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을 시작하시는 하나님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 view
Notes
Transcript
  오늘 본문은 삼손의 출생을 앞두고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만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구원해 달라고 부르짖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전까지 사사기의 반복되는 사이클은 백성들이 고통 중에 있을 때, 그 고통을 견디다 못해 부르짖었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할 사사를 세우셔서 구원하셨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말씀드렸다시피 사사기 13장에서는 백성의 부르짖음이 없습니다. 이제는 블레셋의 지배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자신들에게 구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이 구원해 달라고 부르짖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길을 준비하셨습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던 마노아의 아내를 찾아오셔서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고, 그 아이가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손에서 구원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 직전의 이야기이고, 오늘 본문은 그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지기 시작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5절 말씀입니다.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구하옵나니 당신은 우리에게 머물러서 우리가 당신을 위하여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게 하소서 하니”
  마노아는 자신에게 좋은 소식을 전한 이 방문객을 대접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사자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16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나를 머물게 하나 내가 네 음식을 먹지 아니하리라 번제를 준비하려거든 마땅히 여호와께 드릴지니라 하니 이는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마노아가 알지 못함이었더라”
  마노아는 그를 평범한 하나님의 사람쯤으로 여기고 음식을 대접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사자는 그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돌리고 있습니다. “나를 대접하려고 하지 말고 여호와께 예배를 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나님을 대접하는 일처럼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시간을 내어 예배드리고, 물질도 드리고, 봉사해 드린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온 천지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한낱 우리가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필요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를 생각하면서 “이정도면 잘 했어”라는 착각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무엇을 행하셨는가?”를 묵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주셨는지를 깨닫게 되면 우리의 예배와 신앙생활은 의무가 아니라 감사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노아는 여호와의 사자에게 이름을 묻습니다. 약속이 이루어지게 되면 그 이름을 높이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사자는 18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자라 하니라”
  ‘기묘’라는 말에는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다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경험 안에 가둘 수 없는 분이며,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놀라운 일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당시 마노아의 가정에는 아이를 얻을 가능성이 없었고, 이스라엘에도 블레셋의 압제에서 벗어날 소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길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눈에는 절망이었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소망이 있었고, 구원의 길이 이미 예비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불임의 가정에서 생명이 태어나게 하시고, 그 한 아이를 통해 이스라엘의 구원을 시작하려 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사자의 말을 따라 마노아가 염소 새끼와 소제물을 반석 위에서 여호와께 드리자 하나님께서 기이한 일을 행하십니다. 불꽃이 제단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데, 동시에 여호와의 사자도 그 불꽃에 휩싸여 올라간 것입니다. 이를 본 마노아와 그의 아내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립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묻고 그분이 누구신지 이해하려 했던 사람이 이제 하나님 앞에 엎드려 예배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완전히 이해한 다음에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성품과 약속을 신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어떻게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다 이해하지 못해도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신뢰하는 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인 것입니다.
  우리 앞에 놓인 현실만 보면 길이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가정과 자녀, 건강과 생업의 문제를 생각하면 막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한계가 하나님의 한계는 아닙니다. 하나님께는 한계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방법을 찾지 못한다고 해서 하나님께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님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죄와 죽음에 사로잡힌 우리를 구원하신 십자가도 인간의 지혜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상하지도 못할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실패와 수치로 보였던 그 십자가가 우리를 살리는 구원의 능력이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 이해할 수 없어도 “한계가 없으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만난 마노아는 22절에서 아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아내에게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 하니”
  놀라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지만 마노아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보았지만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읽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하나님께서 이미 베푸신 은혜를 근거로 현재의 두려움을 해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물을 받으셨고, 기이한 일도 보여 주셨고,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우리를 죽이시겠냐는 것이었습니다. 마노아는 두려움 때문에 약속을 잊어버렸지만, 그의 아내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두려움을 이겼던 것입니다.
  우리도 어려움을 만나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제 다 끝났다. 망했다.”
  하지만 그 순간 하나님께서 이미 베푸신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를 버리려 하셨다면 독생자를 보내셔서 십자가에 내어 주셨겠습니까?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죄하여 버리려 하시는 것이 아니라 살리고 구원하려 하신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렇기에 현재의 고난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의심으로 해석하지 말고, 십자가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현재의 고난을 해석할 수 있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 믿습니다.
  마지막 24절 25절에는 마침내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기 시작합니다.
  “그 여인이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그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
  삼손이라는 이름은 ‘작은 태양’, ‘태양처럼 빛나는’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블레셋의 압제 아래 어둠과 같은 시간을 보내던 이스라엘 가운데 작은 빛이 태어난 것입니다.
  하지만 삼손은 완전한 구원자가 아닙니다. 잘 아시다시피 그는 여러 약점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삼손을 통해 이스라엘의 구원을 시작하셨습니다. 구원의 근거는 삼손의 완전함, 강력한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있기 때문입니다.
  25절 말씀은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고 말합니다. 아직 블레셋의 압제는 끝나지 않았고 현실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구원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기도한 것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성령님께서 움직이기 시작하셨다면 구원의 역사는 이미 시작된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기에 작은 우리의 시작을 작게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 사람의 회개, 한 번의 순종, 새벽에 드리는 이 기도, 말씀을 붙잡는 작은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시작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의 중심은 삼손이 아니라, 구원 역사를 시작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이 구하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준비하셨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 가운데 길을 여시고, 두려움 속에 있는 자들에게 약속을, 연약한 삼손을 성령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 가운데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기묘한 일을 행하십니다. 우리는 두려움에 흔들리지만 하나님은 신실하게 약속을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는 연약하지만 성령께서 우리를 움직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오늘 이 새벽, 두려움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현실의 어두움보다 이미 떠오르기 시작한 구원의 빛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기묘한 일을 행하시며 구원을 시작하시는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와 우리 가정과 교회 가운데 새로운 일을 시작하심을 믿어 감사로 주님께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