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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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설교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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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는 다윗과 요나단이 나옵니다. 둘은 정말 좋은 친구였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다윗을 죽이려 하는 사울 왕의 아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친한 친구 다윗과 자신의 아버지 왕 사울 사이에서 요나단은 끼어있는 사이에 있습니다.
그런데 요나단은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사울 왕의 편이 아닌 다윗의 편에 섭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의 의도를 확신하고 요나단이 다윗을 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면입니다. 서로가 통하는 싸인을 맞추고 화살을 데리고 간 아이보다 멀리 쏘면 사울이 다윗을 확실히 죽이려고 하는 것이니 도망치라는 것이고, 짧게 쏘면 도망치지 않아도 된다는 싸인이었습니다. 요나단은 사울이 다윗을 확실히 죽이려는 것을 알고, 다윗에게 도망치라는 싸인을 줍니다. 
그러면 요나단은 자신의 아버지이자 왕인 사울을 배신한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언약의 대상을 사울에서 다윗으로 옮기시는 과정 중에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위를 옮기시죠. 요나단은 어떤 사람인가요? 그냥 배신자가 아닙니다. 혹은 다윗을 너무 좋아해서 그랬던 것도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인간 관계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즉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것이죠.
요나단은 다윗을 위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위한 일을 하는거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향한 언약을 다윗왕조로 옮기시는 과정 중에서 다윗과 요나단이라는 인물들에게 요구하시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누리고 있던 것으로부터 “떠나라”라는 것입니다.
먼저 다윗이 떠나야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1. 익숙한 자리를 떠나야 할 때가 있습니다
다윗에게 왕궁은 익숙한 자리였습니다.
다윗은 요나단의 싸인을 보고 이제 피신해야 합니다. 사울이 자신을 죽일 것이 확실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그냥 도망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가장 익숙했던 자리를 떠나야만 합니다. 다윗이 머물렀던 왕궁이라는 자리입니다.
다윗에게 왕궁은 어떤 곳일까요?
군대 지휘관으로 성공한 곳입니다. 다윗의 직업적으로 인정받고, 안정적인 자리를 잡은 곳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백성들의 인정과 명예 심지어 사울 왕보다 인정받는 곳입니다.
또한 왕궁의 자리는 사울 왕의 사위라는 자리입니다. 사무엘상 18장에서 다윗이 사울 왕의 딸 미갈과 결혼을 합니다. 왕궁의 자리는 안정적인 가정의 상황이죠.
또 왕궁은 가장 사랑하는 친구이자 조력자인 요나단이 있는 곳입니다.
다윗에게 왕궁은 어떤 곳입니까? 쉽게 정리하면 “내 삶의 기반이 다 잡혀있는 곳, 가장 안정적인 자리, 가장 편한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늘 다윗의 상황을 어떻게 몰아가십니까? 그곳을 떠나게 하십니다.
2) 익숙한 자리는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왜 다윗의 그 익숙한 자리, 그 좋은 것을 떠나게 하실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익숙하고 편한 그 자리에 있지 못하게 괴롭히시는 분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익숙한 것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다윗이 왕궁에 머물러 있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죠.
그러나 모든 인간에게는 어떤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익숙한 자리’가 자신에게 진정한 행복과 생명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게 만드는 ‘우상 숭배의 위험성’입니다.
그리고 그 익숙한 자리는 우리의 우상이 되기 가장 쉬운 것들 중 하나입니다.
다윗에게는 왕궁이라는 익숙한 자리가 우상이 되기에 충분한 곳이었습니다. 성공한 직장, 안정적인 가정, 가장 친한 친구.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춰진 것 같은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을 그곳에서 내모십니다. 왜요? 그 자리 자체가 하나님이 없어도 살 수 있게 만드는 우상숭배의 자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팀 켈러라는 목사님의 책 중 “내가 만든 신”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인간의 우상숭배에 대하여 아주 명쾌하게 풀어낸 책입니다.
거기서 팀 켈러 목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좋은 것을 궁극적인 것으로 탈바꿈시킵니다”
좋은 왕궁이라는 익숙한 자리를 궁극적인 것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궁극적인 것은 유일합니다.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를 익숙한 자리가 대체할 수 있는거에요. 그 익숙한 자리에 있는 것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우리에게 행복을 줄 것이라고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상이 되는거죠.
왕궁을 떠나서 다윗이 향하게 된 곳이 어딘지 아십니까? 광야입니다.
광야는 어떤 곳입니까? 왕궁의 반대의 자리입니다. 가장 익숙하지 않은 낯선 곳. 언제 어디서나 위험이 도사리는 곳. 자신을 지켜주는 백성들도 없고,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곳으로 다윗을 내모십니다. 왜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하나님만 바라보길 원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 하나님만 바라보는 자가 되시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3) 예화 : 이스라엘의 광야
이스라엘에게 ‘광야’라는 곳은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의 노예로 있을 때, 하나님이 모세라는 사람을 세우십니다. 그리고 모세를 통해서 노예의 신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유민으로 애굽을 탈출시키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나오자마자 가게 된 곳이 어딘지 아시나요? 광야입니다. 제가 말했듯이 광야는 매우 낯설고 불편한 곳입니다. 먹을 것도 거의 없고, 물도 부족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광야로 인도하세요.
사실 이스라엘이 애굽의 노예였지만, 애굽에서 막 못살았던게 아니거든요. 꽤 맛있는 음식도 먹고, 그래도 애굽이 이스라엘을 보호해주지 않습니까?
아니나다를까 이스라엘은 광야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불평합니다. “이곳은 음식도 없습니다. 물도 없어요. 그래도 애굽에서는 노예였지만 살만은 했습니다. 이곳은 살만한 곳이 아니에요.”
그러나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40년 동안 생활하게 하십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예레미야 2:2을 보시면 하나님의 목적이 나옵니다. 
“네 청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그 광야에서 나를 따랐음을 내가 기억하노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을 ‘하나님과의 신혼 시절’로 비유하십니다.
여러분 결혼 안 해보신 분들이 더 많죠?
신혼 때 사람들이 많이 싸워요. 왜 그렇죠? 가장 돈도 없고, 집도 가장 좁을 때고, 무엇보다 서로 같이 살지 않던 두 사람이 만나서 새로 살게 되잖아요. 안 맞는 부분들도 너무 많은거죠.
그런데 여러분 저도 이제 신혼이 다 지나고 결혼한지 7년이 됐는데, 신혼 때가 가장 뜨겁게 사랑할 때입니다. 왜냐하면 둘이 아무리 지지고 볶고 해도 서로만 뜨겁게 바라보기 때문이죠.
이스라엘은 광야 생활 동안 하나님만 뜨겁게 바라보았어요. 불평과 불만은 했지만,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거에요. 그 가운데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만나로 먹이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었던겁니다.
4) 적용 : 익숙한 자리를 떠나게 하실 때 그곳이 가장 하나님을 뜨겁게 바라볼 곳임을 기억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도 왕궁 같은 익숙한 자리가 있습니다. 안정된 관계, 직장과 사역, 사람들의 인정일 수 있습니다. 그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없으면 내 삶 전체가 무너질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 익숙함이 하나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청소년부 적용
여러분 저도 청소년일 때가 있었습니다. 믿기지 않으시나요?(유머) 벌써 나이 이렇게 많이 먹었지만 저도 어쨌든 있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이하 때는 교회 생활을 한적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청소년 시기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 딱 이 익숙한 자리를 떠나게 하실 때가 있다 이 내용이 중요하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시면서 분명히 여러분이 편한 친구들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걸 아셔야해요.
청소년 시기에 이게 참 어려운걸 이해합니다. 편한 친구들과만 같이 교제하는 것이 참 재밌는 것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분명히 아셔야할 것은 우리가 교회에서 한 공동체로 신앙 생활하는 목적은 어디까지나 “지금 있는 익숙한 관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부 전반으로 나아가야합니다.
물론 편한 관계로 먼저 다가갈 수 있어요. 하지만 거기서 끝내는건 아니라는거죠. 왜냐하면 교회라는 공동체는 모든 성도가 다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한 몸이 되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에요. 
지금 당장 익숙한 그 관계의 자리만을 추구하고 있다면 하나님이 내모시는 내가 진짜로 찾아가야할 그 친구, 그 사람에게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청년부 적용
하나님은 우리의 익숙한 자리를 떠나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익숙한 사역의 자리, 직장을 이직하기도 하고, 가정에 큰 변화가 생기기도 합니다.
익숙함을 추구하며 살아가지만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그 상황으로 내몰리는 경우가 우리의 인생에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때 여러분은 어떤 마음을 가지십니까? 어쩔 수 없이 내몰리는 상황 가운데 ‘나도 모르겠다’하며 포기 상태로 살아가십니까?
지금 그 순간 하나님이 익숙한 자리에서 떠나게 하신다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고민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순간 떠나게 하실 광야와 같은 그곳이 하나님을 가장 뜨겁게 사랑할 자리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추가할 것
2. 마땅한 나의 권리를 떠나보내야 할 때가 있습니다.
1) 요나단에게 왕위는 마땅한 권리처럼 보였습니다
요나단도 떠나야했습니다. 무엇으로부터 떠나냐면, “마땅한 권리”로부터 떠납니다.
요나단은 다윗의 친구이자 조력자입니다. 그러나 그전에 혈통적으로 왕의 상속자가 될 수 있는 자이기도 합니다.
당시 왕이 혈통에 의해 대를 잇는 것은 당연한 문화였습니다.
즉 요나단은 어떤 자입니까? 가장 강력한 아니 어쩌면 당시 문화에서는 당연히 왕이 될 자였습니다.
요나단에게 이후 왕권을 상속받는 것은 “마땅한 권리”였죠.
그러나 요나단은 본인이 차지할 수 있는 마땅한 권리, 심지어 별거 아닌 권리도 아닌 왕권이라는 큰 권리를 떠납니다.
사무엘상 20:31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사울이 요나단에게 하는 말입니다. 이새의 아들이 다윗인데, 다윗이 살아있는 동안에 너는 왕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하는 겁니다.
왕위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내 미래에 누릴 수 있는 아주 큰 유익을 내려놓는다는 것입니다.
2) 요나단이 권리를 떠난 이유와 사울과의 비교
요나단이 그 마땅한 권리를 떠난 이유가 무엇인가요?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왕의 언약은 사울에서 다윗으로 이미 옮겨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기서 요나단과 사울 왕을 한번 비교해보려고 합니다.
요나단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신의 권리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하나님의 뜻을 보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끝까지 움켜쥐었습니다.
요나단은 자신의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 속에서도 다윗을 살렸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자신의 왕위를 지키기 위해서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요나단이 자신의 권리를 떠난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바로 이것을 “믿음”이라고 얘기합니다.
나의 미래를 책임져주고, 나에게 막강한 힘과 능력을 줄 것 같은 왕이 될 권리를 과감히 내려놓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요나단은 믿고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나를 책임져주시고, 하나님만이 나의 힘과 능력이 되신다는 사실”을 알고, 믿고있기 때문입니다.
요나단을 통해 알게 되는 “믿음의 본질”은 무엇인가요? 믿음은 하나님이 내 계획을 이뤄주시는 분이라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내 계획이 무너질지라도, 하나님의 계획이 옳다고 인정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3) 예화 : 예수님과 자기비움(케노시스)
여러분 성경에 요나단과 같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신의 마땅한 권리를 과감히 떠나신 케이스가 있습니다.
아니 이 케이스는 요나단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큰 권리를 과감히 떠난 케이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포기하신 권리는 “하나님의 권리”입니다. 이 세상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왕 중의 왕의 권리를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권리를 포기한 것을 우리는 ‘성육신’이라고도 합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을 때 예수님은 하나님의 권리를 포기하신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자신의 하나님 됨의 권리보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더욱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뜻이 더욱 완벽하고 그분의 계획이 더욱 뛰어나다는 것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4) 적용
여러분 오해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누리고 있는 모든 권리를 다 포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충분히 누릴 수 있는 권리들은 다 누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 마땅히 누릴 권리마저 포기할만한 상황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그 나라를 위한 때입니다.
청소년부 적용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세요. 지금 여기 안 계시지만 송인성 목사님, 그리고 여기 안 계신 분들 다 포함한 청소년부 교사 분들.
제가 정말 잘 아는데요. 여러분 지금 이 시간 여기에 있는 것만으로 정말 많은 권리를 떠난 분들입니다.
송인성 목사님. 제가 이거 비밀인데요. 
청년 적용
한번 잘 생각해봅시다. 리더분들 있습니다. 여러분 사실 정말 많은 권리를 떠나지 않습니까?
간사들. 어제만 해도 전교인 수련회 청년들 위해서 준비한다고 아침 댓바람부터 강화도 답사 갔다왔습니다. 지금 수련회 준비한다고 회의하고, 프로그램 준비하고. 또 더드림은 연합으로 한다고 하니까 이것 저거 섬긴다고 자기 시간, 에너지 쏟아 붓는 것 다 압니다.
목자들. 토요일에 귀한 시간 내고, 목원들 케어하는데 힘쓰고 돈쓰고 에너지 쓰는거 다 압니다.
사역팀장들. 맡은 사역들 감당하기 위해서 있는 자원, 없는 자원 다 끌어다 쓰고, 애쓰는 것 다 압니다.
생각해보면 정말 많은 권리들 포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사역을 감당하는 그 순간에 쉴 권리, 선택할 권리, 나를 위해서 가진 자원을 쓸 권리
여러분 근데 그거 왜 합니까? 그거 누구 좋자고 하는거에요?
여러분 예수님 따라가는 길 아닙니까?
그런데 한번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하는 모든 사역들에 내 권리를 떠나는 중에 내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요. 하나님을 향해서, 나에게 맡겨진 타인을 사랑해서 하는 것인지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여러분의 권리를 떠나보내고, 내가 가진 자원, 에너지, 시간을 쏟아붓고 계시다면 예수님의 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음에 기뻐하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리더가 아닌 모든 청년 여러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그 뜻을 위해서 마땅히 누릴 권리를 떠나보내야한다면, 과감하게 떠나보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떠나보내신 하나님의 권리, 그것이 우리에게 생명과 은혜가 됩니다. 내가 먼저 내 권리를 떠나보내기 전에 가장 큰 권리를 떠나보내신 예수님의 은혜를 기억하시기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익숙한 자리, 내 권리를 떠나보내지만, 끝까지 붙들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언약은 끝까지 붙들어야 합니다.
1) 헤어짐 속에 끝나지 않는 언약
이제 다윗은 광야로 가고, 요나단은 성읍으로 돌아갑니다.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헤어집니다. 
두 사람은 이제 멀어집니다. 이전처럼 만나고 싶을 때 서로 만날 수 없습니다.
이제 언제 만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후에 요나단은 다윗과 잠깐 재회한 후에 길보아 산에서 블레셋과 전투 중 전사합니다.
인생과 만남은 절대로 예측할 수 없습니다. 정말 만나고 싶은 사람도 우리 맘대로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우리의 인생에서 만남은 예측 불가능한 지점으로 계속해서 남아있습니다.
2) 그러나 언약은 끝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불확실한 인생, 만남 가운데 심지어 누군가는 광야로 가고, 누군가는 성읍으로 갈 때, 또한 누군가는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을 때도. 
그런 불안한 삶 속에서도 영원히 끝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은 지금 헤어지고 있고, 재회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요나단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무엘상 20:42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이 둘의 맹세는 사람 대 사람의 맹세가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하나님이 계시는 맹세, 언약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향해 언약을 먼저 맺으십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관계에 하나님의 언약이 선행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맹세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언약이 그들에게 여전히 유효하다는 동일한 믿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서 왕조를 세워가실 것을 약속하셨고, 그들은 그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광야로, 성읍으로 헤어지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끝까지 붙들고 서로의 관계를 하나님께 의탁합니다.
3) “평안히 가라”
그러면서 이렇게도 얘기합니다.
42절 보면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라고 얘기합니다.
여러분 이들에게 무슨 평안이 있습니까?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로부터 도망쳐 광야로 갑니다. 심지어 광야도 자신의 생명이 어떨지 모르는 불확실성 속에 있는 곳입니다. 
요나단은 어떻습니까? 자신의 아버지와 친구 다윗 사이에서 다윗을 택했습니다. 그도 언제 사울에게 위협을 받을지 모릅니다. 자신의 왕으로서의 권리를 다 떠나버린 요나단은 만약 다윗이 왕이 되지 못한다면 꼼짝없이 배신자로 낙인찍혀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평안히 가라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언약을 붙드는 사람들은 지금 상황과는 상관없이 “평안”을 얻습니다.
문제가 해결돼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4) 요나단이 죽었지만 므비보셋을 통해 성취되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
우리의 인생은 어떻습니까? 광야로 내몰리는 것 같을 때, 내 권리를 포기하고 어딘가로 향할 때 ‘평안히’ 가고 있습니까?
실제로 사무엘하 9장에서는 요나단이 전사한 후에 다윗이 이 언약을 신실하게 이행합니다.
요나단의 아들 중 다리 장애를 가진 므비보셋이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이 므비보셋은 요나단의 아들, 사울의 손자입니다. 처음에 므비보셋은 다윗 왕이 찾아오니까 자신이 사울의 후손인 것을 알고 죽임당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왕위가 바뀌었을 때 이전의 왕의 후손들은 숙청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당연했던 시대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어떻게 합니까? 므비보셋을 자신의 왕궁으로 들이고, 자신과 같이 식탁을 공유합니다.
왕궁과 식탁을 공유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명시적이진 않지만, 내 아들과 같이 맞이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요나단과의 맹세를 잊지 않고 성실히 이행합니다. 다윗과 요나단 사이에 인간적인 관계가 아닌 하나님의 연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므비보셋을 챙기는 것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지만,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여 그를 극진히 맞이합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끝까지 이행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붙들어야할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이 하나님의 약속, 그 약속의 말씀은 우리가 끝까지 붙들어야 하는 겁니다.
5) 예화 : 요나단의 후손과 같은 우리와 다윗과 같은 예수 그리스도
여러분 그런데 다윗이 언약을 지키는 것과 므비보셋을 보면 누군가가 혹시 떠오르지 않습니까?
다윗과 요나단이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어서 므비보셋이 살게 된 이 이야기는 사실 예수님과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역시 죄로 인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아무런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내어주시고 피를 흘리심으로 새 언약을 성취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받아야 할 언약의 저주를 대신 받으시고, 우리에게 언약의 모든 복을 허락하셨습니다.
그 십자가의 피로 우리를 용서하시고 하나님 나라라는 왕궁으로 불러들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겨우 살려두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한 가족으로 맞아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종처럼 문밖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왕의 식탁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신실함이 아니라 언약을 끝까지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상황이 불안하고 앞길이 보이지 않더라도 십자가에서 완성된 언약은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6) 적용 : 언약을 붙들고 살아라
그렇다면 하나님의 언약을 붙든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원하는 일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막연히 낙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 뜻대로 일하실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나의 구원을 완성하여 마침내 하나님 나라의 식탁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사람은 떠날 수 있습니다. 계획은 무너질 수 있고, 내가 누리던 권리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진 언약은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불안한 일이 생길 때 상황만 바라보며 “앞으로 어떻게 될까?”라고 묻지 마십시오. 먼저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약속하셨는가?”라고 물으십시오. 약속의 말씀을 다시 펴고, 기도와 예배의 자리를 지키며, 오늘 내게 주어진 한 걸음을 순종으로 걸어가십시오.
광야가 사라져야 평안한 것이 아닙니다. 광야 너머에 왕의 식탁이 이미 약속되어 있기 때문에 광야에서도 평안히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받은 언약의 신실함을 따라 손해가 있더라도 약속을 지키고, 외면당한 사람을 품으며, 은혜의 식탁으로 초대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붙드십시오. 언약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여러분 앞에 놓인 길을 평안히 걸어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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