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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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앗수르의 교만에 대한 심판을 살펴보았습니다. 북이스라엘이 멸망할 무렵 앗수르 제국은 패권을 쥐고 열국을 집어삼키고 있었습니다. 앗수르는 그 기세를 몰아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까지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앗수르는 자신들의 힘과 지혜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기 때문에, 또한 자신들이 믿고 있는 신이 이방나라들보다 더 강하기 때문에 전쟁에서 승승장구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앗수르의 승리를 다르게 해석합니다.
앗수르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경건하지 않은 나라, 하나님을 노하시게 하는 민족 이스라엘을 심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진노의 막대기로 분노의 몽둥이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앗수르는 그것을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그저 그런 신들 중에 하나로 여기며 자신들을 막을 상대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굽니다. 하나님은 그런 앗수르의 교만을 꺾으실 예정입니다. 사용목적대로 앗수르를 사용하신 다음에는 저들에게 있는 것들을 도로 찾으시며 소멸시키실 것입니다. 앗수르를 망하게 하실 것입니다.
1.남은 자
오늘 본문은 그 뒤를 잇습니다. 20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 여기에서 말하는 ‘그 날’이란 앗수르의 멸망의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해, 너희를 치던 앗수르가 망하게 될 때가 올 것이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만 이야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남은 자’를 언급하십니다. 남은 자가 누구입니까? 환난과 핍박 중에도 신앙을 지킨 자들입니다. 한 때는 앗수르에 굴복하며 그들을 따를 때도 있었습니다.
열왕기하 15장을 보면 북이스라엘의 므나헴이라는 왕이 있습니다. 당시 앗수르왕이 쳐들어왔을 때, 므나헴은 은 천달란트를 조공으로 바치기 위해 부자들을 강탈했습니다. 그 은을 바쳐서 자기의 왕위를 보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인 호세아 역시 한 때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앗수르를 배반하고 애굽에 달라붙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을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열강들을 의지하는 이스라엘을 꾸짖으신 것입니다. 결국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망하게 됩니다.
22절과 23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파멸이 작정되었음이라 이미 작정 된 파멸을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 공의의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십니다. 선악 간의 잘잘못을 판단하시고 그에 따라 벌을 내리십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를 범했을 때, 두 사람 사이에서 아기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출산을 하게 되죠. 그러나 이 아이가 심히 앓기 시작합니다. 그 때, 다윗이 금식을 하며 땅에 엎드려 기도합니다. 하지만 아이는 이레 만에 결국 숨을 거두고 맙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무엘하 12장 1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치셨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 작정한 파멸은 우리가 금식기도를 한다고 해서 돌이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제 아무리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그들의 수가 바다의 모래알처럼 많다고 해도 말입니다.
하나님은 남은 자들을 보호하십니다. 그들을 위해 돌아올 길을 만드십니다.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만드십니다. 그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셔서, 상대적으로 적은 수인 그들을 통해 다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는 그 남은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많은 성도들의 틈 속에서 이리저리 휩쓸려가는 신앙이 아니라, 지금 당장 주님이 찾아오신다 해도 기름 등불 준비한 다섯 명의 처녀들처럼 제가 여기 있다고, 깨어있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2.그를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십니다. 24절과 25절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시온에 거주하는 내 백성들아 앗수르가 애굽이 한 것처럼 막대기로 너를 때리며 몽둥이를 들어 너를 칠지라도 그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오래지 아니하여 네게는 분을 그치고 그들은 내 진노로 멸하리라 하시도다” 시기 적으로 보자면 지금은 이미 북이스라엘 은 앗수르에 침략을 당하고, 이제 남유다가 공격을 받고 있는 시점입니다. 어제 11절을 보아도, ‘내가 사마리아와 그의 우상들에게 행함같이 예루살렘과 그의 우상들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며 이미 북이스라엘은 정복했고, 남유다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만만해 하는 앗수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유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왜입니까? 지금은 너희가 비록 앗수르에 의해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있지만, 이후에는 앗수르의 멸망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앗수르를 진멸하실지 앞선 역사를 기억나게 하십니다. 26절에 나오는 오렙 바위는 사사기에 나오는 기드온과 300용사가 미디안 군대와 싸우는 장면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기드온과 300용사가 기습하자, 미디안 군대는 혼비백산이 되어 도망을 칩니다. 그 때 끝까지 추격을 하고, 에브라임 사람들이 요단강 수로를 점령하여 퇴각로를 차단하여 미디안의 두 방백인 오렙과 스엡을 각각 오렙 바위에서, 스엡 포도주 틀에서 죽인 사건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그 때와 같이 앗수르를 진멸할 계획입니다. 애굽 군대가 홍해에서 수장된 것처럼 더 이상 쫓아올 여지를 주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날이 오면 어떻게 될까요? 27절입니다. “그 날에 그의 무거운 짐이 네 어깨에서 떠나고 그의 멍에가 네 목에서 벗어지되 기름진 까닭에 멍에가 부러지리라” 앗수르가 무너지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새롭게 쓰여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남은 자들이 진실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될 것입니다.
3.앗수르의 공격
28절부터 32절까지는 본격적인 앗수르의 침공을 묘사합니다. 북이스라엘을 점령한 앗수르는 이제 남유다로 진격해옵니다. 여기에 나오는 아얏-미그론-믹마스-게바-라마-기브아-갈림-라이사야등은 S자 형태로 점점 남방으로 내려오는 앗수르의 공격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윗지역에서부터 차례대로 점령해오는 앗수르 때문에 유다백성들은 서둘러 도망치게 될 것입니다. 놉은 제사장들이 모여있는 곳입니다. 그곳까지 차지했다는 것은 이제 전쟁의 막바지가 다다랐으니,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도 속히 항복하라는 뜻으로 손을 흔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약속하십니다. 33절과 34절을 읽겠습니다.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혁혁한 위력으로 그 가지를 꺾으시리니 그 장대한 자가 찍힐 것이요. 그 높은 자가 낮아질 것이며 쇠로 그 빽빽한 숲을 베시리니 레바논이 권능 있는 자에게 베임을 당하리라” 레바논의 백향목에 대해서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레바논의 백향목은 높고, 웅장하며, 견고하여서 왕권의 영광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런 백향목이 빽빽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앗수르를 스스로를 그런 거대한 나무와 숲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빽빽한 숲도, 권능 있는 자에게는 베임을 당할 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란 뜻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혁혁한 위력으로 그 가지를 꺾으신다.’ 세상 제국의 권세를 능가하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통치와 심판 능력으로 앗수르를 멸하실 것입니다. 스스로 높아지며 교만했던 제국을 낮아지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끼로, 톱으로 그들을 잘라내실 뿐만 아니라, 진노의 막대기와 분노의 몽둥이로 앗수르를 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은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희를 돌아오게 할 것이다. 너희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할 것이고, 그 멍에를 벗겨줄 것이다.
4.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남은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남은 자는 단순히 숫자가 적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모두가 세상을 의지할 때에도 끝까지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들입니다. 모두가 현실을 따라갈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보다 앗수르를 의지했고, 앗수르가 무너지자 이번에는 애굽을 의지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20절)라고 말씀하십니다. 남은 자는 환경이 바뀌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각자의 '앗수르'가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염려, 건강의 문제, 경제적인 어려움, 사람에 대한 의존, 세상의 힘과 방법이 우리의 앗수르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그를 두려워하지 말라." 왜냐하면 우리의 인생을 다스리시는 분은 세상의 권세가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앗수르는 스스로 영원할 것처럼 교만했지만 하나님의 도끼 앞에서는 한순간에 쓰러지는 숲에 불과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는 남은 자를 끝까지 지키시고, 그들의 어깨에서 짐을 내려놓게 하시며, 목의 멍에를 꺾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남은 자를 찾고 계십니다. 많은 사람 가운데 섞여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어떤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남은 자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어 가셨습니다. 우리도 그 남은 자의 믿음을 품고, 세상을 두려워하기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우리 어깨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하시고, 우리의 멍에를 꺾으시는 하나님만 의지하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