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과 믿음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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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원망과 믿음 사이

본문: 요한복음 19장 17-18절

찬송: 543장 어려운 일 당할 때

말씀의 문을 열며

우리는 손주와 대화를 하다 보면 이상한 것을 느낍니다. 우리가 정말 궁금한 것은 "밥은 먹었니, 아프지는 않니" 하는 것인데, 정작 손주는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어 합니다. 말하는 사람이 하고 싶은 이야기와 듣는 사람이 듣고 싶은 이야기는 이렇게 다를 때가 많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듣고 싶은 말씀만 골라 들으려 할 때가 있지만, 정작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말 하시고 싶으신 말씀은 따로 있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오래 읽어 왔어도, 습관처럼 익숙한 구절만 되뇌다가 그 구절 속에 담긴 하나님의 진짜 마음을 놓칠 때가 많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진짜 하고 싶으신 이야기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고난 앞에서 엇갈린 두 시선

요한복음 19장 17-18절 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그 결정적인 순간을 이렇게 짧게 기록합니다. "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요 19:18). 그것이 전부입니다. 어디에 못을 어떻게 박았는지, 그 순간 주님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하셨는지, 아무 설명이 없습니다. 사복음서 저자들 모두가 그 극적인 순간을 이렇게 짧게 지나갑니다. 우리 같으면 가장 자세히 쓰고 싶었을 그 순간을, 그들은 오히려 가장 간략하게 넘어갑니다. 그들이 정말 전하고 싶었던 것은 주님이 얼마나 아프셨는가가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왜 죽으셨는가였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짧은 기록 속에서도 사복음서가 공통적으로 빠뜨리지 않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두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네 명의 저자가 각기 다른 독자를 향해 각기 다른 목적으로 글을 썼음에도, 이 두 사람의 이야기만큼은 하나같이 붙들고 놓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담긴 배치라고 믿어야 합니다.
이 두 사람은 단순한 도둑이 아니었습니다. 로마 시대의 십자가 처형은 최고의 형벌이었고, 이들은 큰 죄로 이미 사형이 선고된 죄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혹독한 매질을 당한 뒤 지친 몸을 이끌고 골고다까지 올라왔습니다. 손과 발에 못이 박히는 순간, 그 고통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세 개의 십자가가 나란히 세워졌습니다. 가운데는 예수님, 좌우에는 이 두 죄인이었습니다. 십자가 아래에 서 있던 사람들의 반응도 하나로 모이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가슴을 치며 슬퍼하였고, 어떤 이들은 오히려 큰 소리로 조롱하였습니다.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도 사람의 마음은 이렇게 갈라집니다. 이 광경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두 강도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은 놀랍게도 자신을 못 박은 사람들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죽어가면서도 원수를 용서하는 이 모습은, 곁에서 함께 죽어가던 두 사람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충격이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을 죽이는 사람들을 저주해도 이상하지 않을 그 순간에, 주님은 오히려 그들을 위해 용서를 구하셨습니다. 그 순간 두 강도의 마음속에는 하나의 질문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이분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신가?" 그리고 이 질문에서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길을 걸어갑니다.
한 사람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눅 23:39). 이 말 속에는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없습니다. 그저 자신의 고통이 사라지기만을 바라는 원망이 담겨 있을 뿐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누구신지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왜 나를 이렇게 고통 속에 내버려 두느냐"는 원망뿐이었습니다. 이 반응은 우리 주변에서도 자주 보게 되는 반응입니다. 우리도 힘든 일을 만나면 "하나님이 살아 계신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믿기 때문에 생기는 고민이 아니라, 오히려 그 고통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못하겠다는 마음입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을 자신의 문제 해결사로만 대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지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관심은 오직 지금 당장 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 그것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 사람의 반응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눅 23:41). 그는 자신의 죄를 인정했고, 동시에 예수님께는 아무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절망의 순간에도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려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통이 즉시 사라지는 것보다, 예수님을 붙드는 것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믿음이라 부릅니다. 그는 예수님께 자신의 문제를 당장 해결해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보았고, 그 알아봄 자체가 그의 마지막 순간을 완전히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상황을 지나는 마음의 방향

두 사람의 차이는 도덕적인 차이가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은 고난 그 자체만을 바라보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 고난 가운데서도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이 차이가 그들의 영원한 운명을 갈라놓았습니다. 같은 십자가, 같은 고통, 같은 시간 속에 있었지만 두 사람이 바라본 방향은 정반대였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우리가 겪는 고난의 크기나 종류가 우리의 믿음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는가가 우리의 믿음을 결정합니다.
가을걷이를 앞두고 태풍이 몰아쳐 논이 통째로 물에 잠기는 일이 있습니다. 애써 키운 벼가 하룻밤 사이에 쓰러지고,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심정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기 어렵습니다. 그런 상황 앞에서 어떤 농부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데 왜 하필 내 논에 이런 일이 생기는지 모르겠다." 그 마음이 이해가 되고도 남습니다. 그런데 같은 피해를 당하고도 어떤 농부는 이렇게 말합니다. "물이 빠지면 다시 심으면 된다. 하나님이 나를 다시 시작하게 하시는가 보다." 똑같이 논이 잠긴 상황 앞에서, 한 사람은 하나님을 원망했고 한 사람은 하나님을 더 붙들었습니다. 상황은 하나도 다르지 않았지만, 그 상황을 지나가는 마음의 방향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이런 두 모습이 함께 있습니다. 힘든 일을 지나며 오히려 신앙이 더 깊어지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힘든 일을 겪은 뒤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 갈림길에 서 있는 질문은 언제나 같습니다. 우리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것이 고난 자체인지, 아니면 그 고난 가운데 함께 계신 예수님인지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운명은 사실 이 두 강도의 운명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음 앞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죄 없으신 주님은 죄인인 우리와 함께, 우리를 위하여 그 십자가의 자리에 달리셨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십자가 아래에서 구경만 하는 사람으로 여긴다면, 은혜라는 말이 공평하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구경꾼으로 서 있으면 "평생 교회 다니고 애쓴 나는 무엇이고, 일평생 죄만 짓다가 마지막에 예수 믿었다고 구원받은 저 강도는 무엇인가?"라는 섭섭함이나 불공평함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 역시 하나님 앞에서 똑같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강도)"임을 알게 되면, 나 같은 죄인을 살려주신 십자가가 놀라운 감사와 은혜로 다가오게 됩니다. 우리도 절망 속에 있습니다. 우리도 고통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 예수님이 함께 계십니다. 평생을 살면서 우리는 크고 작은 십자가를 여러 번 지게 됩니다. 몸이 아플 때도 있고, 마음이 무너질 때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낼 때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 앞에는 언제나 같은 갈림길이 놓입니다. 원망의 길로 갈 것인지, 믿음의 길로 갈 것인지 하는 갈림길입니다.

원망의 자리를 떠나 믿음을 선택하는 삶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고통이 지금 당장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참으로 필요한 것은, 그 고통 한가운데서도 예수님을 붙들고 그분께 우리의 남은 인생을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원망은 우리를 절망 속에 그대로 가두어 둡니다. 그러나 믿음은 그 절망 속에서도 소망을 붙잡게 합니다. 우리는 오늘 이 두 사람 중 어느 편에 서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지나온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면, 우리 역시 원망의 자리에 서 있던 순간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를 다시 믿음의 자리로 부르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우리와 함께 그 십자가의 고통을 나누셨습니다. 원망과 믿음, 그 사이에서 우리는 이제 믿음을 선택합니다. 우리의 고난이 사라지지 않아도, 우리는 그 고난 가운데 계신 주님을 바라봅니다. 그것이 오늘 이 본문이 우리에게 전하는 참된 은혜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남은 걸음마다, 이 믿음이 함께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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