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1: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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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사자들을 보내 이르되 네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내 땅을 치러 내게 왔느냐 하니
13 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의 사자들에게 대답하되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과 요단까지 내 땅을 점령했기 때문이니 이제 그것을 평화롭게 돌려 달라 하니라
14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다시 사자들을 보내
15 그에게 이르되 입다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스라엘이 모압 땅과 암몬 자손의 땅을 점령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6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광야로 행하여 홍해에 이르고 가데스에 이르러서는
17 이스라엘이 사자들을 에돔 왕에게 보내어 이르기를 청하건대 나를 네 땅 가운데로 지나게 하라 하였으나 에돔 왕이 이를 듣지 아니하였고 또 그와 같이 사람을 모압 왕에게도 보냈으나 그도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이 가데스에 머물렀더니
18 그 후에 광야를 지나 에돔 땅과 모압 땅을 돌아서 모압 땅의 해 뜨는 쪽으로 들어가 아르논 저쪽에 진 쳤고 아르논은 모압의 경계이므로 모압 지역 안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으며
1412년 10월 18일, 체코 프라하의 한 사제가 붓을 들어 특별한 문서 한 장을 썼습니다. 이름은 얀 후스입니다. 그는 그때 교회 법정에서 이단으로 몰려 세 번째 파문을 당하고, 도시에서 쫓겨나기 직전이었습니다. 사람의 법정은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교황도, 왕도, 공의회도 그를 지켜 주지 못했습니다.
그때 후스는 마지막으로 붓을 들어 이렇게 상소했습니다. 나는 가장 의롭고 전능하신 재판장, 예수 그리스도께 나의 사정을 아뢴다. 땅의 법정이 침묵할 때, 그는 하늘의 재판장께 자신을 맡긴 것입니다. 이 상소는 훗날 종교개혁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 우리가 읽은 사사기 본문에도 억울한 처지에 몰린 한 사람이 똑같은 자리에 섭니다.
입다는 기생의 아들이었습니다. 이복형제들에게 쫓겨나 잡류의 두목으로 살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암몬이 쳐들어오자, 그를 내쫓았던 길르앗 장로들이 다시 찾아와 장관이 되어 달라고 사정합니다. 입다는 이제 이스라엘을 대표해 암몬 왕과 마주 서게 됩니다.
암몬 왕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 아르논에서 얍복과 요단까지 내 땅을 빼앗았으니 돌려 달라(13절). 그런데 이것은 거짓 주장이었습니다. 여기서 입다가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는 곧장 칼을 빼 들지 않습니다. 무려 두 번이나 사자를 보내 대화합니다(12절, 14절). 그리고 역사적 사실로 조목조목 반박합니다.
이스라엘은 모압 땅도, 암몬 땅도 취한 적이 없다(15절). 오히려 아모리 왕 시혼이 먼저 공격해 왔기에, 하나님께서 그 땅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주신 것이다(19–22절). 게다가 그 땅은 이미 삼백 년째 이스라엘이 살아온 땅이다(26절). 이토록 오래 아무 말 없다가 이제 와서 억지를 부리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입다의 논증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이름이 흐르고 있습니다. 21절, 여호와께서 시혼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 주셨다. 23절, 여호와께서 아모리 족속을 쫓아내셨다. 땅을 주고 거두시는 분,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여호와라는 고백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27절, 이 담화의 절정에 이릅니다. 원하건대 심판하시는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 사이에 판결하시옵소서. 히브리어로 '여호와 하쇼페트', 곧 재판장이신 여호와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심판하다'라는 단어가 바로 이 책의 이름 '사사기', 곧 재판관들이라는 말과 같은 뿌리라는 점입니다. 사람 재판관 입다가, 참 재판장이신 여호와께 최종 판결을 넘기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암몬 왕은 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28절). 하지만 입다는 자기가 할 수 있는 평화의 노력을 다했고, 마지막 판결만은 자기 손에 쥐지 않고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오늘 이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옳고 그름의 최종 판결은 내가 아니라, 심판하시는 여호와께 있습니다.
이 말씀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입다를 보십시오. 그는 할 말은 다 했습니다. 그러나 심판만은 하나님께 넘겼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롬 12:19). 나의 억울함을 재판장 되신 하나님께 맡기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판결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 자유롭게, 가정에서 일터에서 학교에서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 수 있습니다.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롬 12:18). 이것이 재판장을 신뢰하는 사람의 삶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3절은 말씀합니다.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벧전 2:23).
오늘 억울한 일이 있습니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끓어오릅니까. 그 무거운 짐을, 나 대신 심판받으신 예수 그리스도, 심판하시는 여호와께 내려놓으십시오. 옳고 그름의 최종 판결은 내가 아니라, 심판하시는 여호와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그 주님의 의지하여 먼저 화평의 손을 내미는 하루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