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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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 393장
찬양 : 393장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
1.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
2. 악인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3.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4.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5.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폭력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6. 악인에게 그물을 던지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그들의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7.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서론 : 어린 아이의 거짓말
서론 : 어린 아이의 거짓말
어린 시절 저는 아버지에게 혼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일이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평소에는 매우 친밀한 친구 같은 아버지셨는데, 종종 혼날 일이 생겼을 때의 아버지는 정말 무서운 분이셨습니다.
왜 그렇게 아버지가 무서웠나 생각해보면, 회초리를 맞는 것이나, 큰 소리를 내신 것의 무서움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언제나 제가 거짓말 하는 것을 귀신 같이 알아채시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 당시 아직 예수님을 만나기 전 송정민이는 꽤나 영악한 어린이었는데,
잘못을 하면, 얼마나 교묘하게 실수한 사실을 은폐하고, 또 아니라는 증거를 조작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감쪽같이 숨겼다고 생각한 것들은 어찌나 정확하게 알아내시는지, 저는 아버지가 제 마음을 읽는 것 같았습니다.
잘못 때문에 벌 서거나, 회초리 몇 대 맞는 것보다,
아버지의 추궁으로 제 잘못이 낯낯이 드러나는 순간들이 어린 저에게는 얼마나 무서운 시간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제가 아빠가 되고 나니까, 아버지가 어떻게 제 거짓말을 알게 되었는지 드디어 그 이유를 알겠더라구요.
거짓말할 때 아이는 평상시와는 너무 달라지더라구요.
평소의 저희 아이들은 제 보호 안으로 들어오려고, 제 품에 안기고, 제 눈을 마주보고, 제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데,
거짓말 할 때의 아이들은 제 보호를 피하고, 제 눈을 피하며, 제 말에 대한 답변을 이리저리 피합니다.
아빠가, 부모가 자신에게서 도망치려는 아이를 어떻게 모를 수 있겠습니까?
아이가 거짓말을 감추려고 보이는 눈, 표정, 말투, 분위기, 그 모든 것이
아빠인 저를 사랑하고 신뢰하던 아이들의 모습과는 너무나 달라서 눈치채지 않으려해도 단 번에
“지금 이 아이가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구나.”하고 알게 된 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동안 제 거짓말이 아버지께 들킨 것 또한 거짓을 말할 때의 내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평소에 아버지를 사랑하고 신뢰하던 저의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평소에도 제가 저희 아버지를 늘 두려워하고, 함께 있는 것을 어려워하고 불안해 했다면
어쩌면 그 거짓말들은 들키지 않았을지도 몰랐겠습니다.
방 문을 닫고 들어가버리는 사춘기 자녀들의 거짓을 부모가 눈치 채기 어려운 이유도 이런 것이겠지요.
반대로 거짓말을 하면서도 부모의 품에 즐겁게 안기는 아이의 거짓말은 알면서도 속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거짓이란 도망치는 것입니다.
거짓은 진실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며, 특별히 우리를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도망하는 것입니다.
1절 말씀입니다.
시편 11:1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 아멘
다윗은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다는 말로 시를 시작합니다.
그렇습니다. 부모의 품에 파고드는 아이처럼, 다윗은 여호와를 신뢰할만한 보호자로 여기며 그 품에 파고 들었습니다.
그의 곁에 있는 세상 조언자들은 다른 산으로 도망하라 하지만, 다윗은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는 이미 하나님의 품 안으로 피해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정직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연약함을 애써 감추지도, 다른 보호자를 찾아 하나님의 품을 벗어나지도 않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다 큰 어른인 척,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척 할 필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자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한다면 좀 귀엽겠지만, 그것은 거짓입니다.
아이가 자기가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는 것처럼 행한다면 그것도 기특하겠지만 거짓입니다.
어른들은, 부모들은 아이들의 그런 거짓말을 눈치챕니다.
아이는 마땅히 보호가 필요하고, 도움이 필요한 법입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무서워요, 안아주세요 하는 것이 어린아이의 정직입니다.
하물며 하나님 앞에 어린 아이와 같지 않은 인생이 어디있겠습니까?
3절 말씀입니다
시편 11:3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다윗은 하나님의 보호를 의인이 서 있는 터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그 하나님의 품 안에 있을 때에야 의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 아래에 있을 때에야 정직한 자이며, 의인이며, 악을 이기는 승리자인 것이지
그곳을 벗어나 자기 자신의 ‘산’으로 도망쳐 올라가면 의인이고 뭐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라는 터 없이는 자신이 무엇도 못할 무력한 존재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척’하지 않습니다
시편을 읽다보면 다윗의 기도가 얼마나 처절합니까?
하나님 없이는 안되요, 원수 때문에 힘들어 죽겠어요, 너무 무서워요, 도와주세요!
그 기도들을 개역개정 성경 언어로 번역해놔서 그렇지 실제 느낌은 얼마나 간절한 애원이었겠습니까?
그대로 우리 기도로 삼기에는 쫌, 전도사 씩이나 되가지고, 수십년 신앙생활한 권사님, 장로님, 집사님 되가지고 이거 가오가 살지 않습니다
좀 더 멋있게, 좀 더 있어보이게 여유있게 기도할 수 있는데요.
주여 보호하소서! 치유의 광선으로 우리를 회복 시키소서!
소위 말해 배운 기도의 말투가 있잖아요.
유니티 워십에 청년들이 돌아가면서 대표기도를 하는데,
청년들의 기도문을 제가 가끔씩 검토를 합니다.
그때 제가 좀 거르고 수정하는 것이, 좀 덜 배운 것 같은 날 것의 말투를 수정해주고는 합니다.
대표 기도니까 좀 있어보이게 기도하라는 겁니다.
이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있어보이는 척’하며 실제로는 뭐 없는 자신을 숨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태도마저도 자기가 직접 요새를 쌓은 산으로 피하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지 못한 태도로 여겼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태도를 표현하는 단어를 잘 알고 있습니다.
자기가 뭐라도 되는 양 ‘있어보이는 척’하며 사실은 하나님께 거짓된 태도, 이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그렇기에 다윗은 시작부터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는데, 어찌 내 영혼에게 새 같이 산으로 도망하라 하냐며
‘있어보이는 신앙 생활’에 빠져있는 우리를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자를 사랑하시며, 거짓을 미워하십니다.
이는 더 설명할 것도 없이 너무 명확한 진리입니다.
예수님께서 분내시며 혼내신 자들은 언제나 거짓되고 교만한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특히 바리새인들을 보며 회 칠한 무덤이라 책망하신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들의 ‘있어보이는 신앙’ 행위는 예수님 보시기에 겉만 번지르르한 거짓이었습니다.
반면에 자신을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진 음식 찌꺼기를 주어먹는 개라고 인정하며,
예수님의 보호 안에 들어오려 했던 한 가나안 여인의 믿음은 칭찬하시고 보응하셨습니다.
정직한 자를 사랑하시며, 거짓을 미워하신 다는 말은, 결국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를 사랑하시며, 교만한자를 미워하신다는 말과 같습니다.
따라서 정직이란 겸손과 한 몸이지, ‘나의 당당함’이나, ‘나의 떳떳한 태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흔히 정직함을 떳떳함으로 착각합니다.
겉과 속이 한 결 같은 사람, 항상 있는 사실 그대로 팩트만을 말하는 당당함이 정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 사람들은 대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나는 말을 안했으면 안했지, 틀린 말은 안해. 또는 나는 천성적으로다가 거짓말을 싫어해. 하고 말이죠.
요렇게 말하는 대표적인 사람이 누구냐면 바로 접니다.
사실은 거짓말만 하면 아버지한테 들켰어서 반쯤은 트라우마 때문에 거짓말을 잘 안하는 거면서,
마치 정의감이 투철해서 진실만 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냥 답답한게 싫어서 내 마음 편하려고 한 말들이었으면서, 남을 위한 말들인 척 포장했습니다.
물론 정직에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진실을 말하지 않고 정직할 수는 없겠죠.
그런데 그렇게 진실만을 말하는 것을 뭐라고 하냐면, 팩트 폭행, 요즘은 줄여서 팩폭이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진실로 때리는 겁니다.
진실로 상처를 주고, 진실로 사람을 두드려 패는 겁니다.
상대가 아프다고 해도 나는 틀린 말은 안하는 사람이라, 거짓을 싫어하는 사람이라 나만 좋은 진실로 때려대는 것입니다.
그래도 진실을 말한 것이니까,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셨을까요? 아니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5절 말씀입니다.
시편 11:5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폭력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하나님께서 의인도 감찰하시는데, 그중에 드러난 숨은 악인들과, 특히 폭력을 좋아하는 자를, 뭐라구요? 마음에 미워하신다구요.
하나님께서는 몽둥이든, 진실이든, 그걸로 사람들을 때려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미워하십니다.
진실을 상처입히는 무기 삼았던 저를 하나님이 미워하십니다.
이 말씀을 더 진작에 알았어야 하는데.
이 엄중한 말씀을 더 진작에 읽고, 회개했어야 하는데.
제가 그동안 해왔던 모든 정제되지 않은 날선 진실의 말들이 부끄럽고 수치스럽습니다.
그 말들을 어떻게 다 주어담을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직은 진실이 전부가 아닙니다.
진실만으로는 우리는 자기 의에 빠진 교만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진실만 말한다는 교만은 상대방을 위하는 척 실제로는 자기 의를 따르는 거짓이며,
잘못된 마음의 동기를 진실이라는 포장지로 감춘 또 다른 거짓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진심이면 될까요?
아니요. 우리가 진심이라고 말하는 우리의 마음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였습니까?
이곳에 모인 단 한 사람이라도 그 마음의 진심이 하나님의 의에 이를 만큼 완전한 분이 계십니까?
아니, 인류 역사에 단 한 사람이라도 그의 진정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의에 이른 사람이 있었습니까.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아멘
우리의 마음은, 그 진심이란 것은 말보다 행동보다 더욱 쉽게 이기적이 되며, 더욱 쉽게 죄를 짓습니다.
성령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우리의 진심이란 언제나 악할 뿐입니다.
이것을 부인하시는 분이 있다면, 종교를 잘 못 찾아오셨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아멘
우리의 진실된 말에는 답이 없습니다.
우리의 진심에도 답이 없습니다.
우리가 의지할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죄의 속량이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은혜에 힘 입어, 하나님의 품 안에 어린 아이처럼 파고드는 것 외에는 진실로도, 진심으로도 정직함에 이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선 정직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나는 죄인 입니다. 나의 지혜로는 안됩니다. 오직 주님만이 나의 소망이십니다. 하고 고백하며
하나님 앞에서는 늘 연약하고, 작은 아이일 뿐인 나로서 드리는 겸손한 진실과 진심입니다.
이러한 정직으로는 단 한 사람도 진실로 때릴 수 없고, 나의 진심을 자랑할 수도 없습니다.
당당할 수도, 떳떳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 앞에선 정직은 그와는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 있습니다.
7절 말씀입니다
시편 11:7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자는 하나님의 얼굴을 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모습을 내가 본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 나의 모습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가 얼굴과 얼굴을 마주할 때, 마주한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보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듯이.
자녀가 부모의 얼굴을 보며 비로소 안심하고,
부모가 자녀의 연약함 마저도 사랑으로 품고 보호하듯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자는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앞에서 정직한 자녀들에게 자신 형상을 나타내십니다.
어제 주일 설교를 통해 신명기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여수룬’이라 부르신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럼 여수룬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수룬을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정직한 자라고 번역하고 신명기 33장 26절을 읽어봅시다.
신명기 33:26 “여수룬(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자)여, 하나님 같은 이가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신명기 33:29 “이스라엘(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자)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아멘
우리의 연약함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보호를 바라보고 , 하나님의 구원으로 말미암는 행복을 누리는 것!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자가 누릴 특권입니다.
정직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합시다.
겸손히 정직하여 하나님의 품 안에 거합시다.
할렐루야!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정직을 행하는 것에 구체적인 실천은 바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정직의 올바른 시작은 진실된 말의 선포가 아니라, 기도입니다.
진실한 회개의 기도이며, 진심어린 감사와 간구의 기도입니다.
늘 회개함으로 우리의 연약함과 죄를 진실되게 자백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하심을 진심으로 간구합시다.
하나님 앞에서 어린 아이처럼 정직합시다.
또한 사랑하는 지체들과, 우리의 이웃들에 대하여서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과, 온유함과, 겸손함과, 사랑으로 정직합시다.
진실을 무기 삼지도, 진심을 자랑 삼지도 말고, 온유함으로 사랑을 말합시다.
그리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축복이 되며,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위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하늘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으로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여수룬이 되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겠습니다.
<찬양 : 신실하게 진실하게>
말씀을 기억하며 기도합시다.
먼저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를 자복하며 나아갑시다. 진실된 회개의 기도를 드리시고,
하나님께 용서와 회복을 간구합시다.
주여, 우리의 입술로 지은 모든 폭력과 악을 용서하소서.
우리의 말과 행동이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정직하게 행하게 하소서
우리를 다스리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얼굴을 보여주소서!
함께 주님을 간절히 부르며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