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수르: 막대기와 몽둥이

이사야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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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앗수르 사람은 화 있을진저
오늘 본문 말씀은 앗수르에 대한 심판예고입니다. 어제만 해도 이스라엘에 대하여 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10장 1절과 2절을 읽겠습니다. “불의한 법령을 만들며 불의한 말을 기록하며 가난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 가난한 내 백성의 권리를 박탈하여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들로 경건한 삶의 모범이 되어야 할 이스라엘이 세상에서 악을 저지르는 자들과 다를 바 없음을 보시고, 결국 이들에게 징계를 내리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에 화를 입게 될 대상은 이스라엘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치게 될 앗수르 역시 그 심판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왜 앗수르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까요?
2.막대기와 몽둥이
5절과 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앗수르 사람은 화 있을진저 그는 내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내 분노라 내가 그를 보내어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를 치게 하며 내가 그에게 명령하여 나를 노하게 한 백성을 쳐서 탈취하며 노략하게 하며 또 그들을 길거리의 진흙 같이 짓밟게 하려 하거니와” 하나님의 방법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약한 자를 사용하시고, 어리석은 자들을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세상의 강한 자들과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만드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방법은 그것만 있지 않습니다. 사랑과 공의의 대명사이신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악한 날에 악한 자들을 사용하시기도 합니다. 불의의 병기를 사용하기도 하십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앗수르가 바로 그런 용도입니다.
5절과 6절을 보면 앗수르를 막대기와 몽둥이로 표현합니다. 시편23편에 보면 목자가 양을 돌보기 위해 사용하는 지팡이와 막대기가 먼저 생각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앗수르는 그런 의도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5절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처럼 앗수르는 하나님의 진노와 분노를 드러낼 막대기와 몽둥이입니다. 그 대상은 누구입니까? 이스라엘입니다. 경건해야 할 나라가 경건하지 않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할 백성이, 하나님을 노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6절은 이스라엘이 저지른 잘못을 고스란히 자신들이 돌려받을 것이고, 길거리의 진흙 같이 짓밟히게 될 것이라고 예고합니다. 누구를 통해서요? 하나님의 진노의 막대기와 분노의 몽둥이인 앗수르를 통해서 말입니다.
3.이 같지 아니하며, 이 같지 아니하고
그런데 정작 앗수르는 자신들이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7절 말씀을 읽어볼까요? “그의 뜻은 이 같지 아니하며 그의 마음의 생각도 이 같지 아니하고 다만 그의 마음은 허다한 나라를 파괴하며 멸절하려 하는 도다.” 앗수르는 하나님의 뜻도,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도 모릅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에 급급할 뿐입니다. 앗수르는 제국이 되어서 주변 국가들을 하나 둘 정복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세력이 확장되고, 힘이 커가는 것을 보면서 앗수르의 교만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이어지는 8절부터 11절까지는 내용들이 앗수르의 교만을 증명합니다.
10절과 11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내 손이 이미 우상을 섬기는 나라들에 미쳤나니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이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의 신상들보다 뛰어났느니라 내가 사마리아와 그의 우상들에게 행함 같이 예루살렘과 그의 우상들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하는 도다” 여기에서 ‘내 손’이라 함은 앗수르의 권력을 이야기 합니다. 당시에 수많은 열강들이 우상을 만들어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 열강들을 하나하나 정복하며 땅을 넓혀가는 중에 보아하니 각 나라들이 조각하여 섬기고 있는 우상들이 보이는 겁니다. 왜 우상이 눈에 들어왔을까요? 앗수르 역시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뭐 눈에는 뭐가 보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당시의 전쟁은 신들의 전쟁이라고 불릴 만큼 인간의 전쟁을 주관하는 것은 신이라고 믿으며, 어느 신이 더 강한지를 견주기도 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앗수르가 계속 이기고 있습니다. 어떤 신이 가장 강하다고 생각하겠습니까? 더군다나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이스라엘마저 앗수르에 짓밟히고 말 것입니다. 앗수르는 하나님을 없인 여기며 기고만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13절과 14절도 읽어볼까요? “그의 말에 나는 내 손의 힘과 내 지혜로 이 일을 행하였나니 나는 총명한 자라 열국의 경계선을 걷어치웠고 그들의 재물을 약탈하였으며 또 용감한 자처럼 위에 거주한 자들을 낮추었으며 내 손으로 열국의 재물을 얻은 것은 새의 보금자리를 얻음 같고 온 세계를 얻은 것은 내버린 알을 주음 같았으나 날개를 치거나 입을 벌리거나 지저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는 도다” 앗수르의 교만의 절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시의 패권을 앗수르에게 허락하셨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힘과 지혜로 이 모든 것을 이루어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들의 위용 앞에 모든 민족들이 두려워 떨었다고 말하며, 각 나라들을 굴복시키는 것은 새의 보금자리를 차지하는 것처럼 손 쉬웠다고 표현합니다.
4.하나님의 심판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을까요?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보십시오. 15절 같이 읽겠습니다. “도끼가 어찌 찍은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하겠느냐 이는 막대기가 자기를 드는 자를 움직이려 하며 몽둥이가 나무 아닌 사람을 들려 함과 같음이로다” 앗수르는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이들이 도끼이건, 톱이건, 막대기이건, 몽둥이건 도구는 자기를 사용하는 이보다 앞설 수 없습니다. 또한 도구는 사용자를 조종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앗수르가 자신의 처지를 망각하고 하나님을 없인 여기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계속해서 자신들의 탑을 쌓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심판하신 후에, 앗수르 역시 심판하실 것입니다.
16절부터 19절까지가 바로 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17절과 1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스라엘의 빛은 불이 되고 그의 거룩하신 이는 불꽃이 되실 것이니라 하루 사이에 그의 가시와 찔레가 소멸되며 그의 숲과 기름진 밭의 영광이 전부 소멸되리니 병자가 점점 쇠약하여 감 같을 것이라” 이스라엘의 빛이 누구입니까? 그의 거룩하신 이가 또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에게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루면 충분합니다. 앗수르는 지금의 그 위치에 올라가기까지 수년을 싸우고 싸웠겠지만 하나님은 하루 사이에 그 힘과 지혜를 꺾어 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그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은 한낱 식물의 가시와 찔레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가시와 찔레를 거둬버리시면 다른 나라들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들이 누리고 있는 부와 명예와 권세도 가져가실 것입니다. 앗수르는 마치 병자가 점점 쇠약해져가듯이 파리해지고 말 것입니다.
5.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피조물은 창조주를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도록 나를 만들어준 부모님을 공경하듯이, 인간을 만드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그 권한을 위임해주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우리의 마땅한 본분입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그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부인하며, 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영광을 가로챕니다.
어제는 아버지 이사를 돕고 내려오면서 차에서 아내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매순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어렵지만, 하나님을 예배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해도 감사하다고 말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에 살고 있지만 정작 하나님을 모른 척합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며, 자신들의 이성으로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음을 밝힐 수 있다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도끼나 톱이 되어서, 막대기나 몽둥이가 되어서 하나님을 상대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주제도 모른 채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낮아져야 합니다. 무언가 잘된다고 해서 하나님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늘 위에 주님 같은 분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늘 위에 계신다고 우리를 그냥 보고만 있지 않으십니다. 친히 이 땅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도 그냥 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까지도 세시는 하나님께서 오늘도 저와 여러분들을 다스리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에게 맡기신 일들이 작다 하더라도 충성되이 감당하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드리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상을 해주셔야할 의무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할 일을 했다고 감사하며 주신 은혜로 하루를 살아가다보면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부끄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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