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손의 몽둥이

매일성경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2 views
Notes
Transcript

Psalm 91:14–16 NKRV
14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15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16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
찬송가:321장 날 대속하신 예수께
Isaiah 10:5–19 NKRV
5 앗수르 사람은 화 있을진저 그는 내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내 분노라 6 내가 그를 보내어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를 치게 하며 내가 그에게 명령하여 나를 노하게 한 백성을 쳐서 탈취하며 노략하게 하며 또 그들을 길거리의 진흙 같이 짓밟게 하려 하거니와 7 그의 뜻은 이같지 아니하며 그의 마음의 생각도 이같지 아니하고 다만 그의 마음은 허다한 나라를 파괴하며 멸절하려 하는도다 8 그가 이르기를 내 고관들은 다 왕들이 아니냐 9 갈로는 갈그미스와 같지 아니하며 하맛은 아르밧과 같지 아니하며 사마리아는 다메섹과 같지 아니하냐 10 내 손이 이미 우상을 섬기는 나라들에 미쳤나니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이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의 신상들보다 뛰어났느니라 11 내가 사마리아와 그의 우상들에게 행함 같이 예루살렘과 그의 우상들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하는도다 12 그러므로 주께서 주의 일을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하신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시리라 13 그의 말에 나는 내 손의 힘과 내 지혜로 이 일을 행하였나니 나는 총명한 자라 열국의 경계선을 걷어치웠고 그들의 재물을 약탈하였으며 또 용감한 자처럼 위에 거주한 자들을 낮추었으며 14 내 손으로 열국의 재물을 얻은 것은 새의 보금자리를 얻음 같고 온 세계를 얻은 것은 내버린 알을 주움 같았으나 날개를 치거나 입을 벌리거나 지저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는도다 15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하겠느냐 이는 막대기가 자기를 드는 자를 움직이려 하며 몽둥이가 나무 아닌 사람을 들려 함과 같음이로다 16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진 자를 파리하게 하시며 그의 영화 아래에 불이 붙는 것 같이 맹렬히 타게 하실 것이라 17 이스라엘의 빛은 불이 되고 그의 거룩하신 이는 불꽃이 되실 것이니라 하루 사이에 그의 가시와 찔레가 소멸되며 18 그의 숲과 기름진 밭의 영광이 전부 소멸되리니 병자가 점점 쇠약하여 감 같을 것이라 19 그의 숲에 남은 나무의 수가 희소하여 아이라도 능히 계수할 수 있으리라
전형상화
앗수르 왕 살만에셀에 의하여 북이스라엘이 멸망함 722년 , 9장에서 예언됨. 이것이 히스기야 6년에 성취됨 , 열왕기하 18:10 “10 삼 년 후에 그 성읍이 함락되니 곧 히스기야 왕의 제육년이요 이스라엘 왕 호세아의 제구년에 사마리아가 함락되매”
앗수르 왕 산헤립으로 유다를 바로 잡으시겠다는 에언이 이 장에서 나온다. 이 예언은 히스기아 14년에 성취된다. 열왕기하 18:13 “13 히스기야 왕 제십사년에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점령하매”
유다왕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속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하였다. (크리스텐텀, 기독교 국가권력이 종교를 지원하고 하나가 될 때 - 기독교의 타락의 시기, 백성의 방자함/ 불경건함 이 극치를 이룬다) 박해가 없는 기독교는 순수성을 잃는다.
이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악한 자들이라도 도구로 사용하신다. 그런데 이 악한 자는 자신의 능력이로 이 일을 행하는 줄 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 종이 주인 행세한다. 목자가 양을 잡아 먹는다. 하나님이 반드시 심판하신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기도했는데도 문제가 풀리지 않습니다. 계획한 일이 자꾸 막힙니다. 건강이 약해지기도 하고,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가 힘들어지기도 합니다. 가정이나 교회 안에서 마음 아픈 일을 겪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묻습니다. “하나님,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께서 정말 나와 함께 계십니까?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일을 다스리고 계신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앗수르까지도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밖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앗수르의 교만도 반드시 심판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세 가지 사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징계의 도구를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그 도구의 교만을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징계를 통하여 자기 백성을 정결하게 하십니다.
앗수르는 하나님의 진노의 막대기였습니다
본문 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앗수르는 화 있을진저 그는 내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내 분노라.” 하나님께서는 앗수르를 ‘내 진노의 막대기’라고 부르셨습니다. 당시 앗수르는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제국이었습니다. 앗수르는 여러 나라를 정복하고 성읍을 파괴했습니다. 사람들을 죽이고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그들의 군대가 지나간 자리에는 두려움과 고통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앗수르를 자신의 손에 들린 막대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앗수르의 침략과 잔인함이 선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앗수르의 악을 기뻐하셨다는 뜻도 아닙니다. 앗수르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유다를 공격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악을 조장하시도 이용하시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권능 아래 악도 놓여 있습니다.
7절은 앗수르의 속마음을 보여 줍니다.
“그의 뜻은 이 같지 아니하며 그의 마음의 생각도 이 같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마음은 허다한 나라를 파괴하며 멸절하려 하는도다.”
앗수르의 목적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 많은 나라를 정복하고 더 큰 제국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힘을 자랑하고 사람들을 짓밟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앗수르의 악한 의도까지도 다스리셨습니다. 앗수르는 자기 욕망을 따라 움직였지만, 그 움직임조차 하나님의 섭리 밖으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앗수르는 자기가 세상을 움직인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손에 들린 지팡이에 불과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가 무엇인지를 배웁니다. 하나님의 섭리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과 우리의 삶을 보존하시고 다스리시며, 모든 일을 자신의 거룩한 뜻을 이루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의 행동이 선하게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악을 행한 사람은 자신의 악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 악조차 하나님의 계획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사람은 악을 계획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악을 제한하시고 다스리셔서 마침내 선한 뜻을 이루십니다. 모든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로마서 8:28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미워하여 애굽에 팔았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분명한 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악한 일을 통하여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셨고, 훗날 야곱의 가족을 기근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창세기 50장 20절
십자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시기했고,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악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십자가를 통하여 죄인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악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악보다 하나님이 크시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도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난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형상화

앗수르는(세상 권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용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자기 힘으로 모든 나라를 정복했다고 생각했습니다.
13절과 14절에서 앗수르는 이렇게 자랑합니다. “나는 내 손의 힘과 내 지혜로 이 일을 행하였나니.” 앗수르는 반복해서 “내가 했다”고 말합니다. 내 힘으로 했다. 내 지혜로 했다. 내가 국경을 바꾸었다. 내가 재물을 빼앗았다. 나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15절에서 앗수르의 교만을 책망하십니다.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하겠느냐.” 도끼가 나무를 찍었다고 해서 도끼가 자랑할 수 있습니까? 도끼를 들어 사용한 사람이 있기 때문에 나무를 찍은 것입니다. 이 나무를 잘랐다고 해서 톱이 자기 능력을 자랑할 수 있습니까? 톱을 움직인 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앗수르는 도끼였고, 하나님은 그 도끼를 드신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도끼가 주인을 무시하고 자기가 모든 일을 이루었다고 자랑한 것입니다.
이것이 교만입니다. 교만은 단순히 자랑을 많이 하는 성격이 아닙니다. 교만은 하나님께 받은 것을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일을 내 능력으로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건강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우리의 지혜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자녀도, 물질도, 직분도 하나님께서 맡겨 주셨습니다. 오랜 세월 교회를 섬긴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고 봉사를 오래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자신을 높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조금 감당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우리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족한 우리를 도구로 사용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쓰임 받으면서도 겸손한 것입니다. 많은 일을 하고도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무익한 종의 고백) 누가복음 17:10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앗수르는 자신이 하나님의 도구라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앗수르도 심판하셨습니다. 16절 이하에서는 앗수르의 강한 군대가 쇠약해지고, 울창한 숲과 같았던 제국이 불에 타 사라질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남은 나무가 너무 적어 어린아이라도 그 수를 기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앗수르는 강했지만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던 막대기는 하나님께서 내려놓으시는 순간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 사역자들은 하나님이 내려 놓으시는 순간 아무것도 아니다. 오히려 더 해롭다)
교만한 사람은 잠시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성공할 수는 없습니다. 교만은 반드시 무너집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힘을 의지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이 의지하던 바로 그것 때문에 넘어집니다.
재형상화
하나님께서는 징계를 통하여 자기 백성을 정결하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앗수르를 사용하여 자신의 백성을 징계하셨을까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상을 섬겼고, 가난한 사람을 억압했으며, 불의를 행했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삶으로는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차례 선지자를 보내어 돌아오라고 말씀하셨지만, 백성은 듣지 않았습니다. (실천적 무신론자)
결국 하나님께서는 앗수르라는 막대기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적은 자기 백성을 완전히 버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깨우시고 정결하게 하여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성도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징계는 재판관의 형벌이 아니라 아버지의 훈련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정죄를 담당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멸망시키기 위해 징계하지 않으십니다. 사랑하는 자녀를 바로 세우기 위해 징계하십니다. 히브리서 12장 6절은 말씀합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방망이는 무엇인가요?
때로는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 실패일 수 있습니다. 건강의 약함일 수도 있습니다. 물질의 어려움이나 관계의 갈등일 수도 있습니다. 계획이 지연되고 내가 의지하던 것이 흔들리는 경험일 수도 있습니다. 말씀을 듣다가 마음이 찔리는 것, 양심이 죄를 깨닫게 되는 것, 믿음의 사람을 통해 책망을 듣는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우시는 방법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고난을 특정한 죄에 대한 직접적인 형벌이라고 함부로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욥의 고난은 특정한 죄 때문이 아니었고, 예수님께서도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한 사람을 두고 그 사람이나 부모의 죄 때문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고난을 만났을 때 “무슨 죄 때문에 이런 일을 당했을까?”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통하여 내게 무엇을 가르치고 계시는가?”내가 붙들고 있는 우상은 무엇인가?”하나님보다 더 의지했던 것은 무엇인가?”지금 내가 내려놓고 돌이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방망이는 우리를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깨우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를 버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더 가까이 이끌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하여 우리의 교만을 꺾으시고, 기도를 회복시키시며, 세상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게 하십니다.
곡식을 타작하는 이유는 곡식을 없애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알곡과 쭉정이를 분리하기 위해서입니다. 금을 불에 넣는 이유도 금을 없애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불순물을 제거하여 더 순수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때로는 흔드시고, 낮추시며, 기다리게 하십니다.
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을 흔드는 지팡이보다 그 지팡이를 들고 계신 하나님의 손을 바라봅시다.
하나님의 손은 우리를 미워하는 손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독생자를 내어 주신 사랑의 손입니다.
그 손은 우리를 아프게만 하는 손이 아니라 상처를 싸매고 다시 일으키는 손입니다.

두 가지 적용

첫째,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을 만날 때 원망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 자신을 살펴보십시오.
오늘 하루 예상하지 못한 일이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때 곧바로 불평하거나 다른 사람을 탓하지 마십시오. 잠시 멈추어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주님, 이 일을 통하여 제 안에서 무엇을 고치기 원하십니까? 제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을 보여 주십시오.”
회개해야 할 것이 생각나면 즉시 회개하십시오. 회개는 패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는 은혜의 길입니다.
둘째, 오늘 맡겨진 일을 하나님의 도구라는 겸손으로 감당하십시오.
가정에서 자녀와 손주를 돌보는 일도, 교회에서 기도하고 섬기는 일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입니다. 잘한 일이 있어도 자신을 높이지 말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습니다”라고 고백하십시오.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보다 불쌍히 여기고, 내 말과 행동이 사람을 때리는 몽둥이가 아니라 상처를 싸매는 도구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들린 작은 도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도구는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우리의 삶은 우연히 흘러가지 않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일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낮추실 때 겸손히 돌이키고, 우리를 사용하실 때 자신을 자랑하지 맙시다.
징계 가운데서는 아버지의 사랑을 믿고, 형통할 때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십시오. 야고보서 5:13 “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그리고 오늘 하루도 이렇게 고백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저를 깨끗하게 하시고, 주님의 손에 합당한 도구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을 다스리시는 주님의 섭리를 믿게 하옵소서.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원망하기보다 우리 자신을 살피게 하시고, 고난과 징계를 통하여 우리 안의 교만과 우상을 제거하여 주옵소서. 주님께 쓰임 받을 때 자신을 높이지 않게 하시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게 하옵소서. 오늘 우리의 말과 손길이 사람을 아프게 하는 방망이가 아니라, 지친 영혼을 위로하고 상처를 싸매는 사랑의 도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