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1장 3-9절(주 예수 나의 산 소망)

베드로전서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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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믿고 살아가면서 문득, 왜 이렇게 내 삶이 불안정하지? 왜 이렇게 마음 둘 곳 없지? 라고 느낀 적 있으십니까? 
당연한 겁니다. 
우리는 이 땅에 뿌리 내리고 살아갈 자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행지의 호텔방이 아무리 좋아도, 거기서 평생 살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돌아갈 내 집, 나의 평안한 집이 있다는 걸 아니까, 불편해도 지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교회의 정체성을 나그네, 체류자, 여행자 라고 합니다. 
정처 없이 떠돌아 다니는 나그네 된 교회가 아니라, 
삼위 하나님이 택하여 세우신, 나그네가 된 교회 입니다. 
영원한 집이 있음을 알기에, 세상 사람들 처럼 같은 일상을 보내더라도 
나의 신분과, 내가 돌아가야 할 곳과 바라보아야 할 것을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두 가지 완벽한 장치를 주셨습니다. 
정체성과 목표, 목적을 정확하게 알게 하시기 위하여 구원 이라는 첫번째 장치를 주셨고, 
나그네 삶의 불안정한, 고난의 삶을 버텨내고, 잘 걸어가기 위해 믿음이라는 두번째 장치를 주셨습니다. 
이 두가지 장치는 우리를 향한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으로 주어진 은혜의 선물 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3절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원문번역본 입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의 많으신 긍휼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심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살아 있는 소망을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교회를 세우시고, 택하신 나그네로 흩어지게 하시면서, 
구원과 믿음의 선물을 주신 삼위 하나님을 찬양하자 라고 합니다. 
교회의 시작에는 삼위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성삼위 께서 시작하지 않으시면, 교회도, 성도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있다는 사실 뒤에는, 삼위 하나님이 영원히 서 계시다는 이 사실을 한시도, 그리고 절대로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찬송하리로다 라는 이 말은 단순한 인사말이 아닌,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성취하신 놀라운 구원 사역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하여 베드로는 오늘 본문에서 과거 - 현재 - 미래 라는 시간을 붙여 설명합니다. 
앞서 말씀 드린 구원과 믿음 이라는 두 가지 장치를 시간이라는 축을 붙여, 나그네 된 우리의 삶을 어떻게 인도하시는 지를 말씀을 통해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번째, 우리에게 거듭남 이라는 과거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본문 3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부활 사건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자들의 죄를 대신 지고 죽으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신 사건 입니다. 
생명이 사망을 삼킨 사건 이며, 사망이 더이상 믿는 자들의 주인 노릇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건 입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사건이 우리 가운데 임하였습니다. 
썩을 것을 입고, 죽음을 입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썩지 아니함과 죽지 아니함을 입고 사망에서 승리 하였습니다. 
그래서 거듭남은 영적인 재 창조 입니다. 
하나님의 생명, 영원한 생명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인생과 영혼 가운데, 긍휼과 은혜로 폭포수와 같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이 세상의 어떤 단어로, 표현으로 담아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다. 
이것 만으로도 영원토록 찬양해야 할 확실하고 충분한 이유 입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이 아니죠~ 
거듭남..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새롭게 태어나게 된 우리에게 
두번째, 부활로 얻은 살아 있는 소망을 주셨습니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목적, “왜 우리를 구원하셨지?” 를 생각해 볼 때, 
구원하심의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살아있는 소망을 붙잡게 하시기 위함 입니다. 
살아있는 소망은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생명에 기초를 둡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스스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부활이 없기 때문에, 
부활이 없는 세상과, 나 스스로에게 소망을 두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산 소망은 영적 네비게이션과 같습니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다 라는 것으로 만족하며 머물러 있지 않고, 
영원한 산 소망 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 길을 따라가는 자가 택하신 나그네 된 교회 입니다. 
그래서 살아 있다는 것은 세상에서 주는 기만, 공허한 거짓 소망과 반대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공허한 거짓을 진실이라고 속여서 우리의 귀와 마음에 속삭입니다. 
부동산, 주식, 건강, 명예 등 이런 조건들은 흔들리면 사라져버리게 됩니다. 
코로나가 지날 때 즈음에 교회 근처에 있던 아파트에서 젊은 청년이 뛰어내려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오후에 그것도, 학생들이 하교할 시간에 벌어진 일이라 많은 주민들이 충격을 받았던 일이었습니다. 
나중에 보니, 코로나 시기에 한참 붐이 불었던 비트코인에 부모님의 통장에 있는 돈과, 아파트를 담보로 몰래 잡아서 다 집어 넣었는데, 결국 공중분해 되어 버리고 엄청나게 많은 빚을 지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된 부모님과 다툼 끝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청년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것이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거짓 소망의 민낯입니다. 
세상은 계속 속삭입니다. 
돈이 너를 지켜 줄꺼야~ 아파트 평수가, 너의 건강이 네 미래를 책임져 줄꺼야~ 
그런데 여러분, 진짜 그렇던가요? 
이런 세상의 조건이 흔들리면, 우리 인생도 같이 낭 떨어지로 떨어집니다. 
하지만 우리 예수님은 다릅니다. 
세상이 아무리 흔들고, 사망이 우리를 위협해도,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주 예수 나의 산 소망을 우리의 손에 꽉 쥐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이 소망을 따라 살아가는 자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예비 하심이 준비 되어 있습니다. 
4절 입니다.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하나님은 산 소망을 따라 살아가는 택하신 나그네들에게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업을 준비 해 놓으십니다. 
베드로는 이 유업을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약속 되었던 땅의 개념과 유업을 대비시켜 설명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 처럼, 구약의 땅의 유업은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인해 이방민족에게 더럽혀 졌고, 결국 바벨론 포로기 때 완전히 상실 되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즉, 지상의 유업은 썩고, 더러워지며, 쇠할 수 있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설명하는 유업은 어떤 것입니까? 
진짜 유업은 팔레스타인이라는 땅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누리는 부, 명예, 건강, 성공이 우리의 유업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통지, 영원한 안식이 우리의 유업입니다. 
만물의 주인이시며, 교회와 우리의 삶을 시작하게 하신 삼위 하나님 그 자체가 우리의 영원한 유업입니다. 
이것을 이미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셨다 고 말씀하십니다. 
인터넷 쇼핑을 하고 결제 버튼을 누르면 결제완료, 배송시작 문자가 뜹니다. 
아직 내 손에 물건은 없지만, 내꺼 아니면 어떻게 하지? 안오면 어떻게 하지? 걱정하며, 잠도 못자고 이러지 않습니다. 
이미 결제 되었고, 내 이름으로 확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나라, 유업이 이렇게 이미 확보된 상태 입니다. 
베드로는 하늘에 간직 하신 것 이라고 완료형으로 선포 합니다. 
지금 우리의 나그네 길이 외롭고, 손에 쥔 것이 없어 보여도, 
영원한 유업이 완벽하게 보관 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이 믿어질 때 우리는 오늘을 버텨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확신하며 기다릴 수 있느냐 입니다. 
살아있는 소망을 소유하고 살아가기에는  이 땅에서의 삶은 너무나도 고되고, 힘이 듭니다. 
때로는 눈 앞에 목적지가 잘 보이지 않는, 언제 끝날 지 모르는 고통과 문제 속에 살기도 합니다. 
이렇게 불안해 하는 우리에게 베드로는 구원의 위대한 안전장치를 선포합니다. 
5절 새번역 성경 입니다. 
5.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능력으로 여러분을 보호해 주시며, 마지막 때에 나타나기로 되어 있는 구원을 얻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은 유업 만 보호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유업을 받기 위한 상속자들도 하나님의 능력 안에 보호하십니다. 
무엇으로 보호하십니까? 
믿음을 통하여..우리의 믿음을 보신다고 하십니다. 
문제는 이 믿음이 나의 노력으로 해결되고 주어질 것이 아닙니다. 
저희 아내가 아파트로 이사를 하고 난 뒤에 생긴 취미가 화분을 키우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베란다에 앉아서 뽑았다, 심었다, 옮겼다 를 반복 합니다. 
가만히 보니까 화분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게 만드는 건 그 나무 스스로가 아니더라구요
아침마다 물도 주고, 이쁘다고 하고, 볕 잘 드는 곳으로 옮겨주는 아내의 손길 덕분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이와 똑같습니다. 
내 믿음이 왜 이렇게 약할까, 왜 이렇게 쉽게 흔들릴까 
더이상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우리를 구원 이라는 화분에 심으시고, 때에 따라 은혜의 물을 주시며 가꾸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 이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정성 어린 손길 속에서 자라나는 우리의 믿음을 기쁨으로 바라보시며, 
그 걸음이 멈추지 않도록 우리를 끝까지 지키고 보호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은 항상 현재 진행형 입니다. 
이렇게 자라나는 믿음의 꽃이,  
고되고, 힘들며,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현실 가운데,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6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믿음이 현재 진행형이라면, 고난도 마찬가지 입니다. 
6절을 다시 보시면 우리의 인생은 여러가지 시험으로 계속 근심하게 된다고 합니다. 
시험과 고난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어서 오히려 지속적인 고난이 우리에게 너무나도 큰 기쁨이 된다고 합니다. 
베드로 서신을 위로의 서신이라고 불리어집니다. 
그런데 고난을 잘 이겨낼꺼야, 복받을 꺼야, 긍정적으로 생각해, 잘 될꺼야 가 아니라, 
고난이 기쁨이다 는 사실을 강조하는 역설의 위로 입니다. 
왜 고난이 기쁨이다 라고 합니까? 
우리에게 살아있는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기쁨을 주시는 분, 
먼저 우리보다 더 한 십자가의 고통과 고난과 죽음을 경험하신 우리 주 예수께서, 
나의 살아있는 소망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하나님이 고난을 어떻게 우리에게 사용하시는 지도 알려 줍니다. 
7절 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우리의 믿음을 단련, 연단 하십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한 믿음의 연단으로, 
세상의 불순물을 제거 하고, 신자의 믿음을 순결하게 합니다. 
그리고 고난을 통해 나의 믿음의 실체를 증명하게 하십니다. 
고난으로 우리의 인생을 망가뜨리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빚어 가시며, 세워가시는 중 입니다. 
고난이 왔을 때, 고통 가운데 우리는 누구를 먼저 찾고 의지합니까? 
비록 지금은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연단하시는 고난의 현장 속에서 다른 무엇이 아닌, 
오직 하나님만을 다시 찾고 의지하게 만드십니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더욱 깊고 단단하게 빚어가십니다. 
그러므로 연단없는 믿음은 없습니다. 
주님은 이런 살아있는 진정한 믿음을 우리에게 원하고 계십니다. 
시험을 통해 일시적인 근심이 생기지만, 
그러나 그런 것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살아있는 소망에 뿌리를 내린 깊고도 변치 않는 기쁨을 감소시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세번째로, 하나님을 보지 못하나 기뻐하는 영광스러운 구원을 믿음으로 바라보게 하십니다. 
우리의 눈은 지금 고난을 보지만, 우리의 믿음은 장차 임할 구원의 완성을 고대 합니다. 
8-9절 입니다.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시련이 그치지 않지만, 오히려 연단을 통해 참된 사랑이 솟아나게 합니다. 
이것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바로 믿음 입니다. 
그래서 찬송가 442장 저 장미꽃 위에 이슬 후렴부에서 이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비록 현재의 고난으로 일시적인 근심이 있을 지라도, 
미래에 완성될 구원과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얻을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바라볼 때, 
성도는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오늘도 기쁨으로 나그네의 길을 걸어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나그네 입니다. 
기다리는 신앙이란, 오늘도 주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황홀한 기쁨으로 채워지는 삶 입니다. 
이 기쁨의 삶은 이 세상에서의 풍요와 건강과 복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세상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는 믿음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 기다림 속에 홀로 두지 않으십니다. 
또한 그 기다림을 전부 우리의 노력과 능력에 의존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과거에 교회를 세우시고, 앞으로도 교회를 더욱 든든히 세워 나가실 하나님께서 
오늘도 교회와 함께 하시며 권능으로 우리를 보호 하십니다. 
우리에게 살아있는 소망을 허락하신 주님으로 인한 즐거움을 영원토록 찬양하며,
믿음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 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누군가 ‘예수 믿는 다는 것이 당신에게 무슨 뜻입니까?’ 라고 질문한다면 무엇이라 대답하시겠습니까? 
이 질문에 세상의 축복과 성공을 떠올리기 보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살아있는 소망임을 고백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 합니다. 
주 예수를 나의 살아있는 소망으로 주셨습니다. 
그 소망을 풍성히 누리고 살아가고 계십니까? 
예수 믿고 성공하거나 큰 부자가 되지 않았어도, 
거룩한 믿음과 성결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힘입어 살아가는 자이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고 계시는
현재적 구원을 착실하게 이루어가고 있는 성공하고, 칭찬받는 성도와 교회 입니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소망 위에 우리의 신앙과 삶을 잘 세우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죽기 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을 우리 또한 사랑함으로, 
우리의 매일의 삶이 세상이 감당치 못할 영광스러운 즐거움과 산 소망으로 가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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