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인지 잊어버릴 때(참된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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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봉독: 사사기9:7-15, 56-57 (요담의 우화와 그 성취)
사사기 9:7–15 NKRV
7 사람들이 요담에게 그 일을 알리매 요담이 그리심 산 꼭대기로 가서 서서 그의 목소리를 높여 그들에게 외쳐 이르되 세겜 사람들아 내 말을 들으라 그리하여야 하나님이 너희의 말을 들으시리라 8 하루는 나무들이 나가서 기름을 부어 자신들 위에 왕으로 삼으려 하여 감람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우리 위에 왕이 되라 하매 9 감람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게 있는 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나니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 한지라 10 나무들이 또 무화과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 위에 왕이 되라 하매 11 무화과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의 단 것과 나의 아름다운 열매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 한지라 12 나무들이 또 포도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 위에 왕이 되라 하매 13 포도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내 포도주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 한지라 14 이에 모든 나무가 가시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 위에 왕이 되라 하매 15 가시나무가 나무들에게 이르되 만일 너희가 참으로 내게 기름을 부어 너희 위에 왕으로 삼겠거든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니라 하였느니라
사사기 9:56–57 NKRV
56 아비멜렉이 그의 형제 칠십 명을 죽여 자기 아버지에게 행한 악행을 하나님이 이같이 갚으셨고 57 또 세겜 사람들의 모든 악행을 하나님이 그들의 머리에 갚으셨으니 여룹바알의 아들 요담의 저주가 그들에게 응하니라
도입: 진정한 성공은 무엇인가?
***오래전 미국에서 큰 사랑을 받은 《초원 위의 작은 집》이라는 드라마에 이런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어느 시골의 순박한 농부 부부가 고향을 떠난 지 25년 만에 동창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은 대부분 돈도 많이 벌었고, 세련된 옷을 입은 성공한 고위층이 되어 있었습니다. 소박하게 살던 농부 부부는 기가 죽고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대화를 나누다 보니, 겉보기엔 화려해 보이던 친구들의 삶이 불행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정이 깨어져 있었고, 가슴속에는 알 수 없는 공허함만 가득했던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에서 내린 부부를 향해 시골집 마당에서 놀던 어린 자녀들이 해맑게 웃으며 뛰어와 품에 안겼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남편이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 이게 성공이 아니라면, 대체 뭐가 성공일까?" 여러분은 성공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여러분, 눈을 감고 커다란 계단 하나를 상상해 보세요. 아주 높은 계단이에요. 그런데 이 계단에는 이상한 규칙이 있어요. 한 칸에 한 사람만 설 수 있어요. 그래서 위로 올라가려면, 내 앞에 있는 사람을 밀어내야 해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자꾸 이 계단처럼 보일 때가 있어요. 누가 더 높은 칸에 섰는지 줄을 세워요. "쟤는 몇 등이야?" "누가 이겼어?" "누가 더 잘났어?" 위의 칸에 선 사람은 "성공한 사람", 아래 칸에 선 사람은 "실패한 사람"이라고 불러요.
그런데 잘 생각해 보세요. 그 계단 위에서는 아무도 쉴 수가 없어요. 조금만 방심하면 밀려 내려가니까요. 그래서 계단 위 사람들은 늘 불안하고, 계단 아래 사람들은 늘 슬퍼요.
성도 여러분, 오늘 세상이 말하는 성공은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 '얼마나 높은 위치에 올랐는가'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시는 진정한 성공은 다릅니다. 온 가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서로를 사랑하며, 하나님이 주신 자리에서 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보시는 참된 성공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세상이 말하는 성공의 꼭대기에 올랐지만, 정작 하나님을 잊어버림으로써 자신과 가문을 비극으로 몰고 간 기드온과 아들 아비멜렉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두 사람의 삶을 살펴보면서 진정한 성공이 무엇인지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하나, 기드온의 숨겨진 모순 — 성공 뒤에 찾아온 타락
기드온은 위대한 영웅이었습니다. 단 300명의 용사로 미디안의 대군을 무찌른 인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에게 찾아와 "우리들의 왕이 되어 주십시오"라고 요청했을 때, 기드온은 멋지게 거절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말은 참 멋졌습니다. 하지만 실제 그의 삶은 어땠을까요?
그는 왕의 자리는 거절했지만, 왕의 특권은 모두 누렸습니다. 수많은 아내와 첩을 거느리고 70명이 넘는 아들을 두었습니다. 심지어 전쟁에서 얻은 금으로 '에봇'(제사장이 제사할 때 입는 거룩한 예복)을 만들어 자기 고향에 두었는데, 이것이 온 이스라엘을 우상숭배에 빠뜨리는 치명적인 올무가 되고 말았습니다.
비극은 실패했을 때가 아니라, 성공한 뒤에 찾아왔습니다. 자신이 거둔 성공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나 스스로 충분하다'는 자만에 빠진 것입니다. 한 가정의 부모, 한 공동체의 리더의 마음에 숨겨진 욕망과 영적 타락은 다음 세대에 더 큰 악으로 전달됩니다. 바알의 제단을 부수었던 기드온이었지만, 정작 성공 이후에 그가 남긴 위선과 우상숭배는 훗날 가문 전체를 무너뜨리는 폭력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아비멜렉의 악순환ㅡ피로 물든 왕좌
기드온이 남긴 이 모순된 삶은, 아들 아비멜렉의 시대에 이르러 끔찍한 비극으로 터져 나왔습니다. 기드온은 백성들이 떠밀어서 왕이 될 기회가 있었지만 겉으로는 거절했습니다. 반면 아비멜렉은 아무도 원하지 않는데 스스로 왕이 되려고 했습니다. '아비멜렉'이라는 이름의 뜻은"나의 아버지는 왕이다"입니다. 그는 나라의 영웅을 아버지로 두었지만, 첩의 자식이라는 신분 때문에 아무것도 물려받지 못했다는 깊은 열등감과 억울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바알 신전에서 받은 돈으로 불량배들을 고용해, 한 바위 위에서 자기 형제 70명을 한날 한시에 참혹하게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왕의 자리에 앉았습니다. 아버지가 남긴 은밀한 타락과 폭력이, 아들 세대에 이르러 교활하고 체계적인 범죄로 확대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악행을 묵과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셨고, 결국 아비멜렉은 한 여인이 성벽 위에서 던진 맷돌 위짝에 머리를 맞아 참담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악으로 얻은 성공은 결국 더 큰 악으로 망한다는 것을, 성경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과 하나님은 오늘 여러분에게 서로 다른 질문을 합니다. 세상은 이렇게 물어요. "너 몇 등이야? 너가 이겼어?" 그런데 하나님은 다르게 물으세요. "너, 나랑 같이 걸었니?" 하나님은 성공을 물으시는 게 아니라 나의 신실함을 물으세요. 성경이 말하는 진짜 성공은 계단 꼭대기에 서는 게 아니라, 어느 칸에 서 있든 하나님 손을 꼭 붙잡고 걷는 거예요. 하나님과의 관계, 가족과 이웃과의 관계가 성공의 핵심 요소입니다.
(어른들은 여기서 한 가지 더 붙잡으셔야 합니다. "믿으면 반드시 계단 위로 올라간다"는 번영의 복음은 성경이 말하는 복음이 아닙니다. 광야에서도, 실패의 자리에서도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삶 — 그것이 이미 성공이라는 역설이 복음입니다.)
***둘, 요담의 우화 — 나는 누구인가?
아비멜렉이 형제들을 학살할 때, 겨우 살아남은 기드온의 막내아들 요담이 있었습니다. 요담은 그리심산 꼭대기에 올라가 온 백성을 향해 하나의 우화를 선포합니다.
"하루는 나무들이 모여 자신들을 다스릴 왕을 뽑기로 했습니다. 먼저 올리브나무에게 찾아가 '우리의 왕이 되어다오' 하자, 올리브나무는 말했습니다. '내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데, 내가 어찌 나무들 위에 우쭐대겠느냐?'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에게도 청했으나, 그들 역시 '내 단것과 내 단 포도주를 버리고 어찌 우쭐대겠느냐?' 하며 거절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하는 가시나무에게 가자, 가시나무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너희가 참으로 나를 왕으로 삼겠거든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그렇지 않으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 너희를 사를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우화의 핵심이 무엇일까요?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아는 존재는, 굳이 남 위에 서서 왕이 되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올리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소명과 정체성에 만족했습니다. 굳이 높은 자리에 올라 '우쭐댈'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가시나무는 자랑할 열매도, 가치도 없었기에 왕이라는 자리와 지위에 집착했고, 결국 자기 자신도, 남들도 태워버리는 불이 되고 말았습니다.
기드온과 아비멜렉의 비극은 "내가 하나님 앞에서 누구인가"라는 거룩한 정체성을 잃어버렸을 때 시작되었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종이라는 정체성을 잊고 스스로 왕처럼 행동했습니다. 아비멜렉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찾지 못한 채, 왕권이라는 거짓된 껍데기를 추구하다 망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은 어떤 정체성을 품고 살아갑니까?
예화) 스코틀랜드의 숲 속 한 동네에서 강아지 한 마리가 나타났어요. 얼마나 오랫동안 길을 잃고 헤맨건지 너무도 더러웠고 못생겼어요. ​강아지는 굶주림에 거의 죽어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눈빛은 빛이 났고 누군가가 던져주는 먹이를 덥석 먹는 법이 없었어요. ​처음에 사람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다가 강아지 목에 걸린 이름표가 눈에 띄어 살펴보니 거기에는 ‘밥스’라고 적혀있었습니다. 그런데 강아지 이름표 밑에 쓰여진 글자를 보고 사람들은 다 놀라 기절할 뻔합니다. ​거기에는 “나는 이 나라 왕에게 속했습니다”라는 글자가 분명하게 새겨져 있는 것이다. 그 강아지는 바로 왕이 총애하던 강아지였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더러운 세상, 오염된 세상, 모순된 세상, 혼탁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늘의 시민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제자임을 기억하세요.
그러므로, 청소년 여러분, 친구들의 인정이나 성적, 세상이 말하는 기준에 여러분의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게 하세요. 여러분은 하나님이 목숨 바쳐 사랑하신 소중한 자녀입니다.
청년 여러분, 세상의 성공과 남들의 기대에 등 떠밀려, 가시나무처럼 헛된 왕관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부모님 여러분, 오늘 나의 삶의 일관성과 신앙의 태도가, 우리 자녀들에게 올바른 신앙 정체성을 물려주고 있습니까?
***셋: 참된 왕이 오셨습니다 — 복음
그런데 성도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하면 성공에 목숨 걸지 않고 살 수 있습니까?" 정답은 "더 착하게 노력하세요"가 아닙니다. 우리의 시선을 참된 왕 한 분께 옮기는 것입니다.
아비멜렉은 왕이 되려고 형제 70명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참된 왕이신 예수님은, 형제 된 우리를 살리시려고 스스로 죽으셨습니다. 아비멜렉은 높아지려고 남을 밟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면서도 그 자리를 움켜쥐지 않으시고, 종의 자리로, 가장 낮은 칸으로 스스로 내려오셨습니다(빌립보서 2장). 그것이 바로 십자가 입니다. 예수님은 백성을 고통으로 태우는 대신, 십자가에서 저와 여러분들을 대신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왕이십니다.
그래서"너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야"라는 말은, 그저 기분 좋으라고 하는 위로가 아닙니다. 이건 사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은,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자녀 삼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나의 성공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발현됩니다.
***결론적으로, 성경이 말하는 진짜 성공은 무엇입니까?
성공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닙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것, 공부를 잘하는 것,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갖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동기가 하나님이 아닌 나의 욕망일 때, 성공은 독이 됩니다. 성공이 하나님을 잊게 만들고 "나 스스로 충분하다"는 자만에 빠지게 만든다면, 그 성공은 실패보다 더 큰 비극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진짜 성공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나의 성공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시하는 삶
세상의 성취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에 만족하는 삶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잊지 않는 삶
+구겨진 지폐
(강단에서 새 지폐 한 장을 들고 "이거 갖고 싶은 분?" 이라고 물은 뒤, 그것을 구기고 밟고 더럽힌 다음 다시 묻습니다) "그래도 갖고 싶죠? 왜요? 구겨졌어도 값어치는 그대로니까요."
마찬가지 입니다. 시험을 망쳐도, 넘어져도, 실패해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값어치는 조금도 변화지 않아요. 세상은 넘어진 사람을 "실패한 사람"이라 부르고 지나갑니다. 하지만 기쁨샘물교회는 달라야 합니다. 넘어진 사람에게 다가가 "괜찮아, 너는 여전히 빛나는 존재야!! 너는 여전히 하나님의 소중한 아들이고 딸 이야!" 하고 손잡아 주는 곳입니다. 실패한 사람도 온전히 하나님의 자녀라는 걸 보여 주는 공동체 — 그게 교회 아니겠습니까?
교회는 내가 받은 좋은 것을 나누는 곳이 되어야합니다. 혹시 여러분이 잘하는 게 있고, 좋은 걸 받았다면, 그건 나 혼자 잘 먹고 잘살라고 주신 게 아니에요. 옆 사람을 살리고 이웃을 섬기라고 주신 선물이에요.
부모 된 여러분, 우리 아이들을 자꾸 성공이라는 더 높은 계단 위로, 성공이라는 사다리 위로 밀어 올리려는 마음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물론 사랑이지요. 그런데 아비멜렉의 비극이 바로 거기서 시작됐습니다. 아이를 "성공의 사다리" 위에 세우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존엄을 아는 사람"으로 세워 주는 것 — 그것이 우리가 물려줄 가장 좋은 유산이 아닐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기드온처럼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행동으로는 세상의 왕처럼 살 것인가, 아니면 참된 왕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주신 내 모습 그대로 신실하게 순종할 것인가?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과 선택이 우리의 정체성을 만들고, 우리의 정체성은 반드시 다음 세대로 이어집니다. 세상의 거짓된 성공이라는 왕관을 쓰기 위해 나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가시나무가 되지 맙시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가장 낮은 칸까지 내려오신 그 왕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가족을 사랑하며, 신실하게 소명을 다하는 '진짜 성공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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