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주인인가?, 하나님이 주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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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주의

마태복음 6:19–24 NKRV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사랑합니다. 꿈사땅 예배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여러분은 혹시 이런 경험이 있는가? 유튜브를 보다가 갑자기 광고를 보고 “와, 저거 갖고 싶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인스타그램이나 틱톡을 보다가 친구가 새 운동화나 최신 휴대폰을 자랑하는 것을 보고 괜히 나도 갖고 싶었던 적은 없는가? 게임에서도 새로운 스킨이나 아이템이 나오면 꼭 사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사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백 번 “사라”는 메시지를 듣는다. 광고는 “이걸 사면 더 행복해질 거야.”라고 말하고, SNS는 “이걸 가진 사람이 더 멋진 사람이야.”라고 말한다. 어느새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가 나의 행복과 가치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생각을 ‘소비주의’라고 한다. 소비주의는 단순히 돈을 많이 쓰는 습관이 아니다. ‘무언가를 가져야 행복하다’, ‘더 많이 가지면 더 가치 있는 사람이 된다’고 믿는 삶의 방식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사고 싶었던 물건을 샀는데도 며칠 지나면 또 다른 것이 갖고 싶어지지 않는가? 새로운 휴대폰을 사도 얼마 지나지 않아 더 좋은 모델이 나오고, 새 운동화를 사도 또 다른 디자인이 눈에 들어온다. 소비는 우리를 잠시 기쁘게 하지만 오래 만족시키지는 못한다.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질문을 하신다. “너의 보물은 어디에 있느냐?” 예수님은 “돈을 벌지 말라”거나 “물건을 사지 말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이 보시는 것은 우리의 지갑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다. 무엇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며, 결국 누구를 주인으로 섬기고 있는지를 물으신다.
예수님은 먼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이 말씀을 들으면 어떤 사람들은 “그럼 돈을 모으면 안 되는 건가?”, “저축도 하지 말라는 건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핵심은 돈을 모으는 행동 자체가 아니다. 예수님은 ‘땅에 보물을 쌓는 것을 멈추고, 이제는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라고 말씀하신다. 다시 말해 삶의 방향을 바꾸라는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지금처럼 은행에 돈을 맡길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집 안에 금이나 은을 숨겨 두거나, 귀한 옷이나 보석을 재산처럼 보관했다. 어떤 사람은 땅속에 묻어 두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잘 숨겨 놓아도 안전하지 않았다. 귀한 옷은 좀이 먹을 수 있었고, 곡식은 벌레나 쥐가 망가뜨릴 수 있었으며, 금이나 은은 도둑이 훔쳐 갈 수도 있었다. 열심히 모았던 것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도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바로 이 모습을 통해 말씀하신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영원하지 않다.”
오늘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신 휴대폰도 몇 년 지나면 구형이 된다. 비싼 운동화도 시간이 지나면 낡는다. 열심히 모은 게임 아이템도 게임 서비스가 종료되면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SNS에서 자랑했던 물건도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 우리가 영원할 것처럼 붙잡고 있는 것들은 사실 시간이 지나면 모두 변하고 사라진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라질 것에 인생을 걸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늘의 보물은 무엇일까? 하늘의 보물은 단순히 천국에 점수를 쌓는 것이 아니다. 착한 일을 많이 하면 하나님께서 점수를 매겨 상을 주시는 것도 아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늘의 보물은 하나님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삶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 나라를 가장 먼저 생각하며 살아가는 삶이다. 예수님은 바로 그런 삶은 절대로 헛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세상의 보물은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지만,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순종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예수님은 무엇을 모으고 있는지보다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를 보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선순위이다. 예수님은 돈 자체를 죄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물건을 갖는 것도 죄라고 하지 않으셨다. 문제는 무엇이 내 마음의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선택한다. 공부를 왜 하는가? 돈을 왜 벌고 싶은가? 좋은 직업을 왜 갖고 싶은가? 유명해지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가? 이 모든 질문의 끝에는 결국 내가 무엇을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가라는 질문이 숨어 있다. 소비주의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말한다.“더 많이 가지면 더 행복해질 거야.”, “더 좋은 것을 가지면 더 인정받을 거야.”, “더 많이 모으면 더 안전할 거야.” 하지만 예수님은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지신다. “네가 평생 모으고 있는 그것이 정말 영원한 것인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라질 것을 위해 살아가지 말고, 영원한 것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라고 가르치신다. 이것이 19-20절에서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고자 하신 핵심이다. 예수님은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마 6:21
마태복음 6:21 NKRV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예수님은 갑자기 ‘마음’에 대해 말씀하신다. 왜일까? 예수님께서 정말 관심을 가지시는 것은 얼마나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가가 아니다. 우리의 마음이 누구에게 향해 있는가이다. 우리는 보통 “마음이 가니까 돈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말씀하신다. 내가 계속 시간을 쓰고, 돈을 쓰고, 관심을 쏟는 곳이 결국 내 마음을 붙잡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학생이 게임에 대부분의 시간을 사용한다고 생각해 보자. 처음에는 단순히 재미있어서 시작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점점 게임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고, 새로운 아이템이 나오면 계속 관심이 가고, 게임을 하지 못하면 하루 종일 그 생각만 하게 된다. 반대로 운동을 정말 좋아하는 학생은 틈만 나면 운동 영상을 찾아보고, 경기 결과를 확인하고, 운동용품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된다. 사람의 마음은 자신이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따라 움직인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의 마음이 지금 어디에 머물러 있는가?”를 질문하신다. 여기서 말하는 ‘마음’은 단순히 감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서 마음은 생각하고, 선택하고, 사랑하고,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심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마음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 주는 자리이다. 그래서 보물과 마음은 서로 떨어질 수 없다. 무엇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느냐에 따라 마음이 그곳으로 향하고, 그 마음은 다시 우리의 선택과 삶을 이끌어 간다. 이 때문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단순히 돈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돈이나 물질 자체보다 더 위험한 것은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차지하는 것이다. 물질은 원래 삶을 돕는 도구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면,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중심으로 살아가게 된다. 소비주의도 바로 이런 방식으로 우리 마음을 붙잡는다. 계속해서 더 좋은 것을 가지라고 말하고, 더 많이 소유해야 행복하다고 말하며, 우리의 관심과 시간, 생각을 그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먼저 자신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살펴보라고 말씀하신다. 돈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기 전에, 마음이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를 먼저 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어서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신다.
마태복음 6:22 NKRV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갑자기 왜 눈 이야기를 하실까? 예수님은 갑자기 다른 주제로 넘어가신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말씀하신 보물과 마음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고 계신다. 여기서 눈은 단순히 사물을 보는 기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눈은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시선을 의미한다. 길을 걸을 때도 어디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발걸음이 달라진다. 운전할 때도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차가 움직인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방향이 결정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성한 눈’은 단순히 시력이 좋은 눈을 뜻하지 않는다. 원래 이 표현에는 ‘한결같은’, ‘나뉘지 않은’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흔들리지 않는 시선이다. 목표가 분명한 사람은 방향을 잃지 않는다.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가 분명하면 선택도 분명해진다. 하지만 반대로 ‘나쁜 눈’은 하나님보다 다른 것에 시선을 빼앗긴 상태를 말한다. 성경에서 ‘나쁜 눈’은 단순히 눈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욕심과 탐욕, 인색함에 사로잡힌 마음을 가리키는 표현으로도 사용된다. 계속해서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고, 더 많이 가져야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소유에 마음을 빼앗긴 삶이다. 이런 사람은 눈앞의 것만 보게 된다. 무엇을 살지, 무엇을 가질지, 어떻게 더 인정받을지만 생각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더 큰 목적을 보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몸은 단순히 육체를 뜻하지 않는다. 삶 전체, 곧 우리의 생각과 선택, 행동까지 포함하는 전인격을 의미한다. 결국 어떤 시선을 가지고 살아가느냐가 삶 전체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소비주의는 우리의 시선을 계속 세상으로 향하게 만든다. “더 좋은 것을 가져야 한다.”, “더 많은 것을 가져야 성공이다.”,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 이런 시선에 익숙해질수록 우리의 삶도 자연스럽게 그 방향으로 흘러간다. 반대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선은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이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단순히 무엇을 보느냐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는가를 묻고 계신다.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가장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마태복음 6:24 NKRV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예수님은 여기서 종의 모습을 예로 드신다. 당시 종은 오늘날의 아르바이트생처럼 여러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종은 한 주인에게 속한 사람이었다. 주인이 명령하면 따르고, 주인의 뜻을 가장 먼저 생각하며 살아가는 존재였다. 그래서 예수님은 한 종이 두 주인에게 똑같이 충성할 수는 없다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두 주인의 뜻이 다를 때는 결국 한 사람의 말을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바로 이 점을 통해 제자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지신다. “너는 누구를 가장 먼저 따르며 살아가고 있는가?” 예수님은 이어서 하나님과 맘몬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맘몬은 어떤 우상이나 신의 이름이 아니다. 또 불법으로 번 돈만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맘몬은 돈과 재산, 소유가 사람의 삶을 지배하는 상태, 다시 말해 물질주의를 의미한다. 돈 자체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물질은 필요한 곳에 사용하고, 이웃을 섬기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사용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돈이 우리의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돈을 사용하는 사람이었지만, 어느 순간 돈 때문에 선택이 달라지고, 돈 때문에 가치관이 흔들리고, 돈 때문에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될 수 있다. 그때부터 돈은 더 이상 도구가 아니라 주인이 된다. 소비주의도 바로 이렇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소비주의는 단순히 물건을 많이 사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돈이 있어야 행복하다.”, “더 많이 가져야 성공한 사람이다.”, “가진 것이 곧 나의 가치이다.” 이런 생각이 마음속에 자리 잡으면,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기준보다 물질의 기준에 따라 선택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맘몬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돈을 미워하신다는 뜻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충성의 대상은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예수님은 세 가지 그림을 통해 같은 진리를 말씀하셨다. 보물은 무엇을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지를 보여 주고, 마음과 눈은 삶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며, 주인은 결국 누구에게 삶을 맡기고 살아가는지를 보여 준다. 세 비유는 모두 서로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 나뉘지 않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제자의 삶을 다양한 모습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은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럼 돈을 벌면 안 되는 건가?”, “비싼 운동화를 신으면 안 되는 건가?”, “게임도 하면 안 되는 건가?” 예수님은 그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돈을 죄라고 말씀하지 않으셨고, 물건을 갖는 것이 잘못이라고도 말씀하지 않으셨다. 예수님께서 보시는 것은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나를 가지고 있는가이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나는 가장 많은 시간을 어디에 사용하고 있는가? 나는 가장 많은 관심을 어디에 쏟고 있는가? 내가 가장 잃고 싶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내가 가장 기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의 답이 바로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보물이다. 소비주의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말한다. “더 많이 가지면 행복할 거야.”, “더 좋은 것을 가지면 인정받을 거야.”, “더 많이 모으면 안전할 거야.” 하지만 예수님은 전혀 다른 삶을 보여 주신다. 행복은 더 많이 가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가장 큰 보물로 여기는 데 있다. 그래서 우리는 물건을 사기 전에 한 번쯤 이런 질문을 해야 한다. “이것이 정말 필요한가?”, “이것이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지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선택하는가, 아니면 내 욕심을 채우려고 선택하는가?” 이 질문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는 제자이다.
잠언 11:25 NKRV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잠언은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가 자기도 윤택해진다’고 말씀한다. 왜 그럴까? 많이 나누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계적으로 더 많은 돈을 주신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을 가장 큰 보물로 여기는 사람은 물질에 묶이지 않기 때문에 기꺼이 나눌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삶을 기뻐하시고 참된 풍성함으로 채워 주신다. 모으면 모을수록 풍족해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잠언 말씀처럼 남을 섬기면 섬길수록 더욱 풍성해지는 것이 하나님의 원리이다. 그래서 대기업이나 연예인들이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기부하면 할수록 망하는 것이 아니라 더 잘되고, 더 큰 돈을 버는 것도 보게 된다. 오히려 반대로 자기의 이익을 위해 손해를 조금도 안보려고 하는 사람들은 결국 오래가지 못하고 망하게 된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숨겨놓으신 비밀이 있는 것이다. 결국 소비주의는 ‘더 모아야 풍성하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을 가장 큰 보물로 여길 때 비로소 진짜 풍성한 삶이 시작된다’고 말씀하신다.
사랑하는 꿈사땅 여러분. 세상은 끊임없이 말한다. “더 가져라.”, “더 사라.”, “더 모아라.”, “그래야 행복하다.” 하지만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지신다. “너의 보물은 어디에 있느냐?” 왜냐하면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결정되고, 누구를 주인으로 섬기느냐에 따라 인생의 모습이 달라진다. 그래서 소비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돈을 많이 쓰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다. 반대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하나님을 가장 큰 보물로 여긴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기 때문에 돈도, 시간도, 재능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선물로 사용한다. 돈이 삶의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도구가 되고, 소유가 내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내 가치를 결정한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같은 질문을 하신다. “너는 지금 무엇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느냐?” 이 질문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다시 하나님께 향하게 하는 것이 오늘 말씀의 초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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