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와 우리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 viewNotes
Transcript
김해교회 오후예배 설교
김해교회 오후예배 설교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들어가는 이야기
들어가는 이야기
샬롬, 반갑습니다. 저는 유년부를 섬기고 있는 제찬양 전도사입니다.
먼저 우리 다 함께, 내 옆과 뒤에 계신 성도님들과 이렇게 인사를 나누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교회입니다."
스포츠는 참으로 많은 이들을 하나로 묶어 줍니다.
얼마 전, 온 세계가 뜨겁게 지켜보던 월드컵이 아쉽게도, 그러나 멋진 경기 끝에 스페인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스페인은 연장 접전 끝에 아르헨티나를 1대 0으로 꺾고 정상에 올랐습니다.
세계인이 몇 주 동안 밤잠을 설쳐 가며 함께 웃고 함께 아쉬워했습니다.
이런 감격은 제게도 오랜 기억이 있습니다. 2002년, 대한민국은 첫 4강 진출을 이루었습니다.
그 뜨거웠던 날의 기억은 지금도 어린 시절 제 마음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날 많은 이들은 집에서 혼자 응원하지 않았습니다.
거리로, 광장으로 뛰어나와 남녀노소가 함께 목이 터져라 외쳤고, 그렇게 우리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날을 떠올릴 때 우리 안에 남는 것은 '혼자'였다는 기억이 아니라 '함께'였다는 기억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아마 이 자리에 계신 우리 모두에게 그 감격이 강하게 남아 있을 것입니다.
스포츠가 우리를 이토록 하나 되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본래 '함께'일 때 가장 큰 기쁨을 누리도록 지음받았기 때문입니다.
축구는 열한 명이 함께하는 경기입니다. 한 경기를 치르는 동안 참 많은 일이 일어나지만,
그중에서도 팀에게 결코 반갑지 않은 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퇴장'입니다.
실제로 이번 월드컵 결승에서도, 아르헨티나는 경기 막판 선수 한 명이 퇴장당해 열 명이 되었고,
그 빈자리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채 결국 승부가 갈리고 말았습니다
한 사람이 빠지는 순간, 팀은 흔들리고 약해집니다.
설령 그 사람의 능력이 나보다 조금 부족해 보였을지라도,
그가 자리를 비우는 순간 팀 전체가 힘을 잃습니다.
열한 명이 채워져 있을 때 비로소 온전한 한 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비단 축구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펼칠 성경 말씀이, 바로 이 '함께'와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본문의 배경
성경본문의 배경
이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이 편지를 받은 고린도교회가 어떤 교회였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는 당시 세계에서 손꼽히는 항구 도시였습니다.
두 개의 바다를 잇는 길목에 있어서, 온갖 나라의 배와 상인과 물건이 드나들었습니다.
돈이 넘쳤고, 사람이 넘쳤고, 문화가 넘쳤습니다.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유대인도 있었고 헬라인도 있었고, 부자도 있었고 가난한 종도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고린도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뒤섞인 도시'였습니다.
바울은 두 번째 선교 여행 중에 이 도시에 와서 약 일 년 반 동안 머물며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러니 고린도교회는 처음부터 배경이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 교회였습니다.
오늘 본문 13절에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건 그냥 예로 든 표현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 교회 안에 그런 사람들이 다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하나가 되기는커녕 자꾸 갈라졌습니다.
이 편지 앞부분을 보면, 어떤 사람은 "나는 바울파다", 어떤 사람은 "나는 아볼로파다" 하며 편을 갈랐습니다.
예배 자리에서도 부자는 먼저 배불리 먹고, 가난한 사람은 뒤에서 굶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바로 오늘 본문 앞뒤(12장 전체)가 다루는 문제는 '은사' 다툼이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은사가 참 풍성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그 풍성함이 오히려 시험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은사에 등급을 매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 사람 은사가 더 대단해", "내 은사는 별거 아니야." 그래서 어떤 사람은 우쭐해서 남을 무시했고,
어떤 사람은 주눅이 들어 '나 같은 건 교회에 있으나 없으나'라고 스스로를 낮췄습니다.
바로 이 갈라지고 서로를 견주던 교회를 향해, 바울이 꺼낸 그림이 '몸'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사실 '몸'이라는 비유는 그 시대 사람들에게 낯선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사회에서는 이 '몸' 비유를 주로 힘 있는 사람들이 사용했습니다.
"몸에 머리가 있고 손발이 있듯, 사회에도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이 있으니, 낮은 사람은 제자리에서 윗사람을 잘 섬겨라."
이렇게 사람을 위아래로 나누고, 아랫사람을 그 자리에 묶어 두는 데 쓰이던 논리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똑같은 '몸'이라는 그림을 완전히 뒤집어 버립니다.
바울은 이 비유로 낮은 사람을 누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약해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다"고, "덜 귀해 보이는 지체를 더 귀하게 여기라"고 말합니다.
세상은 몸을 '누르는 데' 썼지만, 바울은 몸을 '세우는 데' 씁니다.
세상은 몸을 '줄 세우는 데' 썼지만, 바울은 몸을 '끌어안는 데' 씁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읽는 이 말씀은, 은사가 넘치지만 갈라졌던 한 교회를 향한 바울의 간절한 호소입니다.
"여러분은 서로 다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한 몸입니다. 그러니 아무도 스스로를 빼지 말고, 아무도 남을 밀어내지 마십시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이 놓여 있는 자리입니다.
삶으로 (적용)
삶으로 (적용)
그렇다면 이 말씀이 오늘 우리 교회, 우리 공동체에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저는 세 가지 마음의 변화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첫째, 서로를 '견주는 눈'에서 '고마워하는 눈'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가 갈라진 뿌리에는 '비교'가 있었습니다. "저 사람 은사가 더 낫다", "내 것은 별거 아니다." 이렇게 서로를 견주기 시작하면, 공동체는 반드시 금이 갑니다.
우쭐한 사람과 주눅 든 사람으로 갈라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이 바뀌어야 할 첫 자리가 바로 여기입니다.
옆 사람을 볼 때 '나보다 나은가, 못한가'를 재는 저울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 대신 '저 사람이 있어서 이 몸이 온전하구나' 하고 고마워하는 것입니다.
눈이 손에게 고마워하고, 손이 발에게 고마워하듯 말입니다. 조용히 뒤에서 섬기는 분, 눈에 잘 띄지 않는 자리를 지키는 분 — 그분들이 없으면 이 몸은 결코 온전할 수 없습니다.
그 사실을 마음으로 인정하는 것, 그것이 첫 번째 변화입니다.
둘째, '나 하나쯤'이라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장 마음 아픈 대목은, 손이 발을 밀어낸 것이 아니라 발이 스스로 "나는 몸이 아니야"라고 물러선 장면이었습니다. 우리 공동체를 약하게 만드는 것은 때때로 큰 다툼이 아니라, 바로 이 조용한 물러섬입니다. "나 하나 없어도 교회는 잘 돌아가", "나 같은 사람이 뭘." 이렇게 스스로 뒷걸음질 치는 마음입니다.
축구 경기에서 한 사람이 빠지면 팀 전체가 흔들린다고 말씀드렸지요. 교회도 똑같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나 하나쯤'이 아니라, 이 몸을 이루는 없어서는 안 될 지체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이 자리에 두셨습니다. 그러니 스스로를 몸에서 빼지 마십시오. 이 마음 하나만 바뀌어도, 우리 공동체는 훨씬 더 단단해집니다.
셋째, 다름 앞에서 '한 몸'을 먼저 기억하는 것입니다.
한 교회 안에는 나이도, 자라 온 배경도, 생각도, 신앙의 색깔도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고린도교회가 그랬듯 우리도 그렇습니다. 이 다름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라질 필요도 없습니다. 문제는 다름 그 자체가 아니라, 다름 앞에서 우리가 무엇을 먼저 떠올리느냐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볼 때 '틀렸다'가 먼저 떠오르면 공동체는 갈라집니다. 그러나 '그래도 우리는 한 몸이다'가 먼저 떠오르면, 그 다름은 오히려 우리를 더 풍성하게 하는 하나님의 선물이 됩니다. 온 몸이 눈이기만 하면 아무것도 못 듣듯, 우리가 다 똑같다면 이 몸은 아무 일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서로 다른 우리가, '한 몸'이라는 한 가지를 붙잡을 때, 비로소 교회는 교회다워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한 몸 되게 하신 분은 우리가 아니라 성령님이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하나됨을 애써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하나됨을 서로 고마워하며, 아무도 빼놓지 않고, 다름을 끌어안으며 살아 내는 것입니다.
7월 10일부터 12일까지 제가 섬기고 있는 유년부는 여름성경학교를 은혜중에 진행하였습니다.
22명의 교사들과 36명의 1~3학년 유년부 친구들이 함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