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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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어둠에서 하나님의 빛으로 부름받습니다.
주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어둠에서 하나님의 빛으로 부름받습니다.
명제: 참빛이신 예수님께서 어둠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먼저 찾아오셨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새로운 신분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의 이름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이름으로 살아야 합니다.
명제: 참빛이신 예수님께서 어둠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먼저 찾아오셨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새로운 신분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의 이름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이름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도신경
사도신경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본문
본문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베드로전서 2:9
인사
인사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주님 다시 오십니다. 아멘!
서론
서론
우리는 모두 자신의 얼굴보다 다른 사람의 얼굴을 더 많이 보며 살아갑니다.
태어나서 가장 먼저 보는 얼굴도 내 얼굴이 아닙니다. 우리를 안아 주고 바라보는 부모님의 얼굴을 먼저 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이 나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어떤 이름을 부를 때, 그 이름이 바로 나를 가리킨다는 것도 배우게 됩니다.
우리 주아도 처음에는 엄마의 얼굴과 목소리를 먼저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 “주아야”라고 부르면, 자기를 부르는 줄 알고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다른 사람이 불러 주는 이름을 통해 자신을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우리에게 처음 이름을 지어 준 사람도 대부분 부모님이나 가족입니다.
부모님은 자녀의 이름을 지을 때 그 이름에 뜻과 바람을 담습니다.
“큰 사람으로 자라라.”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어라.”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어라.”
여러분은 자기 이름의 뜻을 알고 있나요?
예니 누나의 이름 뜻을 아시나요?
예쁘다 니보다. 농입니다. 예쁜 이 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예솜이는 많은 사람들이 유추했는데 잘 모르겠더라고요.
대부분 교회다니는 친구들의 ‘예’는 예수님일텐데 ‘솜’이라는 의미가 무엇일지 많은 선생님들, 집사님들이 추측을 했는데 다 틀렸습니다.
예솜이 이름의 뜻은 예수님의 솜씨 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우리 모두의 이름에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지어 준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길 바라는지,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지, 그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름의 뜻만으로는 자기 자신을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너는 어떤 사람이야? 물었을 때 이름의 뜻만 알려주면 소개가 충분할까요?
이름은 나를 가리키지만, 이름의 뜻만으로 나의 생각과 성격, 상처와 고민, 믿음과 삶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자신은 이름의 뜻으로 설명하기에 부족하고 그 뜻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조차도 잘 모릅니다.
오늘 본문의 사람들도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 이 땅에 오셨는데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그분을 “참빛”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대지1 우리는 참빛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대지1 우리는 참빛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9절입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예수님은 참 빛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세상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빛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9절에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라고 말하는 것을 통해
사람들이 밝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들이 죄로 인해 어둠 가운데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참 빛이신 예수님이 각 사람을 비추시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죄로 인해 어둠인 사람들이 참 빛이신 예수님을 알지 못했다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분이 방학이라서 늦게까지 자고 있는데 엄마가 불키고 커튼을 겆으시면 어떻게 하나요?
이불 속으로 숨어 들어가죠.
어둠에 있을 때 빛은 방해가 됩니다. 어둠으로 계속해서 숨어들어가게 됩니다.
빛이 왔는데도 빛을 싫어하고 거절하는 것이 인간의 문제 였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없이 살려고 했습니다.
정확하게는 자신의 하나님을 꿈꾸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경을 알고 있어도 자신들 정해놓은 기준의 메시아를 꿈꿨습니다.
로마의 억압에서 자신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로마의 군사력을 뛰어넘을 힘 있는 메시아,
가난과 궁핍에서 풍요롭게 할 수 있는 부자 메시아를 꿈꾸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멋진 백마가 아니라, 나귀 새끼를 타고 오셨습니다.
권력과 카리스마가 넘치는 메시아를 꿈꿨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메시아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알아보지 못하고 맞이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어떤가요?
나의 꿈과 나의 평안을 이루실 예수님 기대하고 있나요?
아니면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나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선과 악을 받아들이지 않고 내가 삶의 기준이 되려고 하는 것은 죄입니다.
나를 지으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을 정의하려는 것은 죄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의 결과는 하나님을 잃고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잃으면 자신이 누구인도 알 수 없게 됩니다.
현재 위치를 잡지 못하는 내비게이션은 길을 찾아 갈 수 없습니다.
저는 택시 운행을 하니까 항상 내비를 봅니다.
터널을 지나거나 GPS 신호가 약한 곳에 가면 내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목적지를 제대로 입력해도 현재 위치를 잡지 못하면 길을 제대로 안내하지 못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지으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어버리면 내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것들을 붙잡고 자신을 설명합니다.
“나는 공부를 잘해서 괜찬은 사람이야”
“나는 친구가 많으니까 괜찮은 사람이야”
“나는 저 사람보다 일을 잘하니까 중요한 사람이야”
하지만 이런 기준들은 계속 바뀝니다.
성적은 오르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합니다.
친구 관계도 계속 달라집니다.
내가 잘하던 일을 어느날 다른 사람이 더 잘하게 될 수 있습니다.
변하는 것들을 기준 삼고 자신을 설명하면 우리의 마음도 계속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나 자신을 설명할 수 없을 때 우리는 묻게 됩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지?”
오늘 말씀에서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해라”말하지 않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라”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을 제대로 알려면 먼저 나를 지으신 분을 알아야 합니다.
감사한 일은 우리는 우리를 지으신 분을 알아보지 못해도,
나를 지으신 분이 나에게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대지2 참빛이신 예수님을 알아봐야합니다.
대지2 참빛이신 예수님을 알아봐야합니다.
9절에서 참빛이 세상에 왔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빛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빛이 우리에게 왔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 뒤 14절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멀리서 우리에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너희가 깨끗해진 다음에 나아게 와라”
“너희 자신이 누구인지 먼저 알아내고 나에게 와라”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죄인들의 자리로 오셨습니다.
아픈 사람을 만나주시고, 외면받고 혼자 있는 사람을 찾아가셨습니다.
죄인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시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 나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갈 수 있을 만큼 선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찾아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내 마음속만 계속 들여다본다고 발견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찾아오신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모른다면 나도 나를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 있나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도 알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셨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에 관해 아는 것과 예수님을 믿는 것은 같은게 아닙니다.
교회에 오래 다녔다고 자동으로 예수님을 믿는게 아니죠.
성경 이야기를 많이 안다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잠시 위로하기 우해 찾아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이름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이름은 무엇일까요?
대지3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이 주어집니다.
대지3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이 주어집니다.
12절과 13절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세상과 하나님의 백성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2절은 “그러나”라는 반전을 보여 줍니다.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거절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2절은 이어서 영접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설명합니다.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내 삶에 필요한 여러 가지 중 하나로 추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힘들 때만 찾는 해결사로 받아들이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나의 죄를 담당하신 구원자이시고, 내 삶의 주님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나의 생명과 삶을 맡기는 것, 예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신뢰하는 대상에게 중요한 것을 맡깁니다.
믿을 수 없는 사람에게 내 비밀번호를 알려 주지 않습니다.
신뢰할 수 없는 곳에 중요한 물건을 두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에 관한 내용을 머리로 인정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내 생명과 미래, 계획과 선택을 예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예수님, 주님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십니다.”
“예수님 저는 미래가 불안합니다. 하지만 저와 동행하시는 주님을 신뢰합니다”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라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따르겠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신뢰하는 사람에게 놀라운 이름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
이것이 이번 수련회에서 우리가 발견해야 할 첫 번째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낸 이름이 아닙니다.
우리의 노력과 능력으로 얻은 자격도 아닙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합니다.
성적이 좋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착한 행동을 많이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믿는 가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자동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에 오래 다녔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번 수련회에 참석했다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자녀가 되는 새로운 신분을 주십니다.
13절은 이 일이 인간의 혈통이나 욕망, 뜻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겉모습을 고치고 좋은 습관을 만든다고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좋은 습관과 성실한 노력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지는 못합니다.
예수님을 신뢰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새롭게 낳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관계를 주십니다.
여기서 반드시 구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엄한 존재입니다.
누구도 성적이나 외모, 장애나 가정환경 때문에 무시받아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요한복음이 말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구원적 신분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단순히 “모든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자녀인데 그 사실만 깨달으면 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본문은 우리를 예수님께 초대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라.”
“그 이름을 믿으라.”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자녀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은 이제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녀는 부모를 닮아 가며 성장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도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살아갑니다.
실수했으면 회개해야 합니다.
친구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사과해야 합니다.
공부해야 할 책임이 있다면 성실하게 공부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적이 떨어졌다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이 성적과 함께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친구 관계가 어려워졌다고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시는 것도 아닙니다.
실수했다고 그 실수가 나의 마지막 이름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실패를 회개하지만 실패로만 정의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부족함을 인정하지만 부족함이 우리의 마지막 이름이 되지는 않습니다.
결론
결론
여러분, 우리는 오늘 한 가지 질문으로 말씀을 시작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습니다.
이름에 담긴 뜻도 알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름의 뜻과 세상의 평가만으로는 나라는 사람을 모두 설명할 수 없습니다.
성적과 외모, 친구들의 반응과 과거의 실수도 나를 끝까지 설명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 먼저 누구를 바라봐야 하는지 알려 줍니다.
참빛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새로운 이름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결단은 한 가지입니다.
이번 수련회 동안 세상이 붙인 이름표보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름을 더 크게 듣는 것입니다.
오늘 기도할 때 다음 한 문장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기 바랍니다.
“예수님, 저를 비추어 주시고, 제가 주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해주세요.”
아직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와 주님으로 믿는 것이 분명하지 않다면, 오늘 예수님을 영접하기 소망합니다.
이미 예수님을 믿고 있다면, 사람들의 평가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굳게 붙잡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자녀다.”
이번 수련회 동안 이 이름이 우리의 마음에 남기를 바랍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기도
헌금기도
헌금기도
결단찬양
결단찬양
주기도문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