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손님입니까, 주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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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2장 38–45절
마태복음 12장 38–45절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서론 — 하나님을 증명하라
서론 — 하나님을 증명하라
오늘날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고대의 지역신이나 사막의 부족신 정도로 생각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고대의 지역신이나 사막의 부족신 정도로 생각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은 하나님을 인간이 만들어 낸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 낸 지역신이라고 말합니다.
성경도 당시 사람들이 만들어 낸 종교적인 기록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창조와 기적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
눈으로 확인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믿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정말 존재한다면 증거를 보여 달라”고 요구합니다.
과학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과학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연구하는 중요한 학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과학과 인간의 지식으로 하나님까지 판단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정말 증거가 부족해서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일까요?
정말 증거가 부족해서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더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시면 사람들이 정말 믿게 될까요?
아니면 하나님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계속 새로운 증거를 요구하는 것일까요?
처음부터 믿지 않기로 마음을 정했다면 어떤 증거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의문이 해결되면 또 다른 의문을 만들어 냅니다.
문제는 증거의 부족이 아니라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마음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하나님께 표적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우리도 하나님께 표적을 요구합니다
이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 계속 증거를 요구합니다.
기도에 응답하시면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고 고백합니다.
문제가 해결되면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고 말합니다.
내가 원하는 길이 열리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면 우리의 믿음이 흔들립니다.
기도해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으면 하나님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내 뜻대로 움직이실 때만 믿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내 뜻대로 움직이실 때만 믿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응답을 믿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실 결과만 원하는지도 모릅니다.
나의 경험
나의 경험
유튜브에서 보았던 무신론자들과 과학자들 이야기
나에게 울림을 주었던 한 신학자의 고백 “하나님을 경험할 때 모든걸 내려놓고 그분을 따르기로 결정했습니다”
본문 배경 — 이미 표적을 보았습니다
본문 배경 — 이미 표적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 들려 눈멀고 말 못 하는 사람을 고쳐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이 사건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곧 메시아가 아니냐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바알세불의 힘으로 귀신을 쫓아냈다고 주장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2장 28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와 능력이 분명히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표적을 이미 보고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또 다른 표적을 요구했습니다.
1. 증거가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1. 증거가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다시 표적을 요구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다시 표적을 요구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말합니다.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이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고 수많은 치유의 역사를 보았습니다.
귀신이 쫓겨나고 눈멀고 말 못 하던 사람이 회복되는 표적도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또 다른 표적을 요구했습니다.
표적을 보고도 성령의 역사를 부정했습니다
표적을 보고도 성령의 역사를 부정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을 보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령의 역사를 바알세불의 역사라고 왜곡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기로 마음을 정했기 때문입니다.
표적을 요구한 것은 믿기 위한 순수한 요청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하고 공격하기 위한 요구였습니다.
이들의 문제는 증거가 아니라 완고한 마음이었습니다
이들의 문제는 증거가 아니라 완고한 마음이었습니다
표적이 부족해서 믿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인정하면 자신들의 생각과 삶을 바꾸어야 했습니다.
자신들이 붙잡고 있던 종교적인 권위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증거를 보고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도덕적으로 타락했다는 의미만은 아닙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저버린 영적인 불신앙을 의미합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따르는 이스라엘을 음란한 백성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했지만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종교적인 모습은 있었지만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은 없었습니다.
믿지 않으려고 마음을 닫은 사람에게는 어떤 표적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믿지 않으려고 마음을 닫은 사람에게는 어떤 표적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증거가 없어서 믿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주어진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보고도 믿지 않았고, 들어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더 많은 표적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회개하는 마음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요구에 따라 끝없이 새로운 표적을 보여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바라보아야 할 결정적인 표적을 주셨습니다.
그 표적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2. 하나님께서 주신 표적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2. 하나님께서 주신 표적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사건을 말씀하셨습니다.
요나는 큰 물고기 뱃속에 사흘 동안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살아 나와 니느웨에 말씀을 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사건을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연결하셨습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사건은 예수님의 죽음과 장사를 가리킵니다.
요나가 다시 나온 사건은 예수님의 부활을 가리킵니다.
요나의 사건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미리 보여 주는 모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분명한 증거는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분명한 증거는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셔야 할 만큼 우리의 죄가 심각했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우리를 살리기 위해 독생자를 내어 주셨습니다.
부활은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 줍니다.
부활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참된 왕이심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로 자신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로 자신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활로 예수님이 누구신지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활로 예수님이 누구신지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더 많은 증거를 요구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보다 더 큰 사랑의 증거는 없습니다.
부활보다 더 분명한 승리의 표적도 없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말씀을 듣고 회개했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말씀을 듣고 회개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말씀을 듣고 자신들의 죄를 깨달았습니다.
왕으로부터 백성들까지 금식하며 회개했습니다.
그들은 큰 표적을 본 것이 아니라 요나가 전한 말씀을 듣고 회개했습니다.
남방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남방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남방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해 먼 길을 찾아왔습니다.
진리를 듣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바로 앞에 계셔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습니다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습니다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습니다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습니다
예수님은 선지자보다 크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왕보다 크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이십니다.
그런데 이들은 더 크신 예수님을 직접 보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니느웨 사람들과 남방 여왕이 심판 때에 이들의 불신앙을 드러내게 됩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증거가 더 있느냐가 아닙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증거가 더 있느냐가 아닙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느냐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느냐는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믿든지, 거부하든지 결정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단순히 훌륭한 스승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순종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순종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많이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완벽하게 지켜서 구원받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구원은 우리가 이룬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순종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믿음에서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순종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믿음에서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우리가 순종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정말 믿는다면 우리의 삶에는 변화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렇다면 십자가의 은혜를 믿는 사람의 삶은 어떠해야 합니까?
그렇다면 십자가의 은혜를 믿는 사람의 삶은 어떠해야 합니까?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계속 내가 삶의 주인으로 살아도 되는 것일까요?
십자가의 은혜를 믿는다면 삶의 주인이 바뀌어야 합니다.
3. 십자가의 은혜를 믿는다면 삶의 주인이 바뀌어야 합니다
3. 십자가의 은혜를 믿는다면 삶의 주인이 바뀌어야 합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더러운 귀신이 나갔다가 다시 돌아옵니다
더러운 귀신이 나갔다가 다시 돌아옵니다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간 이야기를 하십니다.
귀신은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쉴 곳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쉴 곳을 찾지 못하자 원래 있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귀신이 돌아왔을 때 집은 깨끗하게 청소되고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전보다 훨씬 좋아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집이 비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이 비어 있었습니다
집은 깨끗했지만 새로운 주인이 없었습니다.
귀신이 나간 자리에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귀신은 자신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일곱은 완전함을 나타내는 숫자입니다.
이전보다 훨씬 더 악하고 심각한 상태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나빠졌습니다.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이 말씀은 단순히 한 개인의 귀신 들림만을 설명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악한 세대가 이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했습니다.
병든 사람이 회복되고 귀신이 쫓겨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외적으로는 종교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중심에는 예수님이 없었습니다.
그 결과 마지막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집이 깨끗한가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집이 깨끗한가가 아닙니다
그 집에 누가 주인으로 있는가입니다
그 집에 누가 주인으로 있는가입니다
나쁜 습관을 끊는 것은 중요합니다.
성격을 고치고 바르게 살아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교회에 출석하고 봉사하며 선한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외적인 변화만으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깨끗한 집이 하나님 나라는 아닙니다
깨끗한 집이 하나님 나라는 아닙니다
예수님이 주인으로 계셔야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이 주인으로 계셔야 하나님 나라입니다
신앙은 단순히 나쁜 것을 제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있는 욕심과 죄를 조금씩 비워 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비워진 삶의 자리에 예수님께서 주인으로 들어오셔야 합니다.
친구와 함께 했던 성경공부 이야기
십자가의 은혜를 믿는다는 것은 삶의 주인이 바뀌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믿는다는 것은 삶의 주인이 바뀌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내가 내 삶의 주인이었습니다.
내 생각이 기준이었고,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은혜를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받아들입니다.
이제는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내 생각보다 주님의 말씀을 더 신뢰하려고 합니다.
집의 주인이 바뀌면 집의 모습도 달라집니다
집의 주인이 바뀌면 집의 모습도 달라집니다
새로운 주인이 들어오면 집을 사용하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가구의 위치도 바뀌고 집 안의 질서도 달라집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삶의 주인이 되시면 우리의 삶도 달라집니다.
생각이 달라지고 말이 달라집니다.
관계와 선택이 달라지고 삶의 우선순위가 달라집니다.
신앙은 삶의 주인이 바뀌는 것입니다
신앙은 삶의 주인이 바뀌는 것입니다
적용
적용
1. 광야의 이스라엘 — 증거가 부족했던 것이 아니다
1. 광야의 이스라엘 — 증거가 부족했던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의 열 가지 재앙을 보았습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것도 보았고, 광야에서 만나가 내리는 것도 경험했습니다.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그들은 증거를 보지 못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어제까지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물이 없으니 하나님이 계신지 의심합니다.
여기서 성도들에게 이렇게 물으면 강합니다.
여러분,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어제까지 받은 은혜는 잊어버리고, 오늘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묻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물을 믿는 것입니까?
여러분,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어제까지 받은 은혜는 잊어버리고, 오늘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묻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물을 믿는 것입니까?
2. 입주 청소를 마친 빈집
2. 입주 청소를 마친 빈집
새집에 들어가기 전에 입주 청소를 합니다. 먼지를 닦고 바닥을 깨끗하게 청소합니다. 창문도 닦고 집 안을 잘 정돈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깨끗해도 아직은 집이 아닙니다.
그 안에 가족이 들어와야 합니다. 식탁이 놓이고, 밥 냄새가 나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야 비로소 가정이 됩니다.
깨끗하지만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은 그냥 빈집입니다.
이것을 신앙으로 연결합니다.
우리의 신앙도 입주 청소에서 끝날 수 있습니다.
술을 끊고, 나쁜 습관을 버리고, 교회에 나오고, 봉사도 시작합니다.
겉으로는 깨끗하게 정돈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예수님이 주인으로 계십니까?
3. 예수님은 손님입니까, 주인입니까?
3. 예수님은 손님입니까, 주인입니까?
손님에게는 집 전체의 열쇠를 주지 않습니다.
손님은 정해진 시간에 들어왔다가 돌아갑니다. 집주인이 허락한 공간만 사용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그렇게 대할 수 있습니다.
주일에는 예수님을 모신다.
예배드릴 때는 주님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돈 문제에는 들어오시지 못하게 한다.
자녀의 미래에는 간섭하지 못하게 한다.
용서하지 못하는 상처의 방은 잠가 둔다.
내가 세운 계획과 욕심은 그대로 붙잡고 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여러분의 삶에 잠시 찾아오는 손님입니까?
아니면 모든 방의 열쇠를 가지고 계신 주인이십니까?
아직 예수님께 열어 드리지 않은 방은 어디입니까?
아직 예수님께 열어 드리지 않은 방은 어디입니까?
재물의 방입니까?
자녀의 방입니까?
미래와 계획의 방입니까?
용서하지 못한 상처의 방입니까?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자존심의 방입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계속 사랑의 증거를 보여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가리키십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이미 보여 주지 않았느냐.”
우리는 하나님께 살아 계신 증거를 요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빈 무덤을 가리키십니다.
“내가 죽음을 이기고 살아났음을 이미 보여 주지 않았느냐.”
만약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는 기도에 당장 응답하지 않으셔도, 십자가만으로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까?
내가 원하는 길을 열어 주지 않으셔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실 수 있습니까?
집만 청소하고 끝내지 마십시오.
빈집으로 남지 마십시오.
예수님을 손님처럼 대하지 마십시오.
잠가 둔 방문을 여십시오.
삶의 모든 열쇠를 주님께 드리십시오.
집만 청소하고 끝내지 마십시오.
빈집으로 남지 마십시오.
예수님을 손님처럼 대하지 마십시오.
잠가 둔 방문을 여십시오.
삶의 모든 열쇠를 주님께 드리십시오.
십자가의 은혜를 믿는다면 삶의 주인이 바뀌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믿는다면 삶의 주인이 바뀌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