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두드림
Notes
Transcript
야곱이 에서를 만날 준비를 함
야곱이 에서를 만날 준비를 함
오늘 본문말씀은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서 씨름을 했다라고 하는 내용입니다. 보통 저희가 이 말씀을 읽을 때,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을 했다, 그리고 이겼다 라는 정도의 내용만 기억하고 있는데요. 사실 야곱이 씨름을 했다는 내용은 어떤 독립적으로 그 부분만 톡 떼어서 읽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앞의 내용과 함께 읽을 때에 이어지는 내용이라는 것을 저희는 알 수가 있습니다.
무슨 말씀이냐면요, 본문말씀 13절부터 등장하는 내용을 보시면 먼저 야곱이 자기 형인 에서를 만나기 위해서 준비하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야곱이 에서에게 보낼 예물을 준비하는데 암염소가 이백, 숫염소가 이십 등등 쭉 나열하는 내용이 아주 많은 예물을 형을 위해서 준비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엄청난 양의 가축 무리를 16절 말씀에 보시면 각각 뗴로 나누어서 자기 종들에게 맡기고 조금씩 거리를 떨어지게 해서 보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종들이 만약에 에서를 만나서 에서가 “당신들을 대체 누구고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이오? 이 가축들은 다 누구의 것이길래 데려가는 것이오?”라고 물으면 “예, 이것은 모두 주님의 종인 야곱의 것이며 자신의 주인이신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입니다. 야곱 역시 저 뒤에서 오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요 야곱이 에서에게 얼마나 두려운 감정을 품고 있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자신의 형을 향해서 “제가 당신의 종입니다”라고 자신을 아주 낮잡아서 부르고 있고, 또 이게 단순히 겸손함이 아니라 아주 비굴해보일 정도인 것이 20절 말씀에 보시면 “혹시 이렇게 계속 예물을 차례차례 보내다보면 나중에 내가 형을 만났을 때 나한테 화를 내지 않고 나를 받아줄 지도 몰라”라는 마음을 품고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야곱은 아주 벌벌 떨고 있는 겁니다. 자기 형인 에서, 자기가 장자의 권리와 이삭의 축복을 가로챘던 그 에서가 자기를 죽일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20년이 넘은 지금도 떨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22절 말씀을 보시면 심지어 자기 아내들과 아들들까지 다 보내놓고서 24절에 자기는 또 혼자 남았다는 겁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먼저 자기 형을 만나지 않으려고 애쓰는 장면이 등장하는 겁니다.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함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함
야곱이 씨름하는 장면은 바로 그렇게 혼자 남겨진 상황에서 벌어집니다. 본문말씀 24절 말씀을 함께 읽어볼까요?
야곱이 갑자기 혼자 남겨지자 마자 어떤 사람과 날이 새도록 씨름을 했다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사실 굉장히 이상한 장면입니다. 자기 형인 에서가 너무나도 무서워서 자기 재물을 먼저 다 보내고, 자기 처자식까지도 먼저 보내서 자기는 나중에 가려고 기다리고 있는 와중에, 그 무서워하던 야곱이 갑자기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과 씨름을 한다는게 이상하지 않나요?
계속해서 읽어보면, 이 어떤 사람이 야곱을 씨름으로 못이길 것 같으니까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쳐서 어긋나게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제 동이 트려고 하니까 그 어떤 사람이 “이제 새벽이 다 되었으니 나는 가보겠소”라고 하는데 야곱은 그 사람을 붙잡고서는 “아니됩니다! 나를 축복해주지 않으면 가게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야곱의 이름을 물어보고 야곱이 대답하는데 이 사람이 “그럼 너의 이름을 이제부터는 야곱이라고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고 불러라. 네가 하나님, 그리고 사람들과 겨루어서 이겼으니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을 가진 이스라엘이라고 불러라”라고 이름을 줍니다.
여기서 이 어떤 사람이 하나님이었음이 밝혀집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오셔서 씨름을 했고, 야곱이 하나님을 이겼던 것입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말씀에 야곱이 하나님의 이름을 묻자 “어찌 내 이름을 묻는가?”라고 하시면서 야곱을 축복하고 떠나가십니다. 그래서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장소를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을 가진 브니엘이라고 짓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하고서도 살아남았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지었다고 하죠. 그렇게 야곱은 하나님께서 치셔서 관절이 어긋난 다리를 절면서 에서를 향해 나아갑니다.
두려울 필요가 없는 두려움
두려울 필요가 없는 두려움
사실 이 장면이 굉장히 이상합니다. 갑자기 하나님은 야곱에게 왜 나타나셔서 또 그냥 축복만 해주시는게 아니라 왜 씨름을 하신 것일까요? 또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을 해서 이겼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아까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을 했다는 이야기는 따로 떨어진, 독립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야곱이 자기 형인 에서를 만날 준비를 마치고, 자기 재산과 처자식을 다 보내고 난 뒤에 홀로 남겨졌을 때 벌어진 일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야곱이 아주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벌어진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냥 두려운 것도 아니고 아주 비겁하고 비열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을 때 벌어진 일입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자기 재산과 처자식을 먼저 보냈다는 것은 만약에 정말로 에서가 나쁜 마음을 품고 야곱을 여전히 죽이려고 했다고 하면, 제일 먼저 죽는게 자기 종들이고, 그 다음이 자기 처자식입니다. 쉽게 말해 여차하면 자기만 살려고 하는 아주 비겁한 행동이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야곱은 다 떠나보내고 홀로 남아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오셔서 씨름을 했습니다. 여기서 이 씨름이라고 하는 것은 저희가 알고 있는 샅바 메고 하는 스포츠가 아닙니다. 히브리어로 씨름은 아바크(אָבָק)라고 하는 단어인데요 원래 이 단어는 “먼지”라고 하는 뜻을 가진 단어에서 파생되어서 “먼지를 뒤집어 쓰다”라고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단순히 스포츠가 아니라 먼지를 뒤집어 쓸만큼 아주 격렬한 맨몸 싸움을 벌였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본문말씀 24-5절 말씀을 다시한번 보시면요,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야곱은 “날이 새도록” 씨름을 했다고 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과의 씨름에서 야곱은 도망치지 않고 붙었고, 심지어는 그 싸움에서 이겼다고 합니다. 야곱이 정말로 겁쟁이고, 비열하고 비겁한 사람이었다면 이 씨름에서 도망치지 않고 날이 새도록 붙을 수가 있었을까요? 또, 그러한 싸움에서 오히려 지지 않고 이길 수 있었을까요? 게다가 이 씨름에서 오히려 비겁한 술수를 쓴 것이 누군가요? 야곱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야곱을 못이길 것 같으니까” 허벅지 관절을 쳐서 싸움을 중단시키지 않으셨나요?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은 하나입니다. 야곱은 에서를 두려워할 필요조차 없었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겁쟁이가 아닙니다. 비열하고 비겁한 수를 쓸 필요가 없는 사람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비겁한 수를 쓰도록 만들 정도로 끈질기게 씨름했던 사람입니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에서에게 아무런 의미 없는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씨름
두려움을 극복하는 씨름
또한 야곱이 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계기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향해서 벌인 씨름입니다. 이 씨름은 또한 그저 싸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끈질기게, 먼지를 뒤집어 쓸 정도로 격렬하게 씨름하면서, 또한 날이 새도록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씨름입니다.
본문말씀 26절말씀을 함께 읽어볼까요?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야곱이 날이 새도록 하나님과 씨름하고, 또한 날이 새서 하나님께서 떠나려고 하실 때 야곱이 “날 축복하지 않으시면 절대 보내주지 않을 겁니다!”하고, 허벅지 관절이 나간 탓에 몸으로 하는 씨름은 끝났어도 하나님을 향한 씨름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것을 다르게 표현합니다.
야곱은 모태에서 그의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힘으로는 하나님과 겨루되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고서 이기고는 울면서 아주 하나님께 매달렸다고 합니다. 야곱의 씨름은 하나님께 울고불고 어떻게든 해주실 때 까지 붙잡고 늘어지는 간구였습니다. “문을 열어주실 때까지는 내가 여기서 떠나지 않을겁니다!”하고서 문을 계속해서 두들기는 겁니다.
결국 이 씨름의 결과는 야곱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본문말씀 이후에 등장하는 33장에서는
여종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의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야곱은 자기 아내들과 자녀들을 줄을 세워두고, 자기는 “그들 앞에서” 에서에게 가까이 갔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 씨름 사건 전에는 야곱이 처자식을 자기 보다 먼저 보내는 비겁한 수를 쓰는 겁쟁이였는데, 하나님을 막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그 씨름을 하고 난 이후에 야곱은 처자식을 뒤에 두고 자기가 앞으로 나아가는 담대한 사람으로 변해있었던 것입니다. 할 필요가 없는 두려움을 이제는 내려놓고 하나님을 붙잡던 그 용기로 에서에게 자기가 제일 먼저 나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 제 모교인 제천제일교회에서 간사로 사역을 시작한 이후로 여러 교회를 거쳐왔습니다. 인천에 있는 교회에서도 섬겼고, 미국에서도 한인교회, 백인들이 있는 백인 교회, 안양에 있는 교회, 그리고 여기 신안교회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교회에서 전도사로 섬겨왔는데요. 사실 사역지를 옮길 때마다 저에게는 굉장히 막연한 두려움이 많이 있었습니다. “내가 과연 가서 잘 할수 있을까? 나는 너무나도 부족한 사람인데, 사람 만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오히려 교회를 더 안 좋은 곳으로 이끌어가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항상 지배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정작 가서 사역을 하고 섬기는 와중에, 혹은 이동할 일이 생겨서 다른 곳으로 가게 되어서 이전의 사역을 돌아보면 제가 두려워할 필요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알게하실 때가 많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딱 교회에 필요한 부분에 저를 쓰시고, 저를 더욱 성장시켜주시는 기회로 삼게 하시더라구요.
특히 제가 인천에서 있었을 때, 교회에서 작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 갈등 과정에서 어느 한 권사님이 아주 삐져가지고는 저한테 인사도 안하시더라구요. 사실 저도 그 때 당시에 화가 막 나있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야할까 막연한 두려움에도 빠졌습니다. 이 분이 교회에서 반주도 하시던 분인데 교회 반주도 안나올 만큼 단단히 화가 나셨기 때문에 “내가 교회를 괜히 망치는 것이 아닌가?”하는 두려움이 다시 덮친 것이죠. 그래서 저한테 인사도 안하실때 저도 막 화가 나고 저도 딱히 말을 안 걸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른 것보다 기도로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대체 뭘 어떻게 해야하나요? 이걸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나요? 하나님이 알아서 해결좀 해주세요!” 등등 하나님을 붙잡고 씨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 좀 도와주세요!”하고 말이죠.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딱히 문제를 “뿅!”하고 해결해주시지는 않았어요. 다만 제가 가지고 있던 화가 난 마음, 두려웠던 마음을 녹아내리게 해주시더라구요. 저는 그전까지 누구하고 갈등이 생기면 그냥 그 사람을 없는 사람 취급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괜히 손대서 긁어부스럼 만들거나 제가 괜히 면전에서 욕먹거나 하는게 굉장히 무서웠거든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두려움을 제해주시고, 오히려 용기를 불어넣어주시더라구요.
그렇게 하나님과 씨름을 한 이후에 그 권사님을 대할 때, 시치미를 뚝 떼고 밝게 웃으면서 “안녕하세요!”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처음 몇 번은 인사도 안 받아주시고 저를 거의 없는 사람처럼 취급하셨어요. 근데 제가 계속 끈질기게 볼 때마다 인사하고 말을 걸고 하다보니까 이 분이 처음에는 고개를 “까딱!” 하는 정도로만 인사하시더니 다음부터는 인사도 잘 받아주시고, 다시 이전처럼 같이 반주도 하시고 평범하게 대화도 하시면서 그 갈등이 잘 풀어지게 되었던 것을 경험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살면서 많은 두려움을 마주합니다. 제가 겪은 일이나 아니면 야곱이 에서에게 품었던 것처럼 사람간에 갈등 때문에 두려움을 품기도 하구요, 주변의 상황 때문에 두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하지만 본문말씀이 이야기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실 그 모든 두려움은 두려울 필요가 없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씨름할 정도로 큰 용기를 가졌던 야곱이 끝내 에서 앞에 자기가 먼저 나설 수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과 씨름하는 사람들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주치는 많은 두려움 앞에서 저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붙잡고 늘어지는 야곱의 씨름, “문 열어주실 때까지 안 놓을거에요”하고 문을 두들기는 야곱의 두드림이 필요합니다. 기도로 하나님을 붙잡고 늘어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두려움을 이겨낼 용기를 주시고, 상황을 해결할 지혜를 주십니다.
본문말씀 2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할렐루야! 두려운 일과 상황이 몰려올 때에 하나님을 붙잡고 씨름했던 야곱처럼 하나님을 향해 기도로 간구하고 문을 두드리며 그렇게 지혜와 용기를 구하며 나갈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