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시험 (창세기 22장 아브라함이 이삭바치는 사건 어른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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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오늘은 하나님의 시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우리는 각자 살아가면서 삶에서 여러 시험들을 칩니다. 뭐 중고등학생때는 대학을 가기 위해서 시험을 치고, 대학을 가서는 학점을 따기위해, 취업을 하기 위해 시험을 치며, 어떤 회사들은 승진 시험이라는 것도 있지요. 아무튼 우리는 삶에서 정말 많은 시험들을 칩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에도 시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왜냐하면 시험은 우리의 신앙의 현재 상태를 알 수 있게도 하구요. 그리고 시험은 우리의 신앙을 성장시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아브라함도 시험을 받지요. 그래서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3가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시험의 본질
2. 시험의 이유
3. 시험을 통과하는 방법
시험의 본질
자 우선 첫째로 이 시험의 본질이 무엇인지 한번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그러면 시험의 본질에 대해서 한번 살펴봅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시험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저번 달 오후예배 설교에서 저는 창세기 12장을 설교하면서 처음으로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는 부분을 설교했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처음 부르실 때 아브라함한테 하신 명령은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라는 명령이였습니다.
즉 너가 지금 인생에서 중요하게 삼고 있는 것, 가치있게 여기고 있는 것, 안전으로 삼는 그것을 내려놓고 나를 따르라는 명령이죠.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러한 말씀을 삶에서 계속 듣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100프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부분적인 순종을 합니다. 분명히 가족도 떠라라고 했는데 처음 메소포타미아에서 부르심 받았을 때는 아버지 데라를 데리고 가기도 하구요.
두 번째 하란에서 부르심 받았을 때도, 분명히 친척을 떠나라고 했는데 롯을 데리고 가죠. 아브라함은 계속 부분적인 순종을 하죠. 그러한 가운데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에서는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브라함의 삶 가운데 펼쳐치는 이러한 명령들은 전부 같은 명령이라는 것을 알고 계시나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삶 가운데 계속 아브라함이 가장 가치있게 여기고 안전으로 여기는 것을 내려놓으라는 명령을 하고 계신겁니다.
즉 아브라함의 삶 가운데 계속 되는 이 시험은 이런 거죠. 너는 너의 삶 가운데 오직 나만을 젤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나만을 안전으로 삼아라. 즉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나 외에 다른 신을 내게 두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즉 십계명 중 1계명이죠.
아브라함의 인생을 보면요. 한 사람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께서 십계명 중 제 1계명을 어떻게 이루어가시는 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2절을 보면요.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여기서 독자라는 말에 주목해봅시다. 여러분 이삭이 정말 아브라함의 독자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브라함한테는 하갈을 통해 낳은 이스마엘이라는 아들도 있습니다. 물론 이스마엘은 하갈과 같이 아브라함을 떠났죠. 그래서 현재 남은 아들은 이삭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이 독자라는 표현은 단순히 현재 아브라함 곁에 이삭밖에 없어서 그러한 이유만으로 쓰인 표현이 아닙니다.
이 독자라고 쓰인 이 부분은 히브리어로 야히드는 히브리어인데 이것은 매우 중요한, 하나뿐인 이런 뜻도 있습니다. 즉 아브라함한테 이삭은 어느 순간 엄청나게 중요한 존재로 자리매김 한 것이죠. 사실 성경 전체 내용을 보면 그럴만도 합니다. 우선 이삭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자손을 약속 받은 후 무려 25년을 기다려 낳은 자식이죠. 그 사이에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해서 막 여종을 통해서 낳으려고도 하고 그래서 낳은게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잖아요. 어쨌든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계속 나타나셔서 사래를 통해서 나온 자손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신다고 말씀하시죠.
그러다가 마침내 25년만에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로 이삭을 낳았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자신이 아끼던 롯도 떠난 마당에요. 그리고 이 때 이미 사라가 생물학적으로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였는데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으로 얻은 자식이죠. 거기다가 이 당시 장자는 정말 큰 역할이였잖아요? 어쨌든 여러 이유로 아브라함은 이삭을 정말 사랑했습니다. 자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시죠.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쳐라.
왜요? 왜 그럴까요? 두 번째입니다. 시험의 이유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인생의 전반에 걸쳐서 너의 안전을 오직 나만을 삼으라는 명령을 하십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내게 두지말라는 명령을 하신거죠. 또 다르게 표현하면 그 어떤 것도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지 말라는 명령을 하신겁니다. 왜죠?
첫째로 우리가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잖아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가 없게됩니다. 사명을 감당할 수가 없게되요. 종교 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사냐 못 사냐는 십계명 중 1계명을 지키냐 안 지키냐로 결정된다요. 왜죠? 우리가 만일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한다고 합시다. 그러면 돈을 얻기 위해서 때로는 거짓증언하지 말라는 명령을 어깁니다. 돈을 얻기 위해서 도둑질 하지 말라는 명령을 어깁니다. 나보다 더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의 돈을 탐냅니다. 우리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대상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깁니다.
예를들어 성취를 우상으로 삼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사람은 성취를 얻기 위해서 하나님 말씀을 어깁니다. 다른 사람의 인정이 하나님보다 중요한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기위해 때로는 거짓말을 하고 술수를 쓰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게 됩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가장 사랑한다면, 하나님만으로 이미 충분하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것을 탐낼 필요도 없고, 거짓말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인정으로 충분하기에 다른 사람이 인정을 위해서 말씀을 어길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하나님으로 충분하고 하나님께서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실 것이기에 돈을 위해서 말씀을 어길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그렇기에 1계명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둘째로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외에 그 어떤 것을 신에자리에 둔다면, 그 신은 우리를 결국 구원하지 못 하기 때문입니다. 그 신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안전이 될 수 없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우선 설명드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에 수 많은 부분들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 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바알신 숭배가 있죠. 그 당시 농경 사회에서 바알은 비도 잘 내려주고, 농사를 잘 지내게 해줘서 풍요를 주는 신으로 알려졌죠. 그래서 실제로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바알신을 많이 따랐습니다.
그러나 가뭄이 들고 바알신은 그 가뭄을 해결해주지 못하죠. 결국 엘리야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비가 내리고 가뭄이 그치죠. 바알은 결국 궁극적으로 이들의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습니다.
그 외에도 이스라엘은 사사 시대에 끊임없이 우상숭배를 합니다. 사사시대 내내 우상숭배를 하지요. 그러나 그 우상은 이방 민족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사시대에 이방 민족의 압제가 있을 때마다 이스라엘은 결국 하나님께 매달렸죠.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인들은 많은 것들을 단순히 사랑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것은 신의 위치에 올려놓습니다. 돈, 명예, 커리어, 사랑, 누군가는 자신의 자녀 등을 자신의 안전으로 삼거나 자기 인생의 구원으로 삼습니다. 그러나 저보다 훨씬 오래사신 성도님들께서 더 잘 아실겁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에게 궁극적인 안전이 되지 못합니다. 물론 안전이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인 안전이 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가지기 전에는 이것들을 가졌을 때 우리에게 구원을 줄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가지면 허무해집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에게 궁극적인 구원을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명령하시는 겁니다. 너는 그런 것들보다 좀 더 안전한 곳에 너의 뿌리를 두어라. 너의 진정한 안전은 나다라고 말씀하시는 거죠.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이유는 그 분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것은 굳이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거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배우자 혹은 자신의 남자친구 여자친구가 나 외에 다른 이성을 사랑한다면 정말 분노할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너에게 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아야한다. 너는 나를 가장 사랑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시험을 하신겁니다. 그러면 세 번째 대지로 넘어가죠. 우리는 어떻게 시험을 통과할 수 있습니까? 다른 말로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만을 안전으로 삼고하나님을 가장 사랑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야 합니다. 우선 오늘 본문에 2절을 보면 모리아 땅으로 가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말합니다. 그냥 여기서 바로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셔도 되는데 굳이 모리아 산으로 가서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현재 아브라함이 있는 곳에서 모리아 땅ᄁᆞ지 가는 데 3일 정도가 걸렸습니다. 실제로 오늘 본문 4절을 보면 제삼일에라는 표현이 나오죠. 즉 가는 데 3일 정도가 걸렸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3일동안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마 정말 복잡한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각해보세요. 아브라함 입장에서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명령이 모순되게 느껴졌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분명 이삭을 통해서 언약을 세우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그죠? 창세기 17장 19절을 한번 띄워주시겠습니까? 네 제가 읽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자 봅시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이삭을 통해서 영원한 언약을 세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삭을 바치라고 명령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십시오. 이삭을 죽으면 어떻게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나요. 아브라함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모순적으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많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그 사람은 복을 받고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현실을 봤을 때는 오히려 반대처럼 될 거 같은 모순을 겪죠. 정말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을 까? 하나님 말씀대로 정직하게 살면 오히려 손해를 보지 않을까? 하나님 말씀대로 헌금을 내면 오히려 돈을 더 못 모아서 불행하게 되지 않을까? 하나님 말씀대로 누군가를 섬기면 더 손해 보는 인생이 아닐까?
하나님의 약속과 현실이 모순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시험에 들죠.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죠. 이삭을 바치면 이삭을 통해서 어떻게 언약이 성취되지? 너무 모순적인데? 그리고 아브라함은 이 생각을 모리아 땅으로 가는 3일 내내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도 이러한 모순적인 상황에 놓이면 오랫동안 고민하죠. 이 마음은 아마 성도님들 모두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이어서 아브라함의 결론을 보죠. 아브라함은 모리아 땅으로 가는 3일 내내 고민한 결과 결론을 내립니다. 우선 오늘 본문 말씀에 7절-8절을 한번 읽어봅시다. 다 아이이이
자 여기서 이 말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어린양은 친히 준비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한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딱 이렇게 될 것이다라는 말 보다는 아마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어떤 일을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모순을 해결하실 것이다의 의미에 가깝습니다. 이것을 히브리서 11장 17-19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자 19절 부분은 새번역 성경이 더 잘 번역되었습니다. 개역개정은 19절이 뭔가 아브라함이 실제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라고 말하고 있지만, 새번역 성경은 이렇게 나옵니다. 하나님이 되살리실 수 있다고. 즉 아브라함은 내가 이삭을 죽이면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되살릴 수도 있지 않을까? 추측한거죠. 왜냐하면 언약이 집행되려면 이삭이 살아있어야 하니깐요. 어쨌든 공통점이 뭐죠? 하나님이 책임지실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죠. 그리고 마침내 아브라함은 이 시험을 통과하죠. 지금까지 부분적인 순종만 반복하던 아브라함이 여기서 마침내 완전한 순종을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이삭의 믿음도 돋보이죠. 이삭은 그 당시 건장한 나이였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정말 나이가 많이 들어서 다 늙은 상태였죠. 그러나 아버지에게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묶이죠. 그리고 아브라함이 이삭을 결박한 후 칼을 잡고 아들을 잡으려 할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 다 같이 11절-13절을 읽어봅시다. 시작 네
하나님께서 대신 죽일 한 숫양을 보내셔서 대신 번제로 드리게 하죠. 여기서 우리는 시험에 통과하는 방법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는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라는 것, 그리고 두 번째로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준비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이죠. 우리가 오직 하나님만을 안전으로 삼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는 항상 가장 좋은 것을 준비해두십니다. 그리고 항상 우리를 구원하시죠.
이것을 알 때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습니다. 자 그런데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아니 그것을 어떻게 확신하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 우리의 궁극적인 구원이 되신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하죠? 자 여러분 오늘 말씀에 이삭을 대신해서 죽은 이 숫양은요. 수 천년뒤에 오실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오늘 사건이 있은 후 수 천년의 시간이 흘러서요.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이 땅으로 오십니다. 사람의 모습으로요. 왜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요.
여러분 오늘 본문에 나오는 모리아 땅이 신약 시대로 넘어가면 지명이 어ᄄᅠᇂ게 되는 지 아십니까? 역대하 3장 1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서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즉 모리아 산은 예루살렘 지역이죠. 그리고 그 예루살렘 성밖의 골고다에서, 마치 이삭이 자신을 바칠 번제나무를 지고 모리아 산을 올랐듯이.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매달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를 올라가죠. 이삭은 번제로 바쳐지기 직전에 대신 죽일 숫양을 하나님께서 준비해두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요. 십자가에서 정말 죽으셨습니다. 왜요? 이삭을 포함한 우리 모두를 구원하기 위해선 이삭 대신 죽은 숫양처럼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죄를 위해서요. 그리고 우리는 그 십자가를 깊이 묵상할 때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고 하나님을 가장 안전으로 삼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한테 하신 고백을 우리도 하나님께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뭐라고 말씀하시죠?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는 모습을 보니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너가 이제야 나를 가장 사랑한다는 것을 알겠다. 이렇게 말씀하시죠. 그러면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이 가장 사랑하시는 자신의 독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단 것을 보고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하나님의 독자를 십자가에 매다신 것을 보고, 나는 이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나는 이제 안전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독자까지 죽이신 분이라면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실 줄 믿습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은혜가 우리 사랑교회 성도님들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