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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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봉독
성경봉독
1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3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11 권능이 세세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서론
서론
서로 축복의 말
오늘 하루 보내느라 수고했어.
잘했어, 애썼어
오늘 하루 어떠셨는가?
힘들지 않았는가?
어려움이 있지는 않았는가?
오늘 설교 제목
고난과 영광
수식어를 붙이면
잠깐 고난, 그러나 영원한 영광
고난과 영광
함께 하기에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말 같다.
서로 반대편에 있는 단어이다.
‘영광’이라는 단어만 있으면 좋겠다.
‘고난’이라는 단어는 우리 인생에 없으면 좋겠다.
이것이 우리의 솔직한 마음이다.
그러나 분명 성경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영광이 있고 또한 고난이 있다 말씀한다.
아니, 고난이 있지만 또한 영광이 있다 말씀한다.
고난이 무엇인가?
어떤 면에서 거창한 것이 아니다.
고난은 어려움이다. 힘이 드는 것이다.
세상 살기 힘들다. = 이것이 고난이다.
여기에 괄호가 쳐져 있는 것이 있다.
(그리스도인으로 믿음을 지키며 사는 것이) 힘들다.
세상 사람들도 세상 살기 힘들다고 말한다.
그 고난과 어려움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질 수 있다.
여기에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이기에 주어지는 고난이 있다.
그리고 또한 예수님 안에서 주어지는 영광이 있다.
우리가 오늘 함께 볼 베드로전서
고난의 책, 또한 영광의 책
빈도로 따졌을 때 ‘고난’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나오는 책
그의 못지 않게 많이 나오는 단어 - ‘영광’
‘영광’이라는 단어도 빈도로 따졌을 때 가장 많이 나오는 책 중의 하나
오늘 이 시간 베드로전서 5장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고난과 영광에 대해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한다.
위로와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축복한다.
본론
본론
1절 - 고난과 영광
1절 - 고난과 영광
1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베드로는 이 편지에서 여러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2장 - 나라: 왕(총독)과 백성 - (벧전 2:11-17)
집: 주인과 종, 상전과 하인- (벧전 2:18-25)
3장 - 가정: 남편과 아내 - (벧전 3:1-7)
이러한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말씀한다.
마지막 5장에서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
장로 - 젊은 자
베드로는 먼저 자기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나는 함께 장로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이 말씀 속에 오늘의 주제인 고난과 영광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누구의 고난과 영광인가?
그리스도의 고난, 그리스도의 영광
베드로는 자신을 예수님의 고난을 직접 목격한 증인이라고 말한다.
또한 장차 나타날 예수님의 영광에 함께 참여할 자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고난과 영광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베드로도 예수님의 고난에 대해 이 편지 곳곳에서 이야기한다.
특별히 2장의 말씀
22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피조물인 인간이 되셔서
우리 인간들의 죄값을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이것이 예수님이 받으신 고난이다.
또한 베드로는 예수님의 영광에 대해서도 이 편지 곳곳에서 이야기한다.
특별히 3장
18 …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22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하나님은 죽임 당하신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다.
우리를 위해 낮아지신 예수님을 다시 높이셨다.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
이 세상 모든 피조물들이 예수님 발 앞에 복종케 하셨다.
친히 인간이 되신 예수님을 높이사 하나님의 영광을 다시 누리게 하셨다.
그리고 이 세상을 심판하시러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이다.
예수님의 그 영광을 이 땅에 나타내실 것이다.
예수님의 고난과 영광 그리고 우리의 고난과 영광
예수님의 고난과 영광 그리고 우리의 고난과 영광
예수님의 고난과 영광이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베드로는 1절에서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님의 영광을 함께 누릴 자라고 말한다.
예수님의 영광이 자신의 영광이 된다 말씀한다.
베드로만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 모두 예수님의 영광에 참여할 자이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예수님 안에서 우리도 영광을 얻게 될 것이다.
이 놀라운 은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 땅에도 많은 영광이 있다.
사람의 영광을 얻기 위해서도 사람들은 부단히 노력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영광은 세상 그 어떤 영광과도 비교할 수 없다.
우리에게 주어질 그 영광을 바라보며 사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한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고난은 어떠한가?
예수님의 영광이 나의 영광이 된다면,
예수님의 고난은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우리는 예수님의 영광뿐 아니라 예수님의 고난에도 함께 참여하는 자이다.
앞 장인 4장 13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 믿으면 행복만 있고 영광만 있으면 좋을텐데
고난도 있다고 하니 한편으로 마음이 무거워질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이다.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의 영광뿐 아니라 예수님의 고난에도 참여하는 자이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는 무엇이라 말씀하는가?
‘즐거워하라’고 말씀한다.
왜냐하면 이 고난은 장차 올 영광을 약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베드로 사도는 이어지는 14절 말씀에
고난 받는 자가 복 있는 자라고 말씀한다.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예수님이 받으신 고난과 장차 나타날 그 영광을 바라보며
우리도 그 고난과 영광에 참여하는 복된 우리들 되기를 축복한다.
2-4절
2-4절
이어지는 2-4절 말씀에
베드로 사도는 교회 공동체에서
장로들이 어떻게 교회와 성도를 섬겨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한다.
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3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장로 = 교회 지도자
양을 치는 목자에 비유
양 무리 = 교회 성도들
누구의 양 무리인가?
하나님의 양 무리
목자의 양 무리가 아니다.
장로들의 양 무리가 아니다.
자신을 ‘함께 장로 된 자’라고 소개한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무엇이라 말씀하셨는가?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예수 믿는 우리 모두는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소유이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며,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 사실을 분명히 잊지 말아야 한다.
교회 지도자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칠 것인가?
억지로 하지 말라
자원함으로 하라
기꺼이 하라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우리교회 표어 가운데 하나
장로님이 있어 행복한 교회
베드로의 이 말씀을 따라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는
담임목사님과 장로님, 교회 지도자들이 있어
참 행복하다.
이렇게 양 무리를 섬길 때 교회 지도자들에게 어떤 결과가 주어질까? 4절
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목자장 = 목자들의 대장
=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
수고한 교회 지도자들은 영광을 얻을 것이다.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을 것이다.
이것은 비단 장로들에게만 주어지는 영광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영광의 관이다.
그 영광을 바라보는 우리들 되기를 축복한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서 볼 말씀이 있다.
2절의 말씀이다.
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라’
우리는 늘 우리 마음의 중심을 잘 살펴야 한다.
내가 지금 어떤 마음으로, 어떤 목적으로 이 일을 하는가?
베드로는 장로들을 향해 ‘더러운 이득’을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마음 자세이기도 하다.
더러운 이득이란 무엇인가?
이 말씀도 잘 이해해야 한다.
오해해서는 안된다.
이득, 즉 이익이나 수익 그 자체가 더럽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더럽다 = 부끄럽다, 수치스럽다, 부정직하다, 떳떳하지 못하다.
장사를 하든지 일을 하든지 그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득을 남겨야 한다.
교회의 지도자들, 특별히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전적으로 교회와 성도를 섬기는 일을 하는 교역자들이 사례를 받는 것도 당연하다.
그래야 먹고 살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득이 정당하지 않거나 부정직한 방법으로 얻은 수익이라면,
그것은 ‘더러운 이득’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득이나 수익 그 자체가 아니라
‘더러운 이득’이 문제인 것이다.
죄와 고난
죄와 고난
이 지점에서 우리는 고난을 만나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언제 찾아오는가?
죄와 싸울 때 고난이 찾아온다.
죄의 정욕과 싸울 때 고난이 찾아온다.
죄를 버리고 선을 행하고자 할 때 고난이 찾아온다.
이러한 고난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내 안의 죄와 싸울 때 찾아오는 고난
두번째는 이 세상에 드러난 죄와 싸울 때 찾아오는 고난
내 안의 죄와 싸울 때 찾아오는 고난
내 안의 죄와 싸울 때 찾아오는 고난
먼저 내 안의 죄와 싸울 때 찾아오는 고난이 있다.
죄가 어디서부터 나오는가?
사람의 마음에서부터 나온다.
우리는 분명 예수님을 믿어 죄사함을 받았고, 구원받은 자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안에는 죄의 본성이 남아 있다.
죄의 정욕이 있다.
장로들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는 목자의 위치에 있지만,
그들에게도 죄의 본성이 남아 있고 죄의 정욕이 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교회의 재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정당하지 않은 이득, 부끄러운 이득에 마음이 갈 수도 있다.
돈의 유혹 앞에 마음이 무너질 수 있다.
나의 영혼은 ‘그건 옳지 않아’라고 하지만,
죄의 정욕은 ‘괜찮아, 아무도 모르는데’라고 유혹할 수 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삶에서 동일하게 경험하게 되는 문제이다.
이어지는 말씀도 동일한 죄의 정욕을 이야기한다.
5-6절 말씀이다.
5-6절
5-6절
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젊은 자들
= 교회 공동체 안에서 장로들, 즉 교회 지도자들의 다스림을 받는 자들
무엇이라 말씀하는가?
장로들에게 순종하라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그 결과가 무엇인가?
때가 되면 높여 주신다.
여기서도 죄의 정욕이 젊은 자들을 힘들게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어떤 죄의 정욕인가?
교만
베드로 사도가 ‘겸손하라’라고 계속 강조해서 말씀하는 것은
반대로 겸손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내 안에 있는 죄의 정욕이 나를 교만으로 이끌어가려고 한다.
하나님이 주신 교회의 질서와 권위를 무시하고
자신을 높이고자 하는 욕망이 나를 부추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고난’이 생기는 것이다.
더러운 이득이 생각날 때, 교만이 나를 찾아올 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자 하는 선한 양심과
내 죄의 정욕 사이에서
어려움,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죄 가운데 살 때에는 전혀 갈등이 없었다.
부끄럽다는 것도 모른 채, 남들도 다 하는데라고 스스로 정당화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예수님 안에서 구원받은 자로서
죄가 아니라 선을 행하고자 할 때,
하나님의 말씀과 그 질서와 권위를 따라 살고자 할 때,
선한 양심을 지키고자 할 때
고난과 어려움이 찾아온다.
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베드로 사도는 말씀한다.
14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우리는 그 고난을 이겨내야 한다.
죄의 정욕과 사욕에 맞써 싸워야 한다.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해야 한다.
내 안의 죄의 정욕과 싸워 이기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한다.
그 고난을 이기고 승리하는 우리 되기를 축복한다.
이 세상에 드러난 죄와 싸울 때 찾아오는 고난
이 세상에 드러난 죄와 싸울 때 찾아오는 고난
또한 우리에게는 또 다른 고난이 있다.
이 세상에 드러난 죄와 싸울 때 찾아오는 고난이다.
이 세상에 죄가 있다. 악이 있다.
사람들 마음에 있던 죄의 정욕이
말로 행동으로 이 세상에 드러나고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죄로 인해
내가 이 세상에서 맺고 있는 여러 관계 속에서
부당한 일들을 당할 때가 있다.
억울한 일을 당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내가 예수를 믿고 있다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을 수도 있다.
붙의한 직장 상사 때문에
예수를 믿지 않는 남편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가?
이 때 우리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 세상은 어떻게 하는가?
악한 세상에서 내가 더 악해지라고 말한다.
한 대 맞으면 두 대 때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살아남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는다.
악이 아니라 선을 행하라고 말씀한다.
이 때 우리에게 고난이 찾아온다.
이 세상에 드러난 죄와 싸울 때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악을 선으로 갚을 때 우리에게 고난이 찾아온다.
악한 세상에서 선을 행하며 살 때 고난을 당하게 된다.
이 세상의 방식대로 산다면 받지 않을 수 있는 고난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할 때 받게 되는 고난이다.
베드로 사도는 그 고난을 우리가 이겨내야 한다고 말씀한다.
몇 말씀만 살펴보자.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17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이것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내 안의 죄의 정욕과 맞서 싸우는 것도 쉽지 않지만,
이 세상의 죄와 맞서 싸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말이 쉽지….
승리의 비결은 나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있다.
7-9절
7-9절
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베드로 사도는 말씀한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근신하라 깨어라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마귀를 대적하라
분명 우리의 고난은
내 안의 죄의 정욕과 또한 이 세상 죄와 맞서 싸울 때 주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 뒤에 숨어있는 적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대적 바로 사탄 마귀이다.
사탄 마귀가 우리의 죄의 정욕을 자극해서 우리를 넘어뜨리려 한다.
이 세상 죄도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인 사탄 마귀의 영향 아래 있는 것이다.
나를 괴롭히는 죄의 정욕도, 직장 상사도
궁극적으로는 그 뒤에 우리의 대적 마귀가 있다.
그러하기에 이 대적 사탄 마귀와 맞서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힘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맞서 싸워야 한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6장에서 이렇게 말씀한다.
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우리에게 고난이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
그러할 때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
그 승리는 맛보는 우리들 되길 축복한다.
결론
결론
이 땅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는 분명 고난이 있다.
만약 그러한 고난이 없다면
지금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제대로 살고 있는가 자신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혹시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죄와 싸우고 마귀와 대적하며 살아야 한다.
쉽지 않은 싸움이다.
하지만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싸움은 이미 승리한 싸움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10-11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같이 읽어보자.
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11 권능이 세세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이 말씀이 얼마나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
우리가 누구인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간 자들이다.
우리에게는 이미 그 영광이 주어졌다.
지금은 감추어져 있고 가려져 있지만, 곧 드러나고 나타나게 될 영광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우리에게 고난이 주어진다.
잠깐의 고난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신다.
온전하게 하신다(카타르티조, καταρτίζω)
= 고난 받을 수 있게 미리 준비하시고 적합하게 하신다.
굳건하게 하신다(스테리조, στηρίζω)
=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나의 마음을 확고하게 붙잡아 주신다.
강하게 하신다(스쎄노우, σθενόω)
= 힘 있게 하신다.
터를 견고하게 하신다(쎄멜리오우, θεμελιόω)
= 기초를 놓아 튼튼하게 하신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우리가 그 고난을 넉넉히 이길 수 있도록
우리를 붙잡아 주신다.
그리고 그 고난을 통해 우리를 더욱 연단하시고 성숙하게 하신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은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을 붙잡고 나아가는 우리들 되기를 축복한다.
우리에게 주어질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며
우리의 고난 가운데 승리하며 나아가는 우리들 되길 축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