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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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중고등부 여름 제주 비전트립
2026 중고등부 여름 제주 비전트립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사랑합니다. 꿈사땅 예배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하고 축복한다. 여러분, 오늘 하루도 정말 많은 곳을 다녀왔다. 우리는 은총의 동산에서 제주에 복음이 어떻게 전해졌는지를 살펴보았다. 복음은 저절로 이 땅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심으신 생명의 씨앗이었음을 보았다. 그리고 방주교회에서는 세상의 거센 비바람 속에서도 하나님만 붙드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방주는 폭풍이 없는 곳이 아니라, 폭풍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경험하는 곳이었다. 또 대정교회와 강병대 교회에서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고난을 감당했던 신앙의 선배들의 삶을 만났다. 그들은 편안한 길보다 믿음의 길을 선택하였고, 자신의 삶으로 복음을 증언하였다. 오늘 우리가 다녀온 곳들은 단순히 오래된 교회나 역사적인 장소가 아니었다. 복음에는 언제나 헌신이 있었고, 믿음에는 언제나 고난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현장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일이 잘될 것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예수님을 믿으면 어려움도 없고, 문제도 없고, 고난도 없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는 때로는 손해가 있고, 때로는 눈물이 있으며, 때로는 고난이 있다고 말씀한다.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왜 믿음의 사람들은 그 고난을 끝까지 견딜 수 있었을까?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을 로마서 8장 18절은 그 이유를 분명하게 알려 준다. 바울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한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킬 수 있는 이유’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로마서 8장 18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난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도 고난은 분명히 있다고 말한다. 믿음을 지킨다고 해서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것도 아니고, 예배를 잘 드린다고 해서 어려움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이런 말을 했을까? 바울은 현재만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미래를 바라보라는 것이다. 눈앞의 손해보다 하나님께서 주실 영광이 훨씬 크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은 현재의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붙들 수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도 그렇다. 운동선수는 금메달을 바라보며 힘든 훈련을 견딘다. 수험생도 원하는 목표를 바라보며 늦은 밤까지 공부한다. 현재는 힘들지만 앞으로 얻을 것을 알기 때문에 견디는 것이다. 바울도 바로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지금의 고난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하나님께서 주실 영광이 너무 크기 때문에 현재의 고난과는 비교할 수 없다.” 그런데 여러분, 이 말씀은 바울이 책상에 앉아서 쓴 이론이 아니었다. 실제로 이 말씀을 붙들고 살아간 믿음의 사람들이 있었다. 오늘 여러분에게 들려주고 싶은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제주에서 복음을 전했던 이기풍 목사님의 막내딸 이사례 씨의 이야기이다.
오늘은 이기풍 목사님 막내딸 이사례씨가 겪었던 이야기로 여러분과 메세지를 나누고자 한다. 이기풍 목사님은 1907년부터 1917년까지 제주도에서 사역하시다가 전남 광주로 가시어 그곳에서 담임목회를 시작하셨다. 그러고 한창 일제강점기 시기인 1934년 이기풍 목사님의 막내딸이 초등학교 5학년 때에, 일본의 황태자가 탄생했다고 온 마을이 들썩거렸다. 이날 학교에서는 황태자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신사에 가서 참배하는 행사를 가졌다. 그때 막내딸 이사례씨는 반장이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맨 앞줄에 설 수밖에 없었다. “신사에 대하여 경례!” 일본인 남선생의 구령 소리가 우렁차게 울리자 자신의 두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스쳐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죽어도 절하지 마라’ 아버지 이기풍 목사님의 목소리가 귀를 스쳐지나갔다. 구령이 떨어지자 줄지어 서 있던 학생들의 허리가 90도 각도로 신사를 향해 굽혀졌다. 그러나 이사례씨는 두 눈을 딱 감은 채 꼿꼿이 서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오후 교무실로 불려갔다. 그날부터 불온전한 사상을 가진 가정의 아이로 찍히게 되었다. 이사례씨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기독교학교인 광주 수피아여학교에 입학했지만 3학년이 되던 해인 1938년에 결국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학교가 폐교 되었다. 학생들은 광주에 있는 두 공립여학교에 나뉘어 배치되었다. 제비를 뽑은 결과 아사히 여고(현 전남여고)로 가게 되었다. 당시 이기풍 목사님은 머나먼 여수 남쪽 끝에 있는 섬에서 이 문제로 광주까지 올라오셨다. “학교를 중단하는 일이 있더라도 신사에 절하는 학교에는 보낼 수 없다.” 학업을 중단하고 급히 짐을 챙겨 섬으로 돌아왔다.
이기풍 목사님이 계셨던 여수 우학리에 목사님이 묵고 계신 숙소 뒷산에는 신사가 자리잡고 있었다. 일제는 섬마을 사람들에게 사흘이 멀다 하고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이기풍 목사님의 가족은 신사참배를 하지 않은 죄로 쌀 배급을 받지 못했다. 감자로 목숨을 겨우 연명할 수밖에 없었던 식구들은 허기져 영양부족이 되어 갔다. 그러나 이기풍 목사님과 사모님의 입에서 감사 찬송이 끊어지지 않은 날이 없었다. 1939년 3월에 다시 3학년으로 머나먼 부산 옆에 있는 동래 일신여학교에 전학시험을 치러 갔다. 전국에서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몰려온 목사 딸들이 18명이나 되었다. 이사례씨는 기숙사 뒷산에 올라가 집에서 온 편지를 펴들고 땅이 꺼지도록 울면서 기도하다가 내려오는 날이 많아졌다. 아버지 이기풍 목사님이 보내신 편지 때문이었다. “사례야! 아버지는 또다시 왜놈의 사슬에 묶여 경찰서로 끌려갔다. 영적으로 볼 때 얼마나 큰 영광인지 모른다. 아버지가 형무소에서 순교한다면 이에 더 큰 영광이 없다.” 졸업반 겨울방학이 되어 집에 돌아온 지 일주일이 지난 새벽, 일본 경찰들은 아무 예고 없이 대문을 두들기다가 바쁘게 구둣발로 방으로 들어와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책, 편지, 문서, 기타 증거물이 될 만한 것은 모조리 가방에 집어넣었다. “이 돈 어디서 난거냐? 미국 선교사가 준 스파이 자금이 아니냐?” 하며 억지로 생떼를 쓰다가 덩치가 큰 일본 순사가 오른쪽 주머니에 돈을 쑤셔넣었다. 이기풍 목사님은 두 손이 쇠사슬에 묶인 채 개처럼 끌려갔다. 그 돈은 목사님이 막내딸을 위해 이화여대에 보내려고 조금씩 모아두신 학자금이었다. 일본 경찰들은 그 귀한 돌을 송두리채 가져가 버렸다. 이사례씨는 이때 당한 분함과 슬픔을 평생 잊을 수 없다고 한다.
그렇게 여학교를 갓 나온 그해 한국 역사상 최대의 사건이 벌어졌다. 순천에 계신 모가님 17명이 새벽에 갑자기 체포를 당하셨다. 이기풍 목사님의 죄목은 세 가지였다. 첫째, 신사참배를 거부한 죄, 둘째, 미국 선교사와 같이 일한 죄, 셋째, 요한계시록을 전문적으로 설교하고 가르친 죄이다. 이때 이기풍 목사님은 70세를 넘은 고령으로 모진 고문에 몸이 점점 쇠약해져 갔다. 목사님은 광주형무소로 옮겨지기 직전 몸이 더욱 악화되어 병으로 인해 출감되었다. 그러나 목사님은 출감을 거부하고 16명의 목사님들을 석방시키기 전에는 죽는 한이 있어도 이곳에서 못 나가겠다고 고집을 부리셨다. 그렇게 1942년 75세의 나이로 다시 경찰서에 들어오라는 통지를 받기도 전에 목사님은 여수 우학리 섬 목양실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다.
여러분,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지 않는가? “겨우 절 한 번 안 했다고 저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사실 일본도 그렇게 말했다. “마음으로만 믿으면 되잖아.”, “한 번만 절하면 되잖아.”, “공부도 해야 하고, 학교도 다녀야 하지 않겠니?” 하지만 이기풍 목사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나님보다 더 높은 자리에 어떤 것도 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딸의 학업보다 믿음을 먼저 선택하였다. 좋은 학교를 포기하더라도 괜찮았다. 쌀을 배급받지 못해 굶어도 괜찮았다. 감자로 연명하며 살아도 괜찮았다. 감옥에 끌려가도 괜찮았다. 왜냐하면 하나님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질문해 보아야 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신사참배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얼마든지 있다. 어떤 친구는 성적이다. 어떤 친구는 대학이다. 어떤 친구는 학원이다. 어떤 친구는 게임이고, 휴대폰이고, 친구 관계일 수도 있다. 이것들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다. 공부도 해야 하고, 대학도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뒤로 미루기 시작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시험기간이 되면 가장 먼저 포기하는 것이 예배이다. 학원이 생기면 가장 먼저 빼는 것이 예배이다. 수행평가가 있으면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을 먼저 줄인다. 왜 그럴까? 우리 마음속 우선순위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를 준비하지 말라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최선을 다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네 미래를 책임지는 분은 성적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이기풍 목사님은 딸을 좋은 학교에 보내는 것보다 믿음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었다. 세상은 그것을 손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믿음이라고 말씀하셨다. 오늘 우리도 똑같은 선택 앞에 살아간다. 예배를 먼저 선택할 것인가. 세상의 염려를 먼저 선택할 것인가. 성적을 의지할 것인가. 하나님을 의지할 것인가.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바울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한다. 믿음을 지키는 것은 때로 손해처럼 보일 수 있다. 친구들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성적이 걱정될 수도 있다. 미래가 불안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고난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킨 사람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질문은 “예배를 드리면 손해일까?”가 아니라, “내 삶에서 정말 하나님이 가장 우선이신가?”가 되어야 한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기풍 목사님과 이사례 씨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특별한 사람들이어서 믿음을 지킨 것이 아니다. 그들도 두려웠고, 미래가 걱정되었고, 손해를 보았다. 학교를 포기해야 했고, 배급도 끊겼고, 경찰에 끌려가기도 했다. 그런데도 끝까지 하나님을 붙들었다. 왜일까? 그들의 눈은 현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광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분도 살아가다 보면 수많은 선택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시험기간이라고 예배를 뒤로 미룰 수도 있다. 학원이 있으니까 하나님은 다음 주에 만나도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성적이 더 중요하고, 대학이 더 중요하고, 내 미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순간 우리의 믿음이 드러난다. 나는 정말 하나님을 가장 먼저 두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 서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 하나님은 공부하지 말라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게으르게 살라고도 말씀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공부는 중요하다. 대학도 중요하다. 미래도 중요하다. 하지만 하나님보다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기풍 목사님은 딸의 학교보다 하나님을 먼저 선택하였다. 그 선택은 당시에는 손해처럼 보였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그 학교의 이름보다 이기풍 목사님의 믿음을 기억한다. 세상은 성적을 기억하지만, 하나님은 믿음을 기억하신다. 세상은 성공을 높이지만, 하나님은 끝까지 믿음을 지킨 사람을 기뻐하신다. 그래서 바울은 담대하게 말한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여러분의 삶에도 믿음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 눈앞의 손해보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현재의 불안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오늘 하루 우리가 제주에서 만난 믿음의 선배들처럼, 그리고 이기풍 목사님과 이사례 씨처럼, 고난 속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붙드는 믿음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꿈사땅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