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나는 누구인가?
26년 7월 29(82)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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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우리의 정체성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주제: 우리의 정체성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명제: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를 자신의 형상으로 지으셨고, 죄로 왜곡된 우리의 정체성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하십니다.
명제: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를 자신의 형상으로 지으셨고, 죄로 왜곡된 우리의 정체성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하십니다.
사도신경
사도신경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본문
본문
창세기 1:1, 26-28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인사
인사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주님 다시 오십니다. 아멘!
도입
도입
여러분은 노래방 가면, 리모콘 버튼 중에 폰트가 많이 지워져 있는 버튼이 뭔지 아세요?
취소, 시작 그리고 간주점프 버튼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주와 간주를 스킵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인트로가 주는 힘이있습니다.
짧은 쇼츠 하나 보겠습니다.
영상에서 설명하듯이 건반을 누르는게 곡의 시작 아닙니다.
연주자는 건반을 누르기 전부터 곡의 분위기와 속도, 첫 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건반을 누르기 전부터 이미 음악은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의 수련회도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수련회는 7월 31일에 출발하면서 갑자기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예배드리는 벧엘에도 수련회를 위한 플리마켓 행사 준비가 가득합니다.
선생님들이 기도하고,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수련회를 위해 기도하고 기대하는 모든 시간이 이미 수련회의 시작입니다.
수련회의 인트로가 될 수도 있고, 우리 신앙의 인트로가 될 수 있는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알아가 보겠습니다.
수련회에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믿고 있는 말씀을 봐야합니다.
대지 1 내 정체성의 시작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대지 1 내 정체성의 시작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성경의 첫 문장은 ‘태초에 내가’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태초에 하나님”으로 시작합니다.
성경은 첫 문장부터 하나님과 세상의 위치를 구분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시고,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마음대로 정의할 수 있는 절대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나의 생명과 가치와 목적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창조주와 피조물을 구별하는 것이 인간을 낮추고 무가치하게 만드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존재가 우연이나 실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여러분은 인스타나, 카카오톡 프로필을 자주 바꾸나요?
프로필 사진, 닉네임, 상태 메시지, 피드의 분위기를 자주 바꾸는 편인가요?
썸을 타거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때, 상태 메시지에 자음으로만 적어놓는 거 아시죠?
ㄴㄱㅈㅇ 이게 무슨 뜻일까요? 네가 좋아 입니다. 원래 수련회 홍보 영상에 우리 부장님을 최성곤으로 변신시켜드릴려고 했는데, 내년에 준비해 보겠습니다.
프로필을 바꾼다고 그 사람이 바뀌는게 아니죠. 프로필은 내가 보여 주고 싶은 모습을 편집한 것이지, 내 존재 전체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외모, 성적, 친구, 운동 실력, 집안의 형편으로 자기소개서를 계속해서 수정하지만,
그것들이 우리를 만든 창조주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들이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주지만, 내 정체성의 첫 문장은 아닙니다.
우리 삶의 첫 문장은 “하나님이 나를 지으셨다”입니다.
나는 우연히 생긴 사람이 아닙니다.
실수로 존재하게 된 사람도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뜻 안에서 지음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하게 지으셨다면, 왜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살아갈까요?
성경은 그 이유를 죄라고 말합니다.
대지 2 죄는 하나님 없이 나를 정의하려는 선택입니다!
대지 2 죄는 하나님 없이 나를 정의하려는 선택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 뱀은 인간에게 “너희가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는 단순히 과일 하나 먹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선과 악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이 선과 악을 판단하는 주인이 되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정체성을 받아들이기보다, 내가 나를 만들고 내 삶의 주인이 되려고 한 것입니다.
그 결과는 우리가 다 알고 있듯이 자유가 아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했습니다.
서로에게 책임을 돌렸습니다.
하나님을 피해 숨었고, 관계가 무너졌습니다.
죄는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너’보다, 너 스스로 증명하는 ‘너’가 더 중요해!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비교하고 증명하려고 합니다.
성적이 높으면 괜찮은 사람,
외모의 정보량이 많은 사람,
코의 각도, 눈 사이의 거리, 눈썹의 양, 턱선의 길이, 등등
친구가 많으면 가치가 있는 사람,
수능에서 실수하고 재수하면 끝난 사람,
이것들은 정체성을 찾는 일이 아니라, 끊임없이 정체성을 증명해야 하는 노예생활입니다.
세상의 이름표는 대부분 조건을 필요로 합니다.
“네가 공부를 잘해서 대학을 잘 가면 가치가 있는 사람이야”
“너가 가지고 있는 예체능의 실력이 뛰어나면 가치가 있는 사람이야”
“너가 돈을 많이 벌면 가치가 있는 사람이야”
조건이 바뀌면 이름표도 바뀝니다.
공부를 못해서, 실수해서 대학을 못 가면 가치가 없는 사람,
예체능의 실력이 부족하면 가치가 없는 사람,
돈의 액수가 적은 직업의 사람은 가치가 없는 사람
그래서 세상이 붙이는 이름표는 우리를 안정시키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이름표를 떼지 못하고 있나요?
나는 공부를 못해,
나는 재미가 없는 사람이야,
우리 집에서 내가 문제야,
나는 이미 너무 많은 실수를 했어,
이 이름표들을 가볍게 무시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실제 지금 여러분이 겪고 있는 상처와 문제들일 수 있어요.
하지만 그 문제와 상처가 하나님보다 더 큰 권한을 가지고 우리를 정의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실 수 있는 분은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죄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정체성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단순한 위로나 자신감이 아니라 구원이 필요합니다.
대지 3 예수님은 무너진 우리의 정체성을 새롭게 하십니다.
대지 3 예수님은 무너진 우리의 정체성을 새롭게 하십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 26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과 똑같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뜻을 이 세상 가운데 나타내도록 지음 받았다는 뜻입니다.
26절에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는 말로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하십니다.
이 표현 만으로 삼위일체를 모두 설명할 수 없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약성경의 계시를 통해 우리는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께서 창조와 구원의 사역을 함께 우리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이 땅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죄로 물들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키시는 구원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골로새서 1장은 예수님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십니다.
만물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또 만물이 예수님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평을 이루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창세기에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피조세계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죄로 하나님과 멀어진 우리를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는 소중한 존재야”라고 말씀하러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하나님 없이 살려고 했던 우리의 반역과 거짓된 정체성을 십자가에서 담당하셨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구원하거나 새롭게 만들 수 없습니다.
프로필을 바꾸듯 내 모습을 계속 수정한다고 새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여기서 구별해야할 것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엄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 그의 소유가 된 백성 이라는 구속적 정체성은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 믿음으로 받는 정체성입니다.
우리 수련회 주제 말씀인 베드로전서 2:9절은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고 말합니다.
이 정체성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둠에서 건져내서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아름다운 일을 선포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정체성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이다.
나는 예수님이 구원하신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일을 드러내도록 부름 받은 사람이다.
결론
결론
우리가 수련회 주제를 정체성으로 정했습니다.
그런데 수련회 참여한다고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수련회가는 목적은 하나님이 이미 말씀하신 우리의 정체성을 다시 듣고, 믿고, 경험하기 위함입니다.
세상이 붙인 이름표와 내가 붙인 이름표를 내려놓고,
창조주 하나님과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수련회에 가는 것입니다.
수련회에서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이,
나는 무엇을 잘하는가? 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도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물어야할 질문은,
나를 만드신 하나님은 나를 누구라고 말씀하시는가?
나를 위해 죽고 살아나신 예수님 안에서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을 가지고 함께 하나님 앞에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우리는 내 삶의 첫 문장을 내가 쓰지 않았습니다.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이 쓰셨습니다.
나는 우연한 존재가 아닙니다.
나는 세상의 평가가 전부인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예수님이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가 우연의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하심으로 존재함을 믿습니다.
우리의 존재가 세상의 기준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온전해지는 줄 믿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러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구원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헌금기도
헌금기도
결단찬양
결단찬양
주기도문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