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정결하게 하시는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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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말라기 2장 17절 - 3장 5절
[서론: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서론: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우리는 살아가다 보면 때로 마음이 깊이 단단해지고 답답해질 때가 있습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잘 살아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려는 성도들은 오히려 고난과 불이익을 당하는 것처럼 보일 때입니다. 그럴 때 우리 마음속에는 은밀한 불평과 의심이 고개를 들곤 합니다.
오늘 본문인 말라기 2장 17절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게 드렸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
포로 귀환 후 성전을 재건했지만, 여전히 삶은 팍팍하고 악인들이 득세하자 백성들은 “하나님이 악인을 좋아하신다, 정의의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라며 말로 하나님을 괴롭게 해 드렸습니다. 그들의 영혼은 깊은 회의론과 정결함을 잃어버린 타성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원망과 불평에 대해 공의의 심판과 더불어 놀라운 소망의 약속을 선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정결케 하고, 그들의 예배와 삶을 율법이 요구하는 거룩한 수준까지 회복시키시도록 내가 언약의 사자를 보내겠다 입니다.
[본론: 표리부동한 예배를 정결케 하시는 언약의 사자]
[본론: 표리부동한 예배를 정결케 하시는 언약의 사자]
하나님께서는 정의의 하나님을 불신하며 탄식하는 백성들을 향해, 한 거룩한 사자를 보내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본문 3장 1절 말씀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여기서 하나님이 길을 예비하기 위해 보내시는 ‘내 사자’는 훗날 오실 세례 요한이며, 백성들이 그토록 구하고 사모하던 ‘언약의 사자’는 바로 성전의 참된 주인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그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때, 그분은 백성들이 기대했던 것처럼 세상 악인들만 멸망시키고 나에게만 무조건적인 복을 주시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먼저 하나님의 집, 곧 당신의 백성들의 심령과 예배를 철저하게 정결케 하시는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2절과 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
말라기 선지자는 오실 메시아를 ‘금을 연단하는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로 묘사합니다. 은을 제련하는 제련공은 용광로에 은을 넣고 불을 지펴 불순물이 다 타오르고 은 표면에 자신의 얼굴이 비칠 때까지 불순물을 제거합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백성들 안에 있는 탐욕과 가식, 세속적인 더러움을 성령의 불과 십자가 보혈의 능력으로 철저히 태우고 씻어내십니다.
인간 제사장들은 부패하고 백성들의 제사는 껍데기만 남았지만, 참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의 영혼과 예배를 정결하게 하실 때, 비로소 백성들은 4절 말씀처럼 “옛날과 고대에 있었던 것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는 참된 제사”를 드릴 수 있게 됩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성전 안에서의 예배만 정결케 하시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실제 삶까지 회복시키십니다. 5절을 보면 주님이 오셔서 점치는 자, 간음하는 자, 거짓 맹세하는 자, 그리고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학대하고 억울하게 하는 사회적 악행을 심판하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정결케 하시는 은혜는 성전 안에서의 찬양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완성이신 주님의 은혜를 통해 우리의 모든 언행과 삶의 자리를 거룩함과 공의의 수준까지 끌어올리시는 역사를 이루십니다.
[적용과 결단: 십자가의 보혈로 날마다 정결함을 입으라]
[적용과 결단: 십자가의 보혈로 날마다 정결함을 입으라]
사랑하는 행복한 성도 여러분,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힘과 의지로는 율법이 요구하는 거룩함에 도달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열심은 늘 변질되었고, 그들의 제사는 겉모양만 남았습니다. 죄인으로써 스스로는 의에 이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 힘과 결단만으로는 세상의 탐욕을 이겨낼 수 없고, 주님이 원하시는 정결한 삶을 살아낼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모든 물과 피를 쏟으시고, 구속의 은혜로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정결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깨끗하게 하심으로 공의로운 제물로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주님 앞에 나아와 자신의 정결함 없음을 솔직하게 고백하며 주님의 만지심을 입었던 한 나병환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태복음 8장 2절과 3절을 보면, 당시 율법상 부정하여 아무도 만질 수 없었던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나아와 무릎을 꿇고 간구합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님께서는 거부감을 느끼지 않으시고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주님의 손이 닿는 순간, 그의 온몸을 덮고 있던 나병의 부정한 상처가 깨끗하게 치유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스스로 거룩해진 후에 찾아오시는 분이 아닙니다. 허물 많고 죄로 오염된 우리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아갈 때, 당신의 보혈로 우리를 정결하게 씻어주시고 율법이 요구하는 의롭고 정결한 삶을 살아낼 수 있는 새 은혜와 능력을 부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이 새벽, 우리의 영혼과 예배, 그리고 일상의 삶은 주님 보시기에 정결합니까? 혹시 우리 마음에 말라기 백성들처럼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내 삶은 이 모양인가" 하는 불평과 세상의 더러운 욕심이 자리 잡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나 자신의 헛된 자존심과 가식의 가면을 내던지고, 우리를 정결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 앞으로 나아가시지 않겠습니까?
오늘 시작되는 하루, 내 삶의 모든 선택과 언어, 그리고 마음의 생각을 주님의 정결케 하시는 불길 앞에 내어놓고, 오직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정결한 삶의 제사로 살아가시기를 원합니다.
"주님, 오늘 하루도 제 심령을 십자가 보혈로 깨끗하게 하사, 주님의 얼굴이 비쳐지는 거룩하고 신실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정직한 기도로 승리하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