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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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찬송가 268장
성경봉독 빌립보서 4:10-15
Philippians 4:10–15 NKRV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설교
히말라야의 고산족들에게는 양을 매매하는 아주 독특한 풍속이 있다. 그들은 양을 팔고 살 때, 양의 크기나 겉모습, 혹은 나이를 보고 값을 정하지 않았다. 오직 양의 ‘행동과 태도’를 보고 값을 정했다. 살 사람과 팔 사람은 사고자 하는 양을 가파른 산비탈에 가만히 놓아두고 함께 지켜본다. 이때 어떤 양은 겉보기에 조금 마르고 보잘것없어 보여도, 가파른 비탈 위를 향해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며 풀을 뜯어 먹는다.
그러면 그 양의 값은 올라갔다. 반대로 지금 당장 살이 포동포동하게 찌고 튼실해 보일지라도, 편안한 아래쪽을 향해 걸어 내려가는 양은 값이 뚝 떨어진다. 그 이유는 위로 올라가려는 양은 현재는 비록 숨이 차고 힘이 들지라도, 결국 넓은 산허리라는 ‘미래’를 맞이하게 되기 때문이다.
반면 아래로 내려가는 양은 현재는 걷기 수월하고 편할지 몰라도, 결국 좁은 협곡 바닥에 이르러서는 먹을 것이 없어 굶주려 죽기 때문이다. 고산족들은 양의 현재 몸집이 아니라, 그 양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과 태도’의 가치를 보았던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능력을 달라고 구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능력은 무엇일까요?
능력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능력을 가지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도 능력을 주시는데요. 그 능력은
첫번째,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입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쁨에 대해 말하는데요. 기쁨은 목적이 아니라 어떤 행동을 하고 난 뒤에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자 행동의 완성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기쁨을 위해서 행동을 하기보다는 기쁨은 결과로써 자연스럽게 따라오고요. 기쁨이 있을 때 모든 일과 행동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선한 일을 했을 때 보람과 기쁨이 찾아옵니다. 기쁨을 위해서 한 건 아닌데 우리의 선한 행동이 우리로하여금 기쁘게 만들고요. 그 선한 일이 기쁨으로 인해 완성되었다는 마음이 들게 합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쁨을 위해 행동하지 말고, 선한 일 자체를 해라 그러면 기쁨은 당연히 찾아올 것이고, 선한 일 자체를 하는 것이 너 자신이 되면서 기쁨도 이루는 그런 존재가 되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쁨을 얻으려고 많은 애를 씁니다. 기쁨을 위해 일하기도 하고, 운동도 하고, 놀러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쁨은 잘 얻어지지 않습니다. 기쁨을 얻으려는 모든 노력은 도파민과 같습니다.
도파민은 기쁨이 아닙니다. 도파민은 기쁨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동기부여입니다. 도파민은 무언가를 얻는 상태가 아니라 무언가를 얻을 것이라는 기대와 자극을 계속 주는 힘입니다.
도파민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기쁨이 아니라 기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힘입니다. 안좋게 말하면 착각입니다. 그러니 좋을 수도 있고, 안 좋을 수도 있습니다. 좋은 것도 아니고 안 좋은 것도 아닙니다.
그저 우리는 기쁨을 얻기 위해 끌려가는 자들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기쁨이 어디서 오는지 알아야 합니다.
기쁨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기쁨은 환경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처럼 감옥에 있더라도, 가진 것이 없어도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하늘의 것이자 하늘로부터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평강입니다.
우리가 그저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경험들이 많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십니다. 가만히 있는데 그냥 기쁨을 주시기도 하십니다. 내 삶을 되돌아볼 때 샘솟게 하시는 기쁨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하나님과 마음이 맞았을 때 기뻐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 10절을 다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여기보니 ‘싹이 났다’라고 표현합니다. 빌립보 교인들이 이제 바울의 사역을 생각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에 새싹이 나면서 그 일에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선교를 하며 교회를 세우는 일에 동참하는 싹이 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 싹을 보면서 기뻐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세상의 다른 환경으로 인해 기뻐하지 마시고, 그것이 기쁨이 될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하지 마시고, 주 안에서, 주님과 마음을 같이 하는 일에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기쁨으로 충만하게 채우시기를 축복합니다.
두번째로 하나님의 능력은 자족하는 능력입니다.
11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이 당시에 그리스 철학에서 ‘자족’이라는 단어가 유명했습니다. 특별히 스토아철학자들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살아가면서 아무일도 겪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무’의 상태를 추구했습니다.
그것이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고, 세상 것에 휘둘리지 않는 평온한 상태, 그것이 행복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당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고, 사용했던 단어인 ‘자족’을 사용하면서도 그것이 철학자들이 말하는 자족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족’임을 풀어냅니다.
바울은 높은 학력도 가져보고, 부유하게도 살아보고, 비천하게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훈련시키시면서 그 상황과 형편에 맞게 사용하시고,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그 모든 시간과 과정을 거치면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과 능력을 익혔습니다. 그래서 13절에 고백합니다. 13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고백은 바울이 자신이 원하는 모든 목표와 성공을 이룰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돈이 없어도, 상황이 안 좋아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시며, 나 또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 하나님의 일을 못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너희가 도와주지 않아도 나는 주의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빌립보교인들을 향해 너희가 함께 해주어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방글라데시 선교사이신 차성헌 한미선 선교사님이 계십니다. 한국에서 19년동안 한국대학생선교회 간사로 사역하시다가 선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선교단체 소속으로 가면 좋았을텐데 선교단체 간사를 현장 선교사로 곧장 보내기가 어려워서 이 부부는 선교단체를 사직하고 소속 없이 선교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분들이 하시는 말씀은 ‘생각보다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게 많지 않다’였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 자신의 집을 내주면서 20명의 아이들과 생활하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의 아이들에게 공부도 가르쳐주고 예배도 드리며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한 번은 이 선교사님들이 방글라데시 현지인들이 자신들의 신에게 기도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당신들은 왜 당신들의 신에게 기도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방글라데시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네 하나님은 부자 하나님이니까 뭐든지 들어주는 게 가능하겠지만, 우리 신은 가난해서 그럴 능력이 없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방글라데시 사람이 선교사들을 향해 비꼬면서 말하는 것입니다. 풍족한 삶을 사는 외국인들이 폭염과 배고픔 속에서 하루하루 버티는 자신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모습이 오만해 보였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 선교사님들도 자신들의 기준대로 방글라데시 사람들을 돕고 바꾸려고 했지만 그렇게 하려다보니 이상한 방향으로 가게 되고, 신앙과는 다른 방법을 찾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선교사님들도 엉뚱한 그림을 그리면서 바꾸려하기보다는 이들과 가깝게 살아가는 것이 더 맞겠다고 생각이 들어 이들의 삶을 이해하며 더 깊이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내가 무엇을 했다’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그러나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내가 되어간다’라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신의 뜻대로’라는 의미입니다.
어찌보면 무기력해 보이는 말일 수 있지만 거대하고 척박한 삶 앞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겸손의 언어라는 것도 배울 수 있습니다.
이 선교사님들은 자신들이 하고자 했던 많은 계획과 열정을 하나님 앞에서 훈련 받으며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가는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선교사님들의 귀한 섬김을 알고 계시고 칭찬하십니다.
그러나 이 어린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신앙으로 양육하며 현지인들을 섬기는 그 모습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것은 그 안에서 기뻐하는 능력과 자족하는 능력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버텨낼 수가 없습니다.
내 기준의 만족과 기쁨과 성공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가는 기쁨과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가는 만족하는 능력이 하나님의 선교를 이룰 것이고, 그 곳이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족하는 능력이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세번째, 하나님의 능력은 함께 참여하는 능력입니다.
1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능력은 함께 참여하는 능력인데, 단어 하나가 더 붙습니다. “괴로움에” 입니다.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는 능력’입니다.
관계에 있어서 최고 상태는 입장의 동일함입니다. 부자와 거지가 친구가 될 수 없고, 건강한 사람과 아픈 사람이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친구가 된다면 그런 척하는 것일 뿐이고, 깊이 교제할 수는 없습니다.
살아가는 환경이 너무 차이가 나고, 공감대가 없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의 마음은 가난한 사람이 가장 잘 압니다. 병든 사람의 마음은 병든 사람이 잘 압니다.
암에 걸린 사람은 다른 사람이 해주는 위로를 별로 듣고 싶지 않아하고, 자존심도 상해하며 위로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같은 암에 걸린 사람하고는 눈만 마주쳐도 눈물을 흘립니다.
처지가 똑같고 자신의 마음을 가장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죽이 잘 맞을 때는 싫어하는 사람이 같을 때입니다. 적이 같으면 어제의 원수도 오늘의 동지가 됩니다.
이렇게 바울은 자신의 선교 활동과 복음 전하는 일에 함께 해주어서 감사하다는 말을 합니다. 자신의 모든 환난과 고통을 알아주며 함께 동역해주는 빌립보교회에 싹이 나고 함께 참여해주는 모습에 감사합니다.
15절 끝에 보면 “참여한 교회”라고 나옵니다. 바울이 초창기 복음을 전할 때 참여한 교회가 너희 빌립보교회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참여’라는 단어는 다른 말로 하면 ‘교제’라고도 사용합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함께 교제하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바울에게는 이 교제만으로도 큰 힘이 되고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함께 참여할 사람들, 함께 교제할 사람들을 붙여주시면서 선교를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사실 힘든 일이 많지만 함께 참여하지 않더라도 교제할 수 있는 사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만 있어도 힘이 됩니다.
여러분들도 서로에게 서로의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는 자, 함께 교제하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타인의 괴로움에 참여하는 넉넉한 능력을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첫번째, 우리가 가져야 할 능력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하는 능력입니다.
두번째, 자족하는 능력입니다.
세번째,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는 능력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세 가지 능력을 모두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새벽에 여러분에게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하는 능력, 자족하는 능력,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는 능력을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하는 능력을 주옵소서. 자족하는 능력을 주옵소서.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는 능력을 주옵소서. 그리하여 이 땅에서 하나님의 능력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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