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누구신가?(5) - 하늘로부터 오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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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예수님은 누구신가 4번째 시간으로, (따라)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셨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셨다” 이 말은 세례 요한이 한 말. (본문 31절)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세례요한을 포함, 모든 사람은 땅에서 난 사람. 그러나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신 분. 지난 주 니고 데모와의 대화를 통해 전하신 말씀.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하늘에서 보내신 독생자가 예수님.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셨다 증언한 세례 요한을 보면 인생은 얼마나 오래 사는가가 중요한게 아니라,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한가를 봄. 본문 (24)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당시 갈릴리와 베레아 지역을 다스린 분봉왕 - 헤롯 안티파스.. 그의 동생이 빌립, 그의 아내 헤로디아,. 헤롯이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취합니다. 레위기 20:21 을 보면 그의 형제의 아내를 데리고 살면 그것은 더러운 일이라 했거든요, 이 구약 율법을 따라, 세례요한은 헤롯을 공개적으로 비판합니다. “당신이 그 여자를 차지한 것이 옳지 않다” 아주 직설적으로 공개적으로 비판을 합니다. 당시 요한은 매우 영향력이 있는 사람. 사람들이 그를 그리스도라 생각할 정도로 그의 말, 행동 하나 하나 사람들에게 매우 큰 영향이 있으니 헤롯은 .. 입틀막이라 하죠. 이 요한의 입을 틀어 막기 위해 그를 감옥에 가두고, 헤로디아와 그의 딸 (살로메)의 계략펴서 참수해 죽이고 맙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 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났는데, 참수당해 죽을 때의 나이가 대략 32세정도로 봅니다. 굉장히 짦은 인생을 살았다.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불꽃같은 인생을 살은 것이죠. 예수님은 누가복음 7:28에서 세례요한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큰 사람이라 평가 하심.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 헤롯의 불의함에 대해 침묵하지 않은 점일수 있겠지만, 예수님입니다. 받은 사명을 따라 예수님이 누구신지 정확히 알아 예수님을 전했고,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알게 하고, 믿게 하고 따르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수님 여자가 낳은 자중에 요한보다 큰 사람이 없다 평가하신 것.
모세는 시편 90:10에서 우리의 연수가 평균 70이고, 건강하면 80이라 했는데요,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평균이 80이고, 강건하면 100세까지도 살수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99881234란 말도 있잖아요. 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하루,이틀 ,삼일 아프다, 죽자… 세례요한을 본다면 99세, 100세까지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합니다. 세례요한처럼 32년의 짦은 인생을 살았다 할지라도, 내가 예수를 잘 믿고,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를 위해 살고, 예수를 전하며 살았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잘 살아낸 인생입니다. 하지만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하루 이틀 삼일 아프다 죽을 지라도, 그 속에 예수가 없이 나만을 위해 살았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잘 살아낸 인생이 아닙니다. 강하게 이야기하면 인생을 헛 살은 것입니다.
예수 믿으며 삽시다. 예수 위해 삽시다. 예수 전하며 삽시다.
본문 22절은 “그후에”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언제를 말할까 ? 이 앞에, 니고데모를 만난 이후를 말하는 겁니다. 지난 주 말씀인데,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무엇을 말씀? 거듭남에 대해 말씀하셨죠. 어머니 모태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은 죄중에 잉태되고, 죄중에 출생하기에, 거듭나야 한다.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고, 하나님이 보내신 독생자 예수를 믿어 거듭나야 한다.... 이 거듭남에 대해 말씀하신 이후의 일이 본문입니다.
22절에 보면, “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당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베푸시더라.” 읽지는 않았지만 요한복음 4:2 예수께서 세례를 베푸신 게 아니라, 제자들이 베풀었는데, 죄로 인해 더럽혀진 마음을 정결케 하는 의미로 세례를 베푼 것입니다. 동시에 23절을 보면 요한도, 거기에서 가까운 애논이란 곳에서 세례를 베풀었는데, 문제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가는 사람들 보다, 예수님께 세례를 받으러 가는 사람들이 훨씬더 많았다는 겁니다.
그러자, 요한의 제자중 한 사람이, 요한에게 이 상황을 전합니다. 요한복음 3:26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A 교회라 합시다. A교회에서 열심히 사역했던 부목사가 개척의 비전을 품고 사임을 해서, 가까운 교회에 개척을 했습니다. B교회라 합시다. 그런데 개척된 B 교회가 부흥하기 시작합니다. 한사람 두 사람 늘어가더니 A교회를 섬기던 성도들도 하나 둘씩 그 교회로 가갑니다. 그러자 A교회 장로님이, 위기 의식을 느끼고 목사님께 전하는 거죠. 목사님. B교회로 성도들이 떠나고 있습니다. 이거 막아야 합니다… 그말이, 선생님, 선생님이 증언하셨던 이 에수님이죠. 그 예수라는 사람이 선생님처럼 세례를 베풀었는데, 사람들이 다 그에게로 갑니다.. 이거 막아야 합니다.. 이런 말입니다.
그러자, 요한이 대답합니다. 요한복음 3:27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그걸 내가 어떻게 막을수 있는가?
28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29절)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요한은 비유로 전합니다. 우리 나라의 결혼식, 신랑과 신부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결혼식을 합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결혼식은 그렇지 않습니다 . 혼인잔치를 시작하면, 신부는 신랑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죠. 그럼 신부는 신랑을 맞이 해 결혼식이 끝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이 결혼식을 돕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랑의 친구입니다. 들러리입니다. 신랑이 왔을때, 기뻐하면서 신부에게로 달려가 신랑이 왔음을 전해 주고, 그래서 신부로 하여금 신랑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고, 신부가 신랑을 맞이하여 부부가 되면, 그로 인해 매우 만족해하고 행복해 하는 사람이, 신랑의 친구이고 들러리입니다.
지금 요한이 바로 그 신랑의 친구 들러리와 같다는 겁니다. 자신은 신랑의 친구 들러리와 같이 신랑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전해서, 예수님의 신부가 되게 하는 사람이 었고, 그대로 되니 자신은 크게 기뻐한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그가 전하는 말, 30절을 봅시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어떤 신학자가 그리스도인들은 세가지의 연습을 해야 한다 했습니다. 1) 작아지는 연습 2) 희미해지는 연습 3) 사라지는 연습.
나는 계속 흥하고 싶어요. 나를 나태나고 싶고, 내가 주목 받고 싶고, 내가 인정 받고 싶고… 네가 최고란 말을 듣고 싶고… 하지만 내가 흥하잖아요? 그럼 반대로, 예수님이 ‘쇠’하십니다. 그래서 우린 연습해야 합니다. 반복해서 해야 합니다. 내가 작아지는 연습을 해야 하고, 내가 희미해지는 연습을 해야 하고, 내가 사라지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 내가 작아지고 희미해지고 사라질 때, 다시 말해 내가 쇠할때, 예수님이 나타나시고, 예수님이 흥하시는 겁니다.
바울을 보시기 바랍니다. 빌립보서 1:20-21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내가 죽음을 통해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나타나게 된다면 그 죽음은 내게 매우 유익하다. 매우 필요하다는 고백이 아닙니까?
내가 죽어야 합니다. 내가 쇠해야 합니다. 내가 작아져야 합니다. 내가 희미해지고 사라져야 합니다. 그래야 내안에 계신 예수가 존귀하게 되고 흥해지는 것입니다.
나를 쇠하게 합시다. 내안에 계신 예수가 흥해지실 것입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전한 요한은 예수님을 전합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그분은 하늘로부터 오신 이이다.
다시 31절을 봅시다.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요한복음 1장을 기억하십니까? 예수님 은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하나님, 그는 생명으로 세상 모든 것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신데, 그가 하늘로부터 내려 오셨습니다. 즉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이죠. 예수님도 요한복음 6장에서 떡으로 자신을 비유하시며, 만나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었던 것처럼, 나도 하늘에서 세상에 생명을 주기 위해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오신 예수님은 만물 위에 계신다고 합니다. 모든 만물을 다스리신다는 것이죠. 본문 35절도,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다고 합니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28: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하늘에서 오셨으며 만물위에 계셔서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란 것입니다.
34절을 봅시다.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라.
예수님은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고, 영생을 주시고,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십니다.
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 36절, 봅시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하늘에서 오시고 만물위에 계신 예수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 영생을 얻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 순종하지 않는 사람, 거절하는 사람, 영생이 없어요. 그 위에 하나님의 진노가 머물러 있어요.
요한일서 5:11,요한1서 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생명은 내 노력으로 얻는 게 아닙니다. 생명은 내 조건으로 얻는게 아닙니다. 세례요한이 전한 것처럼, 또 요한이 전한 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고, 내 죄를 위해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 그러나 죄와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믿으면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으면 생명이 없고,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고, 그 진노가 집행이 되는 것이 첫번째 죽음이요., 그 이후에 두번째 죽음을 맞게 됩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누구실까요? 그분은 하늘로부터 오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믿읍시다. 믿는 자에게 영생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