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뒤집는 결정적 만남 2026 0731 요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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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참조: 2024 0719 주키즈 여름성경학교 -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요14:6)
인트로: 혼자서는 살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들'
인트로: 혼자서는 살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들'
사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결코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로 지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시면서도, 첫째 인간인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은 보기에 좋지 못하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여자를 만들어주셨죠. 사람은 혼자서 사는 모습이 불완전하다는 거예요. 그것이 물리적인 고립이든, 사회적인 고립이든 혼자라는 것은 외로운 거예요. 부모님을 만나고, 친구를 만나고, 끊임없이 누군가와의 연결을 갈구하죠. 요즘 청소년, 청년들이 SNS 피드를 끊임없이 새로고침하고, 알고리즘 매칭에 열광하는 이유도 본능적으로 ‘나를 채워줄 만남’을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론 2: 목사님의 인생을 뒤집은 세 번의 만남 (간증)
본론 2: 목사님의 인생을 뒤집은 세 번의 만남 (간증)
두 번째는 지금의 제 아내를 만난 사건입니다. 서로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살던 두 사람이 만나서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머나먼 타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둘이 하나가 되었더니, 제 인생에 기적 같은 하나님의 선물이 더해졌습니다. 셋이 되고, 넷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딸과 아들이 태어난 것이죠.(웃음)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가정을 이루어가는 이 만남이 제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 되었습니다.
세 번째는 이스라엘을 만났습니다. 저의 지난 20대 후반에서 30대 후반을 모두 쏟아부은 이스라엘에서의 생활.
인간의 만남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한계가 있습니다. 밴드 동역자도,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도 내 영혼의 가장 깊은 배고픔과 외로움까지 대신 채워줄 수는 없습니다.
우리 인생도 똑같습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영혼에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절대적인 빈자리'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은 인간의 마음에 하나님이 만든 공백이 있다고 했죠. 다시 말해서 우리는 영이 채워져야 만족감을 느끼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청소년, 청년 시절에 우리가 왜 그렇게 인스타 좋아요 수에 목을 매고(운동 인스타 만듬. 팔로워 좋아요 목매는 나), 단톡방에서 소외될까 봐 전전긍긍하고, 애인이 생겨도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에 방황할까요? 내 영혼의 절대적인 빈 자리가 비어 있어서, '불안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는 찬양 ‘내 마음의 한 자리’ 가장 귀한 그 자리에 주님 오셔서 통치하시고 다스려야, 내가 주님으로 채워져야 세상 살아가며 부족함을 느끼지 못한다는 거예요.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조건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그저 나를 믿고 사랑해달라고 하십니다. 십자가에서 오히려 자신의 전부를 내어주시며 말씀하십니다. "너는 아무 조건 없이, 내 눈에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내 자녀다." 우주에서 가장 거대하고 완벽한 사랑이 내 영혼의 빈자리에 딱 들어맞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안정'을 얻습니다. 더 이상 사람들에게 구걸하지 않아도 되는 당당한 자존감이 생깁니다. 친구가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적이 조금 떨어져도 내 존재가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백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구원이자, 죄의 고립에서 해방되는 만남의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한빛교회 다음세대 여러분, 우리는 내일 이 수련회 둘째 날에 아주 중요한 주제인 ‘연합과 하나됨’에 대해 더 깊이 이야기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 시대에 빛이요, 소금이요, 소망을 주는 멋진 공동체가 될 수 있을지 배울 것입니다.
그런데 기억하십시오. 첫째 날 밤인 오늘, 내가 예수님을 만나 내 영혼이 먼저 안정되지 않으면, 내일 우리는 절대로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내가 여전히 결핍에 시달리는 시한폭탄(나트륨)이고, 상처로 가득한 독가스(염소) 상태 그대로인데 어떻게 옆 사람과 아름답게 연합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 안에서 온전해져야, 비로소 내일 누군가를 품어줄 수 있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재료가 되는 것입니다.
이 간절한 영적 갈망을 가지고, 다 함께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