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공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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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금은 공존입니다
제목: 지금은 공존입니다
본문: 마태복음 13장 24-30, 36-40절
본문: 마태복음 13장 24-30, 36-40절
찬송: 347장 허락하신 새 땅에
찬송: 347장 허락하신 새 땅에
말씀의 문을 열며
말씀의 문을 열며
우리는 오늘 밭 이야기로 말씀을 시작합니다. 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누구나 압니다. 아무리 좋은 씨를 골라 정성껏 뿌려도, 며칠 지나면 밭에는 잡초가 함께 올라옵니다.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내 김을 매도 잡초는 끝없이 올라옵니다. 뙤약볕 아래 허리를 굽혀 잡초를 뽑고 또 뽑아도, 며칠 지나면 그 자리에 새 잡초가 다시 올라와 있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이같은 잡초를 볼 때마다 뿌리째 당장 뽑아버려야 마음이 시원하고 곡식이 편하게 자랄 것 같은 마음을 가지는 것이 우리 인간의 솔직한 본능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속 주인은 조급해하는 종들에게 뜻밖의 명령을 내리십니다.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마 13:29)
이 가라지는 싹이 트고 자라는 초기에는 참밀과 외형이 너무나 똑같아서 경험이 많은 농부조차 쉽게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흙 속에서 가라지의 뿌리는 알곡의 뿌리와 복잡하게 얽혀 들어가기 때문에, 가라지를 강제로 뽑아내려다가는 소중한 곡식의 뿌리까지 함께 상하고 맙니다.
우리의 인생 밭에도 당장 뽑아버리고 싶은 가라지 같은 존재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아픈 상황들이 존재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비유를 통해 우리 삶을 흔드는 고난 앞에서 믿음의 사람인 우리가 어떤 마음을 품어야 할지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좋은 밭에도 가라지는 자랍니다
좋은 밭에도 가라지는 자랍니다
종들은 주인에게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한 심정으로 물었습니다.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가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마 13:27).
이 질문은 먼 옛날 농부들의 물음일 뿐만 아니라, 긴 세월 인생을 살아가며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던지곤 하는 가장 깊은 가슴속의 물음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선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왜 세상에는 이런 악이 존재하며, 왜 하필 바르게 살려고 애쓰는 내 삶의 밭에 이런 시련과 아픔이 찾아오는가?"라는 신앙적 질문입니다.
평생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오신 우리 성도님들 중에도 이 질문을 품고 홀로 눈물 흘리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자식들 바르게 키우고 가정을 지키느라 새벽 미명부터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땀 흘리고, 갯벌의 찬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살아오셨습니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도리어 한 자락이라도 나누며 살려고 애써왔습니다. 그런데도 뜻하지 않은 중병이 몸에 찾아오고,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와 배신을 당하며, 자녀의 일로 억울한 슬픔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내가 하나님 앞에 무엇을 그리 잘못했길래 내 삶에 이런 독보리 같은 가라지가 자라는가?" 하며 밤잠을 이루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주인은 이 물음에 명확하게 답하십니다.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마 13:28).
우리의 삶에 찾아온 고통과 아픔은 결코 우리가 하나님께 벌을 받아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실히 땀 흘리고 잠든 사이, 곧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영적 무방비의 때에 원수가 몰래 뿌리고 간 것입니다. 바르게 살려고 애쓴다고 해서 고난이 비켜가는 것이 아니며, 아무리 좋은 밭이라 할지라도 가라지는 자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첫 번째 깊은 위로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인생의 여정 가운데 지탱해 오신 그 고생과 억울함, 가슴앓이가 결코 우리의 잘못이나 신앙 부족 때문이 아니라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왜 지금 당장 가라지를 뽑지 않으실까요?
하나님은 왜 지금 당장 가라지를 뽑지 않으실까요?
주인의 설명을 들은 종들은 분개하며 당장 밭으로 달려가 가라지를 뿌리째 뽑아버리겠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이 가진 조급함과 한계입니다. 우리는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 내 삶을 괴롭히는 문제, 원수 같은 관계를 내 힘과 혈기로 당장 끊어내고 제거해 버리고 싶어 합니다. 내 눈에 악해 보이는 것을 당장 처단해야 하나님의 정의가 바로 선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대답은 단호합니다. "가만두라"(마 13:29)
왜 하나님은 지금 당장 가라지를 심판하지 않으시고 그냥 함께 자라도록 두실까요? 여기에는 하나님의 깊은 지혜와 자비가 숨어 있습니다.
먼저는, 우리 인간에게는 온전한 선악의 분별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눈앞의 겉모습과 나의 감정에 따라 성급하게 사람을 판단하지만, 싹이 자라는 동안에는 가라지인지 알곡인지 명확히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내 기분과 짧은 식견으로 누군가를 판단하고 제거하려 들면, 정작 하나님이 소중히 여기시는 알곡을 상하게 만듭니다. 인간의 성급한 칼날은 아직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는 죄인의 가능성마저 짓밟아 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 역시 과거에는 누군가에게 가라지 같은 존재였으나, 하나님의 끝없는 인내와 자비 덕분에 오늘 알곡의 자리로 변화된 자들이 아닙니다.
또 다른 이유는, 흙 속에서 곡식과 가라지의 뿌리가 너무나 깊이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가라지를 강제로 뽑아내면, 그 뿌리에 걸려 곁에 있는 소중한 알곡의 뿌리까지 통째로 뽑혀 나가 말라 죽게 됩니다. 하나님은 악인을 지금 당장 징벌하시는 것보다, 그 곁에 있는 단 하나의 알곡을 보호하시는 것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의 악을 지금 당장 번개로 치지 않으시는 까닭은, 악인 곁에 있는 선한 알곡들이 함께 상하지 않기를 바라시는 애타는 사랑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심판과 정죄는 우리의 영역이 아니라, 추수 때에 주님이 친히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의 몫은 조급한 재판관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을 끝까지 신뢰하며 견디는 '거룩한 인내'입니다.
가라지 곁에서 우리의 믿음은 더 단단해집니다
가라지 곁에서 우리의 믿음은 더 단단해집니다
그렇다면 가라지와 함께 살아가는 이 공존의 시간은 그저 무의미한 고통의 시간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악한 상황마저도 선으로 바꾸시어 당신의 백성을 다듬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염전에서 맑고 단단한 명품 천일염 소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떠올려 보십시오. 편안하고 그늘진 곳에서는 결코 단단한 소금 결정을 얻을 수 없습니다. 뜨거운 뙤약볕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매서운 바닷바람을 견뎌내며 수분이 증발하는 고된 시간을 통과할 때 비로소 순백의 소금 결정체가 맺어집니다.
가라지 곁에서 자라는 곡식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라지가 흙 속의 영양분과 수분을 빼앗으려 다투는 그 척박하고 거친 환경 속에서, 곡식은 살아남기 위해 뿌리를 흙속 더 깊은 곳으로 내리게 됩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단비를 더욱 간절히 구하게 됩니다. 시련의 바람이 불어올 때 곡식은 속이 더욱 꽉 찬 알곡으로 성숙해 가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지내온 수십 년의 세월이 바로 그러한 은혜의 시간이었습니다. 자녀를 가슴에 묻었던 눈물의 골짜기, 병상에서의 외로운 투쟁, 가난과 오해 속에서도 예배의 자리를 지켜낸 그 고난의 세월이 여기에 모인 우리 모두의 신앙을 정금같이 단련시켰습니다. 가라지 같은 고난이 우리를 무너뜨리려 했으나,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쓰러지지 않게 붙드셨고 오히려 우리 믿음의 뿌리를 하나님께 더 깊이 내리게 만드셨습니다. 젊은 날의 열정보다 지금 우리 모두의 믿음이 더 고결하고 깊어진 이유는, 바로 수많은 가라지 곁에서 인내하며 견뎌낸 성령의 세월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추수 때까지 인내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삶
말씀의 문을 닫으며: 추수 때까지 인내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삶
추수의 날, 곧 세상 끝날이 오면 주님께서 친히 거룩한 천사들을 보내어 알곡과 가라지를 명확히 가르실 것입니다. 가라지는 불에 사르고, 알곡은 주님의 아버지 나라 곳간에 모아들이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의 가라지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귀하고 보배로운 하나님의 알곡입니다.
우리 곁에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시련이 있고, 억울하게 만드는 가라지가 무성해 보일지라도 조급해하거나 절망하지 맙시다. 어떤 어둠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길 수 없으며, 어떤 가라지도 하나님의 알곡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내 손으로 가라지를 뽑겠다고 칼을 빼 드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오늘 하루를 사랑과 인내로 견뎌내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고 볕을 기다려 마침내 풍성한 열매를 거두듯, 추수꾼이신 주님이 우리를 당신의 영화로운 곳간에 들이실 그날까지 소망 가운데 이 삶의 밭을 함께 지켜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