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바를 알지 못해도 나아갑니다 2026 0728 히1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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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542장 구주 예수 의지함이 / 540장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Hebrews 11:8–16 NKRV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12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15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오늘 내 한 발자국을 비추시는 ‘등불’ 되신 하나님을 신뢰합시다.

[설교 원고] 갈 바를 알지 못할 때, 장막을 치는 은혜

본문: 히브리서 11장 8~16절 (참고: 창세기 12장 1절)
제목: 갈 바를 알지 못할 때, 장막을 치는 은혜
설교 시간: 약 15~20분 (새벽예배)
대상: 새벽예배 참석 성도

서론: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과 서치라이트의 조바심

우리가 내비게이션을 켜고 초행길을 운전할 때 가장 당황스러운 순간이 언제입니까? 밤안개 속에서 갑자기 GPS 신호가 끊기고 "경로를 재탐색합니다"라는 문구만 반복해서 뜰 때입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우리는 극심한 불안을 느낍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도 이와 참 닮아 있습니다. 세상은 수많은 정보와 기술로 무장되어 있지만, 당장 오늘 오후에 어떤 소나기가 내릴지, 내일 내 건강이나 일터, 자녀의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우리는 한 치 앞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불안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부르짖곤 합니다.
"하나님, 제 인생의 5년 뒤, 10년 뒤를 환히 비춰주십시오!"
우리는 인생 전체를 멀리까지 환하게 밝혀줄 대형 ‘서치라이트’를 요구합니다. 미래의 모든 경로와 결과표가 내 눈에 확실히 보여야만 비로소 안심하고 발을 떼려고 합니다.
심지어 새벽 기도회 자리에 나올 때조차 이런 마음일 때가 많습니다. 내가 작성한 내 인생의 미래 계획표를 들고 나와서, 하나님께 서치라이트를 비추어 보증 도장을 찍어 달라고 요구하는 '기획 승인의 자리'로 새벽기도를 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은 히브리서 말씀을 통해 우리의 이 조바심을 깨트리십니다. 그리고 오늘 이 새벽, 불확실한 세상 속에 서 있는 성도들에게 전혀 새로운 믿음의 길을 제시해 주십니다.

본론 1: "레크-레카" – 목적지가 아닌 인도자를 따라나서는 삶 (8~10절)

본문 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히브리서 11:8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여정은 완벽한 지도를 손에 쥐고 시작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그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고 기록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약 창세기 12:1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쓰신 히브리어 원어가 아주 깊은 울림을 줍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레크-레카(לֶךְ-לְךָ)’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가라(Go)"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직역하면 "너 자신을 위하여 떠나라(Go for yourself)"라는 뜻입니다.
혈연과 지연, 아비 집이라는 인간적인 안전망에 얹혀 살던 삶에서 나와, 오직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 안에서 '진짜 너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으라는 거룩한 초청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도착할 최종 목적지의 지형도를 보고 떠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고 발을 떼었습니다. 순종했습니다.
이어지는 9절을 보십시오.
히브리서 11:9 “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무너지지 않을 견고한 돌성벽을 쌓지 않았습니다. 그는 언제든 거두어 이동할 수 있는 ‘장막(텐트)’에 거했습니다. 즉 이 땅에서 ‘임시 거류자’로 살았다는 뜻입니다.
내 힘으로 이 땅에 완벽한 성을 쌓아야만 안심하는 세상의 소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 소리에 너무 귀 기울이다보면, 너무 갖추고 살려고 해요. 너무 준비되어야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 청년들이 그래요. 요즘 아이들을 가르치는 세상의 소리가 그래요. 젊은 세대들이 결혼이 늦어지고, 왜 아이를 안 낳으려고 할까요? 현실이 어렵다고 이야기해요. 그런데 그 현실. 과거에는 좋았나요? 우리 아비세대들이 지나온 그 시절이 지금과 비교해서 더 나은 환경이라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키웠나요? 세상의 기준은 점점 높아져 가고 우리를 스스로 부족하게 만듭니다. 우리 그 마음 내려놓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하루하루 장막을 치며 사는 자유함을 누립시다.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할 줄 아는 신앙을 가지길 축원합니다. 그 때에 느끼게 되는 참된 자유가 우리 모두에게 있길 축원합니다.

본론 2: 서치라이트가 아닌 등불, 그리고 길 되신 예수님 (11~14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인생 전체를 환히 밝히는 서치라이트를 주지 않으실까요?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시편 119편 105절]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10km 앞을 비추는 탐조등이나 서치라이트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당장 내 발이 디딜 바닥 한 칸을 비추는 작은 ‘등불’이라고 말합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산행을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저는 밤산행을 군대 때 빼고는 이집트에서 시내산에 올랐던 기억이 유일한 기억입니다. (시내산 등정 이야기. 밤 12시에 호텔에 도착했는데 새벽 3시에 출발. 진짜 어두움 그 자체. 안 보임. 내가 지금 산을 오르는 건지 어딜 가는건지 알 수가 없음. 그냥 앞사람의 헤드 플래시, 현지가이드의 안내 소리만 따라가는 것임. 가다보니까 일출시간에 맞춰 도착. 장관. 내려오는 길. 돌산. 낭떠러지. 눈으로 보이니까 가기 어렵더라. 그런데 한 밤중이다 보니 다같이 안보이니까 한 발 한 발 내딛는 안전한 길로만 가다보니. 도착하게 됨.)
산 정상까지 비춰주는 거대한 조명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내 손에 쥔 작은 손전등 하나로 당장 발밑 한 걸음씩만 비추며 옮기다 보면, 어느새 어둠을 뚫고 정상에 도달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은 인생의 전체 로드맵을 다 확인하고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내 손을 잡고 계신 하나님을 믿고, 오늘 내 발밑을 비추시는 말씀의 등불을 따라 '딱 한 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하신 선언을 기억하십니까?
[요한복음 14장 6절] "예수께서 이르시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내일의 내비게이션 지도책을 쥐여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 스스로가 우리의 ‘길(The Way)’이 되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예수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길 되신 주님이 내 손을 잡고 계시기에, 우리는 길의 끝을 다 알지 못해도 아무런 불안 없이 오늘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오늘 불안과 염려와 어려움 때문에 새벽제단에 나오신 분 계십니까. 이제 그 주님을 붙잡고 평안한 마음으로 세상에 나아가십시오.

본론 3: 더 나은 본향과 새벽 기도회의 재정의 (15~16절)

그럼 우리는 내 한 발 앞만 보면서 걸어야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까요? 본문 1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6절]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아브라함이 가나안의 임시 장막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결정적인 이유는, 하나님이 지으실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성지 안내를 종종 하다보면 여러 호텔을 경험하게 됩니다. 어떤 곳은 좀 환경이 안 좋은 곳도 있고, 어떤 곳은 정말 좋은 호텔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호텔에 머물게 되더라도, 성지 순례오신 많은 성도님들이 영원이 그 숙소에 살고 싶다고 하지 않습니다. 여행 말미쯤 가면 빨리 한국가고 싶다고, 내 집에 가고 싶다고만 하십니다. 지혜로운 여행자는 객실 벽지가 마음에 안 든다고 벽지를 새로 바르거나 그 호텔을 사겠다고 안달하지 않습니다. 그곳은 '잠시 머무는 거처'이며, 돌아갈 진짜 내 집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의 일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힘으로 영원한 소유의 성을 쌓으려 할 때 불안과 조바심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영원한 본향이 있음을 깨달을 때, 우리는 오늘이라는 일상의 장막을 의연하고 가볍게 살아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오늘 이 새벽 기도회의 의미를 심도 있게 다시 정의해 봅시다.
오늘 새벽은 하나님께 내 미래의 서치라이트를 달라고 채근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내 기획안을 들고 나와 승인을 요구하는 사업보고회의 자리가 아닙니다.
새벽기도는 "하나님, 나는 한 치 앞도 모르는 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오늘 하루 내 발이 디딜 한 걸음을 비춰줄 말씀의 등불을 받으러 왔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자리입니다.
오늘 내가 만날 사람, 내가 처리해야 할 업무, 내가 마주할 불확실함 앞에서 "길 되신 주님이 나와 동행하시니, 오늘도 불안해하지 않고 의연하게 걸어가겠습니다"라고 선언하는 참된 안식과 정전(Rest)의 시간입니다.

결론: 오늘 한 걸음을 내딛는 거룩한 의연함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어떤 일이 벌어질지, 내일 내 삶이 어떻게 변할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한 치 앞을 알지 못하는 나그네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레크-레카, 너 자신을 위해 떠나라" 말씀하시며, 스스로 우리의 지도가 되어주셨습니다. 인생 전체를 내다보는 서치라이트는 없어도, 오늘 내 한 발자국을 비추시는 신실한 등불이 우리 손에 쥐어져 있습니다.
오늘 새벽, 미래를 내 힘으로 통제하려 했던 조바심과 불안을 내려놓으십시오.
길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손을 꼭 잡으시고,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일상의 장막 속에서 당당하고 의연하게 한 걸음을 내딛으며,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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