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726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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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열한째 해 셋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너는 애굽의 바로 왕과 그 무리에게 이르기를 네 큰 위엄을 누구에게 비하랴
3 볼지어다 앗수르 사람은 가지가 아름답고 그늘은 숲의 그늘 같으며 키가 크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 레바논 백향목이었느니라
4 물들이 그것을 기르며 깊은 물이 그것을 자라게 하며 강들이 그 심어진 곳을 둘러 흐르며 둑의 물이 들의 모든 나무에까지 미치매
5 그 나무가 물이 많으므로 키가 들의 모든 나무보다 크며 굵은 가지가 번성하며 가는 가지가 길게 뻗어 나갔고
6 공중의 모든 새가 그 큰 가지에 깃들이며 들의 모든 짐승이 그 가는 가지 밑에 새끼를 낳으며 모든 큰 나라가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였느니라
7 그 뿌리가 큰 물 가에 있으므로 그 나무가 크고 가지가 길어 모양이 아름다우매
8 하나님의 동산의 백향목이 능히 그를 가리지 못하며 잣나무가 그 굵은 가지만 못하며 단풍나무가 그 가는 가지만 못하며 하나님의 동산의 어떤 나무도 그 아름다운 모양과 같지 못하였도다
9 내가 그 가지를 많게 하여 모양이 아름답게 하였더니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는 모든 나무가 다 시기하였느니라
10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의 키가 크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아서 높이 솟아났으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은즉
11 내가 여러 나라의 능한 자의 손에 넘겨 줄지라 그가 임의로 대우할 것은 내가 그의 악으로 말미암아 쫓아내었음이라
12 여러 나라의 포악한 다른 민족이 그를 찍어 버렸으므로 그 가는 가지가 산과 모든 골짜기에 떨어졌고 그 굵은 가지가 그 땅 모든 물 가에 꺾어졌으며 세상 모든 백성이 그를 버리고 그 그늘 아래에서 떠나매
13 공중의 모든 새가 그 넘어진 나무에 거주하며 들의 모든 짐승이 그 가지에 있으리니
14 이는 물 가에 있는 모든 나무는 키가 크다고 교만하지 못하게 하며 그 꼭대기가 구름에 닿지 못하게 하며 또 물을 마시는 모든 나무가 스스로 높아 서지 못하게 함이니 그들을 다 죽음에 넘겨 주어 사람들 가운데에서 구덩이로 내려가는 자와 함께 지하로 내려가게 하였음이라
15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가 스올에 내려가던 날에 내가 그를 위하여 슬프게 울게 하며 깊은 바다를 덮으며 모든 강을 쉬게 하며 큰 물을 그치게 하고 레바논이 그를 위하여 슬프게 울게 하며 들의 모든 나무를 그로 말미암아 쇠잔하게 하였느니라
16 내가 그를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스올에 떨어뜨리던 때에 백성들이 그 떨어지는 소리로 말미암아 진동하게 하였고 물을 마시는 에덴의 모든 나무 곧 레바논의 뛰어나고 아름다운 나무들이 지하에서 위로를 받게 하였느니라
17 그러나 그들도 그와 함께 스올에 내려 칼에 죽임을 당한 자에게 이르렀나니 그들은 옛적에 그의 팔이 된 자요 나라들 가운데에서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던 자니라
18 너의 영광과 위대함이 에덴의 나무들 중에서 어떤 것과 같은고 그러나 네가 에덴의 나무들과 함께 지하에 내려갈 것이요 거기에서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죽임을 당한 자 가운데에 누우리라 이들은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라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역사적인 배경을 알아야 한다.
바벨론이 유다를 침공하는데 3번 침공한다. 4번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3번이라고 말한다.
당시 바벨론의 목적은 처음부터 모든 나라를 완전히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를 바벨론에 충성하는 속국으로 만들어 조공을 바치고 제국에 복무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반역할 경우에만 강력한 군사적 심판과 완전한 파괴를 가했습니다.
1차 침공은 주전 605년이고 당시 왕은 여호야김이다. 당시 일부 귀족들이 포로로 끌려간다. 대표적인 인물이 다니엘과 세친구다.
1차 침공을 당하고 나서 여호야김은 바벨론에 충성을 약속한다. 3년간 바벨론에 조공을 바친다.
그런데 여호야김이 바벨론을 배반하게 된다.
그래서 열왕기하 24:1
1 여호야김 시대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오매 여호야김이 삼 년간 섬기다가 돌아서 그를 배반하였더니
배반한 이유는 애굽의 힘이 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차 침공 이후에 바벨론이 애굽을 공격했는데, 바벨론이 공격에 실패를 한다.
서로 큰 피해를 입었지만 바벨론이 이겼다고 말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 소식이 다 펴졌다. 그러니 지금 바벨론에 조공을 바치고 있는 유다의 왕 여호야김 입장에서 바벨론의 시대가 지고 있구나 생각하고 애굽에 마음이 가는 것이다.
그래서 바벨론을 배반한다.
그러자 바벨론이 유다를 다시 침공한다. 그것이 2차 침공이다.
2차 침공때 여호야김왕이 죽고,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이 된다.
그런데 여호야긴의 재임기간은 3개월 밖에 안된다.
왕이 된지 3개월 만에 여호야긴이 항복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벨론은 2차 침공후 여호야긴 왕을 포로로 데려간다.
여호야긴이 아버지인 여호야김 처럼 자신들을 배반할지 모른다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 여호야긴의 작은 아버지인 맛다니야를 왕으로 세운다.
그러면서 이름을 시드기야로 바꾼다. 이처럼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보통 자녀의 이름은 부모가 짓는다. 다시말해 유다 왕의 이름을 바벨론 왕이 지어줬다는 것은 바벨론이 세운 왕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유다는 바벨론의 속국임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런데 시드기야도 이후에 바벨론을 배신하고 애굽의 도움을 요청한다.
15 그가 사절을 애굽에 보내 말과 군대를 구함으로 바벨론 왕을 배반하였으니 형통하겠느냐 이런 일을 행한 자가 피하겠느냐 언약을 배반하고야 피하겠느냐
그 결과 바벨론이 3차 침공을 하면서 예루살렘성이 합락당하고 성전이 파괴가 되는 최악의 결과가 나온다.
오늘 본문은 열한째 해 셋째 달 초하루에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말씀하신 내용이다.
열한째 해 다시말해 11년째 되는 해라는 것의 기준이 무엇인가?
여호야긴 왕이 바벨론에 잡혀간 해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호야긴왕이 주전 597년에 바벨론에 끌려 갔다.
여호야긴 왕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간건 바벨론의 2차 침공때이다.
그렇다면 왜 1차 침공이 아닌 2차 침공이 기준이 되는 것인가?
2차 침공때 에스겔도 같이 포로로 끌려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준이 2차 침공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11년째 되는 해라는 것은 주전 597년으로부터 11년 후를 말하는 것이니 주전 587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지금 에스겔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의 왕은 시드기야 이다.
그러기에 지금 유다는 애굽을 의지하고 있는 상황이라 볼 수 있는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이 망하지 않을거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심지어 포로로 잡혀온 사람들도 이 상황이 바로 해결이 될 것이라 믿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속에서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하신 말씀이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앗수르에 대한 말씀이다.
요약하면 이거다 앗수를 백향목으로 비유하며 앗수르의 크고 위대함을 마치 찬양하는것 처럼 보이다.
그래서 본문 8절에 이렇게도 표현을 한다.
8 하나님의 동산의 백향목이 능히 그를 가리지 못하며 잣나무가 그 굵은 가지만 못하며 단풍나무가 그 가는 가지만 못하며 하나님의 동산의 어떤 나무도 그 아름다운 모양과 같지 못하였도다
하나님의 동산의 그 어떤 나무도 앗수르와 비길 수 없을 정도로 앗수르가 대단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앗수르도 하나님께서 다른 나라들에게 넘겨주어 멸망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교만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쌩뚱맞게 앗수르 이야기를 유다 백성에게 말하시는 것인가?
그들이 지금 의지하는 대상이 애굽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32절에는 애굽의 심판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러니깐 이런 것이다. 너희들이 그렇게 의지하는 대상인 애굽보다 더 크고 더 강력했던 앗수르도 하나님께서 그들의 교만으로 심판하셨다.
그렇다면 앗수르보다 비교할 수 없이 약한 애굽은 말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뭐 하라는 말인가? 이 어려운 상황과 환경가운데 애굽을 의지할 것이 아니라, 애굽과보다도 강한 앗수르를 심판하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지금 유다백성에게 그들이 진짜로 의지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를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비참한 상황속에 있는 포로로 잡혀 있는 그들이 진정의지해야 하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그리고 한가지 더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시드기야 입장에서 애굽의 도움을 받는것이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인가?
한나라의 왕이 자신의 나라가 멸망하지 않게 하기 위해 다른다라의 도움을 받는 것이 크게 잘 못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상식적으로는 지금 시드기야 왕은 잘 하고 있다고 여겨질 수 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시드기야가 잘 못한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것이다.
에스겔과 동시대에 함께 사역했던 선지자가 있는데 바로 예레미야이다.
에스겔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온 유다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고,
예레미야는 아직 멸망하지 않는 예루살렘에 있는 유다백서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예레미야는 계속해서 바벨론에 항복할 것을 선포하였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 거짓교사들이 주장하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반드시 다시 유다가 회복 할 것이라는 것이다. 절대 바벨론에 멸망하지 않을거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거짓이다.
하나님의 뜻은 바벨론에 항복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하는것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할 때 좋은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다시말해 잘되는것, 인정받는것, 오래 준비한 것이 잘 성취되는 것이 은연중에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들이 이루어질 때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돌리며 감사의 고백을 한다.
이번 선교가 그랬다.
선교지에 와서 선교를 하지 못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서 선교 첫째날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하나님 왜요?
그리고 둘째날 선교지를 가다가 다시 되돌아 와 찬양하며 기도해야 한다는 마음을 주셨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기도하고 찬양하고 나서 마음이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결과가 아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우리는 그 뜻에 순종해야 하는것이다. 내가 이해가 되고 안되고가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전적으로 순종하며 나아가는 그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시드기야가 그것을 못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속국이 되는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 말씀에 순종했어야 한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바벨론의 속국이 되는 것이 이스라엘의 멸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12 내가 이 모든 말씀대로 유다의 왕 시드기야에게 전하여 이르되 왕과 백성은 바벨론 왕의 멍에를 목에 메고 그와 그의 백성을 섬기소서 그리하면 사시리라
17 예레미야가 시드기야에게 이르되 만군의 하나님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바벨론의 왕의 고관들에게 항복하면 네 생명이 살겠고 이 성이 불사름을 당하지 아니하겠고 너와 네 가족이 살려니와
그 다음절을 보면 반대로
18 네가 만일 나가서 바벨론의 왕의 고관들에게 항복하지 아니하면 이 성이 갈대아인의 손에 넘어가리니 그들이 이 성을 불사를 것이며 너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그러니깐 이들이 정말로 살 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바벨론에게 순종하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런 약속도 주셨다.
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하나님이 다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나의 뜻과 계획대로 되지 않을지라도 이해 되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며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순종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이다.
나의 삶을 주관하시는 그 하나님만 바라보며 의지하는 것이다.
의지한다는 것은 염려와 걱정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