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주신 은혜를 믿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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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읽는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이야기입니다. 입다는 암몬과의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전쟁에 나가기 전 입다 자신이 했던 경솔한 서원 때문에 하나뿐인 딸을 잃는 비극을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서원에 대한 교훈을 넘어,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세상의 방식을 버리지 못하는 혼합된 신앙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믿고 의지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교훈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29절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에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
  이 한 문장이 오늘 본문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입니다. 입다가 아직 서원하기 전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무엇을 약속하기 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하나님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입다를 붙드시고, 전쟁을 위해 세우시고, 그와 함께하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여러 번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우상을 섬겼고, 고난을 당할 때에야 하나님을 다시 찾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반복되는 배신을 책망하셨지만, 그들이 당하는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사사기 10장 16절 말씀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니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배반을 책망하시고 징계하시면서도, 그들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암몬 족속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은 입다가 좋은 조건을 제시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구원받을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들이 회개하면서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이유는 자기 백성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구원의 시작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입다는 하나님의 긍휼과 구원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이미 자신에게 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쟁터로 나가면서 승리를 보장받기 위해 하나님께 서원을 합니다. 30절 말씀입니다.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
  그는 하나님의 임재만으로 안심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해 주시면 자신도 하나님께 큰 것을 드리겠다는 거래를 제안한 것입니다.
  우리는 입다의 서원에 혀를 차는데, 사실 우리도 이렇게 기도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 이 문제만 해결해 주시면 제가 이렇게 하겠습니다. 이번에 합격만 시켜주시면, 사업이 잘되게 해 주시면, 병만 고쳐주시면 제가 이렇게 하겠습니다.”라는 식의 기도를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절박한 마음에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과 거래하려는 생각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특별한 약속을 하고 서원을 해야 하나님께서 움직이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약속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무엇을 바쳐야 비로소 은혜를 베푸시는 분도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기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은혜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기 전에 우리를 먼저 찾아주셨습니다. 우리가 약속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와 언약을 맺어주셨고, 우리가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는 거래가 아니라 신뢰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이것을 해주시면 이렇게 하겠습니다. 믿겠습니다”가 아니라, “하나님, 이미 나를 사랑하시고 함께하심을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주님의 뜻에 내 삶을 드립니다, 맡겨드립니다”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입다는 이렇게 서원했습니다. 31절 말씀입니다.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말만 들어보면 대단한 헌신처럼 들립니다. “하나님께서 승리를 허락하시면 무엇이든 드리겠습니다!”라는 뜨거운 결단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서원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것은 오히려 이방 종교의 영향을 받은 잘못된 서원이었습니다. 당시 모압과 암몬 사람들은 신의 도움을 얻기 위해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풍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입다는 하나님을 믿었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은 이런 잘못되고 끔찍한 이방 신을 섬기는 생각이 섞여 있었던 것입니다.
  입다는 서원으로 자기 집에 있는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렸습니다. 입다를 가장 먼저 맞으러 나온 사람은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 그를 영접한 하나뿐인 딸이었습니다. 승리의 노래가 순식간에 애곡으로 바뀌었습니다. 입다는 옷을 찢으며 외쳤습니다. 35절 말씀입니다.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하니”
  입다가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라고 말한 것은 경건하게 들립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금하신 일을 하겠다는 약속은 지켜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잘못된 서원을 했으면 그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면 됩니다. 약속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더 큰 죄를 지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체면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입다는 스스로 한 말을 어떻게 돌이키겠냐고 했지만, 그가 지켜야 했던 것은 자신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자신의 체면이 아니라 딸의 생명을 지켜야 했다는 것입니다.
  입다는 이스라엘을 암몬의 손에서 구원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과 가정을 구원하지는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사사였지만, 이방 신의 사상이 섞여 있었습니다. 결국 그는 인간 사사의 한계를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입다보다 더 온전한 사사가 필요합니다. 자기 욕망을 이루기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지도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구원자가 필요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입다의 딸은 아버지의 경솔한 말 때문에 희생되었지만, 예수님은 아버지의 실수 때문에 희생되신 것이 아닙니다. 입다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딸을 내놓았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자기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이 새벽에 나왔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를 오래 하고 큰 결단을 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자녀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정말로 믿으면 우리의 기도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주님, 이것을 해 주시면, 저도 이렇게 하겠습니다”라는 거래의 기도에서, “주님, 이미 모든 것을 주셨으니 오늘 제 삶을 기쁨으로 드립니다”라는 감사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무언가 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임하셨습니다. 우리가 무언가 약속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큰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거래의 대상으로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거창한 맹세가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시간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저의 이것을 해결해 주시면 저도 이렇게 하겠습니다”라고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이미 나를 사랑하심으로 독생자 예수님까지 주셨으니 오늘도 그 은혜와 사랑을 믿고 주의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라고 기도하며 나아가는, 이런 믿음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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