 다시 만났을 때
뭐라고 고백합니까?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요셉의 인생을 크로노스의 관점으로 보면
가장 뒤쳐진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때, 카이로스의 관점으로 보면
미리 보내진 인생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야곱의 가족을 위해 먼저 보내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야곱의 가족을 구원하기 위해서만 인줄 알았는데,
430년 후 모세 때 200만 명의 이스라엘 민족을 세우기 위한
큰 계획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당시엔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때, 카이로스의 시간은 영원의 시간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시간 속에서
지금 우리의 시간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는 하나님만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카이로스의 관점으로 우리의 삶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육체적 관점
이렇게 우리가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관점으로
우리의 문제를 살펴보면, 왜 우리가 성공주의와 허무주의라는
양 극단으로 빠지게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공주의와 쾌락주의에 빠지는 이유는
우리의 삶을 크로노스의 관점,
다시 말해 육체적 관점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육체적 관점으로 육체만 바라보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까요?
어차피 이 땅에서 죽으면 끝이다.
죽으면 아무것도 없으니 살아서 끝장을 봐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가 됩니다.
어떻게든 내가 살아있는 동안
업적을 이루어야 하고, 남들보다 성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공을 위해 남이 피해보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죽으면 끝나는 인생인데.
그런데 여기서 한단계 더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 우리의 삶은 이 세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야.
철학적인 고민 끝에 해답을 찾은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영원의 세계가 반드시 존재한다.
육체적 관점으로 영원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내린 결론이 진짜 중요한 것은 영원의 세계야.
이 땅에서는 어짜피 열심히 노력해도 결국 죽으면 끝인데,
영원한 세계로 가면, 이 땅에서의 수고는 다 쓸모없는 것이야.
그렇게 허무주의와 쾌락주의에 빠져서
삶을 방관하고, 포기하는 것입니다.
영원의 관점
그런데 우리의 삶을 카이로스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완전히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영원의 관점에서 우리의 유한한 육체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똑같이 육체의 한계를 인정합니다.
그러나 영원의 관점에서 육체의 한계를 바라보면,
그 한계 앞에서 낙담하거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육체의 한계만 주신 것이 아니라,
그 한계 속에 “영원”을 담아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선한 동기,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부어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육체의 한계를 보면서, 거기서 포기하지 않습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지만, 과정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끝까지 우리의 중심, 선한 동기를 하나님께 드리려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과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노력하고 수고한 만큼
대가나 보상이 주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억울하고, 손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수고와 마음의 중심을 아시는 하나님께
모든 결과를 맡겨 드렸기 때문에,
그 결과는 가장 좋은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결과에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결과를 통해서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증명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데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의 과정과 중심을 알고 계세요.
그것으로 이미 우리의 결과는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서 보여지는 결과와 상관 없이
하나님 안에서 참된 만족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이 주는 상급을 쫓아 살아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나의 중심을 아시고, 인정해주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원한 하늘 상급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물
그런데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는 열심히 살지만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보상도 기대하지 말고,
쭉 고난과 고통 속에서 인내하며 살아라.
이렇게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13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하나님께서는 육체적으로도 만족을 누릴 수 있도록
우리에게 먹고, 마시고, 수고하여 얻는 성취감을
우리 삶에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 기쁨은 세상이 말하는 성공이라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
쥐어짜낸 노력의 대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고단한 인생길을 걸어가는 우리 육체에 주시는
쉼과 평안, 그리고 작은 선물입니다.
그래서 먹고, 마시고, 수고하여 얻는 성취감 자체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지 말고, 또한 이것을 얻기 위해 악을 행하지 않고,
주어진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며, 누릴 수 있는 작은 행복들을
마음껏 누리며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바라시는 모습입니다.
결론
우리는 영원을 사모한다고 하면,
하늘에 소망을 두고, 영원한 삶을 바라보며
이 땅의 삶을 소홀히 대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원을 사모하는 사람은
오늘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누구보다 존귀하고 치열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치열함의 방향이 세상과 다릅니다.
성공이라는 결과를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을 행하며, 사람을 짓밟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나님의 선한 방법으로 아름답게 이루어 갈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방법이 세상의 관점에서는
실패라는 결과로 얻어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방법대로 모든 과정이 선하게 이루어졌다면
그 결과에 만족하며 기뻐할 수 있는 것.
이 싸움을 치열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을 품은 사람은 더이상 세상이 정해놓은
크로노스의 시간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남들보다 조금 늦어지는 것 같아도
조급해하며 내 영혼을 갉아먹지 않습니다.
반대로 영원의 세계만 진짜라고 여기며
내 삶을 방관하거나 쾌락에 던져두지도 않습니다.
청년의 시기는 끊임없이 증명해야 되는 시간입니다.
“너의 가치를 증명해봐. 너의 스펙으로, 너의 연봉으로,
네가 이룬 성공으로 너라는 사람을 증명해봐.”
그때 여러분은 무엇으로 증명하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이룸청년 여러분
영원의 가치로 여러분을 증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선한 방법을 선택하는 사람.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끝까지 사랑으로 믿어주는 사람.
내가 늦더라도 끝까지 함께 가려고 애쓰는 사람.
여러분을 무엇으로 증명하시겠습니까?
직업, 학벌, 스펙, 부모님, 돈, 명예, 인성, 인간관계, SNS팔로우수?
이것은 모두 카이로스의 관점입니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가치로 여러분을 증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 희랑,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성, 충성, 온유, 절제
성령의 9가지 열매, 믿음, 사랑, 소망
이런 가치들로 여러분을 증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이 그리스도인에게 기대하는 것은 스펙이나 실력이 아니에요.
그것은 불신자들도 다 있어요.
같은 실력인데, 같은 스펙인데
그러면 너는 뭐가 다르냐는거에요.
너도 성공하고 싶고, 너도 돈 많이 벌고 싶고,
너도 인정받고 싶은거 아니야?
결국 우리랑 똑같네. 너도 이 땅의 가치로 행복해지고 싶은거 아니야?
이 질문에 여러분의 삶으로 답해야 합니다.
나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야.
나의 진짜 가치는 내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야.
그 분만이 나의 구원이고, 나의 영원한 생명이야.
그렇게 삶으로 고백하는 이룸청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찬양 - 하나님의 열심
기도제목
세상의 속도와 결과에 흔들렸던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때를 기대하게 하소서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끝까지 하나님의 선한 방법을 의지하게 하소서.
이룸청년부가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며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가족, 친구, 직장동료, 이웃들에게 영원의 가치를 삶으로 보여주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통성기도
세상이 말하는 성공과 조급함의 사슬에 묶여, 알 수 없는 불안과 허무함 속에서 살아왔던 우리의 모습을 회개합니다. 내 힘으로 결과를 만들어내려 했던 성공주의와, 반대로 무기력과 덧없음에 빠졌던 쾌락·허무주의를 이 시간 십자가 앞에 모두 내려놓게 하소서.우리의 유한한 시선을 거두고, 우리 안에 심겨진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회개와 감사함으로 다시 일으켜 세우게 하소서.
앞이 보이지 않고 이해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일상과 수고의 기쁨을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누리게 하소서. 당장 눈앞에 내가 원하는 결과나 보상이 주어지지 않을지라도, 내 마음의 중심과 선한 동기를 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담대하게 오늘을 살아내게 하소서. “조금 느린 듯해도 나와 함께 가자”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완벽한 때를 기다리는 단단한 믿음을 주시옵소서.
온 천하보다 귀한 영원의 가치가 이미 내 안에 있음을 깨닫고, 세상의 평가에 나 자신의 가치를 매기지 않게 하소서. 나아가 “길 잃어 지친 영혼을 돌아보라” 하시는 주님의 부탁을 따라, 내 주변의 지친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소망을 전하는 통로가 되게 하소서. 우리의 눈물의 기도와 신실한 걸음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며, 우리의 삶에 주님의 면류관이 씌워지는 은혜를 누리게 하소서.
마침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세상의 조급함과 결과 중심의 삶에서 벗어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안에 심겨진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날마다 기억하게 하소서.
흘러가는 크로노스의 시간에 갇히지 않고
주님의 카이로스를 바라봅니다.
오늘 우리에게 맡겨진 일상 속에서 감사와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세상의 악함이 아닌
하나님의 선한 방법을 선택하게 하소서.
눈앞의 결과보다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주님 앞에
최선을 다하게 하시고, 남들과 비교하며 조급해하지 않고
주님이 허락하신 길을 신실하게 걸어가게 하소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영원의 가치를 바라보며
영적 열매를 맺는 삶을 통해 주를 증명하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주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부어주셔서,
우리 이룸청년부가 서로를 사랑으로 품고
기쁨으로 섬기는 거룩한 공동체 되게 하소서.
우리의 일터와 가정에서 우리의 삶이 영원의 가치를 보여주는
복음의 통로가 되게 하소서.
우리의 길과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찬예식
지금부터 성찬예식을 진행하겠습니다.
기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가 주님의 거룩한 식탁에 나아와
성찬예식을 허락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는 죄많은 인생들이지만,
주님의 크신 사랑으로 이 자리에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살을 찢고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억하며 머리 숙여 경배드립니다.
이 성찬의 시간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경 말씀을 봉독해 드리겠습니다.
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코로나 이후 성찬키트로 진행합니다.
먼저 위에 얇은 껍질을 벚겨 떡을 드시고,
아래 두꺼운 껍질을 벚겨 포도주를 드시는 방식입니다.
배종위원 들께서 성찬을 나눠주시기 바랍니다.
<성찬 키트를 받는다>
음식 잡수실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셨으니,
형제자매를 위하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형제자매의 영혼과 육체를 보존하사
영생에 이르게 하시기를 원하며,
그리스도께서 형제자매를 위하여 죽으심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 떡을 받아먹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은혜를 받을지어다.
떡을 드시겠습니다.
<떡을 먹는다>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하셨으니,
형제자매를 위하여 흘리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형제자매의 육체를 거룩하게 보존하사
영생에 이르게 하시기를 원하며,
그리스도의 피가 형제자매를 위하여
흘려주신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 마시고 은혜를 받을지어다.
포도주를 마시겠습니다.
<포도주를 마신다>
성찬기도
기도 드리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오늘 나눈 성찬의 시간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떡을 떼고, 잔을 나누며 그리스도의 고난을 깊이 묵상했던
시간을 기억하며 우리의 믿음이 더욱 굳건해지고,
주님과의 관계가 더욱 깊어지게 하옵소서.
또한 우리를 위해 먼저 베풀어주신 사랑을 기억하며
세상 가운데 그 사랑을 전하며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봉헌 - 나의 생명을 드리니
다함께 일어나셔서 “나의 생명을 드리니” 찬양하시면서
준비하신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헌금기도
오늘도 우리에게 생명과 시간,
물질과 마음을 허락해주신 은혜에 감사하여
우리의 정성과 사랑을 담아 예물을 올려드립니다.
이 예물이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드리는
믿음의 고백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 받은 은혜를 세어보며,
기쁨과 감사함으로 드리는 모든 손길 위에
더 큰 하늘의 복과 은혜를 부어주시고,
이 예물이 교회와 다음세대를 세우고,
복음과 사랑을 전하는 데 아름답게 쓰임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일하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의 근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축도
이제는 우리를 죄와 어둠에서 건지시고 중생케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우리를 거룩과 성결의 길로 부르신
하나님 아버지의 한없는 사랑과,
우리의 영육을 신유의 은혜로 회복케 하신
성령 하나님의 역사 교통하심이,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결과를 주님께 맡기며, 하나님의 선한 방법으로 승리하기 원하는
여기모인 믿음의 청년들과 성도님들의 가정과 일터와 미래 위에
주님 다시 오실 그날까지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