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3편 강해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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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목사의 시편 23편 강해 02 영적 침체와 염려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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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 하겠습니다. >> 제 2장 영적 침체와 염려 그가 나를 푸른 처자의 뉘시며 실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신도다. 시편 23편 2절. 신자의 진정한 안식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갈 때만 가능하다. 우리로 하여금 참 안식을 누리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살지 못하게 하는 염려의 뿌리와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말씀의 숲속으로 들어가라. 성에서 함께 들어가 그 속에 펼쳐진를 깨닫게 될 때 우리는 그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꼽히고 진의 세물이 흐르는 은혜의 습 은혜의 숲속의 정치를 느끼며 험악한 세상을 이길 힘을 공급했습니다. 성령의 진단지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과 영혼 깊은 곳에 체험을 통하여 아는 것의 차이는 마치 아름다운 숲을 실제로 건일로
(01:06) 보는 것과 단지 그림으로 보는 것의 차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의 장한 숲속에 들어가야 갈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굳어진 마음을 녹여 은혜로운 정서 속으로 들어가게 하고 그 속에서 진리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서 무엇을 믿고 무엇을 바라며 살아야 할지를 알게 될 때 우리는 한없는 안식과 자유와 능력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그 진리의 온림 속에서 경 경 경심에 사로잡힌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 이전의 교만과 아집들이 밝혀진 것도이 같은 진리의 숲속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참을 써 없을 정도로 경박한 자신의 피상적인 신앙에 대하여 각성하는 것도 바로 그 진리의 숲속입니다.
(02:03) 앞에 펼쳐진 끝없는 진리의 온실을 인하여 충격을 받기도 하고 그 말씀의 숲속에 흐르는 신물소리와 그 겨울 물살이 작은 조약들 사이로 제자거리며 지나가는 소리를 듣습니다. 산세대를 노래하는 아침에 빛나는 아침 햇살 햇살 아래 반짝이는 작은을 방울들의 깜빡이는 눈마로 봅니다. 종류를 할 수 없는 수많은 불불벌레 어들이 아침을 깨우는 소리를 들으며 작은 입세들이 아침에 반짝거리는 광경을 봅니다. 이러한 말씀의 숲속에서 우리는 쉼을 얻기도 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새롭게 체험하기도 합니다. 몸과 마음의 기력을 잃어버린 사람들도 그 말씀의 숲속에서 많은 샘물을 마시며 몸과 마음에 세력하게 어 세력하게 되는 체험 하기도 합니다.
(03:00) 이 모든 일들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숲속에 깊이 들어가기 위해 열린 마음과 준비된 시간이 필요합니다. 단지 정보를 얻고자 하는 태도를 어 말씀을 대하는 것만큼 나쁜 태도가 없습니다. 성경을 읽거나 설교를들을 때 우리는 언제나이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이 위대한 시편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가고 있는이 책을 읽으면서도 저는 독자의 여러분이 독자 여러분이 이러한 태도를 견제 하시기를 바랍니다. 천천히 읽으십시오. 읽다가 성령께서 기도하게 하시면 독서를 멈추고 기도하십시오. 찬송이 나오면 조용히 마음을 모으고 눈을 감은 채 따라부르십시오. 읽어가면서 여러분의 마음으로 하여금이 위대한 시에 당긴 진리의 내용에 푹 젖게 하십시오.
(03:57) 여러분의 사고와 정서와 마음이 복음의 강물에 폭 잠기게 하십시오. 무엇보다이 위대한 시에 당긴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독자 여러분 각자에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으십시오. 위대한 시의 온 속에서 여러분은 저와 같은 영혼의 변화를 경험하고자 하시고 하시고야 말 것입니다. 진리와 깨달음과 자유의 능력 속에서 부른 조장에 누이시고 신은 앞절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신앙에는 믿음의 근거가 필요합니다. 그 근거가 이성적인 것이든 계시적인 것이든 그러한 근거가 꼭 필요합니다. 시인은 논문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원고를 가지고 성우가 시을 소 낭송하듯이 그렇게 분위기를 잡으며
(05:03) 사람을 감동시킬 목적으로이 시을 외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가슴속에 묻어둘 수 없는 인격적인 고백을 토해내고 있습니다. 시인으로 하여금 그런 고백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근거가 무엇인지를 2절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가 부른 초장에 누이시며 실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이것은 곧 시인을 향한 하나님의 예배하시는 공급과 인도하심을 가르키는 고백입니다. 지는 먼저 하나님께서 자기의 필요를 위하여 예배하시고 공급하시는 놀라운 은혜의 방식에 대하여 고백합니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고 그는 먼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푸른 초장에 자신을 누이시는 것과 같은 돌보심과 예비하시는 공급 속에서 확인하였습니다.
(06:01) 예비하는 목자. 우리는이 부분을 살피면서 팔레스타인의 환경을 먼저 고려해 보아야 합니다. 그 지역은 무리 귀한 지역입니다. 따라서 목초지가 풍부하지 않습니다. 어떤 곳은 자갈밭으로 또 어떤 곳은 모래나 흙으로 이어지는 넓은 지역들이 있지만 많은 양떼들에게 풍부한 먹이를 공급해 줄 수 있는 넉넉한 목초지가 어디에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지방 사람들이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짐승을 치는 유목 생활을 하게 된 것도 바로이 목초지를 찾아다녔기 때문입니다. 목양의 경험이 있던 다윗은 목자로서의 가장 커다란 문제가 바로 양들에게 일용할 양식인 꼴을 공급하는 일이었음을 떠올렸습니다.
(06:53) 그래서 이스라엘의 목자들이 양을 먹이는 방법을 하나님께서 시인을 인도해 오신 방법에 비유합니다. 스스로 양떼를 인도하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던 다윗은 양떼들이 목자의 인도를 모두 이해하지 못할 때조차도 목자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공급하기 위하여 미리 예비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스라엘의 목자들이 양떼를 인도하여 풍부한 꼴이 있는 초지에 데려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그 양떼들이 풀을 뜯으며 온종일 혹은 며칠을 지내기도 합니다. 양들이 그렇게 한가로의 풀을 뜯고 있을 때 목자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그늘에서 낮잠을 자고 있을까요? 양태를 버려두고 잔잔한 물속으로 들어가 물장구를 치고 있을까요? 선한 목자는 양떼들이 꼴을 먹으면서 즐거워할 때 자기가 해야 할 모든 의무를 완사한 것처럼 그늘에 누워 쉬거나 장목교에 들어가 잠자지
(07:58) 않습니다. 양떼들은 오늘 골을 먹으면서도 내일 먹을 양식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한 오늘의 양식뿐만 아니라 내일의 피로도 미리 준비하기 때문입니다. 여기가 아닌가 비어 군대순 종정 소위 독도 훈련이라는 것을 실시합니다. 분대별로 혹은 소대별로 나누어지도 한 장을 주고 깜깜한 밤에 목적지까지 지도를 보고 찾아가 모이게 하는 훈련입니다. 그에 갔다 온 형제가 재미있는 경험을 제게 말해 주었습니다. 자기 부대에 바로 이런 독도 훈련을 실시하였는데 인건한지 얼마 되지 않는 소위가 오랜만에 군생활을 하던 고천들의 조언을 뿌리치고 자기만 믿고 따르라고 하면서 부대들을 데리고 독도 훈련에 참가하였다고 합니다.
(08:54) 그런데 온 밤이 세도록 헤매다가 드디어 어느 사례에 도달했습니다. 부대원들은 어 가면서도 아무래도 거기가 아닌 거 같아서 몇 번 이일을 제기했지만이 신천 주의관는 끝까지 사기말을 옳다고 우기면서 강행구를 하였습니다. 따라가는 모든 대원들은 지치대로 지친 채 산복리에 도착 어 산의 봉우리에 도착하였습니다. 신천지는 거기가 바로 자신이 찾던 장소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가 도지 다른 병산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천 사여을 돌아보던 그 신천 지관이 혼자 중화거랬습니다. 여기가 아닌가 비여 형제는 말하기를 거기에 있는 모든 대원들과 함께 그 지은 얼마나 미운지 한대 때려주고 싶은 기분이었다고 합니다.
(09:44) 시인은 하나님의 하나님이 자신을 인도하는 방법이 결코 그런식이 아니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방법으로 회없는 인도를 보여 주셨습니다. 시인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을 때 하나님은 내일을 예비하고 미래를 준비하셨습니다. 지혜로운 [콧방귀] 목자는 양들이 오늘 목초지에 풀을 듣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 스스로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양떼의 내일 양떼의 내일을 염려하며 내일 먹을 좋은 꼴이 있는 목초를 찾아나섭니다. 산에 올라 사면을 두루살며 내일 양떼를 인도하며 풀을 뜯게 할 장소를 찾습니다. 목자가 양떼들에게 돌아올 때는 내일을 향한 안전한 계획이 그의 수중에 있습니다.
(10:39) 그의 인도는 실 수가 없고 착각이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공급하시는 하나님. 시인이 하나님을 자신의 목자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던 한 근거는 하나님의 예비하심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목자로서 시인에 필요한 것을 아시며 그것을 예비하신다는 사실을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통하여 깊이 체험하였습니다. 주인은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관계를 맺으려 맺으며 많은 세월을 살아왔습니다.로는 에로는 결핍 속에 고통을 받기도 하고 궁핍과 공고함 가운데 신음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언제나 시인을 건져주는 시인의 자신의 염려와 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예배하시는 은혜와 긍휼이 있었습니다.
(11:34)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이는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신은 누구보다도 험란한 세월을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로부터 도움이 끊어진 것과 같은 상황에 놓여 있던 때도 있었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엄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때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 같고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끝난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몸부름치기도 하였습니다.
(12:29) 밤에 한 나의 노래를 기억하여 마음에 묵상하며 심령이 궁구하기를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그 인자하심의 길이 다하였는가? 그 허락을 연구히 하셨는가? 그러나 시인은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시인이 목양할 때 그 양떼의 필요를 따라 내일을 예비하는 것을 일과로 삼았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자기를 이끌어오신 모든 날들도 이와 같이 예비하시는 은혜로 가득차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신앙의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신뢰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필요를 준비하시는 분이심을 아는 확신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13:31)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신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이 모습이 바로 하나님을 떠나 떠나 있는 인간의 죄된 모습입니다. 신앙은 바로 이렇게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인생이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필요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당신의 자녀들을 이렇게 인도하십니다. 단지 시만 이런 경험을 한 것이 아니라 시편 23편을 읽고 있는 우리들도 동일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그분의 예배하심에 대한 확신은 인격적인 성복에 기초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염려는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과 불신앙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내일은 뭘 먹어요? 한국 전쟁대의 일입니다.
(14:26)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이 땅에는 수많은 전쟁 고화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그 전쟁 고아들 중 많은 수가 미군들에 의하여 미국으로 입양되었습니다. 난리통해 집과 부모를 모두 잃어버린 고아들을 모두 한 곳으로 모아서 미국으로 입양 보낼 준비를 하고 있던 때의 일이었습니다. 미군이 그들을 부대로 데려다가 목욕을 시키고 저녁을 배불리 먹여서 편안한 잠자리에서 재웠습니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포식하였고 이윽고 밤이 깊었습니다. 그런데 웬 일인지 대부분의 아이들이 잠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뒤척이는 아이들에게 미군 병사가 물었습니다. 너희들은 왜 잠들지 못하고 있느냐? 잠이 안 오니? 그러자 아이들이 대답했습니다.
(15:17) 아저씨, 내일은 뭘 먹나요? 아이들을 잠들 수 없게 만들었던 것은 내일을 위한 양식에 대한 염려였습니다. 총격과 포탄의 위협으로부터는 해방되었으나 궁핍부터의 위협은 그들의 의식 속에 여전히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미군 병사가 대답했습니다.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도 오늘과 다름없이 배불리 먹게 해 줄게. 그리고 내일만이 아니라 너희들이 미국에 갈 때까지이 부대에서 너희의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충분히 공급해 줄 테니 염려하지 말고 자라. 병사의이 말을 듣고 아이들은 안심을 한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여전히 잠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한 지혜로운 병사가 아이들을 편히 잠들게 할 수 있는 제안을 하였습니다.
(16:11) 잠시 후 식당에서는 아이들 머리통만한 커란 햄버거를 하나씩 만들어서 잠못 드는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그 햄버거를 품에 안고서야 세근색은 잠들었습니다. >> 염려를 벗은 아 벗삼는 인생. 이것이 바로 인간의 마음입니다. 염려와 근실속에 쌓여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을 의뢰하기보다 자신을 의뢰하며 염려하는 것이 바로 인생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전법적으로 신뢰하고 자신을 맡기는 인격적인 관계를 어 관계의 결핍을 안고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과 내일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게 됩니다.
(17:04) 이 모든 것이 불신앙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장 슬퍼하십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힘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 만만하게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은 제일 슬퍼하십니다. 신앙하는 하나님께 대한 인격적이고 전적인 삶의 유탁입니다.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비록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계산과 염려와 긍휼를 의뢰하며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신의 인생을 위하여 자비와 긍휼로 예배하시고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은혜를 의뢰하며 살아갑니다. 자신들 자신들을 위한 하나님의 준비하신 것과 필요한 것들을 예배하시는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더욱 하나님을 의뢰하게 됩니다.
(18:02)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살피기 위하여 우리의 인생을 주목하시고 또한 우리는 인생의 유일한 도움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인격적인 관계. 이것이야말로 신앙의 요체입니다. 음료를 뿌리는 마귀. 어느 근사님이 꿈을 꾸셨습니다. 향한 황량한 언덕을 올라가는데 자신의 등에는 옛날들이 매고 다니던 커다란 망태를지고 있었답니다. 앞에는 시큼은 옷을 입은 어떤 사람이 계속 가면서 시큼은 쓰레기를 뿌리고 가는데 자신은 계속 그 금은 쓰레기를 주어서 망태에 담으며 그 사람을 쫓아가는 꿈을 꾸었답니다. 한참 그렇게 주어 담다 보니까 결국 자신이 그 무거워진 망태에 눌려서 깔려 죽을 지경이었는데 그런데 손으로 계속해서 금은 쓰레기를 주어서 병뒤에 걸어진 망태에 담고 있더랍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19:09) 염려와 금심을 뿌립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붙들고 살아가게 만듭니다. 염려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하나님을 의뢰하는 신앙은 한 인격 안에 공존할 수 없습니다. 마음에 근심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하나님을 우리에게 도움이 되기에는 너무 멀리 계신 분으로 느끼게 됩니다. 가서 우리 자신의 인생을 위한 모든 필요가 오직 우리 자신의 염려와 노력에 의하여 채워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우리는 내 인생의 행복을 위해서는 오직 내 자신의 노력을 의지하는 것만이 안전한 인생을 사는 방법이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20:01) 이것을 가르쳐서 성경은 불신앙 혹은 교만이라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관계. 신앙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신앙의 근원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지속하고 누리며 살아가는가에 달렸습니다. 세상 속에서 유혹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 어려움 가운데서도 시련을 이기며 살아가게 만드는 모든 힘이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신앙고백은 위대한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 나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강제적인 물리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깨닫고 체험함으로써 여호와 앞에 인격적으로 승복하는 것입니다.
(20:50) 그리고 그렇게 낮은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구르며 그분의 이름을 높이며 사는 것이 행복임을 알게 하십니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놓이시며 시인은 자기 인생에 있어서 자기의 앞길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였습니다. 그것을 통하여 더욱더 하나님이 자신의 인생의 미래에 있어서도 목자가 되어 주신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인이 그가 나를이라고 고백하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신앙은 이처럼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경험을 기초로 세워줍니다. 다윗은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인도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다 알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고 오늘 시편 23편을 살펴보는 우리에게조차도 하나님이 자기의 목자가 되어 주신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1:48) 그리고 그 고백은 환경과 여건을 능가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예비하시는 은혜를 더 깊이 체험하고 그분의 인격을 더 깊이 경험하면 경험할수록 이러한 사랑이 하나님의 모든 언약의 자녀들에게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시인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은 또 다른 곳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의뢰하고 신뢰하도록 자신께 다른 사람들을 권면하고 요청하며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고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하시는 것을 내가 버리로다. 여호와께 피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함이 방백들을 신뢰함보다 낫도다.
(22:42)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누구이십니까? 그리고 하나님에게 있어서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며 그 관계 속에서 동행하며 살기를 원하시는 것만큼 그렇게 우리도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갖기를 진정 사모하고 있습니까? 그분이 내 안에 계시고 내가 그 안에 있어 하나님과 일체된 삶을 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위하여 끊임없이 하나님의 언약과 말씀 앞에 인격적으로 자신을 승복시키며 살아가기를 그리워하고 있습니까? 성경은 오늘 이것을 묻고 있습니다.
(23:30) >> 물을 두려워하는 양떼. 저는 아주 어린 시절에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초등학교 어 다닐 때는 가족과 떨어져 학교를 다녀야 했기 때문에 계란했던 방학이 되면 시골에 계신 부모님과 형지들을 만나기 위해 시골집에 다니러 가곤 하였습니다. 여름 방학되면 꼭 한 차례씩 인상 깊은 경험을 하곤 하여 있는데 그것은 동네 티편에 있는 아주 큰 겨울이 [목을 가다듬음][콧방귀] 개울에 나가서 장마를 불어난 물을 구경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때는 산에 나무도 없고 집도 허술하게 지어져 그랬는지 유난히 홍수가 홍수의 피해가 많았습니다. 그물이 나서 거의 강폭과 만먹는 큰 개울에 붉은 흙탕물이 성을 내며 개구 휘돌아 마을 뒤울을 지날 때면 온 동네 사람들이 두 개 올라 물 구경을 합니다. 그물에 입사려 종종 살아
(24:35) 있는 짐승들이 떠내려 오기도 합니다. 그때말 사람들은 발을 구르며 안타까워 합니다. 어떤 때는 산사태가 양계장에 덮힌 닭들이 붉은 흙물에 휩살려 떠 내려오기도 하고 소리소리 지르며 돼지 떠내려오기도 합니다. 저는 당시 돼지나 소가 떠내려오는 것도 본 적이 있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물국을 하면서 어린 마음에 느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가축들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수영을 잘한다는 것입니다. 그중에서 특히 멱다른 소리를 지르며 열심히 수용하면서 떠내오는 돼지의 헤엄은 인상이 깊뻤습니다. 그러나 양은 온몸을 감싸고 있는 긴털 때문에 수용을 하지 못합니다.
(25:25) 물에 빠지면 양털 자체가 스펀지 역할을 하여 그 양의 몸을 깊은 물속에 잡아당기기 때문입니다. 인지 양은 흐르는 물에 대한 깊은 공보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움직이지 않는 물가로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실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실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그 문에 실만한 물은 원어상으로 움직이지 않는 물입니다. 에서 흠정역에서 스틸 와터스로 국제 어 새 국제 번역에서는 콰이어트 월터스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이것은 팔레스타인의 목양의 간섭과 관련된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말씀드린 바와 같이 양은 여러 가지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 중 하나는 아무리 목이 말라도 흐르는 물을 마실 수 없다는
(26:28) 것입니다. 양은 본능적으로 물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가축들 가운데 수영을 가장 못하는 짐성입니다. 목자는 양들이 풀을 다 떠은 후에 그들이 언제쯤 물을 마셔야 할지를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목자들은 양떼를 인도할 때 그들에게 물을 주어야 할 시간에 마실 물이 있도록 물이 있는 장소도 미리 살펴두어야 합니다. 목자가 목말라 하는 양떼들을 이끌고 물가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양들은 흐르는 물을 마실 수 없습니다. 목자는 결코 그 양떼들을 데리고 세차에 흐르는 개울가로 끌어 끌고 가서 물을 먹으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27:17) 양의 연약함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양의 여러 특성에 정통해 있습니다. 그러므로서나 목자는 흐르는 물 앞에 두려워 떨면서 마른 목을 추이지 못하고 있는 양들에게 불라는 듯이 몸속 계열가에 앉아 흐르는 물을 벌컵벌컵 마시고 야이 바보들아 이렇게 먹으면 되는 되지 않느냐? 물 앞에 데리고 와도 왜 못 먹느냐? 너희가 다 견딜 만하니까 그런 거 그러는 거야. 정말 목이 말라봐 안 묶고이나 하지 않습니다. 목자는 자기의 양떼들을 결코 그런 식으로 이끌지 않습니다. 그는 양들의 약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양떼들이 목자를 경험한 것처럼 목자도 양을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결코 그 많은 양떼들을 그렇게 우격짐으로 몰아가지 않습니다.
(28:12) 사람들은 항상 이렇게 우리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약점을 가지고 우리를 판단하고 우리를 우리보다 월덩이 훌륭하거나 약점이 없는 사람들과 비교함으로써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더욱 힘들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그런 식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다루는 완전한 방법을 아십니다. 그분만이 우리를 완전히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한계를 목자의 심정으로 받아들이시면서 긍휼을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으로 우리의 마음과 인격의 진정한 변화를 촉구하십니다. 그러는 물을 마시지 못하는 양의 습관은 대단히 불합리하고 근거없는 것입니다. 왜 흐르는 물을 먹을 수 없을까요? 목마음에도 불구하고 흐르는 물을 마시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물을 마시다가 물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29:12) 과연 그러한 두려움이 근거가 있는 것입니까? 그것이 양의 기질입니다. 양들은 그런 식으로 물을 두려워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자는 그것이 양의 제악된 고집이나 불순종이 아닌 것을 압니다. 양떼 자신도 바꿀 수 없는 기질과 본성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양떼에 대한 목자의 인도는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목자는 흐르는 물을 막기 위하여 돌멩이와 흙을 가져다가 작은 댐을 짰습니다. 그리고는 흐르는 물에 흐름을 멈추게 하여 움직이지 않는 물이 되게 합니다. 성경은 그가 나를 풀어 나를 물 가운데로 인도한다고 말하지 아니하고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신다고 말합니다.
(30:06) 물을 두려워하는 양의 약점을 아는 목자가 안전하다는 이유와 하나 때문에 양을 물 가운데로 몰아가지 않고 물로 물가루 인도하여 거기 댐을 쌓고 그 물을 잔잔한 물로 만들어서 양들이 스스로 가까이 나아와 마시도록 만들어 줍니다. 이것이 양에 인도하는 방법 목자의 방법입니다. 지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을 향하신 인도하심이 바로 그와 같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끄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앞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이것이 바로 양을 인도하는 목자의 방법이고 우리의 인생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깊이 깨달으며 그분을 신실하게 의지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1:01) 물을 두려워하는 양의 그 자체가 악하거나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목동의 인도를 따르지 아니하는 양의 고집은 분명한 잘못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에 피할 수 없는 연약함과 약점을 가지고 고민하기보다는 목자의 심정으로 우리를 다스리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르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가지고 고민해야 합니다. 참된 신앙생활은 우선 깨닫고 그 깨달은 진리에 대하여 인격적으로 동의하고 승복하며 불순종하는 자신의 성품들을 억제하고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께 자신의 인생과 삶의 문제를 모두 맡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분을 신뢰하면서 그분의 인도하심을 믿고 행동하는 결단이 바로 참신앙입니다.
(31:55)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깊어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다루시는 방법에 눈 떠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몰아가시지 아니하고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의 선하심에 자신의 인생과 그 모든 선택을 의탁하기를 원하십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바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인도하시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로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법에 대하여 시인은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놓이시며 잔잔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 아 하나님의 은혜로이 고백은 하나님께서 신 자신의 인생을 향해 베푸신 하나님의 공급하시고 예배하신 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32:50)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의 필요를 예배하십니다. 진실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예배하신다는 사실을 깊이 체험하고 알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의 물질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교회는 더욱 그러합니다. 교인들은 교회를 위하여 헌금하지만 교회는 성도들이내는 돈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서 가는 곳입니다. 그래서 저는 교인들에게 늘 말합니다. 자신은내는 몇 분의 헌금 때문에 마음이 부해져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할 수 없는 사람들조를 낸 것이 아까운 사람들은 언제든지 돌려줄 테니 가져가라고 말입니다. 혹시 자신이 된 헌금의 액수를 목사가 알아줄수를 줄 줄을 모른다는 생각이 교인들의 신앙생활을 방해할까 봐 저는 누가 얼마의 11절을 내는지 헌금 내용을 살펴보지 않습니다.
(33:54) 저도 교인들의 헌금 주머니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바라보며 목회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우리에게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합니다. 주님의 은혜로 살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인도하 오신 날들을 회상해 보십시오. 여러분들이 내적으로 깊이 순복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 말씀을 따라 신앙생활하기 하기를 오랫도록 원하셨던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게 될 것입니다. >> 불순종으로부터 돌아옴. 우리는 하나님이 슬퍼하시는 말을 입으로 거침없이 쏟아놓으며 오랜 세월을 불순종 가운데 지냈습니다.
(34:44)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벙어리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단순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강요된 노예적 복종이 아니라 인격적인 성복에서 비롯된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때로는 주님을 멀리 떠나더라도 강제로 끌어오지 않으시고 시간이 더 걸릴지라도 주님 앞에서 오 주님 주님 앞에 사는 것만이 진정한 행복입니다. 나는 신앙 고백을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즐거워하며 돌아올 때를 기다리시는 방식으로 우리를 다루십니다. 그러나 목자를 떠난 양의 행은 단지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진 것이 아니라 비참함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으며 그 안에서 목자이신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사는 것이 가장 복된 것임을 깨닫게 되기까지 자기의 고집대로 살아가면서 그는 맹수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하고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합니다. [콧방귀] 하나님을
(35:49) 떠나서 살아가는 인생의 길이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도 이와 같이 말합니다. 너희는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이와 같이 여러분의 목자가 되신 주님을 따르고 신뢰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매일매일 살아가면 우리는 모든 필요를 채우시기에 충족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때로 때때로 우리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커다한에 부딪힐 때도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당신과 우리의 관계가 어떠한가를 어 하는 것을 물으십니다.
(36:38)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 관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만약 그렇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붙들고 공급해 주시는 목자 되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럴 때 하나님은 당신만이 우리의 삶에 공급자가 되시고 인도자가 되어 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기 위하여 때로는 우리의 우리를 결핍 가운데 두십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붙들며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돌이켜 그 관계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하시는 가장 좋은 방법 중에 하나가 바로 결핍 가운데 두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7:26) 자신의 힘으로 쉽게 채울 수 없는 결핍 가운데 있을 때 인간은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자기의 힘으로 돈을 모아 부자가 되게 하려는 사람을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보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돈줄을 끊어놓으시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신앙을 뒷전으로 하고 출세의 눈이 먼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신앙생활을 점검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로 하여금 잘 나가는 출세길의 좌절과 패배를 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때야 그들은 자기의 소원의 성취가 자신의 힘에 달린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신뢰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고달픈 인생길을 걸어갑니다.
(38:20) 하나님은 당신과의 관계를 통해서 우리를 인도하시기 원하십니다. 예비된 하나님의 계획과 준비된 환경으로 우리를 이끄시고 인도하고 싶어 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풍성한 예비하심과 완전한 그분의 인도를 깨닫게 되기까지 우리는 먼저 그분과의 관계를 돌아보고 경고의 해야 합니다. >> 맺는 말 어느 독실한 기독교인 의사의 간증을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좋은 평판을 받고 있는 유능한 의사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의 의료 기술이 뛰어나다는 소문을 듣고 많은 환자들이 몰려 왔습니다. 그는 병원을 하나 더 짓기로 하였습니다. 지금의 상황으로 병원을 하나 더 지어서 운영하면 한 달에 평균 2여원의 수입이 늘어날 것으로 보였습니다.
(39:10) 그리고 그렇게 수입이 더 들어오면 선교를 위하여 유용하게 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여러 날 동안 기도하는 가운데 분명한 하나님의 응답을 듣게 되었습니다. 예야, 나는 너의 일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너와의 관계를 원한단다.이 의사는 공고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동기 자체는 순수했으나 이미 늘어나고 있는 일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원해져 가고 있는 자신의 영적인 삶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새벽 기도 시간이 아침 진료와 일과에 좁혀 점점 짧아지고 하나님보다는 일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드디어 그는 새벽 기도 시간을 위하여 매월 발생할 이억 여원의 수입을 포기하기로 하였습니다.
(40:01) 그 결정을 한 후 그는 지극히 곧 커다란 평안이 자신의 매마른 영혼 속에 밀려오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우선 원하시는 것은 우리 자신의 존재입니다. 우리와의 관계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보고 그 안에서 우리의 신앙적인 삶의 원동력이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은 우리의 영적인 삶 속에서 일어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새롭게 회복되기를 원하는 것도 이러한 관계의 회복을 그리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붙들며 그 속에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에서 오는 영적인 축복들을 누리고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입니다.
(40:49)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처럼 하나님의 나라와 그 뜻이 이루어지기를 사모하며 그것을이 땅에 살아 있는 삶의 목표로 삼으며 사는 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견고하게 붙들며 살아갈 때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과 하나님만이 그분의 자녀인 우리들에게 행복이신 것을 깨달아야 알며 깨달아 알며 즐거워하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최대의 행복입니다. >> 아멘. >> 아멘. 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